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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키지 여행 떠납니다.
안녕하세요? 여름휴가로 미국동부와 캐나다 패키지여행갑니다 (7월15~25일까지)이 기간에 주문하신거는 귀국후 순차적으로 배송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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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글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기독교 국가에 보내는 편지 성경의 지혜 진정한 윤리 신을 위해 행하는 선 무신론자들은 부도덕한가? 누가 성경에 선을 집어넣었는가? 신의 선함 예언의 힘 과학과 종교의 충돌 생명에 대한 진실 종교, 폭력, 문명의 미래 결론 빈티지 출판사 판본에 첨가된 후기 본문의 주 추천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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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옛날의 생명과 그보다 더 오래된 지구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들로 넘치는 21세기에도 미국인의 절반 이상이 우주가 6,000년 전에 창조되었다고 믿는 것이다. 덧붙여 말하자면 그보다 이미 1,000년 전에 수메르인들은 접착제를 발명했다.---p.12
지금 미국은 역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뒤뚱거리면서, 호전적이고, 멍청한 거인처럼 세계무대에 서 있다. 문명의 운명에 대해서 우려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거대한 힘과 무지가 결합되어 자신의 친구까지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다.---p.12 한번 생각해보라. 미국 정부의 주요부서가 세계는 곧 끝장날 것이고 그 종말이 영광스러울 것이라고 믿는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겠는가. 미국인의 절반이 이런 도그마를 믿고 있는 것은 윤리적·지적 비상사태다. 당신이 읽고 있는 이 책은 이 비상사태에 대한 나의 반응이다. 당신이 이 책에서 뭔가 유용한 것을 발견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p.13 아우슈비츠, 소련의 강제노동수용소, 캄보디아의 킬링필드는 사람들이 과도하게 이성적이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예들이 아니다. 이런 끔찍한 사건들은 정치적이고 인종적인 도그마의 위험을 증명해주는 사례들이다. 당신과 같은 기독교인들은 당신들의 신앙에 대한 합리적 거부가 필연적으로 맹목적인 무신론의 도그마로 귀결된다는 잘못된 주장을 그만해야 한다. 예수가 동정녀에게서 태어났다는 비상식적인 관념을 불충분한 근거 때문에 믿어야 할 필요는 없다. 종교의 문제는 종교가 도그마 그 자체가 된다는 점이고, 이런 점에서 나치즘·스탈린주의·전체주의의 문제와 다르지 않다. ---p.57 사회적 평등을 나타내는 지표들을 보면 문자주의와 기독교적 가치의 관계가 의심스럽다. 같은 회사 안에서의 최고경영자 임금과 일반노동자 임금을 비교해보자. 영국은 24:1. 프랑스는 15:1, 스웨덴은 13:1인 반면, 미국은 475:1이다. 그것도 심판의 날에 신 앞에 설 것이라고 믿는 비율이 전 인구의 80%를 차지하는 미국에서 말이다. 많은 낙타들이 바늘구멍을 쉽게 통과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 같다.---pp.59-60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를 집어삼키는 동안, 이라크에서는 1,000명의 시아파 순례자들이 다리 위에서 죽었다. 이 순례자들은 코란의 신을 굳건하게 믿었으며, 신의 존재도 굳게 믿었다. 남자들과 베일을 쓴 채 걷고 있던 여자들은 신의 말씀을 다르게 해석하는 사람들에 의해 죽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생존자들은 신의 자비 덕분에 살아남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생존자들의 자기중심주의와 자기기만을 지적해야 한다. …당신이 종교적 환상 속에서 세계의 고통을 무시할 때마다, 당신은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뼛속까지 느껴야 한다. ---pp.69-70 우리 모두는 죽을 것이며 사랑하는 모든 것을 잃을 것이라는 사실은 가혹하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동안 고통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도 충분히 가혹하다. 그러한 많은 고통이 종교, 즉 종교적인 증오·전쟁·금기·자원의 독점 때문에 발생한다. 그리고 이 사실을 통해 우리는 신앙에 대한 정직한 비판이 지적·윤리적인 측면에서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p.72 그러나 종교와 과학의 충돌은 피할 수 없다. 과학은 종교적 도그마의 희생 위에서 성공을 거두며, 종교적 도그마는 과학의 희생 위에서 유지된다. 종교는 단순히 ‘인간 존재의 목적’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처럼 모든 종교는 세계가 무엇인지에 대해 특정한 방식을 통해 설명한다. 즉, 다음과 같은 내용이 사실이라고 주장한다. ‘우주의 창조주는 기도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종종 응답하기도 한다. 영혼은 임신이 되는 순간 배아세포에 들어간다. 신을 올바른 방식으로 믿지 않는다면 죽은 후에 끔찍한 고통을 겪을 것이다.’이런 주장은 엄밀한 증거를 제시해야 하기 때문에 과학적 주장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p.82 넓은 의미에서의 ‘과학’(라틴어로는 'scire'라는 뜻이다)은 세계의 무엇이 진실인지를 알고자 하는 가장 위대한 시도다. 우리는 여기에서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또는 과학과 인문학을 구분할 필요가 없다. …과학의 핵심은 통제된 실험이나 수학적 모델링이 아니다. 과학은 지적인 정직이다. 이제 우리는 인간과 관련된 지적 담론의 특성을 알아야 한다. 어떤 명제가 사실인지를 판단할 때 증거와 추론을 정직하게 인정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종교는 우리 삶에서 다른 지적인 기준이 적용된다고 생각하는 유일한 영역이다.---pp.82-83 21세기 문명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도전은 개인적인 윤리·영적 경험·고통을 합리적인 방식으로 말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비판적 사고와 지적 정직을 장려하는 공공담론이 정말로 필요하다. 존중만이 이 프로젝트에서 신앙들을 조화시킬 수 있다.---p.103 과학과 종교 사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세계에 대한 대화에 윤리적 직관과 영적 경험이 포함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또한 원리에서 출발해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해내는 것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예수나 부처 같은 사람들이 삶을 아름답게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에 대해 말할 때, 그들은 불합리한 것을 말하지 않았다는 점을 믿어야 한다. 그러나 윤리와 사변적 삶에 대한 탐색에는 지적 논의를 격려하는 합리성과 자기비판이라는 동일한 기준이 요구된다.---p.105 과학과 종교 사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세계에 대한 대화에 윤리적 직관과 영적 경험이 포함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또한 원리에서 출발해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해내는 것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예수나 부처 같은 사람들이 삶을 아름답게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에 대해 말할 때, 그들은 불합리한 것을 말하지 않았다는 점을 믿어야 한다. 그러나 윤리와 사변적 삶에 대한 탐색에는 지적 논의를 격려하는 합리성과 자기비판이라는 동일한 기준이 요구된다.---p.105 나 같은 비신자는 살아 있는 모든 것에게 죽음의 찬송을 부르는 무슬림들에 놀란 채 당신 옆에 서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현실에 대한 당신의 거부, 당신의 종교적 신화에 대한 복종 때문에 발생하는 고통, 허구적인 신에 대한 당신의 집착에 의해서도 역시 놀란 채 서 있다. 이 책은 이런 놀라움과 작은 희망을 함께 담고 있다.---p.106 이 책은 다음과 같은 여러 실패들의 결과다. 이 책에 앞서 종교를 공격했던 많은 시도들의 실패, 학교에서 모든 세대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신의 죽음을 선언하려 했던 시도의 실패, 대중 매체에서 종교적 확신을 비판하려 했던 시도의 실패, 지구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사회에서 신 때문에 발생하는 혼란 그리고 그 혼란을 일으키는 사람들 사이의 증오를 극복하려했던 시도의 실패에 따른 결과다.---p.106 그러나 어떻게 세련된 신자라는 것이 가능할까? 경전의 많은 주장들이 얼마나 의심스러운지 알기만 하면, 그리고 필요한 경우 불온한 부분을 삭제하고 선택적으로 읽기만 하면, 그리고 현실에 대한 주장이 항상 새로운 관점에 의해 날조되기만 하면, 그들은 자신들이 의학적이고 윤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온건주의는 성경을 진지하게 읽지 않으면서 발생하는 직접적인 결과다. 왜 진지하게 읽지 않는가? 성경이 오류를 저지를 가능성이 많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쓴 불완전한 책의 집합일 뿐이라는 것을 왜 인정하지 않는가? ---pp.126-1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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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도그마에 보내는 합리적 이성의 편지
지금 우리의 문명을 위협하는 종교적 도그마를 향한 샘 해리스의 도발적 발언! 『종교의 종말』의 저자이자 리처드 도킨스, 크리스토퍼 히친스, 다니엘 데닛과 함께 지적설계론 및 종교적 도그마를 비판하는 대표적 논자 중 한 명인 샘 해리스의 최근작인 이 한 권의 얇은 책은 종교적 도그마를 비판하는 도발적 발언으로 ‘기독교 국가’인 미국에서 논란의 중심이 됐다. 인터넷 서점 아마존에는 현재 이 책에 대한 댓글이 600여개가 달려있고,『기독교 국가에 보내는 편지』를 반박하는 책이 이미 두 권이나 출간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반응은 샘 해리스와 같은 입장에서 지적설계론과 종교적 도그마를 비판하는 다른 저자들의 책인 『신은 위대하지 않다』, 『만들어진 신』, 『마법 부수기』 등에 비해 훨씬 폭발적인 반응인데, 샘 해리스의 도발성과 선동성, 대중적인 글쓰기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그의 비판은 거침이 없고, 도발적이며, 독자를 자극하는 묘미가 있다. 선동적이고 재치가 있는 그의 글을 읽다보면 마치 링 위의 권투 선수가 상대에게 날렵한 잽을 날리는 것 같다. 미국 무신론 운동의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각종 토론에 참여하는 그의 행동적인 성향이 반영된 글쓰기일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종교적 도그마로 인한 지적·윤리적 비상사태에 빠져있다! 『기독교 국가에 보내는 편지』는 종교적 도그마로 인해 지적·윤리적 비상사태에 빠진 우리의 문명을 우려하는 탄식어린 편지다. 저자가 보기에 종교라는 영역은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아무런 근거가 없는 데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옳다고 생각되는 유일한 영역이다. 종교가 도그마가 되는 지점은 바로 이 지점이다. 그것이 틀릴 수 있다는 어떠한 가정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오류의 가능성을 보지 확인하지 않는 어떤 과학적 근거도 없는 믿음이 사람들의 소통을 단절시키고, 폭력과 전쟁을 불러일으킨다. 종교는 우리 문명의 근거가 아니라 우리 문명을 위협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다른 신을 믿는다는 이유로, 혹은 하나의 신을 믿으면서도 종교라는 이름으로 일어나는 수많은 폭력, 신과 신앙의 이름으로 벌어져 왔던 수많은 희생제의, 성병을 예방할 수 있는 연구를 신앙에 근거해서 반대하는 비인간적인 행위들. 이 모든 것이 어떤 것으로도 증명되지 않고 오류가 가득한 종교에 대한 맹신에서 비롯된다는 것에 저자는 탄식한다. 거대하고 무지한 기독교 국가, 그리고 종교적 도그마에 날리는 거침없는 비판 저자인 샘 해리스가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기독교 국가’는 말할 것도 없이 미국을 지칭한다. 통계치는 사회의 현상을 설명하는 데 유용하게 사용되곤 하는데, 개중 미국을 설명할 수 있는 대표적인 통계치 가운데 하나가 바로“미국인의 53%가 창조론을 믿는다.”는 것이다. 1968년부터 정치적으로 세력화한 미국 기독교 근본주의는 결국 미국 역사상 가장 ‘종교적’인 대통령이라는 조지 부시를 당선시켰고, 미국의 질병통제센터 면역실행위원회의 위원이자 복음주의 기독교인인 레지날드 핑거는 최근 HIV 백신 개발에 반대한다는 성명을 공개적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HIV 백신이 개발되면 혼전 섹스를 부추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저자는 아무런 증거를 제시할 수 없는 종교적 도그마로 인해 미국이 무지한 문명을 건설하고 있는 점을 크게 우려하고 이를 비판한다. 허나 저자의 이러한 우려는 비단 미국이라는 기독교 국가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저자의 이 ‘편지’는 이슬람, 유대교를 포함한 여러 종교의 ‘도그마’ 때문에 수많은 갈등과 폭력이 일어나고 있는 곳, 합리적 기준과 증거를 통해 사실을 판단하면서 대화할 수 있는 소통의 가능성이 차단되는 모든 곳에 발송되는 메시지다. 샘 해리스는 한 명의 기독교인에게 편지를 보내며 그가 믿고 있는 믿음과 종교가 아무런 근거가 없는 도그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리고 그 도그마에 대한 믿음 때문에 발생하고 있는 이 윤리적·지적 비상사태를 보여주기 위해 성경 구절을 꼬치꼬치 뽑아내기도 하고, 다양한 통계 자료를 재치 있게 배치하기도 한다. 하버드대학교 심리학·생물학·생물인류학 교수이자 『도덕적 마음』의 저자인 마크 하우저의 평가처럼, 『기독교 국가에 보내는 편지』를 읽고 있자면 링 뒤에서 챔피언이 잽을 날릴 때마다 ‘그렇지! 그렇지!’라고 외치는 기분을 알게 된다. 특히 샘 해리스는 종교적 도그마로 인해 ‘사랑’과 ‘관용’이라는 이름의 종교가 오히려 인간의 폭력을 조장하고 목숨을 빼앗아 가는 데에도 신앙을 버리지 못하는 것을 거침없이 비판한다. 뿐만 아니라 과학과 종교를 다른 영역의 문제로 다루면서 과학과 종교가 함께 공존할 수 있다는 주장, 극단적 복음주의 기독교인보다 ‘세련’된 것처럼 구는 온건한 혹은 자유주의적 기독교인에 대해서도 저자는 가차 없이 비판한다. 과연 우리는 신자信者들과 대화할 수 있을까? 2007년 한국 사회 역시도 종교에 기반을 둔 폭력과 고통을 경험했다. 한국의 기독교 신자들이 선교를 위해 이슬람 국가를 갔고, 무슬림들은 그들 중 일부를 무참히 살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도 한국 개신교의‘공격적 선교’는 계속해서 존재하고, 무슬림들의 테러 역시 멈추지 않을 것 같다. 우리는 질문할 수밖에 없다. 도대체 종교가 무엇이기에? 샘 해리스는 명확하게 이야기한다. 우리의 문명을 유지시키고 우리의 삶을 유지시켜 주는 것은 불충분한 근거에서 비롯한 절대적 맹신이 아니라, 오류의 가능성을 갖고 있더라고 지적인 정직으로 세상을 설명할 수 있는 의미로서의 ‘과학’이라고.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은 아주 단순하다. 어째서 전혀 믿을 필요가 없는 충분한 근거조차 없는 도그마 때문에 우리의 문명이 위협받아야 하며, 인간의 목숨이 위협받아야 하느냐는 것이다. 그렇기에 샘 해리스가 쓴 이 한 권의 얇은 책은 한 명의 기독교인, 한 명의 신자에게 보내는 편지이기도 하면서 또한 합리적 이성을 갖고 있는 한 명의 비非신자에게 보내는 편지이기도 하다. 종교적 도그마를 대신하는 것은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담론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