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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평화의 사도 하늘로 돌아가다
2. 카롤 보이티와의 어린 시절 3. 시와 연극을 사랑한 청년 4. 신부님은 아저씨 5. 젊은 추기경의 탄생 6. 시스티나 성당의 흰 연기 7. 저격범과의 대화 8. 바티칸이 아닌 세계의 교황으로 9. 사랑하는 조국 폴란드 10. 한국 방문과 순교 성인 103위 시성식 11. 평화의 순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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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축구 골기퍼였던 해맑은 소년
시를 사랑하고 연극에 빠져 있던 문학 청년 카누와 스키를 타고 젊은이들과 여행을 즐기던 신부 세계 평화의 전도사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또다른 얼굴들과 만날 수 있습니다. 성실한 아이 카롤 보이티와 어린 시절 카롤 보이티와에게 특별함이 있다면 누구보다 자신의 생각에 성실했다는 것이다. 그는 좋아하는 것에 최선을 다하고 옳다고 믿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소년이었다. 축구를 좋아했던 명랑한 소년. 시를 사랑하던 문학 청년. 연극에 빠져 있던 열정적인 젊은이. 대학생이 될 때까지 그는 신부가 되겠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던 평범한 청년이였다. 시인을 꿈꾸고 연극을 사랑하던 청년은 가족의 연이은 죽음과 전쟁의 상처를 경험하며 인생의 방향을 수정하게 된다. 자신을 낮추던 신부님 카누와 스키, 등산 등의 운동을 즐기던 신부. 그는 누구의 눈치를 보기보다는 자신의 솔직함에 당당하던 신부였다. 그와 함께 했던 사람들이 받았던 감동은 종교적인 것이 아니라 가장 인간적인 모습들을 통해서였다. 사람들에게 미치는 그의 강력한 영향력의 근원은 ‘신의 기적’과 같은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당시 사회주의 국가였던 폴란드에서 추기경이 되기까지 그가 보였던 통일된 모습은 자신을 낮추는 것이었다. 그것은 인위적인 의도가 아니라 뼛속 깊이 박혀있는 삶의 방식이었다. 이러한 모습이 그를 폴란드 사람들이 사랑하고 의지하는 ‘폴란드의 아버지’로 만들었던 것이다. 세계 평화의 순례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평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평화’에 대한 그의 집착이다. 그는 아우슈비츠를 경험한 폴란드 사람 이였고, 전쟁 중에 신부가 되기로 결심했다. 전쟁의 참담함을 경험한 그에게 ‘평화’는 하나의 의무였다. 그는 하나님의 사도이자 평화의 사도가 되고자 했다. 그러한 고민의 연장선상에서 그는 이슬람과 이스라엘을 방문해 화해와 평화를 얘기했고, 과거 가톨릭의 과오에 대해서도 용서를 구했다. 고통 받는 세계의 오지를 찾아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던 그의 모습에서 아이들은 진정한, 세계의 부름에 충실했던 한 인간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