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교재 및 외국도서의 구매자 변심으로 인한 반품불가
안녕하세요.
신학기라 대학교재의 주문이 많습니다.
교재는 보통 새책의 경우 비닐에 싸여 있습니다.
촬영이나 복사를 방지하기 위해서죠.
그러나 중고도서의 경우 그렇지 못합니다.
수령후 변심으로 인한 반품은 접수하지 않습니다.
구매시 신중하게 구매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외국도서는 대체로 제가 재고를 갖고 있는게 아니라 연계되어 있는 업체와 협의하여 주문을 처리하곤 합니다.
중간에 주문취소는 제게 손해가 커서 주문후 취소는 불가함을 알려드립니다.
수령후 구매자 부담의 반품은 받습니다.
판매자 올림.
|
|
|
1부 천문학
일행, 심괄, 곽수경,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 조르다노 브루노, 마테오 리치, 갈릴레오 갈릴레이, 아담 샬, 시부카와 하루미, 윌리엄 허셀, 위원, 윌리엄 마틴, 주커전, 야부우치 기요시 2부 물리·화학 아리스토텔레스, 아르키메데스, 르네 데카르트, 방이지, 아이작 뉴턴, 서수, 야마카와 겐지로, 에드워드 밀러,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조지프 니덤, 야지마 스케도시 3부 의학 편작, 장중경, 에드워드 제너, 필립 폰 시볼트, 벤자민 홉슨, 호러스 알렌, 올리버 에비슨, 로제타 홀, 리하르트 분쉬, 시가 기요시, 미키 사카에 4부 기술·발명 장형, 소송, 율리우스 알레니, 제임스 와트, 알레산드로 볼타, 니시 아마네, 알프레드 노벨, 토마스 에디슨, 헨리 뮐렌스테트, 굴리엘모 마르코니, 첸쉐썬 5부 자연과학 피타고라스, 서광계, 요하네스 테렌츠, 송응성, 찰스 다윈, 쓰다 센, 에드워드모스 6부 한국에서 활동한 과학자 요하네스 로드리게스, 퍼시발 로웰, 와다 유지, 호머 헐버트, 칼 루퍼스, 아서 베커, 우에키 호미키, 야마가 신지, 호러스 언더우드 |
|
원소 이름 한자로 개발한 중국의 서수
산소, 수소라는 말은 영어의 oxygen, hydrogen을 우리말로 옮겨 만든 것이다. 아니 엄격하게 말하자면 이런 단어는 ‘우리말’로 만들어졌다기보다 일본 사람들의 번역을 우리도 그대로 따르고 있을 뿐이다. ‘일제 잔재’란 말이 많이 사용되는데 엄격하게 말하라면 산소, 수소, 질소 등의 원소 이름도 모두 일제 잔재에 속한다. …… 그러나 같은 한자 문화권의 중국인들은 이 원소들을 이런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다. 한때 중국인들도 일본에서 만든 용어들을 그대로 쓴 적이 있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의 방황, 토론, 논의 끝에 중국 학자들은 원소 이름을 독자적으로 개발해 지금 우리와 전혀 다른 이름을 쓰고 있다. 예를 들면 산소, 수소가 중국에 가면 ‘양’, ‘경’으로 바뀌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108개의 원소 이름이 모두 한 글자로 표시되어 있는데, 아주 편리한 방식으로 분류되어 있다. 원소를 자연 상태에서 기체, 액체, 고체 등으로 나누고 그 각각의 원소 이름에 이를 나타내주는 것이다. --- pp.145-146 우리나라에 처음 상륙한 미국인 의사 호러스 알렌 이승만이 어렸을 때 천연두로 시력을 몇 달 동안 잃었던 것을 고쳐준 것도 알렌이었다. 장님이 된 어린 아들 때문에 절망에 빠진 아버지 이경선은 6대 독자인 아들의 실명을 고치려 온갖 노력 끝에 드디어 알렌에게 데리고 왔다. 그는 물약을 주면서 3시간 만에 한 번씩 눈에 떨어뜨리면 사흘 후에 좋은 결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사흘째 되던 날은 마침 이승만의 열 번째 맞는 생일이었는데, 어머니가 밥상을 가져와 수저를 손에 쥐어 주었다. 그때 갑자기 소년 이승만은 마루에 있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아버지를 향해 기어가면서 눈이 보인다고 소리쳤다. 기쁨에 어쩔 줄 모르던 그는 계란 한줄을 선물로 들고 아이를 데리고 알렌에게 찾아갔다. 알렌은 선물을 사양하면서 당신 아들에게 계란이 더욱 필요하니 잘 먹이라고 했다는 일화이다. --- p.222 ‘과학’이라는 용어 최초로 사용한 일본의 니시 아마네 ‘과학(wj)’이란 말을 처음 만든 사람은 뭐로 보나 과학자는 아니었다. 서양 사람들이 사용하는 사이언스(science, 더 정확하게는 natural science)라는 말을 ‘과학’이라는 한자 용어로 처음 만든 사람은 바로 니시 아마네[1829~1897]로 일본 개화기의 대표적 사상가이며 철학자였다. 1874년 니시 아마네는《명륙잡지》에 연재하던 자신의〈지설〉이란 글에서 “이른바 과학……”이라면서 처음으로 이 말을 만들어 사용했다. 그것도 이 글에서는 단 한 번 사용한 단어였다. 그 뜻도 ‘전문화되는 각 분과의 학문’이란 정도의 뜻으로 만들어 썼던 단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시작한 ‘과학’이라는 단어는 그후 니시 아마네 자신도 계속 사용했고, 다른 사람들에 의해 널리 퍼지게 되었다. --- pp.294-295 거중기 제작에 영향 미친 프랑스의 요하네스 테렌츠 우리 역사에 간접적으로 이바지한 스위스 출신 선교사 테렌츠는 우리식 이름이 등옥함이고 자를 함박이라 했다. 원래 이름은 장 테렌츠(Jean Terrenz)인데, 요하네스 테렌츠 또는 요하네스 테렌츠 슈렉(Joannes Terrenz Schreck)이라 하기도 한다. 테렌츠는 중국에 오기 전에 이미 독일에서 의학자, 철학자, 수학자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고 동물, 식물, 광물, 기계 등에도 해박했다고 전한다. 특히 언어에도 재능이 있어서 독일어 이외에 프랑스어, 영어, 포르투갈어, 히브리어, 그리스어, 카르다어, 라틴어에도 능통했다고 하니 대단히 재능 있는 인물이었던 것만은 분명해보인다. …… 그가 중국에 오게 된 동기는 당시 서양 지식층의 중국에 대한 환상이 어느 정도 역할을 했을 것으로도 보인다. 1600년쯤에는 먼저 중국에 와서 활동하던 서양 선교사들에 의해 중국 문명의 위대함이 과장 선전되어 유럽 젊은이들에게 중국 문명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예수회를 포함한 서양 선교단체가 중국 선교 운동에 열성이어서 많은 청년들이 중국행을 지원하고 있었다. --- pp.350-351 세계에 한국의 측우기 소개한 일본의 기상학자 와다 유지 1904년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자, 일본은 한국과 만주일대의 날씨에 대해 관심을 더 갖게 되었고, 그에 맞춰 제물포에 기상관측소를 세우게 된 것이다. 그전에 이미 임시 관측부대를 데리고 종군하고 있던 와다 유지는 1904년 7월 제물포관측소가 정식으로 시작되자 소장에 임명되었다. 그는 일제가 이 땅에 세운 최초의 기상관측소 소장이었던 셈이다. 바로 이때부터 그는 한국의 기상학사 연구에 힘을 쏟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가장 중요한 공헌이 바로 우리나라의 측우기를 국제사회에 소개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와다 유지는 그 밖에도 첨성대를 외국에 소개하는 데에 상당히 공헌한 것으로 보인다. 1917년에 발표된 그의 논문〈경주 첨성대의 설〉에는 그가 1909년 4월 21일 처음으로 첨성대에 가게 된 과정이 설명되어 있다. --- pp.402-403 경성제대 마지막 총장 지낸 화공학자 일본의 야마가 신지 경성제국대학 설립은 1924년 4월로 거슬러 오른다. 조선총독부는 조선인들의 끓어오르는 교육 자치의 열망을 더 이상 억압하기 어렵게 되자 조선 최초의 근대식 고등교육기관으로 경성제국대학을 세웠다. 조선인들이 3·1운동 이후 자발적으로 세우려던 대학설립을 막는 대신 일제 스스로 이 정도의 양보를 한 셈이었다. 그전에 이미 전문학교들이 몇 개 있기는 했지만, 말하자면 ‘초급’ 대학만 있던 이 땅에 처음 대학교를 세운 격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처음 경성제국대학을 세운 일제는 여기에 법문학부와 의학부만을 만들고, 이공계 학과는 전혀 만들지 않았다. 법학과 의학을 공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서 법관과 공무원, 그리고 의사들을 조선인 사이에서 길러낼 필요성은 인정했지만, 과학자와 기술자를 조선인 가운데에서 적극 길러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선인들에게 이공계에 대한 관심이 그리 높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가 1941년에서야 경성제국대학에 이공학부가 생겨났다. 그리고 바로 이 과정에서 주역을 맡았던 인물이 당시 일본 해군 중장으로 제대하여 도쿄제국대학 교수로 있던 야마가 신지였다. --- p.434 |
|
한국과 세계의 과학자를 총망라한 명실상부한 ‘과학사 인물 열전’
지금까지 한국 과학사 전반을 주제로 한 책이 나온 것은 1960년대에 전상운의《한국과학사》, 박성래의《한국과학사》가 그 시작이라 할 수 있다. 당연히 그 상세한 부분에 속한다 할 수 있는 과학사 및 기술사에서의 인물에 관한 연구와 저작은 풍성하지 못했다. 과학기술 인물사와 관련한 대표적인 책으로는 김호의《조선과학 인물열전》, 김근배의《한국과학기술 인물 12인》, 박성래의《명예의 전당에 오른 한국의 과학자들》 등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존의 책들은 인물에 관한 내용이 빈약하고 다루고 있는 인물의 수 자체가 적다. 특히 기존의 과학 인물사와 관련된 책들은 대부분이 번역서였고 그러다보니 세계사 인물에 편중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또 고대로 올라갈수록 인물 수가 적고, 그 인물에 대해 상세한 소개가 없다. 이는 고대사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과학기술’의 내용이 빈약한데다가 혹시 어떤 역사적 사건이나 유물이 있는 경우라도 그 주인공의 이름이 밝혀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인물 과학사》는 이렇게 과학기술자들을 총망라한 개설서가 부족한 현실을 반영하여 기획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인물의 수부터 기존의 책들과 차별성을 이룬다. 한국 과학기술자를 다룬 1권의 경우 92명, 세계 과학기술자를 다룬 2권의 경우 63명의 인물을 다루고 있다. 또 기존의 책들은 대부분 백과사전식, 전기식 나열에 불과했다. 인물의 출생과 성장배경, 업적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히 백과사전식, 전기식의 나열로 위인전과 같은 전개를 이루는 것이 아닌 저자만의 독특한 인물관을 함께 엿볼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또 세계 과학기술자의 경우 우리나라에 언제, 어떻게 처음 소개되었는지를 소개하고 한국 과학사에 남긴 업적은 무엇인지 밝히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과학사학자 박성래의 과학기술자 인물 평론 그동안 대중적 주목을 받아 크게 인기를 모은 역사 속 인물 가운데에는 과학사에 속하는 인물인 경우가 많다. 의학자 허준, 천문기술자 장영실, 농학자 우장춘,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발명가 토마스 에디슨 등이 그 예이다. 당연히 이들의 일생은 드라마가 되어 책으로 방송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과학기술 인물사에 주력하는 과학사학자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인물에 대한 많은 연구가 나왔고 또 인물 연구에 주력하는 역사가도 많이 있었지만 역사의 다양한 부분 가운데 과학기술 분야를 전공하는 역사학자는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그 가운데 특히 ‘과학기술 인물사’에 주력한 과학사학자는 더욱 드물었던 것이다. 이는 인물사 연구에 필요한 사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한데다 현대에 들어서야 차츰 과학기술 기관이 생기면서 한국 과학기술 연구자들이 생겨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박성래는 다른 과학사 연구자들과 달리 과학사 인물에 대한 연구에 깊이 천착했다. 1979년부터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의 월간지《과학과 기술》에 ‘과학의 사회적 역할’, ‘과학기술의 맥’ 등 다양한 주제로 과학기술의 역사를 소개했으며 특히 ‘역사 속 과학 인물’이라는 주제로 1993년부터 2008년까지 약 200회에 걸쳐 한국 및 세계 과학자들을 소개해왔다. 이렇게 과학사와 관련한 그의 다양한 저술과 역사 속 과학기술자에 대한 그의 오랜 연구 결과가 이번에 두 권의 책으로 기획된 것이다. 저자는 “나에게는 사람을 너무 위대한 존재로 보지 않으려는 성벽(性癖)이 있다”고 말하며 때로는 인물의 어두운 사생활을 파헤치기도 하고, 잘못 알려진 사실에 대해 지적하며 자신의 독특한 인물관을 이 두 권의《인물 과학사》에 투영시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