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서문
프롤로그 Chapter 1 성장기 Chapter 2 정치 입문 Chapter 3 버지니아주 하원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Chapter 4 버지니아주를 위하여! Chapter 5 스프링 캐니언 법률 소송 Chapter 6 컴백이라고 말하지 마! Chapter 7 변호사 그리고 정치인 Chapter 8 정직한 대기업 만들기 Chapter 9 워싱턴 레드스킨스에 경의를! with 도널드 트럼프 이야기 Chapter 10 트럼프가 불러일으킨 폭풍 Chapter 11 주지사 흑인 분장 스캔들 Chapter 12 2020년의 혁명 - part 1 총기 규제 Chapter 13 2020년의 혁명 - part 2 남부연합 Chapter 14 2020년의 혁명 - part 3 그린뉴딜정책 Chapter 15 “바이러스 확산 곡선을 평평하게” - 코로나19 봉쇄의 시작 Chapter 16 맞서 싸우기 Chapter 17 역풍 Chapter 18 정의의 계절 Chapter 19 아이들의 고통 Chapter 20 험난했던 2021년 회기 Chapter 21 내 아이들처럼 보여요 Chapter 22 코로나 봉쇄 완화 지침: ‘6피트→3피트’ - 공포심 기반 규제 방침에 대한 대처 Chapter 23 고맙지만, 나는 무시할게 Chapter 24 나는 돌아가는 중이야, 아늑하고 포근한 집으로 Chapter 25 인공호흡기보다 마스크 착용이 더 낫다는 논쟁 Chapter 26 학부모는 학교 수업에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 Chapter 27 친기업적 민주당 Chapter 28 나를 고소한 사람이 당신 아냐? Chapter 29 탈출구 찾기 Chapter 30 당신의 미소를 볼 때마다 Chapter 31 주(州)가 결정해야 할 문제 Chapter 32 그 길의 끝 Chapter 33 이 모든 게 무엇을 의미했을까? Chapter 34 누구에게도 악의 없이, 모두에게 관용을 Chapter 35 대한민국 서울에서의 저녁 |
Chap Petersen
|
“2020년 3월 이후, 미국에서 평화가 지속되는 시기에 역설적으로 우리는 시민의 자유가 가장 심하게 침해당하는 일을 경험했을 수도 있습니다. 미국 전역의 정부 고위관리들은 맹렬한 속도로 전파되는 전염병 재난에 대응하여 충격적인 비상조치를 발표하였습니다. 주지사들과 지역의 지도자들이 주민들에게 집 안에만 머물도록 강제하는 봉쇄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아울러 사회 공공시설을 비롯한 모든 사업체와 학교의 문을 굳게 닫아버렸습니다. 그들은 카지노와 몇몇 우호적인 사업체, 기업인들에게는 사업체 운영을 허용하면서도 교회를 폐쇄하고 종교집회를 금지했습니다. 이 명령을 위반하는 사람들에게는 금전적 제재뿐 아니라 형사처벌이 가해질 수 있다고 위협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교회 주차장을 감시하고 주차된 차량을 적발해 번호판을 적기도 했으며, 주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및 위생 요구 사항을 충족하는 야외 예배까지도 위법행위에 해당할 수 있음을 경고하는 통지문까지 보냈습니다.
행정 당국자들이 빠른 속도로 새로운 비상사태 긴급명령을 수시로 여러 차례 발표했으나 법안을 채택에 책임이 있는 주의회와 연방의회는 침묵을 지켰습니다. 게다가 우리의 자유와 인권을 보호해야 할 법원들은 그중 몇몇 조치에만 법적 대응을 했을 뿐 거의 모든 침해 사례를 묵인하고 말았습니다. 우리 현대사의 한 시기에 일어난 이 현상에서 우리는 의심할 여지 없이 많은 교훈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사태의 심각성을 연구하기 위한 진지한 노력이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우리가 배울 수 있는 하나의 교훈은 다음과 같습니다. 두려움 해소와 안전을 원하는 사람들의 욕망이 그 무엇보다 강력한 힘이 되어 누군가가 감지된 위협을 해결할 수 있다면, 어떤 조치를 하든 어서 행동에 나서라는 강력한 요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결과 위협을 해소하고 사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지도자나 전문가는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힘을 지니게 됩니다. 우리는 굳이 저항할 필요도 없이 그냥 시키는 대로 움직이기만 하면 됩니다. 정상적으로 입법기관에서 법이 채택되기를 요구하고, 이것이 입법기관에 의해 법령에 따른 통치로 이어지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한 법 집행의 엄정함을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민주적 자유를 상실할 수도 있습니다. 자유롭게 예배드릴 권리, 검열 없이 공공정책을 의논할 권리, 친지 또는 가족과 모일 권리, 집을 떠날 권리 등 지극히 정상적인 시민의 권리와 자유를 잃는 데 동의할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정상적인 입법 과정을 무시하고 개인의 자유를 박탈할 것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지지할 수도 있게 될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고대인들조차도 공포에 직면하면 민주주의가 독재정치로 전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 미국연방대법원 다수의 의견 요약 2023년 5월 18일 아리조나주 대 마요르카스 사건 --- p.6~7 우리의 자유는 결코 당연하게,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미국인처럼 제게도 다민족 세계, 다양한 인종을 대표하는 가족사가 있습니다. 우리 가족의 공통된 연결의 끈은 자유를 추구하는 데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저의 조상들이 미국 버지니아주의 작은 시골 요크타운에서 영국군을 물리치려고 노력한 것이나, 저의 장인어른이 북한에서 탈출해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 정착해서 자유를 추구한 것은 모두 자유의 추구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많은 이가 미국 땅에 와서 개인의 자유를 누립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여전히 자유를 누리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 종교 및 의견의 자유를 향유하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런 자유를 잃는다면 모든 것을 잃는 것과 같습니다. 이 책을 완성하기까지 6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 책은 한 세대를 거치며 헤아릴 수 없는 변화를 겪었던 미국 버지니아주의 정치 이야기입니다. 또한 상원의원으로서 저의 의정활동을 간략히 정리한 정치사이며, 코로나19 비상사태 기간에 옳은 일을 하기 위해 용기를 낸 소수자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 p.12~13 나는 아내에 대한 농담으로 연설을 시작했다. 30년 전 내가 아내에게 데이트를 신청했을 때 “아니요”라고 했더라면 나는 지금이 자리에 서 있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 노력이 없었다면 우리 모두가 여기에 없었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분교가 존재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인생은 묘하게 돌아가며 순환한다. 나 같은 정치인에게 조지메이슨코리아 설립은 달성할 수 없을 것 같은 목표였다. 하지만 상원에서 내 법안이 통과되어 실제로 사람들의 삶에 가치를 더할 수 있게 되어 나는 매우 흐뭇했다. 그리고 내겐 그 이상의 특별한 감정이 있었다. 왜냐하면 메이슨코리아 분교가 자리한 인천은 단순히 수십억 달러의 국제 자본금이 몰려드는 번화한 항구 도시가 아니었다. 인천은 1951년 9월, 미군 해병대와 한국군이 상륙해 서울을 탈환하고 대한민국을 세우기 위한 전투를 시작한 장소였다. 미국 군대가 이보다 더 큰 승리를 거둔 곳은 지구상에서 몇 개가 안 될 것이다. 버지니아주 출신의 두 인물이 인천상륙작전을 이끌었다. 한 사람은 태평양에서 미군 최고의 사령관이었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다. 그는 미군 역사에서 가장 자아가 강하고 열정적이며 뛰어난 장군 중 한 명이었다. 또 한 사람은 버지니아주 서부 타이드워터 출신의 두려움 없는 전투 지휘관 루이스 체스티 풀러였다. 그의 아내는 작은 마을 살루다 출신으로 우리 할머니 메리 월튼 리빙스턴과 사촌 관계였다. --- p.394~395 다음 이야기는 1950년 9월, 서울 길거리에 살던 어린 소년 김덕규(나의 장인어른)의 이야기다. 사업가 집안의 기독교인 가족과 소년은 종교 박해를 피해 북한을 떠났다. 그의 아버지는 서울에 정착해 남한 정부에서 일했고, 공산주의자들이 침공했을 때 체포된 뒤 다시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소년과 형제들은 서울 거리에 살면서 땔감으로 나무를 훔치고, 먹을 것이 없을 때는 풀을 뜯어 먹으며 지냈으나 두 명의 형제는 굶어 죽고 말았다. 그러던 중 미군이 상륙했다. 세상을 떠나기 몇 달 전, 80세가 된 그 소년은 과거의 자신을 되돌아보며 이렇게 회상했다. 미군들이 서울을 구했다고, 또한 생명을 구했다고. 어린 소년 덕규는 근육질의 젊은 남자가 되었다. 운동을 하며 태권도 검정띠를 획득했고, 사업에 뛰어들어 성공을 거두었다. 대구 출신의 젊은 가수와 결혼해 두 자녀도 두었다. 1976년 가족들을 미국으로 이주시켰고, 형은 의사가 되었다. 그는 오하이오주 교외 지역에서 가족을 돌보며 여러 개의 소매업체를 운영했다. 그의 아내는 음악학교에 다니며 클리블랜드 오페라단에서 노래했다. 자녀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각자 가정을 꾸렸다. 2023년 가을, 그와 아내는 하늘로 향했다. 그는 아이들에게는 사랑하는 할아버지였고, 교회에서는 신앙심 깊었던 장로님, 그리고 훌륭한 골퍼로 기억될 것이다. 그것은 모든 남자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미국인의 삶이었다. 그분은 물론 나의 장인어른이시다. 장인어른은 장모님 장영숙 여사와 항상 함께하셨다. 그리고 미국에서 그분들의 삶은 나와 가족 그리고 자부심을 느끼게 한 고향인 미국과 함께했다. 그렇다. 우리는 다 같이 역사를 만들었다. --- p.395~39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