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프롤로그_여행을 시작하며
Part 1. 문자로 지은 집 1 그곳, 프린스에드워드 아일랜드_『빨강 머리 앤』, 루시 모드 몽고메리 2 태고의 자연, 아카디아 국립공원_『에반젤린』.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 3 마녀 도시, 세일럼_『영 굿맨 브라운』 『주홍 글씨』, 너새니얼 호손 4 네 자매 이야기, 콩코드_『작은 아씨들』, 루이자 메이 올컷 5 개츠비의 고장, 뉴헤이븐, 샌즈포인트, 그레이트넥, 킹스포인트_『위대한 개츠비』, F. 스콧 피츠제럴드 6 고단한 예술가들의 도시, 뉴욕_『마지막 잎새』, 오 헨리 Part 2. 바람과 함께, 스칼렛 7 강인한 여성을 키운 남쪽 땅, 애틀랜타, 찰스턴, 존즈버러_『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마거릿 미첼 8 우아한 어머니의 고향, 서배너_『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마거릿 미첼 Part 3. 태양 가득히 9 꿈과 희망의 세계, 디즈니월드_‘디즈니 그림 명작’, 월트 디즈니 10 에밀리에게 장미를, 뉴올리언스에 승리를_『에밀리를 위한 장미』, 윌리엄 포크너 11 대문호의 노스탤지어, 해니벌_『톰 소여의 모험』, 마크 트웨인 12 헤밍웨이의 영감, 쿠바 아바나, 키웨스트_『노인과 바다』 『무기여 잘 있거라』『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어니스트 헤밍웨이 13 먼 북소리, 세인트마틴_『카리브해의 미스터리』, 애거사 크리스티 에필로그_끝나지 않은 문학 여행, 『빙점』 |
곽아람의 다른 상품
|
7월 4일이 미국의 독립기념일이라는 것, 그날 불꽃놀이가 있다는 걸 알려준 책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읽은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의 『소공자』였다. 영국의 명망 있는 백작가 후손이지만 아직 그 사실을 모르는 미국 소년 세드릭이 동네 잡화점 주인 홉스 아저씨와 독립기념일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그 책에 묘사되어 있다. 책을 읽으면서 미국 독립기념일 불꽃놀이란 과연 어떤 것일지 너무나 궁금했던 아홉 살의 어린 내게, 서른아홉 어른이 된 내가 세드릭이 살았던 바로 그 뉴욕에서 독립기념일 불꽃놀이를 보여줄 수 있는 날이 마침내 찾아오다니…… 짜릿하게도 신이 났다.
--- p.6 세상에는 두 부류의 인간이 있다. 이야기 속 장소가 실재한다 믿는 사람, 이야기란 허구니 배경 또한 허구라 생각하는 사람. 나는 전자(前者)였고, 이야기 속 트로이가 실재한다 믿었던 슐리만처럼 언제나 소설 속 장소들을 갈망했으며 그중 어떤 곳에는 반드시 가보리라 결심하곤 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빨강 머리 앤』의 배경인 프린스에드워드 아일랜드는 내가 가장 오래도록 마음속에 그려온 곳이었다. --- p.21 「에반젤린」을 처음 읽은 건 일곱 살 무렵이었다. 아니, ‘읽었다’는 표현보다 ‘들었다’는 표현이 적확하겠다. 엄마는 매일 밤 잠들기 전 나와 동생에게 책을 읽어주었는데, 그중 한 권이 바로 「에반젤린」이었다. 엄마는 책을 읽어주는 동시에 읽히기도 해서, 이 책의 어떤 구절들은 소리 내어 읽었기 때문에 아직도 생생하게 귓가에 메아리친다. --- p.61 믿음 깊은 영 굿맨 브라운이 어여쁜 아내 페이스가 마녀의 밤에 초대받아 다녀오는 환영을 본 이후 의심의 늪에 빠져든다는 이 이야기는 신앙의 허약한 지점과 의심의 문제를 다룬다. 대학생이 이해하기에는 쉽지 않았던 그 소설의 배경이 세일럼이었다. 세일럼은 또한 호손의 고향이기도 하다. 마녀사냥의 중심지였던 세일럼에서 마녀 재판관으로 활동했던 고조부에 대한 죄의식이 호손 문학의 원동력이다. 청교도 근본주의에 대한 회의와 의문을 담은 그의 대표작 『주홍 글씨』는 그러한 토양에서 탄생한다. --- p.74 소설에서와 마찬가지로 자매는 지독히도 가난했지만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가족의 정신적 기둥은 바로 자매의 어머니였다. 어머니의 부유한 친정은 처음에 딸에게 도움을 주었지만, 자매의 아버지는 그 돈을 몽땅 학교 짓는 데 써버렸다. 보다못한 친정부모가 “네 남편은 처자식을 굶기느냐?”라고 하자, 자기 남편이 모욕당했다는 데 분개한 어머니는 그 이후 친정에 한 푼도 요구하지 않았다고 한다. 『작은 아씨들』이 미국 페미니즘 문학의 한 갈래로 분류되기도 하는 건 작가의 어머니를 모델로 한 소설 속 네 자매의 어머니가 구현하는 강인한 여성상 덕도 클 것이다. --- p.94 뉴헤이븐(New Haven)이라는 지명을 들으면 항상 『위대한 개츠비』가 생각난다. 개츠비가 아니라 그 소설의 화자 닉 캐러웨이가 떠오르는데, 소설 앞머리에서 닉이 스스로를 ‘뉴헤이븐에 있는 학교’, 즉 예일대학교를 1915년에 졸업했다고 밝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뉴헤이븐에 가보고 싶었던 이유의 8할은 『위대한 개츠비』였다. 기차를 타고 미 동부를 여행할 때면 소설 속에서 접하던 지명을 자주 만났는데, 나는 언젠가 날씨 좋은 날 펜스테이션이나 그랜드센트럴 터미널에서 기차를 타고 소설에 나오는 도시 중 아무곳이나 이름이 마음에 드는 역에서 내려 하루종일 배회하다 뉴욕으로 돌아오면 어떨까 생각해보곤 했다. 뉴헤이븐도 그중 하나였다. --- p.101 집으로 돌아와 킨들을 켜고 「마지막 잎새」를 다시 읽어보았다. 첫 문단을 읽기 시작하자 반가움 섞인 흥분으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그가 설명하고 있는 워싱턴스퀘어 서쪽 동네가 이날 다녀온 그리니치빌리지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바둑판 모양으로 구획된 맨해튼에서 드물게 맥두걸 스트리트니, 베드포드 스트리트니, 그로브 스트리트니 하는 꼬불꼬불한 길들이 미로처럼 얽혀 있는 동네. 학교(뉴욕대학교)가 있는 동네라 셀 수도 없이 지나다녔고 오래되고 분위기 있는 건물들이 좋아서 뉴욕에서 가장 사랑하게 된 동네. 그 동네를 오 헨리가 묘사하고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 pp.137-139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무대인 애틀랜타가 있는 미국 남부에 오래전부터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 미국 연수를 오면서 가보리라 결심했던 여행지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곳이기도 했다. 나는 스칼렛을 좋아했다. 내가 읽은 어떤 소설의 여주인공보다 당차고 적극적이라 좋았다. 그는 착하지 않았고 순종적이지 않았고 규범에 얽매이지 않았으며, 무엇보다도 남자에 의존하지 않았다. 소설이 그녀의 세번째 남편이자 가장 사랑했던 남자 레트 버틀러와 ‘그리하여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가 아니라 레트가 떠나는 것으로 끝나는 점도 좋았다. 스칼렛은 뭐랄까, 여자라는 이유로 이 사회가 덧씌우는 갖가지 규범 때문에 숨 막힐 때의 롤모델 같은 여성이었다. --- p.150 1980년대 대한민국의 어린이였던 나는, 또래들과 마찬가지로 디즈니의 세례를 받고 자랐다. 영상물보다 책에 더 익숙했다. 계몽사에서 출간된 60권짜리 ‘디즈니 그림 명작’이 내가 유치원생 무렵 유행하던 전집이었다. 어릴 적 엄마는 ‘신데렐라’ ‘백설공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그 이야기들이 녹음된 동화 테이프도 여러 번 들었지만 구전의 세계에서 문자의 세계로 옮겨온 나를 맞이한 건 디즈니였다. --- p.215 ‘유유히 흐르는 미시시피강’에 대한 환상을 갖게 된 것은 순전히 초등학생 때 읽은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핀의 모험』 때문이다. 말썽꾸러기 톰 소여가 뛰어노는 곳, 불우하나 씩씩한 소년 헉이 뗏목을 타고 신나는 모험을 나서는 곳. 마크 트웨인이 유년 시절을 보낸 해니벌을 찾아가는 여행은 그래서 『빨강 머리 앤』을 찾아간 프린스에드워드 아일랜드 기행과 또다른 의미로 어릴 적 친구를 만나러 가는 여행 같았다. 앤이 마음속에 오래 품어온 단짝 친구라면, 톰 소여는 장난이 심하지만 악의는 없는, 초등학교 어느 교실에나 하나 있을 법한 남자 친구 같았으니까. --- p.252 인간은 과연 패배하지 않는 존재일까, 갖은 노력을 들여 거대한 청새치를 잡고 나자 이제는 청새치를 탐낸 상어들과 싸워야만 했던 노인을 떠올리면서 그런 물음을 던져보았다. 소설을 처음 읽었던 중학생 때, 소설의 주제를 묻는 시험문제가 나오면 ‘인간과 자연과의 투쟁’ 유의 답에 동그라미를 쳤다. 이제는 안다. 노인은 자연이 아니라 스스로와 투쟁하고 있다는 것을. 노쇠해가는 것은 서글픈 일이며, 늙어갈수록 인간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해 보이고 싶어 한다는 것을. --- pp.296-297 |
|
세상의 모든 꿈꾸는 자를 위한 여행기
지은이는 미국으로 떠나기 직전 파리 센 강변의 영문 서적 전문 서점 셰익스피어&컴퍼니(Shakespeare & Company) 앞에 붙은 칠판의 글귀를 읽다가 울었다고 고백한다. 사라질 뻔한 이 서점을 인수해 키워내어 딸에게 물려준 조지 휘트먼의 말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나를 라탱 지구의 돈키호테라 부른다…….” 지은이는 이웃보다 책 속 인물들을 훨씬 친숙하게 여겼던 휘트먼과 책벌레로 살아온 자신이 무척 닮아 있음을 느낀다. “이웃보다 책 속 인물들을 더 친구처럼 느끼는 사람, 그게 바로 나였다. (……) 내가 사랑하는 문학작품 속 주인공들이 살았던 도시를 찾아간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나나 휘트먼과 마찬가지로 문학과 현실의 경계에 살고 있는 ‘꿈꾸는 자들’을 위한 여행기다.”_10쪽 성인이 되어서도 한쪽 발은 여전히 이야기의 세상에 걸치고 있다고 말하는 지은이는 자신이 사랑하는 문학작품의 배경을 두 눈으로 직접 보기 위해 수없이 여행했다. 이야기를 먹고 자라던 어린 시절, 책 속 주인공들이 어딘가에 실제로 살고 있을 것만 같았던 그 마음. 그 믿음을 품고, 독서 여행자가 되어 미국과 캐나다, 쿠바 등 문학의 무대, 작가의 생이 살아 숨 쉬는 곳으로 향한 것이다. 지은이가 걸은 길은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문학이 만든 ‘실재하는 풍경’이다. 책과 함께 떠난 ‘그 시절 그녀들’의 도시 말이다. 지은이는 뉴욕, 콩코드, 보스턴 등 어린 시절 마음속에 그려온 장면들이 살아 움직이는 도시를 찾아가 문학의 향취를 느끼며 작품과 깊이 공명한다. 아메리카대륙 위에 그리는 문학의 지도 책은 『빨강 머리 앤』의 배경이 된 캐나다 프린스에드워드 아일랜드를 시작으로,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의 서사시 「에반젤린」의 태곳적 자연이 떠오르는 아카디아 국립공원, 너새니얼 호손의 어두운 상상력이 깃든 세일럼, 루이자 메이 올컷이 네 자매의 우정을 길어 올린 콩코드, 그리고 『위대한 개츠비』의 화려함과 허망함이 교차하는 뉴욕 근교의 부촌들까지, 한 시대와 한 작가를 규정한 장소들을 직접 찾아가며 작품 속 문장이 어떻게 현실의 풍경과 겹치는지를 탐험한다. 또한 마거릿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탄생한 애틀랜타와 서배너, 헤밍웨이가 생애와 작품을 쌓아 올린 쿠바와 키웨스트, 그리고 마크 트웨인과 오 헨리가 머물며 작품 활동을 했던 문학의 요람까지. 지은이는 아메리카 문학사의 결정적 순간들을 길 위에서 되살려낸다. 2018년에 출간한 『바람과 함께, 스칼렛』의 원고를 현재의 시점으로 다시 쓰다시피 개정증보한 『나와 그녀들의 도시』는 이전의 여정에 새로운 이야기와 한층 깊어진 시선을 더해 다듬어 펴낸 것이다. 책에는 월트 디즈니의 세계와 미스 마플의 미스터리한 현장, 그리고 에필로그에서 『빙점』 속 눈 내리는 설원을 여행한 이야기도 들려준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책에는 여행의 시점에 어울리는 문장을 작품의 원문과 함께 지은이가 직접 번역해 실었다. 원문을 음미하는 것 또한 문학작품을 읽어가는 또하나의 재미라고 생각한 지은이의 의도가 담겼기 때문이다.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나와 그녀들의 도시』는 단지 ‘책 속 장소’를 찾아가는 여행기가 아니다. 우리가 오래도록 사랑해온 문학작품들이 현실의 장소와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 또 그곳이 작가들에게 어떤 영감을 주었는지를 보여주는, 문학과 삶을 잇는 하나의 ‘지도’다. 또한 이 책은 책장을 덮은 뒤에도 책 속 인물들과 이별하지 못하는 독자에게 ‘지금, 여기’에서 다시 살아 숨 쉬는 문학과 마주할 수 있는 장소로 이끄는 ‘초대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