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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말 6
프롤로그 나는 왜 공부하는 삶을 되찾고 싶었나 11 서문 배움은 숨겨져 있다 49 1장 공부는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가 89 2장 배움의 상실과 발견 179 3장 찬란한 무용함에 대하여 253 에필로그 사유를 즐기는 평범한 사람 311 감사의 말 319 옮긴이의 말 320 주 326 찾아보기 339 |
Zena Hi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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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활동은 그에 대한 갈망을 지닌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다. 공부는 전문가들이 독차지하는 직업상의 활동이 아니다. 공부의 핵심을 이루는 미덕은 보편적인 것이므로 택시 안에, 독서 모임에, 직장 휴게실에, 아마추어 원예가의 작은 뜰에, 산발적이거나 절제된 사려 깊은 성찰에, 이 모두에 존재하며 그 수준은 대학에 뒤지지 않거나 그보다 나을 수 있다.
--- p.46 인간에게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한 질문은 인간이 어떤 존재이며 무엇이 우리의 궁극적 가치인지와 관련이 있다. 이렇게 거창하여 소화하기 어려운 질문들은 한입에 꿀꺽 삼키려 하기보다는 둘레를 야금야금 갉아먹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지금으로서는 눈에 보이는 외적 결과와 동떨어진 배움의 가치, 즉 배움의 내재적 가치를 가려내려는 시도로 충분할 것이다. --- p.55 여가는 우리의 모든 노력이 귀결되는 내면의 공간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여가를 궁극적으로 만족스럽게 활용하는 방법은 오로지 관조하는 것, 곧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이해하고, 음미하는 것이었다. --- p.69 배움에 대한 사랑의 진정한 실천은 현실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그런 실천이 어떻게 한 사람의 인생을 빚을 수 있을까? 배움에 대한 사랑이 잘 실천될 경우, 무의미한 삶의 방식이나 피할 수 없는 고통을 다스릴 진정제가 될 수도 있을까? 배움에 대한 사랑의 실천이 어떻게 한 사람이 살아가며 기울이는 모든 노력의 귀결이 될 수 있을까? 내가 이 책에서 소개하는 사례들은 틀림없이 독자들에게 더 많은 질문을 유발할 것이다. --- p.84 배움과 공부가 전문 지식인들의 전유물은 아니지만, 학자들이 배움과 공부의 공식 수호자인 것은 사실이며, 그들은 쇄신을 시작할 좋은 출발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지적 관심사가 있는 비전문적인 대중이 읽기를, 그들 역시 이 책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 p.86 사회생활에서 권력 다툼과 경솔한 평가에 의해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사람에게 공부는 부정당한 그의 가치를 회복시켜준다. 이것이 지적인 삶이 존엄의 원천인 이유다. --- p.103 자유로운 성인으로서 독서하고 탐구하는 일은 곧 자신의 변화를 허락하는 근사한 책임을 지는 일이다. 이때 일어나는 변화가 틀림없이 긍정적인 것이라면 무릇 독서와 사유에는 어떠한 위험도 따르지 않을 것이며, 사유의 자유가 지니는 의미도 지금처럼 묵직하지 않을 것이다. --- p.133 배움에 대한 사랑을 실천한다는 것은 우리 안에 존재하는 최악의 자아를 탈출하여 더 나은 자신이 되는 것, 충분하지 않은 것과 마주쳤을 때 더 나은 것을 향해 손을 뻗는 것이다. --- p.155 어떠한 좋은 것, 무언가보다 더 나은 것에 집중할 때 우리는 우리 개인의 존엄을 드러내는 동시에 내가 ‘교감’이라고 하는 깊은 인간적 연결이 이루어질 기틀을 쌓는다. 정치적 사회적 생활은 인간을 사회적 기대에 의해 한계 지어지는 존재로 폄훼하며 그 잣대는 주로 유용성이다. 그러나 지적인 삶은 유용성이 아닌 다른 기준으로 새로운 관계 맺기의 방식을 열어준다. 지적인 삶에서는 공통된 목표를 지닌 사람들 사이에서 생겨나는 상호 존중을 기반으로 새로운 인간관계가 맺어진다. --- p.163-164 책, 사상, 인생에 대한 평범한 성찰, 이것은 모두 우리가 인간이기에 공통으로 지닌 것들에 대해 사유하는 방식이자, 우리 자신에 대해, 그리고 우리가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에 대해 사유하는 방식일 수 있다. 인간의 강함과 약함에 대해, 사랑과 지식의 속성에 대해, 가족과 공동체와 권위에 대해, 인간 존재의 의미(그런 것이 있다면)에 대해 사유하는 방식일 수 있다. --- p.170 인문학적 배움에는 보통의 공동 작업이나 목표에서 우러난 교감에서 한 걸음 나아가 특별하고 희귀한 인간적 교감을 일으키는 힘이 있다. 그렇게 피어난 유대감은 사회 계급과 인종 집단, 남녀노소 사이의 장벽을 허물어뜨린다. --- p.171 지적인 삶에는 어떤 소용이 있을까? 지적인 삶은 고통으로부터 도피처가 되어주고, 개인의 존엄을 상기시키며, 통찰과 이해의 원천이자 인간의 열망이 자라나는 정원이다. 지적인 삶은 벽의 움푹 파인 공간과 같아서 그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눈앞의 논쟁에서 잠시나마 한 발짝 물러나 시야를 넓히고, 자신이 상속받은 보편 인류의 유산을 기억해낼 수 있다. 이 모든 사실로 미루어 볼 때, 배움은 인간의 유일한 미덕은 아니더라도 핵심 미덕인 것이 분명하다. --- p.175~176 배움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건 인간이 본질적으로 알려는 사람이거나 사랑 하려는 사람이거나, 혹은 둘 다이기 때문이다. --- p.178 지적인 삶은 금욕주의의 한 형태이자 자신을 일구는 일이라서, 식물을 기를 때 햇빛과 토양과 씨앗이 필요한 것처럼 우리의 일부를 뿌리째 뽑아내고 말리는 작업이 반드시 수반된다. --- p.183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한낱 사회적 역할로 위축될 때, 성취의 기계 속 톱니바퀴로 전락할 때, 억압당하고 교도소에 갇혔을 때, 이기적 허위가 만연한 사회생활을 해나갈 때, 비로소 공부하는 삶의 진가가 드러난다. 이러한 삶은 단지 경제와 사회와 정치에 대한 기여로 환원될 수 없는 한 사람의 인간을 들춰내 보여준다. --- p.296 야심이 위험한 것은 그것이 이기적이라서가 아니라 피상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남들에게 인정받을 때의 전율, 호의를 받을 때의 즐거움, 누구보다 돋보이는 기쁨. 이런 전율은 우리를 표면에 붙들어두고 그 너머에 존재하는 진정한 미덕에 가닿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다. --- p.298 공부가 본질적으로 표면을 넘어서 더 깊이 뻗어나가는 것, 겉으로 드러난 외면에 대해 질문을 제기하는 것, 뻔해 보이는 것 이상을 갈망하는 것이라면, 공부는 일반적으로 ‘지식’이라고 하는 것과는 거의 무관하다고 보아도 좋다. 오늘날 이른바 ‘지식’이란 단순히 올바른 의견을 흡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p.2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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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내재적 가치를 가려내려는 시도
“우리 안의 무언가는 ‘배움을 위한 배움’을 원한다” “명성과 위신, 부, 사회적 쓸모와 같은 과시적 요소를 모두 걷어내고 나면 배움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다시 말해, 배움이 그로써 생겨나는 외적 결과가 아니라 배우는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으로 인해 그 자체로 미덕이 되는 건 어째서일까? (…) 인간에게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한 질문은 인간이 어떤 존재이며 무엇이 우리의 궁극적 가치인지와 관련이 있다.”(p.54-56) 내면의 삶을 기르는 배움에는 하나의 단서가 붙는다. 세상으로부터 물러나 “숨겨져 있으며,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결과를 생산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자유로워야 한다”(p.45)는 것. 이를 실천하기란 어렵지만 그럼에도 이에 근접하려고 노력해야 진정한 배움에 이를 수 있고, 그럴 때에야 ‘찬란한 무용함’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 인간은 참된 것을 보지 못하게 방해하는 ‘세상으로부터 물러나’ 자기 안으로 침잠해 들어가 무언가의 본질을 ‘깊이 사유하는’ 과정, 즉 ‘관조’를 통해서만 이 찬란한 무용함에 이를 수 있다. 고대 그리스철학을 오랜 세월 공부한 저자는 내면의 삶을 기르는 배움을 이야기하기 위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본받아 ‘여가’와 ‘관조’의 의미를 현대적으로 해석해낸다. 저자에 따르면, 여가는 인간의 모든 노력이 귀결되는 내면의 공간이고, 여가는 오로지 관조하는 것, 즉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이해하고 음미하는 데서 구현된다. 관조는 한 사람의 삶에서 매우 핵심적인 부분이다. 저자는 여가와 관조를 비롯해 배움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려는 욕구가 평범한 인간의 특징임을 강조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배움 자체를 위한 배움’을 추구하며 고유한 내면의 삶에 다다른 이들의 인상적인 사례를 풍요롭게 들려준다. 영화 〈고슴도치의 우아함〉의 주인공은 사람을 겉모습으로만 평가하는 세상으로부터 물러나 독서의 세계로 들어가 자신의 존엄을 지킨다. 학계에서 일자리를 찾는 데 실패한 아인슈타인은 7년간 특허사무소 직원으로 일하면서 남는 시간에 물리학계를 뒤집을 중대한 논문들을 썼다. 수학자 앙드레 베유와 정치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는 교도소 수감 중에 탁월한 지적 성취를 이뤄냈다. 이 밖에도 부에 철저히 무관심한 채 철학적 논의에만 빠져 있는 소크라테스, 통렬한 자기 고백을 통해 내면의 성찰을 보여준 아우구스티누스, 책에서 길을 찾으며 가난한 자들 편에서 사회운동을 한 도러시 데이 등 세상을 관조함으로써(성찰함으로써) 헛된 기대와 환상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만의 배움의 길을 묵묵히 걸어간 인물들이 등장한다. 또한 저자는 엘레나 페란테의 소설 ‘나폴리 4부작’을 심도 있게 읽어내는데, 예술적 창작으로 자기 초월에 이르는 등장인물을 통해 지적인 삶의 찬란한 무용함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자기만의 관심사를 발견하고 묵묵히 탐구해가는 작고 평범한 사람들에게 위안과 영감이 될 책 삶을 구하는 공부, 그로써 회복하는 인간성 “배움과 공부가 전문 지식인들의 전유물은 아니지만, 학자들이 배움과 공부의 공식 수호자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지적 관심사가 있는 비전문적인 대중이 읽기를, 그들 역시 이 책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p.86) 세파에 흔들리지 않는 단단하고 안전한 내면을 기르는 공부는 엘리트의 전유물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유산이다. “지적인 삶의 주인은 다른 누구도 아닌 평범한 사람이다.”(p.316) 퇴근 후 책 속 무한의 세계로 빠지는 겸허한 독서광, 휴일에 숲으로 새를 만나러 가는 아마추어 탐조가, 한평생 나무만을 그리는 화가, 인생의 의미를 찾아 온 세상을 여행하는 방랑자, 갑자기 수학의 재미에 눈을 떠 숫자의 비밀이 알고 싶어진 십대 아이 등 우리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작고 평범한 사람들이 ‘지적인 삶’의 주인이다. 자기만의 관심사를 발견하고 묵묵히 탐구해가는 중에 세상으로부터 잠시 물러나 자기만의 내면으로 몰입하는 순간의 기쁨을 경험한 적 있는 사람에게 이 책은 든든한 위안과 영감이 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특별히 지적 활동을 하고 있다고 의식하거나 그에 대해 특별한 자부심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이 ‘좋은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넓고 깊은 배움의 곁에 가까이 다가가 있음을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사유를 즐기는 평범한 사람이라면 가능한 일이다.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는 거의 모든 것이 유용성이라는 잣대로 평가받는다. 유용하지 않으면 무용한 것이다. 무용함은 경쟁력이 없는 것이고, 경쟁력이 없으면 사회에서 도태되기 십상이다. 인간은 언제나 경쟁의 사다리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타인을 밟고서라도 위로 올라가려고 애쓴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공동체의 가치가 훼손되는 것은 물론이고, 인간성 상실은 시간문제다. 저자는 유용성이 경제적 가치로만 환원되는 고통 가득한 세상에서 가시적 결과를 낳지 못하는 공부가 왜 중요하고, 우리 공동체의 망가진 부분을 수선하고 밀려오는 파국을 막아내는 데 있어 지적인 삶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질문하고, 자신이 경험과 성찰을 바탕으로 생생한 답변을 들려준다. 저자가 공유하는 질문에 우리 개인과 사회도 나름의 답을 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추천의 말 이 책은 공부에 대한 책이고 더 중요하게는 배움에 대한 책이지만 결국은 삶에 대한 책이다. 이 책의 대부분은 어떤 바람직한 삶의 모드를 체험하게 하는 생생하고 인상적인 예시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들을 통해 저자는 ‘지적인 삶’이 인류에게 주어진 특별한 선물임을 믿게 만든다. 포장을 풀기가 쉽진 않다. 그렇다고 선물인 줄도 모르고 포기한다면 그건 슬픈 일이다. - 신형철 문학평론가 지적 탐구에 대한 신념을 감동적으로 선언하는 책이다. ?알베르토 망겔, 《독서의 역사》 저자 《찬란하고 무용한 공부》에서 제나 히츠는 결국 무용함의 불안을 극복해내는 짜릿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히츠는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무언가의 본질을 깊이 생각하는 데 전념하는 과정에서만 부상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하여 그가 다다른 결론은 ‘공부하는 삶은 그 찬란한 무용함을 잃어버리면 결코 실용적인 결실을 맺지 못한다’는 것이다. 특히 지금처럼 사심 없는 관조가 희생되고 있는 시대에 이 오래된 지혜를 복습하는 것은 더더욱 중요하리라. - 스탠리 피시, 문학이론가 ?《문장의 일》 저자 ‘지적인 삶’이 무슨 쓸모가 있는가?’ 《찬란하고 무용한 공부》는 이런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24시간 뉴스를 따라가는 데 지쳐서 인간의 삶이란 단지 무의미한 희극을 무한 반복하는 것이 아닌지 회의하게 된 모든 사람에게 새로운 용기를 북돋우는 대답을 내놓는다. 깊이 음미하며 읽어야 할 책이다. - 스티브 도너휴, 《오픈 레터스 리뷰》 공부와 배움이 어떻게 사랑의 행위가 되는지, 인간의 본성과 호기심에 대한 응답이 되는지 다시금 이해하게 된다. - 대니엘 앨런 하버드대학교 철학 교수 이 책을 읽고 나면 당신의 내면이 확장된 느낌을 받을 것이다. ?루스벨트 몬타스, 《월스트리트 저널》 이 책은 사유하는 삶을 회복할 방법을 고민하게 만든다. 우아하고 가치가 깊다. ? 찰스 맥너마라, 《커먼윌》 배움과 지적인 삶을 위한 설득력 있는 변론. - 아우렐리안 크라이우투, 《로스앤젤레스 리뷰 오브 북스》 지난 몇 년을 통틀어 인문학에 대한 가장 강력한 논거가 담긴 책이다. 아름다운 명상록. - 너새니얼 피터스, 《퍼블릭 디스코스》 《찬란하고 무용한 공부》는 나를 비롯하여 많은 독자들에게 처음 우리를 학문하는 삶으로 이끌었던 관조적 배움에 조금이나마 공간을 내주려 노력해야 한다는 건전한 메시지를 환기한다. - 제임스 랭, 《크로니클 오브 하이어 에듀케이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