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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서 론
제2장 중세 후기의 사회상황과 형벌의 적용 제3장 중상주의와 징역형의 등장 제4장 형벌 유형의 변화 제5장 계몽주의 시대의 범죄이론과 형법의 발전 제6장 산업혁명이 초래한 사회적·형벌적 결과 제7장 유형의 폐지 제8장 독거수용의 실패 제9장 현대의 교정개혁과 그 한계 제10장 최근의 벌금형 집행현황 제11장 파시즘하에서의 새로운 형사정책적 경향 제12장 형벌정책과 범죄율 제13장 맺음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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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한 형벌 유형이 일정한 경제적 발전단계에 따라 생겨난다는 말이 당연한 사실임을 알게 될 것이다. 형벌 유형으로서 노예형은 노예제가 없으면 불가능하고, 교도소의 강제노역은 공장제도가 없으면 불가능하며, 사회의 모든 계층에 대해 벌금형을 부과할 수 있는 것은 화폐경제체제가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반면, 일정한 생산제도가 사라지면 그에 상응하는 형벌도 적용할 수 없게 된다. 특정한 생산력이 생성되어야만 그에 걸맞은 형벌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수 있게 된다.
--- 「1장 서론」 중에서 따라서 벌금을 납부할 만큼 충분한 재력을 가진 사람들은 돈으로 형벌을 면제받은 반면, 돈이 없는 사람들은 (당시 어려운 시절에는 돈 없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그들이 책임져야 할 가혹한 처벌로부터 스스로를 구할 힘이 없었다. 당시 대다수의 범죄는 재산이 없는 사람들이 범하는 재산범죄였기 때문에 벌금이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했다. (중략) 대중이 가난하면 가난해질수록, 그들이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도록 형벌은 더 가혹해졌다. 이제 모든 나라에서 신체형이 급격하게 증가하기 시작하여 마침내 신체형은 부가적으로 적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통상적인 형벌이 되었다. 사형, 신체절단형, 채찍형이 어떤 급작스러운 혁명적인 변화에 따라 단숨에 도입된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상황에 따라 통상적인 형벌이 된 것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형벌은 가벼워진 것이 아니라 더 가혹해져 갔다. --- 「제2장 중세 후기의 사회상황과 형벌의 적용」 중에서 어디서나 구걸행위 때문에 노동력이 부족하다는 강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억압적인 구빈법은 이 문제를 고려했다. 구걸행위의 근절을 주된 목적으로 삼았던 16세기 초반의 정책과는 반대로, 새 법은 직접 경제적인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예전에 가난한 사람들은 저임금을 받고 일하기보다는 구걸을 하면서 일을 하지 않았지만, 신법은 가난한 사람들이 노동력을 행사하지 않고 그대로 있지 못하게 했다. 브뤼셀의 1599년 법령은 일할 능력이 있는 걸인과 주인을 떠난 하인 그리고 거지가 되기 위해 고용주를 떠난 노동자를 처벌했다. 프랑스의 1724년 법령은 일할 능력이 있는 걸인을 처벌하는 것을 당연시했다. --- 「제3장 중상주의와 징역형의 등장」 중에서 특히 흥미로운 특권은 17세기와 18세기의 튀빙겐 법과대학과 뷔르템베르크의 법령에 따른 판결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기술자에 대하여 사형이나 신체형 또는 유형을 내릴 경우에는 교정원에서 공공작업을 하게 하거나 구금형을 하게 하는 것으로 대체했다. 이러한 관행은 몇몇 공작령에서도 확인되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1620년 칙령에 나타나 있는 바와 같이 사회정책을 고려하여 나타났다 ? 즉, 불명예스러운 판결을 내려 기술자나 그의 가족이 직업을 영위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국가를 위하여 훈련된 기술을 사용하길 바랐던 것이었다. 어떤 판결은 노동력의 부족을 감안하여 공공근로를 하도록 선고되었다. 같은 이유로 유형을 교정원 구금형으로 대체했다. --- 「제4장 형벌 유형의 변화」 중에서 법 앞에 평등이라는 말은 똑같은 사실이 서로 다른 계급에 대하여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공식적인 용어로 표현된 판결은 법 앞에 평등을 거의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실무상으로는 계속 차별적인 형벌의 적용을 따랐는데, 1811년 오세르(Auxerre)의 어느 판사가 강간죄 사건에 대한 처벌을 내리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 것만큼 적나라한 표현은 없을 것이다. “나는 가장 가벼운 형벌을 내릴 것이다. 우리는 피해자가 농장의 노비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만약 상류층의 여성을 다루거나 나나 당신 자식의 사건을 다루었다면, 최고형을 선고했어야 할 것이다. 상류층과 서민 사이에는 차이가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 「제6장 산업혁명이 초래한 사회적·형법적 결과」 중에서 영국의 유형 역사를 보면, 변화하는 사회경제적 상황이 형사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뚜렷하게 알 수 있다. 출발점은 노동시장에 노동력이 과잉공급되어 당시 감옥에서 증가하는 수용인원을 감당할 수 없게 된 때이다. 이들을 모두 처형할 수 없다면, 인도주의적 원칙에 앞서 당시 유행하던 인구론이 반대하던 정책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범죄자들을 나라에서 없애는 것이었다. 한동안 이 해결책은 식민지에서의 노동력 부족 현상과 맞물려 발생했다. 하지만 이미 이전의 미국 상황을 보면, 죄수들의 노동력을 전부 흡수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음이 드러났다. 식민지의 경제체제로 인해 유형을 지속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자 곧이어 정치 쪽에서 유형제도를 폐지했다. 뉴사우스웨일스나 반디멘 지역의 경우, 본국에서 재정적인 지원을 받는 죄수들의 노동은 추후 이 제도가 발전하기 위한 밑거름이 되었지만, 자유노동자들의 비율이 상당히 높아지자 죄수들의 노동은 자유노동자들과 경쟁상대가 되지 않았다. --- 「제7장 유형의 폐지」 중에서 벌금형의 도입을 통해 형벌제도를 완벽하게 합리적인 것으로 만드는 데에는 여전히 어려움이 남아 있었다. 그 주된 어려움이란 바로 범죄자의 경제 상태와 그의 범죄로 초래된 피해액에 따라 벌금형의 액수를 정확하게 계산하는 일이었다. 벌금액은 범죄자가 납부할 수 있는 능력을 넘어서는 안 되지만, 그가 불법적인 행위로부터 얻은 이익을 넘어야만 했다. 19세기에 존재했던 해결책으로는 이러한 조건들을 충분히 충족시킬 수 없었다. 그래서 교도소는 부과된 벌금액을 납부하지 못한 죄수들로 가득 찼다. --- 「제10장 최근의 벌금형 집행현황」 중에서 희화화된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의 인도적인 방식과는 반대로, 나치주의자들은 새로운 제도를 추진했는데, 이 제도는 생물학적이며 인종적-예정설적 실증학파이론과 독일 고전학파의 응보론적 형벌이론을 섞어놓은 것이다. 그러나 개혁론자들에 대한 고전학파 이론가들의 투쟁이라는 미명하에 보장되었던 실체법과 절차법은 완전히 붕괴되었다. 새로운 형벌제도가 초래한 가장 놀라운 측면은 바로 사형의 부활이다. 이른바 인민법정(People’s Court)이라고 할 수 있는 행정기관에 의해 정적을 처형했으며, 이론적인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노력도 없이 일반 형사사건에서도 점점 더 자주 적용되었다. 어떤 학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치 독일에서 사형을 유지할 필요성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사형은 전체 국가가 개인에 대한 지배를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종종 사형이 범죄억제효과가 있기 때문에 정당화될 수 있다는 식으로 제기되었으나, 범죄통계를 보면 절대로 그렇지 않다. --- 「제11장 파시즘하에서의 새로운 형사정책적 경향」 중에서 합리성을 요구하는 기존의 사회제도는 억압적인 형벌정책의 확대를 제한할 뿐만 아니라 교정 프로그램을 좁게 한정하고 있다. 어떤 사회의 형벌제도는 특정한 법에 따른 고립된 현상이 아니다. 형벌제도는 전체 사회제도가 통합된 부분이며, 그 장단점을 공유한다. 실제로 범죄율은 사회가 그 구성원들에게 어느 정도의 안전과 합리적인 생활수준을 제공할 때에만 영향을 받게 된다. 억압적인 형벌정책을 개선된 형벌정책으로 바꾸는 것은 건설적인 사회적 활동에 이르기 위한 인도주의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다. --- 「제13장 맺음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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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르크 루셰와 오토 키르히하이머의 역작: 형벌론 분야의 현대 고전
어느 분야이든 고전으로 불리는 문헌들이 있다. 고전은 단지 세월이 오래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고전으로 여겨지는 것은 아니다. 세월의 길이와 관계없이 지식과 학문의 발전 과정에서 의미 있고 독보적인 이정표로서 가치를 지녔기에 고전이라는 자격을 얻게 되는 것이다. 1940년 출간된 게오르크 루셰와 오토 키르히하이머의 저서 “형벌과 사회구조”는 범죄와 형벌을 단순한 법률적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의 구조와 밀접하게 연관된 현상으로 바라보는 ‘형행사회학’의 고전이다. 저자인 게오르크 루셰와 오토 키르히하이머는 서문에서, 저자들이 이 책을 저술하던 1930년대 당시에도 범죄와 사회환경의 관계에 관한 연구는 이미 여럿 발표되었으나, 그 동전의 양면인 형벌제도에 대해서는 사회적 조건과의 상호관계를 탐구한 연구가 거의 없었음을 지적하며, 마르크스주의 방법론을 원용해 이전의 범죄학과 형벌이론이 간과하고 있던 사회적 조건의 영향을 통합해 형벌시스템의 변천사와 사회구조의 변동 사이의 관계를 종합적인 조망을 시도했다. 형벌의 형태와 방식은 그 사회의 경제체제에 좌우된다. 저자들은 중세 후기에서 독점자본주의 시대에 이르는 형벌제도의 변화를 마르크스주의의 방법론을 이용해 고찰하며 형벌제도가 사회 경제적 조건, 정치 체제, 문화적 가치관 등 다양한 요소에 의해 형성되고 변화하며, 특히 사회의 경제적 구조, ‘생산양식’의 역사적 변화가 중세에서 근,현대로의 형벌시스템의 변천에 끼친 영향을 고찰하며 ‘모든 생산제도는 생산관계에 상응하는 형벌을 찾아내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한다. 즉, “형벌유형으로서 노예형은 노예제가 없으면 불가능하고, 교도소의 강제노역은 공장제도가 없으면 불가능하며, 사회의 모든 계층에 대해 벌금형을 부과할 수 있는 것은 화폐경제체제가 없으면 불가능 하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라는 것이며, 이는 이를테면 중상주의와 ‘매뉴팩처 수공업’의 시대에 “구빈원과 함께 한 시대를 대표했던 교정원 시설은 중상주의시대 전문 기술자의 노동력이 절실했던 시기에 등장했”으며 따라서 “전문기술자들은 사형이나, 신체형, 유형에 처할 범죄를 저질렀어도 대체로 교정원 생활을 했다”는 것과 같은 다양한 역사적 사례를 통해 확인된다는 것이다. 범죄와 형벌에 대한 파시스트들의 선전을 실증으로 반박하다 파시즘 체제하의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횡행하던 더 가혹한 처벌이 범죄를 낮춘다는 선전을 영국과 프랑스를 포함 4개국의 범죄율과 실형 비율 등을 비교 분석해 철저하게 반박했다. 게다가 당대의 범죄 및 형행체계의 문제에 사회경제적 조건 사이의 관계 역시 분석하며, 1939년 당시까지 출간되었던 학술서 중에는 흔치 않게 유럽 주요 국가의 범죄 통계 자료를 직접 입수하여 분석한 실증 연구를 통해, ‘범죄와 형벌 간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고정관념을 깨트렸다. 그보다 범죄율의 변화는 경기 및 사회 안정과 관련 있다는 것은 다른 많은 연구에서 증명되었다. 이는 한편으로 경제적 불평등과 격차의 확대 속에 다양한 갈등과 불화가 불거지는 상황에서, 여러 사회적 이슈나 문제에 대해, 종종 ‘엄벌주의’ 일변도로만 흐르는 경향이 적잖은 한국 사회의 현실에도 적잖은 시사점을 준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의 연구가 오로지 경제적인 측면만을 강조하고 다른 정치나 법 또는 이념적인 측면들을 도외시한 측면이 있다는 비판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