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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글
낭중지추(囊中之錐) 같은 사람 장휘국 전 광주광역시 교육감 4 교육의 본질을 다시 성찰하고, ‘사람을 세우는 길’에 동참하기를 지병문 전 전남대학교 총장, 전 국회의원 8 자동차정비공 출신 교사로 교육현장을 깊이 이해 김관영 전북특별자치도지사 12 어렵고 힘든 일을 피하지 않고 잘 이겨내 박용진 전 국회의원, 전 이재명대통령후보 직속 국민화합위원장 15 책머리에 ‘사람 사는 교육’의 길 18 제1부 사람이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 숙직실에서 괘도 그리는 아이 새벽에 일어나믄 서까래를 세어라 29 쌀을 그놈만 갖다주지 말고 33 사람의 어려움은 굳이 물을 일이 아니다 35 대접받을 때도 예의를 다해서 37 숙직실에서 괘도 그리는 아이 39 아버지의 실루엣 42 밥먹고 책 봐라 44 살이 되는 독서, 독이 되는 독서 47 공부의 왕도 50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여학생을 만나러 갔다고? 53 지서에 잡혀간 친구들 55 너는 잘 먹고 잘 살아서 57 해가 지면 불안이 스며들고 59 책상에 엎어져 있는 학생 62 인생의 지침이 돌아가고 65 함평에서 광주까지 68 선생 자식이 선생 하는 것이 최고 71 살아 있는 물고기는 물살을 거슬러 오르고 이 새끼 또 왔네 74 돌아온 탕자 78 뮤지컬 배우가 차려준 밥상 81 목포교도소의 미결수 84 월급 8만 원 받는 꼬마 85 총에 둘러싸이고 90 사랑은 오렌지다방에서 93 주경주독 96 함께 사는 세상 모두 사는 교육 학교에 공장을 열고 99 시험 없이 대학에 가는 방법 101 딸내미를 업고 산으로 들로 103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날고 105 공모교장에 합격하고 109 책을 반납하지 않는 도서관 113 해남의 큰 스승 116 노무현보다 조금 못생긴 118 제2부 흔들림 없는 믿음의 나무 - 내가 만난 김용태 대범하면서도 따듯한 후배, 김용태 정용문 127 시대의 길을 함께 걸은 사람들 김황제 131 내 친구 김용태 장복일 138 남을 위해 먼저 손 내밀던 내 친구 용태 이상탁 141 내가 바라본 김용태 선생님 이복행 145 잘못된 결정 앞에 물러서지 않는 사람 이희준 147 삶으로 그를 믿는다 김동근 152 혁신적 아이디어로 새로운 길을 만드는 교사 김용태 안규완 156 때로는 엄하게 때로는 사랑으로 박효동 161 솔선수범하며 앞장선 친구 배영진 163 김용태, 흔들림 없는 믿음의 기록 전상수 167 얼굴이 살짝 부은 노무현, 김용태 김권섭 170 늘 사람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는 모습 정세호 176 먼저 마음의 문을 열어주신 선생님 윤빛나 178 김용태의 1984 이상걸 181 뺑끼쟁이 김용태, 전략이 있는 사람 장화동 185 내 영원한 전교조 광주지부장 김용태 선생님 김도영 188 늘 그늘을 드리우며 사람들을 품어주는 나무 같은 벗 임양재 191 한 방울의 이슬로 우주를 본다 노희정 195 제3부 교육정책_배움은 평등하게, 미래는 당당하게 교육혁신의 시작점은 교실이어야 한다 203 우리의 광주, 민주시민을 키우는 교육의 길 209 광주교육은 변화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215 배움은 평등하게, 미래는 당당하게 221 광주에서 시작하는 미래를 배우는 교실 226 삶의 품격을 높이는 광주교육 230 아이들의 건강과 행복을 키우는 광주형 키움 프로그램 235 교사의 권리가 곧 학생의 권리다 240 광주의 학교는 마을과 함께 자란다 246 학생 중심의 교육환경, 미래로 가는 길 251 제4부 교육칼럼_사람 사는 세상, 사람 사는 교육 ‘잠자는 교실’ 더 이상 방치하면 안 돼 257 교사의 교육 집중 환경 조성, 교육 혁신의 시작 262 코로나19가 남긴 ‘광주교육의 새로운 과제’ 266 다문화 교육, 지역사회와 함께 키우는 공존의 힘 필요 272 방학의 의미 277 모두가 함께 만드는 교육 공동체를 위하여 280 사람 사는 세상, 사람 사는 교육이 필요한 시대 284 정의롭고 당당한 ‘광주학생 육성’ 제언 289 기초학력 보장, 선언을 넘어서 실천으로 293 ‘광주정신’을 광주교육의 핵심으로 297 ‘노동’이 당당해야 진정한 인권도시 광주다 301 기술 강국의 미래, 과학기술교육에 달려 있다 305 광주 청소년이 민주 시민으로 성장하는 길, 올바른 역사교육에 답이 있다 308 전국 최고 학업중단율의 비극: ‘희망교실’ 부활이 광주교육의 해법이다 3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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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과학기술자를 꿈꾸던 전남 함평의 한 소년
저자인 김용태 씨는 전남 함평 손불면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서까래를 세며 부지런하라고 가르친 할아버지, 그런 할아버지 몰래 쌀을 퍼다가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며 사람의 도리를 가르친 할머니의 목소리가 그의 삶을 지탱해 준 뿌리다. 어린 시절 그가 가졌던 꿈은 국방과학기술자였다. 어릴 때 봤던 청소년 잡지에서 과학기술에 대한 얘기를 접하면서 군인 중에서도 최첨단 비행기나 전투기를 만드는 국방과학기술자가 되고 싶어 했던 것이다. 광주로 상경한 그가 운명의 시간을 맞닥뜨린 건 고등학교 2학년 때다. 1980년 5월이었다. 18일은 일요일이어서 여느 때처럼 함평집에 돌아가 쌀과 반찬을 들고 광주로 돌아가고 있었다. 광주MBC가 불탔다는 소식을 접했다. 다음 날 학교로 갔는데 계엄군이 들어와 시민을 죽였다는 얘길 들었다. 담임 선생님께서 곧장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으나 고등학생의 호기심을 말릴 수는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무차별로 연행되었고, 무자비하게 맞아 목숨을 잃었다. 시위 군중을 향해 집단 발포가 일어났다. 목숨을 지키기 위해 일부 시민들은 아세아자동차공장으로 달려가 장갑차와 트럭을 끌고 나오기도 했다. 조금 있다가 군인들이 두 사람의 다리를 잡아 끌고 나왔다. 머리는 질질 끌리며 흔들리다가 울퉁불퉁한 바닥에서 통통 튀었다. 손은 만세를 부르듯 위로 뻗쳤다. 시신이었다. 동네 분들이 옥상에서 울부짖으며 절규했다. 군인들이 우리 쪽을 향해 최루탄을 마구 쏘았다. 시신을 끌고 가던 군인들이 고개를 돌리더니 우리 쪽을 보고 소리쳤다. “마, 너희들 안 들어가나?” 자취집 옥상에서 보았던 광경, 들었던 말, 질질 끌려가던 두 사람, 사투리 섞인 그 말이 아직도 눈에 보이고 귀에 선명하다. 나는 피가 거꾸로 솟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 - 본문 68쪽 인생의 진로 바꾼 5·18민주화운동 1980년 5월 18일 이후 모든 게 달라졌다. 시골 소년은 국방과학기술자의 꿈을 접었다. 그리고 운 좋게 전남대 사범대에 입학한 그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학생운동을 시작한다. 1학년 때는 서부경찰서에 5번이나 잡혀 들어갔고, 2학년 때부터는 예비검속 대상이 되었을 정도였다. 3학년 때는 서클연합회 결성을 주도한다. 너무 자주 잡혀가니 얼굴을 알아볼 경찰이 생기기도 했다. 낮에는 서울대 공법학과 학생이었다가 밤에는 노동자 야학에 참여하는 친구를 보고 감동하긴 했으나 처음부터 노동 운동에 투신한 건 아니었다. 학생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3학년 때 수배자가 되었다. 신분을 숨기고 선배로부터 소개받아 공장에 취업하는 동안 함께한 노동자들의 삶의 땀내가 스민 것이었다. 안정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건강을 잃어가며 살아가는 그들이 사람답게 사는,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현장노동운동가의 지침서를 쓰기도 했고, 사업주가 알았을 때 노동 착취와 이윤 추구를 구별해야 한다며 함께 공부하기도 했다. 계급운동이라기보다 노동자 권익 향상을 위한 활동이었다. 땀 흘려 일하고 그만큼의 대가를 받는 노동자. 그렇게 정비사들의 새하얀 모임이라는 뜻을 가진 ‘정백회’라는 모임이 만들어지기도 했었다. 그가 다시 학교로 돌아간 이유 입학한 지 10년 만에 졸업장을 딴 김용태 씨는 목포교도소의 차가운 감옥에서 되뇌었던 것을 실행에 옮긴다. ‘어떻게 하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 것인가.’ 그는 교육에서 그 답을 찾았다. 그래서 다시 학교로 돌아간 것이다. 늦깎이 교사로, 전교조 활동가로, 교장으로, 노무현재단 시민학교장으로서 활동해온 그는 이제 아이들의 눈에서 세상의 희망을 본다. 노무현 대통령은 말씀하셨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이란 사람이 사랍답게 사는 세상입니다.” 그 말은 저에게 교육의 본질을 꿰뚫는 말로 들렸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은 사람을 중심에 둔 교육에서 시작됩니다. 교사로서의 삶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일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함께 찾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교실에서, 학교에서, ‘사람 사는 세상’을 매일 새롭게 만들어가고 싶었습니다. - 책머리 중에서 이 책은 총 4부로 이루어져 있다. 제1부에서는 김용태 씨의 자전적 이야기가 써 있고, 제2부에서는 김용태 씨가 지금껏 살아온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 이들의 목격담이 담겨 있다. 제3부는 30년간의 교직 생활을 겪으며 고심한 교육정책이, 제4부는 신문에 연재했던 교육칼럼을 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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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 가출을 반복하던 내게 선생님은 인간으로서 살아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셨다. 학교가 쉬는 날에는 혹여 다른 생각을 할까 등산을 같이 다녔고 학교가 끝나면 실습장에서 저녁 8시까지 자동차엔진 실습을 했다. 일요일도 반납하고 내게 실습지도를 하시고는 점심때 큰 대야에 비벼주시던 밥과 손수 끓여주셨던 라면의 맛은 그 어떤 산해진미보다 소중한 기억으로 남았다. 아이들에게 말한다. “아빠가 이렇게 300억이 넘는 기업의 CEO가 될 수 있었던 것 중 하나는 김용태 은사님의 가르침이었다.” - 박효동 (제자, 광주전자공고 자동차과 1회, 국제수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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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감동한 장면은 매일 새벽, 아직 어둠이 걷히기 전 학교에 나와 교사와 학생 한 명 한 명을 위해 조용히 기도하던 모습이었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깨달았다. “교육은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사람의 마음에서 시작된다.” - 이희준 (후배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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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에서 자율 주제의 연구학교 공모를 하자 김용태가 장복일을 찾아와 학교기업 응모를 제안한다. 더불어 노력하여 응모했으나 탈락했다. 김용태는 포기하지 않고 학교기업을 세우는 데에 주된 역할을 했다. 바람직한 일에는 그토록 진심이구나! - 장복일 (전 운남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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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그는 언제나 ‘사람이 먼저’라는 가치를 몸소 보여주었다. 교사 한 명, 학생 한 명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었고, 그 속에서 모두가 존중받는 문화를 만들어주었다. 그는 위트 있고 재치가 있었다. 회의 자리에서 한마디 유머로 긴장을 풀어주고, 짧은 대화 속에서도 웃음을 주었다. 그 웃음 속에서 우리는 함께 일하는 즐거움과 넉넉한 여유를 배울 수 있었다. 웃음이 있는 학교가 얼마나 건강한 공간이 될 수 있는지를 깨달은 소중한 배움이었다. - 윤빛나 (현 사립교사, 광주전자공고에서 함께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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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그래서 김용태가 어떤 사람이야?’ 묻는다면, 자기를 낮춰서 주변을 높여주는 사람, 전교조와 동료 교사가 있어 자기가 빛이 나는 줄 아는 사람, 결과에 승복하며 함께할 줄 아는 사람, 그래서 참 좋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 김도영 (전교조 광주지부 전 정책실장, 전 통일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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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그는 권위를 바라거나 직위에 대한 욕심이 없다. 다만, 더 큰 봉사와 사회에서의 역할을 위해 큰일을 하고 싶어 한다. 광주 사람은 모두 특별하다. 5·18이 그렇게 우리를 만들었고, 우리는 먼저 간 5·18 영령들에게 모두 마음의 빚을 지고 산다. 내 친구 김용태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고, 전교조 활동, 노무현 시민학교장을 하면서 5·18 영령들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가치를 후손들에게 물려주려고 노력하며 살아왔다. 그런 그가 좀 더 높은 곳에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길 바란다. 그리고 모든 일을 마친 후 막걸리 한 잔을 나누며 그와 함께 나이를 먹어가고 싶다. 한 번쯤 지친 가슴을 안고 사는 사람은 밤하늘에 떠 있는 달을 쳐다보길 바란다. 그래도 피곤하고 힘든 사람은 내 친구 김용태의 환한 미소를 한 번 바라보길 바란다. 살짝 부은 얼굴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친 그대를 위해 환한 웃음을 지어줄 테니까. - 김권섭 (금호고 동기, 전남대학교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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