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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공제 청년패스
편의점에서 잠깐
정호승
창비 2025.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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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시/희곡 top100 5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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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제1부

패배에 대하여
진심에 대하여
어리석음에 대하여
추락
술잔을 앞에 놓고
빈 술병
낙엽을 쓰는 사람
연필을 깎으며
편의점에서 잠깐
순댓국을 먹으며
가난한 사람
남자 화장실을 청소하는 여자
강물 같은 사람
낙뢰(落雷)
폭포
담배꽁초
구혼(求婚)
몽돌
벚꽃
관(棺)을 짜는 남자
무게에 대한 생각
쓰레기
쓰레기
현관문
낙하(落下)

제2부


마음을 먹었다
마음의 주인
마음이 가난해지기 위하여
마음이 가난한 사람
마음으로 가는 길
점심(點心)
불심(佛心)
슬프고 아름다운
기도하는 법
연등
죽비
아라연꽃
무명초(無明草)
시간에 대한 감각
돌탑
양심을 찾아서
양심선언
저녁 시간
눈사람
설산(雪山)을 바라보며
칼과 풀잎
거미줄에 걸린 거미
절대정지
바보주막
심장마비

제3부


거기 누구 계시온지
지진
선택해주세요
마음의 성지(聖地)
겨울새
자리갯돌
용서를 위한 기도
물 한잔
어디 가는 길이세요
작은 그릇 하나로
천사에 대한 질문
횡단보도
이 손수건으로
당신이 아니면
당신의 잔
당신의 발아래
서울역 비둘기
다음에 또 만나요
슬퍼도 아름답게
슬픔의 그림자
눈사람
노숙인발생신고서
다시 성자(聖者)를 기다리며
퇴로(退路)
장마

제4부


천벌
낙담
사랑하기 위하여
닻과 돛
버팀목
우리가 사랑하는 시간은
바둑
우산도 없이
주상절리
종이학을 접으며
당신을 만나기 전부터
오죽하면
기차는 떠났어요
당신 뜻대로
물속의 달
어제에게 받은 편지
내일에게 받은 편지
등대
마음이 떠났다
빼앗긴 마음
첫눈이 내릴 때마다
사랑이 끝났을 때
고백
마침내
이별의 기도

제5부


당신이 인간이라면
물새들을 따라가 물을 마신다
엎질러진 물
하루를 기다리며
새에게 부탁함
찬밥
공중전화 부스
숟가락을 생각함
견인(牽引)
축대
내리막길
나의 멱살에게
구걸
사막을 건너는 법
오늘의 낙타
심부름
거미줄에서

바람의 눈물
식물인간 향후추정서
요양병원
마지막 희망
풀잎
하동포구에서
극락조

해설|오연경
시인의 말

저자 소개 1

鄭浩承

1950년 경남 하동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성장했으며, 경희대 국문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돼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반시反詩’ 동인으로 활동했다.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 《별들은 따뜻하다》 《새벽편지》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이 짧은 시간 동안》 《포옹》 《밥값》 《여행》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당신을 찾아서》 《슬픔이 택배로 왔다》 《편의점에서 잠깐》과 시선집 《흔들리지 않는 갈대》
1950년 경남 하동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성장했으며, 경희대 국문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돼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반시反詩’ 동인으로 활동했다.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 《별들은 따뜻하다》 《새벽편지》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이 짧은 시간 동안》 《포옹》 《밥값》 《여행》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당신을 찾아서》 《슬픔이 택배로 왔다》 《편의점에서 잠깐》과 시선집 《흔들리지 않는 갈대》 《수선화에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 동시집 《참새》 《별똥별》을 냈다. 이 시집들은 영한시집 《A Letter Not Sent(부치지 않은 편지)》 《Though flowers fall I have never forgotten you(꽃이 져도 나는 너를 잊은 적 없다)》 외 일본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조지아어, 몽골어, 중국어 등으로 번역되었다. 산문집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와 우화소설 《연인》 《항아리》 《조약돌》이 있다.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편운문학상, 가톨릭문학상, 상화시인상, 공초문학상, 석정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대구에 정호승문학관이 있다.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편운문학상, 가톨릭문학상, 상화시인상, 공초문학상, 김우종문학상, 하동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언제나 부드러운 언어의 무늬와 심미적인 상상력 속에서 생성되고 펼쳐지는 그의 언어는 슬픔을 노래할 때도 탁하거나 컬컬하지 않다. 오히려 체온으로 그 슬픔을 감싸 안는다. 오랜 시간동안 바래지 않은 온기로 많은 이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그의 따스한 언어에는 사랑, 외로움, 그리움, 슬픔의 감정이 가득 차 있다. 언뜻 감상적인 대중 시집과 차별성이 없어 보이지만, 정호승 시인은 ‘슬픔’을 인간 존재의 실존적 조건으로 승인하고, 그 운명을 ‘사랑’으로 위안하고 견디며 그 안에서 ‘희망’을 일구어내는 시편 속에서 자신만의 색을 구축하였다. ‘슬픔’ 속에서 ‘희망’의 원리를 일구려던 시인의 시학이 마침내 다다른 ‘희생을 통한 사랑의 완성’은, 윤리적인 완성으로서의 ‘사랑’의 시학이다. 이 속에서 꺼지지 않는 ‘순연한 아름다움’이 있는 한 그의 언어들은 많은 이들의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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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08월 29일
쪽수, 무게, 크기
200쪽 | 226g | 125*200*13mm
ISBN13
9788936425227

책 속으로

나는 패배가 고맙다
내게 패배가 없었다면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패배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패배했기 때문에 살아남았다

한때는 패배했기 때문에
분노의 절벽에서 뛰어내리고 싶었으나
분노도 가을바람과 같은 것이었다
--- 「패배에 대하여」 중에서

늦은 밤 편의점 계산대 앞에서 당신을 만나다니
당신은 맥주를 사러 왔고 나는 라면을 사러 왔는데
편의점 계산대 앞에 줄을 서서
죽기 전에 잠깐 당신을 만날 수 있다니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당신은 아직도
겸손의 손으로 캔맥주를 들고
당신이 그토록 미워했던 나는
교만의 손으로 컵라면을 들고 그리운 눈인사를 나누며
아직도 사랑하는 척 부모님 안부를 묻는다

작년에 두분 다 돌아가셨다고
어머니 돌아가신 지 벌써 몇해나 되었다고
공연히 부모님 안부를 나누는 거짓의 입술에
돌아가신 부모님만 또 돌아가신다
--- 「편의점에서 잠깐」 중에서

별을 바라보는 사람은 가난하다
별을 바라보다가
별똥별이 되어 사라지는 사람은 가난하다

꽃을 바라보는 사람은 가난하다
꽃을 바라보다가
인간의 아름다움이 부끄러워
한송이 지는 꽃이 되는 사람은 가난하다
--- 「가난한 사람」 중에서

이제 당신이 보고 싶어 배가 고프면 냉장고에 넣어둔 마음을 꺼내 먹는다
피자 조각 같은 용서의 마음도 꺼내 먹는다
사랑은 용서로써 완성되는 것이므로
용서할 수 없으면 사랑할 수 없으므로
당신을 사랑하기 위하여 피자 한판을 다 먹듯 용서의 마음을 가장 많이 먹는다

마음은 냉장고에 오래 넣어두어도 썩지 않는다
먹다 남은 김치찌개도 우유식빵도 오래 두면 썩어 곰팡이가 피지만
냉장고에 넣어둔 마음은 썩지 않는다
사람들이 늘 배가 고픈 까닭은 아직도 맛있게 마음을 먹지 않기 때문이다
--- 「마음을 먹었다」 중에서

대장경을 머리에 이고
봄날에 걸어가네
기어이 찾아온
이별의 순간을 위하여
대장경이 꽃으로 피어나네
선암사 선암매(仙巖梅)로
화엄사 화엄매(華嚴梅)로
죄는 벌이 되고
벌은 꽃으로 피어나
세상 모든 이별의 눈물이
슬프고 아름답네
--- 「슬프고 아름다운」 중에서

저녁 시간에는 당신의 발밑에
고요히 머무를 수 있어서 좋다
하루 종일 사람들의 발밑에 짓밟히지 않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쫓아갔으나
해가 지고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저녁 시간에는
당신의 발밑에 잠들 수 있어서 좋다
당신의 발밑에는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때로는 아카시아 향기도 난다
멀리서 낙산사 종소리도 들린다
의상대에서 바라본 동해의 파도 소리도 들린다
아침이 올 때보다 저녁이 올 때
내가 가장 머물고 싶은 곳은 당신의 발밑이다
나는 단 한번도 당신의 발밑에 있기를
거부한 적이 없다
오늘 저녁에는 등불을 켜고
내가 당신의 흙 묻은 발을 씻겨드릴 차례다
--- 「저녁 시간」 중에서

청계천 평화시장 앞
봄이 와도 녹지 않는
가을이 되어도 녹지 않는
눈사람 한 사람

온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절규하며 불을 붙였네

눈사람의 몸에 불이 붙었네
사람들이 급히 달려와 불을 껐지만
불은 꺼지지 않았네
아무리 꺼도 꺼지지 않았네

가을이 가고 봄이 와도
녹지 않는 눈사람
봄이 가고 또 봄이 와도
불타는 눈사람
--- 「눈사람」 중에서

살기 위해 떠난 곳이
죽기 위해 떠난 곳인 줄 이제 알았으므로

살기 위해 찾아간 당신이
죽기 위해 찾아간 당신인 줄 이제 알아차렸으므로

푸른 신호등이 켜져도 결코 건너갈 수 없었던
횡단보도를 바삐 건너간다
--- 「횡단보도」 중에서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낙엽이 될 것이다
노란 은행잎으로 떨어져 거리의 발아래 짓밟힐 것이다
버스 정류장 앞 매대에 놓인 국화분이 되어
매연과 먼지에 숨 막힐 것이다
꽃다발을 들고 버스를 탄 소녀의 꽃이 되어
쓰레기통에 곧 버려질 것이다
버려진 채로 봄이 오지 않아도
잘 있으라고 고마웠다고 손 없는 손을 흔들 것이다

--- 「식물인간 향후추정서」 중에서

출판사 리뷰

패배와 천벌, 내리막길에서 발견한 인생의 진실
일상의 상식을 뛰어넘는 강렬한 역설의 힘

정호승 시의 진수는 삶의 이면을 꿰뚫는 역설의 힘에 있다. 김승희 시인이 “일상성을 아득히 뛰어넘는 역설의 힘이 여전히 강렬하다”(추천사)라고 감탄했듯, 이번 시집에서도 시인은 패배와 성공, 행복과 불행의 경계를 허물며 우리를 새로운 사유의 세계로 이끌어간다. 시인은 세상이 실패라고 규정하는 것들에서 오히려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를 발견한다. 대표적으로 「패배에 대하여」는 “나는 패배가 고맙다”라는 선언으로 시작하여, “내게 패배가 없었다면/나는 당신을 사랑할 수 없었을 것이다/내가 패배했기 때문에 당신은/나를 사랑할 수 있었다”라는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패배가 있었기에 생존할 수 있었고, 사랑 또한 가능했다는 이 역설은 세상의 승자독식 논리를 정면으로 거스른다.

이러한 전복적 사유는 시집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시인은 “어리석음은 나를 현명하게 한다”라고 말하며 “어리석은 현명함은 나의 유일한 재산이다”(「어리석음에 대하여」)라고 노래하고, “추락을 경험해보지 않은 새는 날지 못한다” “이별을 경험해보지 않은 자는 사랑하지 못한다”(「추락」)라고 단언하며 이별을 사랑의 필요조건으로 제시한다. 오연경 평론가의 말처럼 “세상의 질서와 논리를 뒤집어 역설적 가치를 깨닫게 하는 말들은 넘어지고 당하고 망가지며 살아남은 우리에게 선물 같은 위로를 전한다.”(해설) 시인이 “사람은 내리막길을 걸어갈 때 가장 아름답다”(「내리막길」)라고 말할 때, 우리는 숨 가쁘게 오르막길만 강요하는 세상에서 잠시 벗어나 길가의 꽃을 보며 천천히 걸어 내려가는 삶의 아름다움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가장 솔직한 언어로 건네는 위로
미완의 삶을 끌어안는 거장의 따뜻한 품


이번 시집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공간에서 삶의 진실을 발견하는 순간들이 반짝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순댓국 한그릇에서 “이별이라는 과거도 아름다워”(「순댓국을 먹으며」)지는 순간을 포착하고, 새벽에 연필을 깎는 행위를 통해 “죽은 나뭇가지 같은 분노를 깎”(「연필을 깎으며」)아내는 자기성찰의 시간으로 독자를 이끈다. 특히 모든 것을 달관한 현자의 목소리 대신, 끝내 다스려지지 않는 감정까지 숨김없이 드러내는 인간적인 정직함은 이 시집의 백미다. 이번 시집에는 “아름답고 절제된 언어로 사랑과 용서를 다짐하는 시들과 끝내 다스려지지 않는 부정적 감정을 숨기지 않고 고백하는 시들이 공존한다”(해설). “사랑은 용서로써 완성된다는 것을 잊지 않게 해주세요”(「용서를 위한 기도」)라고 경건하게 기도하던 시인은 돌연 “당신의 피 묻은 잔을 거절하겠습니다”라며 “나는 결국 사랑보다 증오의 사람입니다”(「당신의 잔」)라고 토로하기도 한다. 이는 불완전하고 모순된 채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한 인간의 진솔한 목소리로서 더 큰 울림을 준다. 시인은 성자(聖者)의 가르침이나 완벽한 깨달음의 경지를 보여주는 대신, 실패하고 흔들리는 미완의 삶을 따뜻한 긍정의 손으로 감싸안는다.

시인은 “두조각의 빵이 있는 자는 그 한조각을 수선화와 맞바꿔라. 빵은 몸에 필요하나 수선화는 마음에 필요하다”는 무함마드의 말을 인용하며, “이 시집이 당신의 마음에 필요한 수선화가 되길 바란다”(시인의 말)라고 말한다. 등단 50년을 넘긴 지금도 가장 새롭고 가장 절실한 언어로 우리 곁에 다가온 정호승. “존재의 가장 아름다운 꽃”(「아라연꽃」)으로 피어나는 그의 시는 “사랑이 결핍되고 증오가 팽배한 이 시대”(시인의 말)를 살아가는 우리의 영혼을 평온한 안식의 자리로 안내하며, 내일을 살아갈 힘을 북돋는 따뜻한 밥 한그릇이 되어줄 것이다. 그리고 오래되었지만 가장 새로운 ‘정호승 시의 샘물’은 결코 마르지 않을 것이다. 거장의 존재는 한국문학의 자랑이자 우리 시대의 기쁨이다.

시인의 말

신작 시집으로는 열다섯번째, ‘창비시선’으로는 열두번째 시집이다. 시인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시집을 출간하는 일이 가장 기쁜 일이다. 내 인생에 열다섯번의 큰 기쁨을 선물해주신 절대자에게 감사드린다.

특별히 이번 시집 출간의 기쁨은 크다. 지난번 『슬픔이 택배로 왔다』 출간 이후 더이상 시를 못 쓰게 될 줄 알았다. 50여년 동안이나 시를 써내 시의 샘이 말라버렸다고 여겼다. 누가 그 샘을 파묻어버린 게 아니라 아예 수원지(水源池)가 고갈되었다고 여겼다.

그래서 한동안 시의 샘 근처에는 얼씬거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사람이 죽지 않고 살기 위해서는 물과 밥을 먹어야 하듯 시인도 죽지 않으려면 시를 생각하고 써야 했다.

시를 쓰기 시작하자 말라버린 시의 샘에 조금씩 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 물을 꾸준히 퍼내자 샘은 마를 듯하다가 마르지 않았다. 퍼내면 퍼낼수록 샘물이 자꾸 고여 이 시집을 출간하게 되었다. 이제 죽음이 찾아오지 않는 한 내 시의 샘은 마르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 시를 사랑한다기보다 시가 인간을 사랑한다는 믿음이 더욱 커졌다.

시인은 시를 통해 진실을 말하려고 노력한다. 나 또한 시를 통해 이 시대를 사는 인간과 인생의 비밀에 대해 진실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러나 은유의 숲에 숨어 진실을 숨긴 침묵의 부분이 없지 않다.

무함마드는 “두조각의 빵이 있는 자는 그 한조각을 수선화와 맞바꿔라. 빵은 몸에 필요하나 수선화는 마음에 필요하다”라고 했다.

나는 이 시집이 당신의 마음에 필요한 수선화가 되길 바란다. 사랑이 결핍되고 증오가 팽배한 이 시대에 시의 모성적 사랑의 가슴은 따뜻하다.

이번 시집에 실린 시 백스물다섯편은 스물다섯편을 제외하고는 모두 미발표 신작시다. 시집 출간도 신작시를 발표하는 하나의 장(場)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2025년 가을을 기다리며
정호승

추천평

나는 언젠가 정호승 시인에 대해 “낯익은 것에서 낯선 것의 상상력을 길어 올리는, 아주 오래된 시인이자 동시에 아주 새로운 시인”이라고 쓴 적이 있다. 그는 시업 50여년 동안 진부함이라는 함정을 잘 피해왔다. 신선한 상상력이 있고 역설의 언어가 있고 선(禪)적인 일탈이 있고 반전의 힘을 지닌 덕분이다. 정호승 시의 상승과 비약의 지점에는 늘 역설과 일탈과 반전이 개입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정호승 시인은 낯익은 시인이자 낯선 시인이고 오래된 시인이자 새로운 시인이라고 생각해왔다.

이번 시집에서도 역설의 언어, 선적인 일탈, 반전의 힘이 느껴져, 마치 의미와 무의미의 정류장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내게 패배가 없었다면/나는 당신을 사랑할 수 없었을 것이다/내가 패배했기 때문에 당신은/나를 사랑할 수 있었다” “봄이 오면 나는 천벌을 받을 것이다/사랑은 천벌이므로/기꺼이 당신의 천벌을 받으며 행복해질 것이다” 등에서 보듯 일상성을 아득히 뛰어넘는 역설의 힘이 여전히 강렬하다. 그래서 그의 시는 익숙한 사물의 이름표를 떼어내고 그 본질을 향해 낯선 질문을 던진다. 그의 시선이 닿으면 편의점은 더이상 편의점이 아니라, 어느 때는 지친 영혼의 시간을 재는 시계가 되고, 어느 때는 우리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사랑은 기꺼이 감당하는 천벌이자 어두운 부두를 밝히는 등불이 된다. 바로 그렇게 편의점이 편의점이 아닐 때, 정호승은 다시 한번 낯익고도 낯선 시인이자 오래되었지만 가장 새로운 시인이 되는 것이다. - 김승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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