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멀리 선산으로 상여가 떠나려 하는구려. 죄수로 갇힌 몸이라 멀리 전송도 못 하오. 당신은 가고 나는 남았으니, 어찌 훗날을 기약할 수 있겠소. 백년가약을 맺은 사람을 하루아침에 떠나보내며 관을 어루만지며 영결하는 심정을 당신이 어찌 알겠소. (중략) 나도 늙고 병들었으니 산들 얼마나 더 살겠소. 살아서는 갇혀 있다지만 죽어서까지 매여 있지는 않을 테니, 죽어서는 당신과 한 무덤에 들어갈 거요. 지금은 이승과 저승으로 떨어져 있다 해도 영혼은 꿈속에서나마 통할 것이오. --- p.38~39
자네가 많이 아플 때, 마침 사신이 국경에 와 있어 나는 그들을 접대하느라 분주해 자네를 돌볼 수 없는 것이 매우 한스러웠네. 그러니 국경 밖에서 그들을 수행하고 있을 때야 말해 뭐하겠는가. 자네는 나를 만류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나도 자네의 병이 나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네. 자네는 나를 말없이 쳐다보며 눈물 흘리다 내 손을 잡고 “다시는 못 뵙겠지요?”라고 하고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네. 나는 자네가 동요하여 병이 악화될까봐 속으로는 그지없이 슬퍼하면서도 겉으로는 태연한 척 위로의 말로 이별을 고하고 훌쩍 떠났다네. 아! 천지신명도 그날의 슬픔을 안다면 참담해 했을 것이네. --- p.123~124 당신은 그때 나더러 당신 때문에 가만히 앉아서 당해서는 안 된다며 달아나라고 권했소. 갑자기 적이 들이닥치자 내게 도망치라고 재촉했소. 적진을 뚫고 나오니, 맨발에 옷은 다 벗겨진 상태였고 종놈 하나만 나를 뒤따르고 있었는데, 우리는 산으로 달려가서야 적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소. (중략) 아! 당신은 이미 죽어 시신에서 흐른 피가 풀을 적시고 있었소. 우리는 당신이 살해당한 게 틀림없다고 여기고 시신을 어루만지며 통곡했소. 오호통재라! 당신 목을 보니 내가 차던 단도가 꽂혀 있었소. 당신이 단도를 지니고 있던 이유를 몰랐는데, 결국 그날 밤 그걸로 자결할 줄 어찌 생각이나 했겠소. --- p.18~19 임신년(1692)에 고생고생하며 피난을 갔는데, 바닷가에서 풍토병을 만나는 바람에 집으로 돌아올 수 없었소. 어린 자식들이 제대로 조리를 못한 데다 마침 큰 역병이 돌아 아이들 모두 오두막에 드러누워 앓게 되었소. 당신과 내가 아이들을 보듬어 안고 밤낮으로 애를 태웠지만, 궁벽한 곳에서 처방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열흘 사이에 잇따라 세 아이가 죽고 말았다오. --- p.52 나는 병을 앓아 30년 동안 하루도 제대로 버틸 기력이 없었는데, 당신이 어린애를 대하듯 나를 잘 돌봐주며 때맞춰 먹여주고 철따라 입혀주었소. 집에는 쌀 한 톨 없었지만, 내가 술을 좋아하는 걸 알고 난리통에 도망가는 와중에도 술은 떨어지지 않게 해주었소. 심지어 삼척의 산중에서 식량이 떨어졌을 때, 당신은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어 굶주린 기색이 역력했지만, 나만은 평소와 다름없이 술 마시고 배불리 먹게 해주었소. 그런데 이제 누구를 믿고 술을 마셔댈 수 있겠소. --- p.40~41 나는 당신 덕에 집안 일 걱정 없이 날마다 시나 짓고 술이나 마시며 즐겁게 지내다가, 이제 느닷없이 당신이 16년간 실컷 맛보고 겪어온 것들을 고스란히 떠맡게 되었다오. 자질구레한 노고에서부터 하소연하기 어려운 억울함까지 이제 당신만 겪는 일이 아니게 되었소. (중략)아! 여생이 얼마 안 남았으니 앞으로 죽기 전까지 다시 마음을 터놓을 날도 없을 거요. 술독에나 빠져 세상 밖으로 불도(佛道)나 배워 허망한 논리로 슬픔을 메우는 것으로나 마음을 달랠 수 있을는지……. --- p.81~8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