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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異熟 YI:SUK 007
일상의 성소 The Sanctuary of Everyday Life 063 메타모르포시스 Metamorphosis 093 유기체적 풍경 Organic Landscape 169 시대착오적인 산책 Anachronistic Walk 221 인터뷰 Interview 239 작가 약력 Artist Biography 2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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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씨앗 작업은 소소한 일상에서 시작됐다. 유학 시절, 다른 문화와 역사, 다른 삶의 태도들을 접하며 정체성의 혼란과 몸과 정신에 대한 나의 관심은 채식 생활을 시작하게 했다. 오랜 시간 나의 점심식사는 샐러드 한 접시였으므로 주어진 공간 어디든, 화분과 플라스틱 용기에도 채소들을 심고 가꾸었다. 여기저기에 심고, 옮겨 심다 우연히 수세미에 떨어진 씨앗이 발아하기 시작했다. 무척 신기했다. 그때부터 모든 가능한 용기와 천, 종이에 씨앗을 발아시켰고, 그 시도가 오늘날의 이숙(異熟), Metamorphosis 시리즈 작품이다.
이숙(異熟)은 불교철학에서 ‘모든 존재의 다른 성장, 다른 방식의 성숙’을 의미하며 식물이라는 매체, 즉 씨앗이 발아, 성장, 소멸해 가는 과정은 이숙의 은유적인 표현이다. 나의 작업 세계는 끊임없는 성장과 변화, 움직임 속에 살아있는 것, 생명성에 대한 조형이라 하겠다. 2011년 남극 킹조지섬 세종기지에 레지던시로 체류하며 변화하는 바다 풍경을 촬영하기 위해 한밤중 바다에 서 있는데 극심한 추위와 바람에 몰려오는 빙산과 유빙들로 생경한 풍경을 목격하게 된다. 변화하는 자연 앞에 속수무책으로 경험한 거대한 빙산의 움직임은 비현실적이면서 경이로움 그리고 숭고함 자체였다. 동시에 급격히 밀려오는 두려움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 두려움이 곧 죽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찰나의 심리적 죽음을 가슴으로 받아들이면서 갖게 된 존재에 대한 사유를 빌어 표현한 것이 〈존재의 가벼움〉이다. 옷을 숙주로 씨앗의 발아와 성장해 가는 과정을 담았는데 생명의 성장과 변화, 움직임 속에 살아있는 것 그리고 생명의 유한함을 은유적으로 담은 작품이라 하겠다. --- 「작가노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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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의 식물은 시들지만, 책 속의 사유는 영원히 자라납니다
김주연 작가의 작업은 '살아있음' 그 자체를 재료로 삼습니다. 작가는 캔버스 대신 헌 옷과 버려진 신문, 낡은 가구 위에 씨앗을 심고, 그 위에서 피어나는 생명의 경이로움과 소멸의 숭고함을 전시장에 불러들입니다. 하지만 식물이 자라고 시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그녀의 설치 작품은 전시의 종료와 함께 물리적으로는 사라질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녔습니다. 이 책은 그 찰나의 미학과 3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작가가 천착해 온 생명에 대한 철학적 고뇌를 영원히 붙잡아 둔 귀중한 아카이브입니다. 우리는 왜 김주연의 작품 앞에서 기이한 아름다움(Uncanny)과 숭고함을 동시에 느낄까요? 이 책은 그 해답을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남극의 빙산 앞에서 느꼈던 압도적인 두려움과 경외감, 일상의 사물 틈에서 싹트는 씨앗을 보며 깨달은 '이숙(異熟)'의 철학이 어떻게 예술로 승화되었는지 작가의 육성으로 들려줍니다. 고충환, 김원방, 엄기홍 등 평론가들의 예리한 분석은 독자들로 하여금 단순히 눈으로 보는 감상을 넘어, 생태와 여성, 치유와 죽음이라는 인문학적 층위에서 작품을 깊이 있게 음미하도록 돕습니다. 지금, 삶의 속도에 지쳐 본질적인 위로와 사유가 필요한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문명과 자연, 인간과 식물, 생성과 소멸의 경계를 허무는 김주연의 작품 세계를 통해, 당신의 내면에서도 새로운 사유의 씨앗이 발아하기를 기대합니다. 이 책을 덮는 순간, 우리 곁의 하찮은 풀 한 포기조차 우주를 삼킨 듯한 거대한 생명력으로 다가오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김주연의 '이숙'하는 세계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