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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1부 붉은 사과의 꿈 / 종이 / 솔의 참형 / 그라운드 단풍 / 아파트 재건축 / 흙의 하소연 / 갈암 / 용문사 은행나무잎 / 청려장 / 사라진 산길 / 낮닭 / 겨울 팔공산 / 요수 / 상대성 이론 / 선비의 자격 / 스프링 / 토정 / 불 바람 / 매월당 / 그래도 2부 옷이 걸치는 말 / 아라홍련 / 하늘 운동장 / 관성 / 증 공조판서 / 안동향교 / 봄 눈 / 포클레인 / 회혼 / 그날의 물집 / 1000주년 / 풀 한 포기 / 밥상 앞에서 / 구두 / 약혼식 / 서가 감실 / 먼옷 / 안부 전화 / 내려앉는 계절 3부 멍 / 조락 / 밤 놀이터 / 관어대 / 웨딩 마치 / 무장해제 / 나무 심기 / 기우 / 물 빠진 나루 / 처음처럼 / 벚꽃 엔딩 / 우쭐우쭐 / 생전예수재 / 수명 연장 가설 / 비명 / 고산 / 분가 / 알렉산더 두상 / 노을 멍때리기 4부 가을 햇살 / 때로 난간에서 / 퇴계언행록 / 나목 / 솜털 구름 / 동병상련 / 북망산천 / 관례 / 중재 / 눈치 / 기정 / 설날 / 눈 뜨고도 / 출석 / 걷는 게 어렵다며 / 1963 토끼 / 그들에겐 쉬운 것 / 삼일절 태극기 / 맨발의 청춘 5부 유유상종 / 허상 / 유혹 / 쇠제비갈매기 / 가산 공룡 / 싸움의 기술 / 작설 / 노심초사 / 정재 / 현이 아빠 / 세 잎 클로버 / 3호선 맨 뒷자리 / 맨발 백병전 / 우양산 / 진흥왕 척경비 / 단재 / 홍시 / 하하하 해해해 / 소의 껌벅거림 / 264 해설 가족과 당대를 향한 사랑, 그 웅숭깊은 서정 세계 시조집 발간에 부치는 글-아름다운 성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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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저녁 일상
일방 통화 멎었다 이젠 더는 들을 수 없는 어머니 그 음성 아직도 못다한 말씀 늘 귓전을 울린다 --- 「안부 전화」 중에서 처음으로 손 내밀어 반가이 맞이하다 함께 앉아 밥 먹으며 속내를 듣는다 그렇지 바로 이 청년 이젠 우리 가족이다 --- 「밥상 앞에서」 중에서 봄날은 용수철 튀어 오른 개구리 냉이는 향긋한 촉을 쏙 내민다 안 돼요 힘줘 당기면 그 탄력을 멈추니 --- 「스프링」 중에서 야수를 기다리며 저마다 단장했다 나를 맛있게 먹고 씨앗만 배설해 줘 땅속에 깊이 묻혀서 꽃 피울 꿈 좀 꾸게 --- 「붉은 사과의 꿈」 중에서 낙엽이 쌓일 때쯤 바로 그때쯤에는 하늘은 높아지고 계곡물 거울 된다 저렇듯 청정무구를 거느리고 가는 가을 --- 「조락」 중에서 삼월 이일 강의실 체온계가 사라졌다 책상 위 둘러쳐진 칸막이도 없어지고 이름을 부르는 것은 대면의 확인이다 되찾은 자유로 생존 너머를 상상하라 새소리 봄의 왈츠 시작을 자축하며 공부는 필리버스터, 자유의 특권이다 --- 「무장해제」 중에서 젖과 꿀 가자에 다시 피가 흐른다 하마스 기습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쫓겨난 팔레스타인 내 땅 찾는 복수극 나라 잃은 대한의병 무력 항쟁 불사했다 통감을 저격하며 제국주의 맞섰다 전설 속 임나일본부 광복으로 지우며 반만년 한반도에 이스라엘 들어서면 약속의 땅 내세울 때 한민족은 어찌할까 가자는 선악과 달린 에덴동산 도돌이표 --- 「동병상련」 중에서 사시사철 불침번 도산서당 백년송 대형 산불 번지며 불쏘시개 누명에 절우사 매화 대나무 바람을 지목하네 들어라 솔 송진이 잘 타기는 하지만 강풍 없이 혼자서 불 키운 적 없거늘 바람이 억울하다면 건조가 공범이라 소나무는 죄가 없다 아무리 변론해도 문화유산 위급하다 모조리 베어져 그 언덕 그루터기엔 나이테만 처연해 몹쓸 것 재선충에 목숨 겨우 붙였는데 십장생 사양하니 산불 주범 벗겨 주오 그 기상 바람 서리에 불변토록 지키리니 --- 「솔의 참형」 중에서 퇴계 선생 귀향길 오십 리를 걷던 날 도산서당 십 리 두고 아뿔싸 발병 났네 발바닥 헤집는 물집, 그 물집은 가르침 --- 「그날의 물집」 중에서 북방으로 휩쓸린 서릿발 위에서도 청포 입고 백마 탄 초인을 기다리다 오페라 그 한 개의 별 눈물 속에 데자뷔 --- 「264」 중에서 어둠 속 후다닥 피아노에 들이박다 쿵! 아야얏, 잊을 때쯤 허벅지는 푸르딩딩 달포를 비친 핏빛이 서녘 하늘에 어린다 --- 「멍」 중에서 시멘트 아스콘 아스팔트 콘크리트 도시는 내 머리를 포장으로 가둔다 노천이 사라져야만 살기 좋은 곳이란 듯 내 잘못은 이따금 뿌연 먼지 날리고 비 오면 흙탕물 만드는 게 전부인데 억울해! 버리는 것도 성에 안 차 생매장인가 햇빛을 보고 싶어 빗물이 그리워 보듬어 한 생명을 키우고 싶은데 용케도 숨구멍 틔운 싱크홀이 부러울 뿐 --- 「흙의 하소연」 중에서 토요일 하동의 세작이 찾아왔다 연두 봄이 이제는 여름으로 간다는데 참새의 혓바닥 크기로 부드러워지고 싶다 --- 「작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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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촉각은 계절의 변화와 자연과의 교감에서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시인은 무궁무진한 상상력의 보고인 자연을 유정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흥취가 발동하면 그것이 곧 비단실 같은 언어로 직조된다. 「스프링」에서 봄날을 용수철, 튀어 오른 개구리라고 노래한다. 「풀 한 포기」는 화자의 애정 어린 눈길이 돋보이는 시로 보도블록 틈새를 비집고 나온 한 포기 풀이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어기차게 살아내는 현장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붉은 사과의 꿈」은 생명을 이어가는 그 영속성에 대한 강렬한 의지이자 염원이다. 「내려앉는 계절」에서는 만산홍엽 붉은 바람 남쪽으로 내려오고, 잎새는 떨어지며 가을을 만든다고 담담히 노래한다. 「조락」이라는 시는 제목에서 조락이라는 말이 가을과 너무나 잘 맞아떨어진다. 「나목」 역시 이 가을 나무들이 다투어 잎을 떨구는 것을 눈여겨보면서 우리는 아직도 내려놓지 못하는 것은 무엇인가 질문한다.
누구보다 강렬한 시대정신을 견지하고 자신과 세계를 바라보는 시인은 사회 문제에도 민감하다. 당대의 복잡다단한 흐름을 예의주시하면서 때로는 예언자적 면모도 보여준다. 표제작이기도 한 「무장해제」에는 대학강의실을 배경으로 간절히 바라던 대면을 확인하며 되찾은 자유로 생존 너머를 상상하고 외친다. 「비명」은 현실을 직시하는 시로 공분으로 미추홀 사회적 재난 쾅 부셔라 해머로, 라고 안타까움을 간곡히 토로하고 있다. 「동병상련」은 상상력이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시로, 치밀한 미학적 구상으로 직조된 세계이다. 「솔의 참형」은 지난 봄날 재난의 현장, 산불에 관한 하나의 생생한 보고서다. 시인의 시선은 전통 예법과 역사의식 체현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안동향교」는 단시조 맛을 낸다. 「그날의 물집」은 퇴계 선생 귀향길 오십 리를 걷던 날 도산서당 십 리 두고 발병 난 경험을 들려준다. 「퇴계언행록」은 동방의 주자인 퇴계 선생이 별세하자 제자들이 모여서 선생이 모습 논어처럼 남기자며 각자 언행록을 써서 남기는 내용이다. 「알렉산더 두상」은 알렉산더 대왕과 수컷 사자를 동시에 등장시켜 대장부의 풍모를 은연중 꿈꾸게 한다. 단시조 「264」를 통해서는 역사를 거슬러 내려와서 한반도 땅 인물 이육사를, 읽는다. 시인의 관심은 우리를 둘러싼 환경을 무심히 지나치지 못하고 더 나아가 생명을 향한 생태학적 사유가 어떻게 펼쳐지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멍」은 일상에서 겪곤 하는 멍을 소재로, 평이한 일상이 발전하여 시의 경지에까지 도달하는 작품이다. 「종이」 역시 다친 이야기를 제시하는데 세상에 하찮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든다. 「흙의 하소연」은 생태학적 시각으로 생명의 근원이나 다름없는 흙이 겪는 고통을 실감 나게 노래한다. 「수명 연장 가설」은 건강에 관한 시편인데, 누구든지 건강한 장수를 꿈꾸는 사람은 「수명 연장 가설」을 통해 무언가 느끼는 것이 있을 것이다. 「유유상종」은 어둠이 내릴 때 풀숲에서 부스럭하는 소리에 모골이 송연해진 정황을 노래하는데 사소한 일이 이렇게 의미 있게 다가온 까닭은 이 시조가 간명하기 때문이다. 「작설」 역시 일상의 노래로 화자는 자신의 삶이 참새의 혓바닥 크기로 부드러워지고 싶다, 라는 소박한 바람을 들려주고 있다. 「하늘 운동장」은 온전히 지켜져야 할 자유의 영역인 동심이 잘 담겨 있다. 이처럼 송의호 시인의 시조집 『무장해제』는 가족과 시대를 향한 사랑을 노래하는 서정 세계가 웅숭깊어서 독자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안기고 있다. 시인의 인품과 사상과 인생관이 곳곳에 별빛처럼 빛나는 시조집이다. 시인의 말 신문사에서 정년을 마치고 시간에 쫓기는 글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졌다. 그때부터 대학에서 전공한 문학을 돌아보며 일이 아닌 문학 본령의 높은 봉우리, 창작을 떠올렸다. 선현들 문집을 넘길 때마다 언제나 맨 먼저 시가 나왔다. 문(文)은 그만큼 시가 중요하다는 뜻일 게다. 시가 문학의 전부라는 말을 하는 이도 있다. 시는 글을 써오면서 내게 가장 크게 비어 있던 장르였다. 시 창작이야 당연히 타고나는 것이 우선이겠지만 그래도 이걸 공부라도 하고 가야 글 쓰는 사람의 기본은 할 것으로 보았다. 4년째 시 가운데도 시조라는 민족 장르로 용감한 여행을 하는 이유다. 가지 않은 길을 나아가며 때로 잘 나섰다 싶다가도 너무 무모하게 발을 들여놓은 건 아닌지 두렵기도 하다. 그러면서 창작은 기사 글과는 전혀 다른 갈래임을 새삼 깨닫는다. 내가 나선 시조의 길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또 어디쯤 가고 있는지 그 힌트를 얻을 지도가 다시 떠올랐다. 이리저리 걸어간 궤적이 나침반이 될지도 모른다는 믿음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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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의호 시인의 시조 세계는 담백하고 단아하면서 진솔하다. 가족과 당대를 향한 사랑을 노래한 그의 서정 세계는 웅숭깊어서 잔잔한 감동을 안긴다. 누구든지 쓸 수 있지만, 아무나 쓸 수 없는 그만의 리얼리티 즉 실재성 세계를 내밀히 천착한 알곡의 집결체가 이번 시조집 『무장해제』이다. 그러므로 그의 인생 역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런 까닭에 그의 자화상이라고 말해도 좋을 듯하다. 시인의 인품과 사상과 인생관이 곳곳에 별빛처럼 반짝이고 있기 때문이다. 널리 읽힐 것이다. 세월이 가도 그 빛이 바래지 않을 것이다. - 이정환 (시조시인, 전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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