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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총론. 문화기호학과 연민의 문학 텍스트 1부. 고전 문학으로 읽는 다문화 사회 1장. 설화 구술을 통해 본 문화 주체로서의 이주민 2장. 다문화 사회에서의 정체성과 구비 문학 3장. 신데렐라 스토리를 통한 다문화 교육 4장. 다문화 동화로서의 아시아 전래 동화 2부. 현대 문학으로 읽는 다문화 사회 1장. 다문화 문학과 문학 교육: 다수자를 대상으로 하는 다문화 교육 2장. 타자들을 향한 연민과 연대의 시학: 정지용과 윤동주의 동시(童詩) 3장. ‘우리’의 확장, 한국 소설과 다문화적 풍경들 참고 문헌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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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애틋하게 사랑하듯 다른 사회에서 온 이주민들을 사랑할 방법은 무얼까? 이 책에서는 문학 텍스트를 그 가능성으로 감히 설정한다. 애기애타(愛己愛他), 즉 나를 사랑하듯 타인을 사랑하기 위해서 우리는 문학의 세계를 탐방해야 한다. 어두운 밤하늘에 펼쳐진 수많은 별을 헤아리듯 말이다.
--- p.12~13 문학은 세계의 불가능과 개인적 인식의 불가능을 뛰어넘는다. --- p.16 책에 담긴 신화 자료는 텍스트가 고정되어 있지만 현장 구술 신화는 현재형으로 살아 움직인다. 그것은 듣는 이와의 상호 작용 속에서 즉각적이고 입체적인 문화적 힘을 발휘한다. 그 이야기 하나하나를 작은 문화 박물관이라고 보아도 좋다. 오랜 세월 충적된 삶과 문화의 무게가 그 속에 오롯이 깃들어 있다. 그 이야기들을 전해주는 이주민 구술자들은 문화의 전달자를 넘어 완연한 주체였다. 동반자적 주체를 넘어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확장해주는 계시적이고 계몽적인 주체로서의 면모다. --- p.71~72 무엇보다 민속학과 구비 문학 분야에서는 정체성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 특히 한국에 들어온 이민자들이 어떤 정체성을 형성하느냐 하는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물론 그들이 가져온 문화를 존중하는 것도 좋지만 한국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전통문화’를 그들에게 강요한다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 거부나 한국 사회에서의 소외 등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 p.132~133 콩쥐와 섭한은 동물과 소통하면서 공존을 지향한다. 〈콩쥐팥쥐〉에서 암소는 밭을 갈고 두꺼비는 깨진 항아리를 몸으로 막아낸다. 새는 작은 입으로 나락을 깐다. 인간보다 제한된 능력을 가진 동물들이 콩쥐가 할 수 없는 일을 해서 콩쥐를 위기에서 구해낸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과 동물, 인간과 자연의 상호 이해와 우정을 바탕으로 한 공존을 본다. 거기에는 ‘우열’이 아닌 ‘차이’가 있다. 차이와 공존의 필요성을 제창하는 다문화 주의의 이상은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모든 생명을 존중하는 가운데 공존을 추구해야 하는 생태주의의 이상과 통하는 면이 있다. --- p.158 다문화라는 용어의 의미를 원론적으로 생각해보아도 다문화 동화란 문화 충돌과 문화 갈등을 겪는 이주민의 이야기가 아닌 다양한 국가에서 우리 사회로 이주한 사람들의 문화 가치관에 대한 소개와 이해일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세계 전래 동화, 특히 아시아 전래 동화에 다문화 동화로서 새롭게 접근해보고자 한다. --- p.165~166 즉 다문화 문학 교육을 통해서 학습자들은 자신의 체험이나 정서를 활용하여 문학이라는 정서적 텍스트를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문학 학습자는 시의 화자가 되어 시의 세계에 감정을 이입하거나 소설의 주인공 혹은 등장인물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작품을 읽음으로써 일차적으로는 작가의 감정이나 정서를 표현한 문학의 정서를 이해하고 공감하며, 이차적으로는 학습자 자신의 정서와 인성을 함양하는 교육적 효과도 얻는다. --- p.198 이런 윤동주의 시와 삶의 문법이 ‘식민지 현실이 강요하는 존재 모순의 현기증, 이를 초극하기 위한 윤리적 정념과 자아 성찰의 지속적 강화’에 토대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우리는 이 어려운 걸음을 ‘불가피한 삶에 대한 뼈아픈 운명애(運命哀)’라고 불러도 좋겠다. 이 괴로운 불협화음의 심연 속으로 스스로를 날마다 던져보지 않고는 그 누구도 윤동주의 내향성과 제도적 타협을 함부로 탓하거나 비난할 수 없다. 아니다, 우리는 이런 전제를 걸어두기 전에 저 운명‘애(哀)’가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는 절실한 운명‘애(愛)’, 특히 타자 지향의 ‘인의(仁義)’를 몰고 왔음을 기억해야 한다. --- p.248 하지만 이러한 욕망은 완득이가 다문화 가정의 아이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그의 계층적 속성과 더 긴밀하게 연관된 욕망이다. 이미 많은 아동·청소년 소설에서 하위 계층의 아동이나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삼을 때 열악한 환경에서도 건강하게 잘 크는 존재로 묘사해왔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본다면 『완득이』가 다문화 가정 아동에 대한 한국 사회의 다문화 판타지를 새롭게 형성했다기보다는 하위 계층 아동에 대한 한국 사회의 판타지 속에 다문화 가정의 문제가 포섭된 것이라고 보는 편이 더 타당할 것이다. --- p.2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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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랑하듯 타인을 사랑하기 위해 탐방하는 문학의 세계
타인과 공존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가깝게는 가족에서 학교나 직장에 이르기까지 갈등 없는 공동체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물며 ‘사회’라는 거대하고 경계가 불분명한 공동체에서 나와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일이 오죽하겠는가. 그러나 좋든 싫든 다문화 사회는 이미 주어진 현실이다. 2025년 2월 말 기준, 우리나라에는 260만 명에 가까운 외국인이 체류 중이다. 다문화 사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갈등을 해결하고 더 나은 방식으로 공존하기 위해서는 물론 법과 제도의 정비가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피부를 맞대며 살아가는 이 사회의 구성원 하나하나가 다문화 사회의 특성을 이해하고 타문화를 존중하는 태도를 갖추는 것도 그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다. 다문화 인문학 총서 3권 『문학으로 다문화 사회 읽기』의 저자들은 후자를 달성하기 위한 통로로 문학을 제시한다. 나를 사랑하듯 타인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어두운 밤하늘에 펼쳐진 수많은 별을 헤아리듯” 문학의 세계를 탐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학을 통해 다문화 사회를 읽어내는 구체적 방법은 무엇일까? 우선 연민을 유발하는 문학 텍스트를 통해 “개인의 감정을 넘어 사회 정의를 지향하고 도덕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총론. 문화기호학과 연민의 문학 텍스트). 이주민이 고향의 설화를 구술하는 이야기판을 마련해 생생한 문화적 교감을 경험할 수도 있고(1부 1장. 설화 구술을 통해 본 문화 주체로서의 이주민) 한국에 정착한 이들이 “한국 구비 문학의 소비자나 타국 구비 문학의 공급자 역할을 하는 데서 나아가 한국 구비 문학을 함께 만들어가는 미래”도 꿈꿔볼 수 있다(1부 2장. 다문화 사회에서의 정체성과 구비 문학). 한편 세계적으로 널리 공유되는 이야기 유형인 신데렐라 스토리를 분석하여 다문화적 가치와 가능성을 엿보거나(1부 3장. 신데렐라 스토리를 통한 다문화 교육) 몇몇 이야기가 답습되는 세계 전래 동화의 경향을 탈피해 각국의 다양한 구전 설화를 전래 동화로 출판함으로써 타문화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것도 가능하다(1부 4장. 다문화 동화로서의 아시아 전래 동화). 한국 다문화 문학의 현실 인식이 변화해온 과정을 돌아보며 다수자를 상대로 한 다문화 교육에서 문학 작품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살펴보거나(2부 1장. 다문화 문학과 문학 교육: 다수자를 대상으로 하는 다문화 교육) 일제 강점기를 살아낸 정지용, 윤동주의 동시에 담긴 “어리고 약한 타자들을 향한 연민과 연대”의 살뜰한 정을 오늘날 한국 사회의 소수자들과 나눌 수도 있다(2부 2장. 타자들을 향한 연민과 연대의 시학: 정지용과 윤동주의 동시). “20세기에서 21세기로 전승된 이주(이산)의 흐름”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한국 소설들을 되짚으며 다문화 사회라는 명백한 현실 앞에서 한국 문학은 과연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해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것(2부 3장. ‘우리’의 확장, 한국 소설과 다문화적 풍경들)도 긴요한 일일 테다. 마을 단위로 이루어지던 타자와의 왕래는 교통과 통신 수단의 발달을 통해 국가 단위로, 또 전 지구적 범위로 확장되어왔다. 최근에는 인공지능의 상용화로 ‘인간 아닌 것’과의 소통도 중요해졌다. ‘나’ 혹은 좁은 범위의 ‘나와 닮은 우리’만을 고려하며 살아가는 것은 이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된 것이다. 우리가 문학을 읽는 것은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인생이 하나뿐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와 다른 저 사람의 오늘은 왜 지금과 같은 모습인지를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수많은 이야기가 필요하다. 가까이는 이미 현실로 다가온 다문화 사회에서, 멀게는 시시각각 변모하는 미래에 타자와 현명하게 공존하기를 바라는 이들에게, “차이점이 ‘있음에도’가 아니라 차이점을 ‘통해’ 대화로 나아”가기를 희망하는 모두에게 『문학으로 다문화 사회 읽기』를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