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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지붕 신상문구점
삶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집식당 먼지보다도 작게 부서져 사라지길 바랐다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황 영감과 단월 할매 또 하나의 계절로 넘어가는 바람 『신상문구점』 창작 노트 『신상문구점』 청소년 사전 리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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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조 엄마가 편무를 품에 안고 차를 타고 떠나면 편조는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맨발로 뛰기 시작했다. 발톱이 깨지고 발바닥이 찢어져서 피가 흘러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면 나는 편조의 신발을 들고 따라 뛰었다. 어떤 때는 편조보다 더 빨리 뛰어서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모퉁이를 돌아 떠나는 차가 내 엄마 아빠인 줄 알 것 같았다. 편조 엄마 아빠는 한 번쯤은 차를 세울 만도 한데 그 일이 있고 난 후, 차를 세운 적이 없다. 편조 손에 들린 돌멩이 때문이었다. 편조가 던진 돌멩이에 차 유리가 박살 난 후로는 절대 차를 세우지 않았다.
그런 날 밤이면 편조는 제 할머니의 가슴팍을 밀치며 우리 집으로 뛰어오곤 했다. --- p.29 문구점의 엉성한 유리문이 자물쇠로 잠겨 있다. 너무 낯설었다. 단월 할매가 계실 때는 한 번도 없던 일이다. 주인이 저렇게 두 눈 시뻘겋게 뜨고 지켜보면서 굳이 문을 잠글 게 뭐람? 아예 장사를 안 할 거면 모를까. 내가 뒤돌아서 황 영감을 바라보자 황 영감이 기다렸다는 듯 서둘러 걸어왔다. “잘 왔다, 들어가자.” 황 영감이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냈다. 나는 말없이 황 영감의 손길을 지켜보았다. “뭘 굳이 잠갔냐고?” 어른들은 뒤통수, 옆통수에도 눈이 있는 게 분명하다. --- p.42 “넌, 너무 심각해.” “그건 네가 신상문구점과 나의 관계를 몰라서 그래.” 모경의 말이 아주 틀린 것 같진 않지만 좀 서운했다. 그간의 사정을 모르니 나의 심각성을 알 리 없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모경에게 일일이 설명하고 싶지도 않았다. “관계라니? 뭔?” “알바생이었다. 왜.” “어머, 진짜 알바생이 있었다고? 이 문구점 다시 봐야 되겠는걸.” 모경은 아주 탐나는 눈빛으로 멀어져 가는 신상문구점 초록 지붕을 바라보았다. “알바비는 얼마? 정말 괜찮은 알바 자리 같은데.” “그런 알바 아니야.” “알바면 알바지 그런 알바가 아니란 말은 또 뭐야? 근데 저 할아버지 지금 나 같은 고급 인력을 거절한 거지? 나 까인 거 맞지?” 하여간 성격 참 좋다. “가라.” 갈래길이 나오자 나는 모경에게 손을 내저으며 더 이상 말하기 싫은 표정을 지었다. --- p.51~52 “다음 사람이 올 때까지 하는 수밖에. 나는 사지육신이 멀쩡하니 아직 해도 된다는 신호로 알고 있어. 전에 사장님이 그랬거든, 언젠가는 나에게도 신호가 올 거라고. 그 신호가 뭐냐고 했더니 자기도 모른다고 신호를 받는 사람이 알지 않겠냐고 하더라고. 어느 날 나도 적당한 신호를 받으면 물려주고 갈 거야. 난 매일 아침 눈뜰 때마다 오늘 하루만 잘 살면 된다 생각한다. 그러니까 마음이 그렇게 가붓할 수가 없어. 오늘 하루만 최선을 다해서 팥을 삶고, 오늘 하루만 기똥차게 맛있는 백김치를 담그고, 갓장아찌를 절이고.” “그러니까요, 처음 이 가게를 꾸린 사람이 누구냐고요.” “야, 똥하, 너는 내가 이렇게 진지한 고백을 하는데 자꾸 깨는 소리 할래?” --- p.79~80 할머니한테 내가 기생하여 산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 자신이 싫을 때가 많았다. 어떻게 한 인생이 한 인생에게 이렇게 빚을 지고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내가 너무나 싫을 때가 많았다.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나는 먼지보다도 작게 부서져서 사라지길 바랐다. 그런 바람과는 다르게 나는 흰바위산의 너럭바위보다 흰뫼의 봉우리보다 크게 부풀어 올라 나 자신조차 감당할 수 없었다. 그럴 때, 나는 흰뫼 정상까지 단숨에 뛰어올랐다. 숨이 가빠 앞이 깜깜해질 때면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 p.100~101 편조는 나에게 평화주의자라고 했다. 착하다는 말 말고 다른 표현을 찾아본다고 하더니만……. 평화주의자란다. 비꼬는 건지 칭찬인지 모르겠다. 내가 주변이 평화로워야 자신도 편안함을 느껴서 자신에게도 잘해 준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자신이 울 때마다 달려와 달래준 것도 그런 차원 아니냐고 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편조는 뭘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그게 편조의 매력이긴 하지만 가끔씩 놀랄 때가 많다. 평화롭지 않은 사람을 보면 불편해서 잘해 주는 걸 좋아하는 거로 착각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그간의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심장의 반응을 보면 답이 나온다. 편조를 생각하면 심장부터 벌렁거리는 떨림이 시작된다. 그래서 안다. 내 심장의 일렁임은 나만 아는 거니까. --- p.144 “넌 정말 서울로 갈 거야?” “네가 돌아온다면 다시 생각해 보려고.” “정말? 돌아오고 싶기도 그렇지 않기도 해. 엄마 아빠도 나만큼 애쓰고 있는 걸 알았으니까. 내 안에 울고 있는 어린 나는 그냥 두고 앞으로 나가야 할 것 같아. 그래야지 어린 나를 돌볼 수 있는 힘이 생기지 않을까? 지금의 나를 돌보지 않으면 어린 맨발의 나를 누가 치료해 줄 수 있겠어. 너도 마찬가지야.” “어른 같다.” 나는 편조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편조는 키만 큰 게 아니었다. “어른은 무슨, 어른 같은 거 되기 싫어. 어른도 힘든 것 같아. 우리 할머니도 못 본 새 엄청 늙으신 것 같고.” “나도 그래. 우리 할머니도 말씀은 안 하지만 나를 보낸다고 마음먹은 다음부터 부쩍 기운을 못 차리고. 나를 본체만체 해.” “정 떼는 연습을 하고 계신 거야. 우리 할머니도 그랬어.” --- p.169~170 아이에게 부모의 그늘은 평생을 간다. 사랑을 받았든 받지 못했든. 인생은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고투이다. 버림받을 것 같은 불안에 떨며, 엄마 아빠는 나보다 왜 형을 더 인정하는가, 나를 사랑하긴 하는 걸까. 친구는 왜 나보다 쟤랑 더 친하지? 유의 물음으로 끊임없이 사랑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이 소설을 구상하고 쓰는 내내 소년 하나가 제 무릎에 얼굴을 묻고 울고 있는 모습이 내 안에 머물렀다. 소설을 마칠 때쯤에야 알았다. 그 소년이 다름 아닌 나라는 것을. 사랑받기 위해 혹은 사랑받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하는 어린 나였다. 이제는 내 안의 그 소년에게 말하려고 한다. 성장기는 누군가에게 빚을 지는 것이 아니라 그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보호받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 본문 「창작 노트」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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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하의 아지트인 초록 지붕 신상문구점! 단월 할매의 죽음과 함께 문구점의 문이 닫히자 동하는 큰 상실감에 빠진다. 신상문구점에 들어 앉은 황 영감은 사람들이 주문한 신상을 가져다 놓고도 팔지 않는다. 그곳을 그냥 지킬 뿐이다. 동하는 마을을 떠나 버린 첫사랑 편조가 그립고 폐교가 되어 편조와 한 발짝이라도 가까운 학교에 편입하고만 싶다. 하지만 모경이라는 새 인물의 등장으로 폐교의 꿈을 접는다.
괴팍하지만 속정 깊은 황 영감은 신상문구점의 운영 방식 때문에 동하에게 연락을 해대고, 동하와 모경, 마을 사람들을 통해 조금씩 마음을 연다. 그집식당의 택이 아저씨 또한 황 영감에게 팥 수매를 부탁하며 황 영감의 기묘한 사연을 풀어가고, 그집식당의 숨겨둔 비밀도 끝내 밝혀지는데……. 동하, 편조, 모경을 통해 영원히 자랄 것 같지 않은 또 하나의 ‘나’를 불러내 위로하는 이야기. 신상문구점이 열리고, 아이들도 신상을 다시 주문할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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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강한 그들만의 방식으로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불러내 위로하는 시간 발톱이 깨지고 발바닥이 찢어져서 피가 흘러도 맨발로 뛰는 편조. 편조의 신발을 들고 뒤쫓는 남친 동하. 동하의 마음을 흔드는 당차고 꿋꿋한 전학생 모경이 나타났다. 주인공 동하는 한 인생이 한 인생에게 빚지고 살아야 하는 게 늘 괴롭다. 할머니에게 기생하는 인생 같아서 자신이 싫어질 때면 흰뫼 정상까지 단숨에 뛰어오른다. 하지만 동하의 마음을 가장 깊이 흔드는 건 편조다. 편조를 보면 심장이 일렁인다. 예민하고 섬세한 편조는 백석리를 떠나 그토록 원하던 집으로 돌아갔지만 연극 무대 같은 집이 불편하기만 하고, 그 마음을 표현할 곳은 스프링 노트뿐이다. 하지만 노트를 찢어 공유할 수 있는 동하가 곁에 있어 든든하다. 모경의 등장으로 동하의 마음이 흔들릴까 봐 단속하는 편조는 엄마를 독차지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소문을 몰고 전학 온 모경은 꿋꿋하고 당찬 아이다. 체육복을 구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신상문구점을 뒤지기도 하는 모경은 물속에 잠긴 엄마와 아빠를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벅차다. 하지만 모경에게 이제 든든한 친구들이 있다. 아무도 당할 수 없는 개성 강한 주인공들은 누군가의 부재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며 나아간다. 청소년기에 맞닥뜨린 아픔을 위로하는 그들만의 방식은 독자를 함께 회복시킨다. 영원히 자랄 것 같지 않은 또 하나의 ‘나’를 불러내 위로하는 것이다. 마을의 두 중심부, 그곳에 숨은 진실이 있다 비밀을 추척하는 재미, 놀라운 반전! “물건도 안 팔 거면서 문구점은 왜 여신 거예요?” 신상을 쌓아 두고 절대 팔지 않는 황 영감의 기묘한 사연은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궁금증을 더해 간다. 황 영감은 조금씩 마음을 열며, 외지 사람들과 마을을 잇는 ‘그집식당’의 팥 수매를 위해 발 벗고 나서고, 그집식당을 운영하는 택이 아저씨는 황 영감의 숨겨진 진실을 듣게 된다. 그집식당은 외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마을의 또 다른 중심부이다. 사람들의 허기를 채우고 마음까지 배부르게 하는 그집식당에도 비밀 가득한 나름의 운영 방침이 있다. 택이 아저씨는 가게 운영에 엄격한 계약이 있다고 하는데……. 마을의 두 중심부인 신상문구점과 그집식당의 비밀을 추적하는 재미와 놀라운 반전은 마음을 졸이던 독자의 마음을 시원하게 한다. 닫혔던 신상문구점이 다시 살아난 것은 단순한 회복이 아니라, 아이들과 마을이 다시 이어지는 상징이다. 신상문구점은 아이들의 아지트였기 때문에 잃었던 일상을 되찾는 출발점이 된다. 그집식당은 따뜻한 먹거리로 위로를 전하며, 상실 속에서도 계속 이어지는 공동체의 힘을 보여 준다. ★★★ 청소년 독자단 사전 리뷰 엄선 수록 ★★★ 사전에 『신상문구점』을 읽은 청소년 독자단은 작품의 핵심을 이해했다. 신상문구점과 그집식당의 사연에 깊이 공감하며 주인공을 통하여 인생의 계단을 두려움 없이 걸어가고 싶다고 밝힌 청소년은 작품을 읽는 내내 울컥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상실’이 마냥 슬픈 것만은 아니며 새로운 만남과 길로 전진할 수 있음을 배웠다고도 했다. 길 위에서 흔들리는 이들에게 이 소설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가야 할 길을 비춰 준다고 전했다. 베스트셀러 작가의 섬세한 표현과 빼어난 문장, 깊이 있는 이야기가 청소년 독자단을 통해 검증되었다. 책 말미에 청소년 사전 리뷰를 엄선, 수록하여 청소년 독자와 소통할 수 있도록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