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6년, 홋카이도 개척의 한복판에서 ‘삿포로 맥주’가 시작되었다. 이는 단순히 술을 만드는 일이 아니었다. ‘서양의 기술’을 일본 땅에 뿌리내리는 일, 그리고 ‘맥주의 나라’로 가는 첫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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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안주도 없이 유빙이 풍경이 되고, 술이 음식이 되고, 바람이 향이 되는 식사. 그건 겨울 바다 위에서만 가능한, 오로지 감각으로만 이루어진 만찬이었다. 찬바람이 부는 오호츠크 해, 잔잔하지만 차가운 푸른 물결 위로 유빙이 떠내려가고 있다. (…) 차가운 손끝, 얼어붙은 공기, 눈처럼 부드러운 거품. 캔 하나로 완성되는 홋카이도만의 겨울. 단순히 맥주를 마시는 행위가 아니라 유빙과 함께 호흡하고, 바람과 함께 마시는 풍경 그 자체가 된다.
--- p.49

고바야시 슈조의 8대 토지(양조 총괄 장인)인 미나미 슈지는 “술은 결국 음식과 함께 즐기는 것”이라는 신념으로, 음식과 잘 어울리는 사케를 빚는 데 집중한다. 구체적으로는 산미가 확실하면서도 깔끔한 맛을 지닌 사케를 목표로, 홋카이도산 식재료로 만든 다양한 요리와의 조화를 추구한다. 그래서인지 고바야시의 사케들은 식사와 함께 즐기는 ‘식중주로 훌륭하게 어울린다. 미나미 토지는 홋카이도가 일본 ‘식재료의 보고’로서 풍부한 먹거리를 자랑하는 만큼, 그에 걸맞은 술을 빚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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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미카와다이세쓰 슈조는 홋카이도 전역에서 생산되는 쌀과 물 그리고 사람을 양조의 주체로 삼아 지역 농업과 술의 공생을 실현하고 있다. 각 양조장은 단순한 생산 시설이 아니라 지역과 대화를 나누는 거점으로 설계되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농업 → 발효 → 식문화까지 이어지는 지속가능한 지역 생태계를 구축하고, 젊은 인재들이 ‘양조’라는 전통 분야에서 학문적 열정과 혁신을 꾀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사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 pp.90~91

도카치가와 온천은 이 유럽식 ‘모르 온천’과 유사한 특성을 지녀 ‘일본의 모르 온천’으로 불린다. 도카치 지역에는 빙하기 이후 형성된 저습지와 강변 퇴적층이 많아 이탄층이 발달했는데, 이곳에서 솟아나는 온천수가 바로 ‘모르 온천’이다. 산요안의 가장 큰 매력으로 모르 온천수가 공급되는 객실별 프라이빗 온천을 많이 꼽는다. 모르 온천에 대한 설명을 읽다 보니 스모키한 풍미가 있는 요이치 위스키를 한 잔 마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p.106

모리모토 토지는 지역의 자연환경과 원재료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양조 철학을 펼치고 있다. 그는 “홋카이도만의 조건인 물, 쌀, 기후 등 주어진 환경의 강점을 백퍼센트 살려낸다면 최고의 결과를 낼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다카사고 슈조는 홋카이도산 양조미(긴푸, 스이세이, 기타시즈쿠 등)와 일본 각지에서 생산된 양질의 쌀을 적절히 활용하며, 각각의 술에 가장 적합한 쌀 품종을 매칭한다. 모리모토 토지는 “좋은 쌀, 좋은 술, 그리고 좋은 관계”를 모토로 내세우며, 지역 농가와 함께 최고의 사케를 만들어가고자 노력한다.
--- pp.119~120

요이치의 기후는 평균 기온, 일조 시간이 독일의 알자스 지역과 프랑스의 북 부르고뉴 지역과 비슷하다고 알려져 있다. 이 같은 요이치 지역의 독특한 테루아 덕분에 이곳에서 생산된 와인에서는 균형 잡힌 산미를 경험할 수 있다.
--- p.133

현재 도멘 타카히코의 와인은 일본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생산량이 많지 않을뿐더러 창업자인 소가 타카히코의 와인 철학을 이해하는 곳에만 와인을 소개하겠다는 신념을 갖고 있기에 아무 곳에나 와인을 납품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와인을 소비하는 2차 시장에서 도멘 타카히코는 가히 열풍이라 할 만큼 인기가 높다.
--- p.144

“다케쓰루를 좋아하나 봐요?”
“네! 특유의 블렌딩 밸런스가 너무 좋아요. 하지만 이제는 만나기 어려워서 아쉬워요. 특히 서울에서는 정말 맛보기 힘들거든요.”
“이제 그만 마셔야죠!”
--- p.218

찬찬히 공간을 들여다보니 허투루 놓인 것이 하나도 없다. 목공예가 다카하시 산타로가 제작한 테이블과 의자가 루이스폴센 조명과 조화를 이룬다. 편안한 가구에 앉아서 천천히 커피를 마시며 업무를 마쳤다. 북유럽 특유의 빛이 많이 들어오는 인테리어를 기본으로 일본의 단정한 감성이 만난 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햇빛에 정화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 pp.247~249

‘술’이라는 매개를 통해 여행지에서 특별한 맛과 문화를 경험하는 일은 언제나 설레고 즐겁다. 그러나 좋아하는 술을 중심으로 글을 쓰는 일이 어느덧 ‘업’이 되자, 한 잔의 술을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씩 달라졌다. 왜 이런 맛을 만들었을까? 어떻게 이런 방식으로 표현했을까? 우리는 지금, 술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한 잔의 술은 문득 질문이 되고, 어느새 고요히 마음을 들여다보는 창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