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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례
제1장 피케티 패닉 제2장 피케티 쉽게 읽기: 피케티, 불평등에 답하다 제3장 파이낸셜타임스: 통계 조작과 제3자 분석 제4장 디턴의 『위대한 탈출』 vs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제5장 피케티 다시 읽기: 피케티 방한 시 투영된 생각을 중심으로 제6장 『21세기 자본』을 둘러싼 전 세계 지식인과 언론 제7장 피케티의 핵심 메시지: 초부유층의 사회포획현상 제8장 부익부 논쟁: 기업가의 활동을 무시하였다 제9장 상속의 경제학: 맨큐 vs. 크루그먼 제10장 세습+자본주의: 하지만, 1% 부자는 계속 바뀌고 있다 제11장 성장이 먼저다: 중국에서 쏟아져나오는 중산층 제12장 헤리티지 비판과 그 외 제13장 라스티냐크 딜레마: 상속자가 아닌 젊은이들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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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가 되었지만 가장 읽히지 않은 저서는 단연 스티븐 호킹 박사의 『시간의 역사』였다. 편의상 이를 호킹 지수로 불렀는데, 앞으로는 피케티 지수라 부를 참이다.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가장 읽히지 않는 베스트셀러로 등극하였고, 대부분의 독자들은 700페이지 저서의 26페이지 즈음에서 멈춘다.
---「『월스트리트저널』, 2014. 7. 3.」중에서 ◎피케티는 분명히 우리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그의 책을 구입하는 많은 사람 중 오직 일부만이 책을 읽겠지만, 그의 핵심 메시지가 사람들의 삶 속에서 진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노엄 촘스키, 필자에게 보낸 편지에서」중에서 ◎피케티는 촘스키를 연상시킨다. 부와 소득이 소수로 지나치게 편중될 때, 피케티는 민주주의가 훼손될 수 있다고 우려하지만 촘스키는 이미 훼손되었다고 말한다. 생존하는 가장 중요한 지성으로 여겨지는 촘스키의 글들은 포획된 시장체제와 대중매체의 치부까지 드러내다, ‘빌어먹을 촘스키!’ 소리를 듣는다. 불평등은 조금만 잘못 들어가도 서로에게 선악의 잣대를 들이대기 쉬운, 한 치의 양보가 없는 사안이다. 우리 사회는, 피케티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까? ---「버클리의 노천카페에서, 2014. 8. 31」중에서 ◎하지만, 파이낸셜타임스는 가장 큰 논란이 된 영국 데이터를 분석하면서 스스로 매우 심각한 오류를 범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부의 불평등을 측정하는 방법이 바뀌면서 생겨난 시계열 자료들 간의 변화를 마치 (동일하게 측정된) 부의 불평등이 실제로 변화한 것으로 여겼다. 이러한 오류는 그로 하여금 매우 잘못된 결론을 내리게 만들었다. ---「제3장 『파이낸셜타임스』 통계 조작 의혹 심층 분석」중에서 ◎부자 랭킹 1퍼센트에 속하는 인물들이 계속 변화한다는 사실에 역점을 둔 코틀리코프의 주장은 전제(1퍼센트는 늘 같은 사람이 아니라 계속 바뀌고 있다)와 결론(세습적 성향이 반증되었다) 사이에 강한 가정(1퍼센트로 새롭게 유입되는 부자들의 타입이 세습보다는 기업가 정신으로 대변되는 인물들로 구성된다)이 필요한데 현재는 이 부분이 결여되어 있다. ---「제10장 세습자본주의에 관한 피케티의 주장 바로 알기」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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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1세기 자본』의 핵심 내용을 중심으로 읽기의 뼈대를 세우고, 피케티에 반박하는 이들이나 동의하는 이들이 어떠한 논리나 사실에 기반하고 있는지를 종합적으로 분석했다. 신문의 칼럼을 비롯한 대중적인 반응부터 학계의 전문적인 논의까지, 또한 이것들이 어떠한 자본 담론의 질서를 형성하는지도 조망했다. 그러므로 이 책은 피케티 현상을 둘러싼 전 세계 논쟁지도라고 할 만하다. 또한 이 책은 우리나라의 경제전문가들이 피케티의 저서를 그릇되게 해석하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해부하였다. 보수 진영 뿐 아니라 진보 진영 및 주류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그러한 문제점들이 눈에 띄는데, 경제전문가들의 해석에서 보여지는 오독 또는 오류는 세 가지 형태로 구별해 볼 수 있다.
첫 번째 형태는, 저서에서 시사하지 않은 점을 시사점으로 주장하는 경우이다. 보수 진영은 저서로부터 시사점을 찾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형태의 오독은 진보 진영의 해석에서 관찰된다. 대표적인 예로써 피케티 비율, 국민소득 대비 자본총량(β),을 낮추어야 한다는 해석을 들 수 있는데, 이는 피케티의 해결책이 아니다. 피케티는 부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자본세와 높은 세율의 상속/증여세를 제시하였고, 이를 통해 자본의 소유를 소수에서 사회로 좀 더 이전시킬 수 있는 세율구조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부가 소수에서 사회로 이전된다고, 부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β 값이 떨어지지도 않거니와, 더 중요하게는 진보 진영에서 오독한 것처럼 β 값을 떨어뜨리는게 정책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진보 진영의 오해는 단지 거기서 끝나지 않고, 보수진영으로 하여금 ‘피케티는 부를 미워하는가’라는 잘못된 질문을 던지게 만들 수 있다. 따라서 시정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 형태는, 그릇된 근거를 토대로 피케티의 저서를 비판하는 경우이다. 보완적인 내용이나 근거를 토대로 하지만, 논리적 비약을 감수하고 무리한 결론을 이끌어내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보수 진영에서 주로 관찰되는데, 전형적인 예로써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vs. 디턴의 『위대한 탈출』 누가 맞을까’ 같은 인식을 들 수 있다. 막상 『위대한 탈출』 제5장을 읽어보면, 디턴이 (초부유층의 부에 초점을 맞추고 또한 미국의 노동시장을 협상력 관점에서 분석한) 피케티의 연구를 얼마나 중요하게 받아들이는지 정통 주류 경제학자의 시각을 객관적으로 읽어볼 수 있으며, ‘피케티 vs 디턴’ 구도는 그릇된 설정이라는 점을 대번에 알 수 있다. 세 번째 형태는, 중도적인 시각으로 피케티의 저서를 대하는 경제전문가들에게서 관찰되는데, 마치 피케티가 모든 불평등의 원인을 부익부의 동학때문으로 진단하였고 이미 세습자본주의가 도래하였다고 주장한 것처럼 오독하는 경우이다. 전형적인 ‘허수아비 논증의 오류’인데, 이를 알면서도 의도하였다기보다는 저서를 제대로 읽지 않았거나 읽었다면 오독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노동소득 불평등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피케티의 노동시장 분석이 한국에도 적용되는지를 따지기 보다, 21세기에 발현될 수 있다는 자본 소유의 분석틀(부익부로 인한 부의 불평등)을 대신 적용해 놓고는 이를 쉽게 비평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21세기 자본』은 불평등이 늘 같았기 때문에 그냥 놔둘 문제가 아니라, 실은 거대한 굴곡을 보여왔으며, 세율정책에 따라서도 그 정도가 대단히 바뀌어 왔음을 실증하였다. 『21세기 자본』의 핵심이 단순히 ‘불평등을 없애고 착하게 살자’는 무의미한 구호glittering generality가 아니라, 부와 소득이 지나치게 편중될 때 발현할 수 있는 부작용임을 행간에서 읽어낼 수 있다. 복지국가 논쟁은 차치하고 시장체제 자체를 제대로 확립시키기 위해서라도, 피케티 담론이 필요하며 그의 저서가 유용한 시점이다. 불평등이 정치적인 사안인 만큼, 우리나라에서도 피케티 논쟁이 격렬한 양상을 띄고 있다. 불평등이 심화될수록, 복지에 대한 요구 역시 거세질 수 밖에 없다. 이 책의 필자는 여권, 야권 다 투표를 해본 경험이 있고 진영 논리보다는 중립적 시각으로 피케티 현상과 논쟁을 국내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집필하였다. 집필 과정에서 피케티, 『이코노미스트』의 에번트, 드롱, 리드, 앳킨슨, 스타인바움, 촘스키, 『가디언』, 디턴, 『파이낸셜타임스』, 맨큐, 로그리니 등 전 세계의 다양한 지식인과 언론이 진영논리를 떠나서 유용한 조언을 해주었다. 불평등 문제는 2013년을 기점으로 이미 세계적 이슈로 대두되었고, 2014년에는 피케티의 저서를 통해 더욱 대중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누구를 위해 사회의 룰을 조정할 것인지, 어떻게 유지하거나 변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민주적 토론이 앞으로 중요해질 것으로 생각된다. 어떻게 하면, 토론이 진영 논리로만 흐르거나 선악의 잣대를 들이대는 파국을 넘어설 수 있을까? 우리 사회는 피케티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