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책머리에
기이1편 서하여 말한다 / 고조선 / 위만조선 / 마한 / 이부 / 72국 / 낙랑국 / 북대방 / 남대방 / 말갈과 발해 / 이서국 / 5가야 / 북부여 / 동부여 / 고구려 / 변한과 백제 / 진한 / 또한 네 계절마다 놀러 가던 집 / 신라의 시조 혁거세 왕 / 제2대 남해왕 / 제3대 노례왕 / 제4대 탈해왕 / 김알지-탈해왕 대이다 / 연오랑과 세오녀 / 미추왕과 죽엽군 / 내물왕과 김제상 / 제18대 실성왕 / 거문고 갑을 쏘아라 / 지철로왕 / 진흥왕 / 도화녀와 비형랑 / 천사옥대 / 선덕왕이 알아챘던 세 가지 일 / 진덕왕 / 김유신 / 태종 김춘추 / 장춘랑과 파랑 |
一然, 본명 : 김견명, 호 : 무극 · 목암
일연의 다른 상품
신대현의 다른 상품
|
웅장한 고구려 건국의 서사가 시작되는 글이다. 제목은 〈북부여〉이지만, 내용을 읽어보면 이로써 고구려 건국의 서막을 알리겠다는 의도로 수렴되는 듯하다. 천제(天帝) 해모수가 하늘에서 흘승골성에 내려옴으로써 고구려 역사가 시작되었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는 해모수는 천제가 아닌 천제의 아들[帝子]이고, 사람들이 그를 ‘천왕랑(天王?)’이라 불렀다고 하여 조금 다른 대목도 있으나 전체 맥락은 같다. 학계에서는 이 북부여를 ‘부여의 북쪽 지역’으로 보기도 하고, 또는 나라 이름으로 보기도 한다. 이와 비슷한 예는 남대방·북대방 등이 있다.
--- 「북부여」 중에서 일연은 『주림전』에 나오는 영품리왕과 시녀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영품리의 다른 이름이 해부루이며 시녀가 낳은 아들이 곧 동명성왕이라고 하였다. 이 두 설화를 비교해 보면 어머니의 신분이나 주인공의 이름 등에서 차이가 있다. 그러나 하늘의 기운을 받아 신비하게 태어나 어머니가 홀로 키웠고, 걸출한 외모와 탁월한 능력 때문에 권력자의 시샘을 얻어 핍박받아 큰 곤경에 처했으나, 결국 이를 이겨내고 나라를 세웠다는 줄거리가 거의 비슷하다. 고대 영웅의 건국 설화라는 모티프 면에서 거의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일연은 동명성왕 설화를 『삼국사기』 위주로 설명하면서도, 이의 근거가 훨씬 전에 쓰인 『주림전』의 영품리왕 설화라고 보아 문장 맨 뒤에 이를 소개하였다. --- 「고구려」 중에서 일연은 대체로 『삼국사기』 「본기」 등에 나오는 글을 요약 정리하고, 그 중간 군데군데 자기 생각을 덧붙임으로써 전체 맥락이 잘 이어지도록 하였다. 신라가 건국되기 이전, 경주에 촌장이 다스리는 여섯 촌락이 각각 자리하였다가 새로운 지도자를 맞이해 커다란 하나가 되었다. 이런 서사는 부족 국가에서 고대 국가로 발전하는 과정을 전한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촌장들이 촌락을 대표함은 물론이고 훗날 성씨의 시조가 되었다는 점에서 어렴풋이나마 신라 사람들의 뿌리도 범상치 않았다고 말하고자 한 듯하다. 촌장들도 하늘에서 내려온 비범한 인물이었던데다가, 이들의 왕이 된 혁거세와 알영은 알에서 태어난 그야말로 신비한 존재 그 자체였으므로, 이들의 후손인 신라 사람들의 자존감 역시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 하늘에서 내려온 알 또는 황금 상자에서 태어난 인물을 시조로 함은 고대 건국 설화의 전형이다. 『삼국사기』에도 혁거세의 탄생 설화가 이와 비슷하게 그려져 있다. 이런 이야기가 허황하다고 말하기도 하겠으나, 신성(神性)이 대중과 접속한 상황이 은유적 묘사였다고도 볼 수 있다. --- 「신라의 시조 혁거세 왕」 중에서 산악을 숭배했던 신라 사람들은 나라의 명산 중에서 방위대로 동서남북과 중앙에 자리한 다섯 곳을 골라서 산신에게 제사 지내는 풍습이 있었다. 이른바 오악(五岳) 신앙인데, 불국사와 석굴암이 자리한 토함산을 동악, 계룡산을 서악, 지리산을 남악, 태백산을 북악, 그리고 팔공산을 중악으로 삼았다. 그중 동악 토함산은 동해로 솟아오르는 해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자리인 데다가 서울 경주와 가까이 있어서 신라 사람들에게 아무래도 좀 더 많은 의미가 있었으리라 보인다. 이런 신라 사람들 정서로 본다면 탈해가 죽은 다음 토함산의 신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곧 신라 사람들에게 그의 존재감이 굉장했었다고 볼 수 있다. --- 「제4 탈해왕」 중에서 ‘연오랑 세오녀’ 이야기는 일견 평범해 보이는 사람이 엄청난 일을 이뤄낸 이야기이다. 『삼국유사』에는 사실 이런 내용을 담은 게 적잖다. 연오랑과 세오녀의 이름 끝에 붙은 ‘郞’과 ‘女’는 신라에서 젊은 남성과 여성의 이름에 붙던 접미어이다. 평범한 어부가 갑자기 일본에 건너가서 왕이 된 이야기는 비현실적으로 들릴 수 있다. 이를 잘못 받아들이면 근대의 어느 무렵, 한 서양인이 타고 가던 배가 난파되어 표류하다가 알려지지 않은 미개한 원시 종족에게 구조받은 뒤 그가 지닌 문명 지식을 바탕으로 하여 그들의 왕이 되었다는 모험소설이 머릿속에 겹칠 수도 있다. 그러나,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으로부터 불교를 들여오고 불상이나 불탑을 만드는 정교한 기술 등을 익히기는 했어도, 일본이 신라에서 표류해온 어부를 이유 없이 왕으로 받들 만큼 두 나라 간 문화나 민도(民度)의 차이가 컸다고 보는 것도 역사적 합리성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이 ‘연오랑과 세오녀’의 이야기가 나오게 된 걸까? 연오가 신라 정계에서 배척받았거나, 자신의 재주를 세상에 드러내지 않고 동해에 은거하던 재사(才士) 은자(隱者)로 본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가 된다. 그의 인품과 학식을 익히 들어 알고 있던 일본의 어느 고을이 그를 초빙해 자기들의 지도자로 세운 이야기가 신기하고 극적인 구성 형식을 빌려서 묘사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연오에 관한 정보를 진즉 알고 있었을 만큼 두 나라의 교류가 빈번했다고 볼 수 있다. --- 「연오랑과 세오녀」 중에서 고구려에서 국가 중대사를 점치던 추남(楸南)이 죽어서 김유신(金庾信, 595~673)으로 태어나 국선(國仙)이 되었다. 국선은 화랑의 지도자(「탑상」 〈진흥왕〉 참조), 혹은 왕이 특별히 임명한 화랑을 가리킨다. 국선으로서 중요한 군사 활동을 도모할 때 고구려에서 보낸 자객이 그를 해치려 접근했다. 자객이 꾸민 함정에 거의 빠질 뻔했으나 경주·영천 등을 지키는 신들 덕분에 벗어날 수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신들이 사람 모습으로 바꾸어 나타나고, 죽은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 환생하는 등 환상적인 장면이 가득하다. --- 「김유신 〈선덕왕, 진덕왕, 태종무열왕, 문무왕을 섬겼다〉」 중에서 |
|
사실과 상상, 신념이 함께 얽힌 다층적 기억의 서사
「기이 1」편에는 단군신화를 포함한 고조선 이야기부터 박혁거세의 난생 설화, 석탈해의 해상 왕래, 김유신의 전생, 일본으로 건너간 연오랑과 세오녀 이야기, 죽은 왕이 나라를 돕는 미추왕 죽엽군 전설 등 37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중에는 오늘날 한일 관계와도 맞닿아 있는 고대 해상 교류의 흔적들이 곳곳에 숨어 있는데, 민족의 기원과 신화를 아우르는 이 서사는 단지 과거의 역사적 사실 기록을 넘어 지금 우리의 존재를 되돌아보게 하는 힘을 지닌다. 일연은 이 ‘기이’라는 편목을 삼국유사의 가장 앞에 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무릇 옛날 성인은 바야흐로 예악으로 나라를 일으키고 인의로 가르침을 세우려 했으되, 괴력난신은 말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홍(虹)이 신모를 휘감아 복희를 낳고, 용(龍)이 여등에 감응하여 염제를 낳았고 … 이후의 일들을 어찌 다 기록할 수 있겠는가? 그런즉 삼국의 시조가 모두 신령하고 기이한 데서 나왔음을 어찌 괴이하다 할 수 있는가! 이 「기이」를 여러 편 중에서 첫머리에 둔 뜻이 여기에 있다.” 덧붙여 신대현 교수는 「기이1」편의 의미를 “이러한 이야기들은 우리 민족의 뿌리를 말하고 있기에 결국 오늘날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한 것이다. 현대의 시선으로는 다소 환상적이거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 있으나, 이는 오랜 세월을 거치며 자연스럽게 역사적 색채가 덧입혀진 결과로 보아야 한다. 사실과 상상, 신념이 함께 얽힌 다층적 기억의 서사라고 이해해야 한다”고 정리한다. 오늘의 시선으로 다시 읽는, 우리 이야기의 원형 무엇보다 「기이 1」편의 각 이야기에는 상세한 해설이 덧붙여져 고대의 지리, 사회 구조, 설화적 상상력이 오늘날 역사학적 관점과 어떻게 만나는지를 조명한다. 예를 들어 ‘박혁거세’ 편에서는 여섯 촌장이 하나의 국가로 통합되는 과정을 신화적으로 설명하면서도, 그 안에 담긴 국가 형성의 맥락을 정리하였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김유신, 연오랑과 세오녀, 천일창, 탈해왕 모두 민족의 정체성과 영성을 담고 있으며, 오늘날까지도 지역 신앙이나 역사 관광의 기원으로 남아 있다. 이러한 서사들은 단지 ‘기이한 이야기’에 머물지 않고, 오늘날 우리 정체성의 뿌리를 되새기게 하는 귀중한 자산이다. 이 책은 고대사의 신비와 역사를 동시에 품은 『삼국유사』의 정수를 담은 출발점으로, 역사와 문학, 문화 간 경계를 넘나드는 독서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