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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공의 시대
한국과 독일, 냉전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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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책을 내면서………크리스토프 폴만

머리말………기외르기 스첼, 크리스토프 폴만, 김동춘

“공산주의자를 물리치라”………슈테판 크로이츠베르거
냉전의 국제정치와 서독의 내부화된 반공주의………기외르기 스첼
동독의 서방정책과 서독의 일상적 반공주의………디르크 호프만
서독의 반공주의와 사민당 및 노조의 정책에 대한 영향………위르겐 트로일리프
반공주의와 정당체제의 왜곡………강명세
한국의 지배집단과 반공주의………김동춘
역사 교과서 논쟁과 반공주의………김정인
반공주의와 화해·협력의 분단극복정책………노명환
2000년대 한국 개신교 보수주의자들의 정치활동과 반공주의………류대영
1960년대 반공 이데올로기의 진화………박태균
한국 반공주의의 궤적………신광영
한국의 반공주의와 노동운동: 반공주의의 내면화와 노동운동의 사회적 고립………유범상
반공주의와 친미주의………이완범
한국 대중문화에서의 반공주의………이하나
한국의 반공주의와 인권………조효제
국가폭력과 반공주의………한성훈

맺음말………김동춘

미주 | 참고문헌 | 찾아보기

저자 소개

저자 : 김동춘 외
[한국]
강명세: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김동춘: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김정인: 춘천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교수
노명환: 한국외국어대학교 사학과 교수
류대영: 한동대학교 글로벌리더십 학부 교수
박태균: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신광영: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유범상: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사회과학대학 행정학과 교수
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사회과학부 교수
이하나: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HK 연구교수
조효제: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한성훈: 연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연구교수

[독일]
기외르기 스첼: 오스나브뤼크대학교 사회학부 명예교수
슈테판 크로이츠베르거: 로스토크대학교, 사학과 교수
디어크 호프만: 뮌헨-베를린 현대사연구소 연구위원 및 포츠담대학교 강사
위르겐 트로일리프: 비아드리나유럽대학교 강사
역자 : 안인경, 이세현
안인경(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교수): 슈테판 크로이츠베르거, 디르크 호프만, 위르겐 트로일리프
이세현(영어 국제회의 통역사): 기외르기 스첼(서론,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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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03월 02일
쪽수, 무게, 크기
532쪽 | 778g | 153*225*35mm
ISBN13
9788971996492

책 속으로

‘반공주의’ 분석에서 다른 사례와 마찬가지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피해망상paranoia이다. 레닌과 스탈린, 히틀러를 비롯한 모든 독재자 그리고 많은 미국인과 독일인, 한국 국민 역시 피해망상을 겪었다. 이런 이유로 음모와 반역에 대한 의심은 반공주의의 핵심 요소다. 외국인과 이방인, 이민자, 적은 ‘야만인’으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깊은 뿌리를 가진 인류학적 공포를 반영하며(Boveri, 1960), 반공주의에 활용될 수 있다. 반공주의는 외부의 적을 근거로 하지만 기본적으로 내부의 적에 대한 투쟁이다. 종교 역시 ‘악마’라는 개념을 통해 반공주의를 도울 수 있다. (22쪽)

남북한이 정치군사적으로 분단된 한국에서 반공주의는 주로 반북反北주의와 같은 의미를 갖고 있다. 그리고 단일한 인종과 종교, 문화의 전통을 가진 한국에서 반공주의는 서구 여러 나라에서 극우 세력이 견지한 인종주의의 대체물, 즉 유사인종주의의 측면을 갖고 있다. 즉 실제 북한에서 남파되었다가 체포된 공작원, 남한 내의 체제비판적이거나 급진적 인사들은 전근대 시절의 반역자처럼 지목당해 사람이 아니라 괴물이나 살인자, 악마, 간첩 등의 이미지로 표상되기도 했다. 그래서 이들을 수십 년 동안 투옥?유폐하는 처벌이나 감옥 안팎에서 이들과 그 가족에 대한 폭력행사와 고문도 사실상 용인되었다. 20세기 후반기를 거쳐 21세기에 이르는 동안 반공주의가 이처럼 장기간 억압적으로 행사되고 국가의 초헌법적 이념으로 군림한 나라는 세계에서 오직 한국밖에 없을 것이다. (177쪽)

과거 독일 파시즘도 인종주의라는 퇴영적 사상에 기초하고 있지만, 한국의 반공주의는 자유주의라는 그 출발의 사상적 내용을 거의 삭제해버렸다. 한국 반공주의자들이 주로 거론하는 ‘자유’, ‘민주’ 담론의 실제 내용은 반공, 반북 또는 친미일 뿐 자유주의나 사회민주주의 등 어떤 일관된 정치 노선이나 정책적 내용을 갖고 있지 않다. 이 점에서 한국의 반공주의는 무사상, 무이념이다. 그것은 민족을 내세우기는 하지만 실제 정책과 행동에서는 민족주의와 거리가 있고, 오히려 민족주의를 탄압하는 논리였다. 자유주의, 민족주의의 이념이나 가치관은 모두 수사에 불과할 뿐 실제로 정책과 행동에 일관되게 표현되지 않는다. (193쪽)

뉴라이트가 이제는 역사학계의 공격 무기인 친일 프레임은 물론 역사인식의 지렛대인 민족주의에 대해서도 공세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친일 프레임만큼 대중성을 확보하고 있는 친북 프레임에 근거한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식민사학의 청산이라는 학문적 과거 청산과 함께 친일 청산이라는 민족 차원의 과거 청산에 큰 의미를 부여해왔던 역사학계는 이제껏 민족주의의 자장 안에서 북한이라는 반쪽을 품고 가는 역사를 모색해왔다. 그런데 최근 북한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비판의식이 높아지는 가운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던 반공주의가 반북주의의 이름으로 대중성을 얻어가고 있다. 이 ‘급변’한 사태가 바로 뉴라이트에게 반공의 이름으로 민족주의를 공격하게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전쟁 2013’에서 교학사 교과서로 상징되는 뉴라이트가 패배했지만, 지금 정말 위기에 처한 것은 역사학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19~220쪽)

반공주의의 의미는 이제 반북주의에 한정되어 있다. 그럼에도 권위주의하에서 다양한 이념에 대한 정치적 담론이 발달하지 못한 한국에서는 이념적 담론에 애매모호한 영역이 있다. 그리하여 반공주의는 복지와 교육에 관한 담론처럼 다른 담론들을 쉽게 끌어들일 수 있다. 복지국가에 대한 비판은 반공주의가 반복지국가 담론과 접합되어 만들어진 공산주의 비판에 의존하고 있다. 교육에 대한 국가 규제를 비판하는 논의 또한 공산주의 정권에서 교육의 비효율성을 언급하고 있다. 이처럼 반공주의는 쉽게 다른 이데올로기들과 접합되기도 한다. 이는 다음 세대에게는 위험한 발전일 수 있다. (301쪽)

소련 공산주의는 몰락했지만 중국 공산당의 지배는 건재하다. 1970년대에 개막된 남북교류 시대에도 반공이 어색하기는 했지만 중국과의 무역의존도가 미국과의 그것보다 높아진 시대에 반공은 더욱 어울리지 않는다. 탈냉전 이래로 반공이 헌법보다 상위에 있는 국시의 위치에서는 퇴장했다. 현재 반공주의자들은 시대착오적 구호인 반공 대신 자유민주주의로 자신들의 이념을 포장했으며 ‘반북주의’를 내세워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자신들은 ‘대한민국 세력’이라며 반反대한민국 세력은 제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공주의자들은 사상 진영을 반북?반공?대한민국 세력과 종북?반대한민국 세력이라는 양분법적 구도로 나눠 사상투쟁을 전개하려 하고 있다. 김정인 교수는 상대 진영에 종북 딱지를 붙여 반북주의 캠페인을 벌여 ‘종북 프레임’을 구축한 사람들은 ‘뉴라이트’가 아닌 전통적 ‘올드라이트’이며 박근혜 정부 들어 올드라이트와 건국?호국 세력이 화려하게 부활했다고 해석했다. (340쪽)

전쟁과 분단, 독재와 권위주의의 유산으로 남은 것이 반공주의다. 반공 이념은 정권이 원할 때 반대 세력을 제압하는 데 악용될 수 있고 폭력을 정당한 국가권력 행사로 내세운다. 궁극적으로 이는 체제에 비판적인 시민의 기본권을 강제로 빼앗으려는 의도였다. 폭력은 한나 아렌트가 제기했듯이 권력power, 강제force, 힘strength, 권위authority와 구별할 수 없게 된다. 독재와 권위주의 체제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이런 국가는 근본적으로 폭력에 기반을 둔 정치체제다. 이 체제에서 구성원으로 존재하기 위해서 보통 사람들은 “공격적인 집단적 정서를 담는 이념”으로서 반공을 수용한다. 한국에서 반공주의와 결합한 폭력은 극한적 형태인 집단학살과 고문 따위에서 폭력을 정초하고 이를 반복하는 보존적 폭력으로 행사되어왔다. (394~395쪽)

남북한 간의 분단이 70여 년 가까이 지속되면서 민주화 이후에도 여전히 북한과 전쟁 상태에 있는 남한이야말로 탈식민화의 굴절로 생겨난 한반도 내부의 자생적 반공주의와 미국 주도 아래 냉전 이데올로기로서의 반공주의가 과거가 아니라 아직 현실정치와 사회를 지배하는 논리로 작동하는 세계 유일의 장소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한국의 반공주의를 다시 살펴보게 되었고, 과거에는 한국과 유사한 분단국가였으나 이제 통일을 이루어 반공주의가 과거의 것이 된 독일과의 비교를 시도했다. (412쪽)

극단적인 흑백논리, 종교적 근본주의 입장에 서서 모든 세력을 ‘적’과 ‘나’로 구분한다는 점에서 반공주의는 정치 이데올로기임과 동시에 일종의 유사종교, 문화, 심리적 태도에 가깝다. 물론 미국은 파시즘을 겪지 않았고 자유민주주의라는 안전장치가 있으며 반공주의가 학살과 대규모 국가폭력을 불러오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과는 다른 점이 있다. 그러나 매카시즘하의 미국이나 1950년대 독일에서 모두 공산주의의 위험을 과대 포장하거나(Boyer, 2010), 공직자와 노동조합 지도자는 물론 국민 전체를 국가에 대한 충성의 시험대에 올려놓는다는 점에서 유사성이 있다. 특히 한국과 미국은 기독교 근본주의나 우익 세력의 공포와 위기의식이 만성화되어 있다는 점, 우익 세력이 국가권력과 거대 상업미디어의 힘에 편승해 국가나 사회 전체를 반공 히스테리의 회오리바람으로 몰아넣는다는 점에서도 유사하다(Kovel, 1994). (418쪽)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분열과 갈등, 냉전의 정치를 극복하기 위한 한국과 독일 학자들의 공동 연구

이 책은 한국의 김동춘·박태균, 독일의 기외르기 스첼·디르크 호프만 등 저명한 사회학자들 16명(한국 12명, 독일 4명)이 2차 세계대전 이후 반공주의가 양국의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으며 그 부정적 유산들과 이데올로기적 균열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를 공동으로 연구한 성과물이다. 독일의 비정부기구인 프리드리히에버트재단 주최로 열린 워크숍을 토대로 반공주의의 역할에 관한 주요 측면을 다뤘으며, 이런 논의를 진행하는 데 있어 현재의 사회정치적 문제에서 가지는 의의를 고려해 한국에 초점을 맞췄다. 이 책은 비교연구적 분석틀을 제시함으로써 반공주의에 대한 양국의 학문적 담론을 보완하고, 한국과 독일에서 각각 진행되고 있는 사회정치적 논의에 기여하고자 기획되었다. 실험적 성격의 이 공동 연구를 계기로 더욱 활발한 공론장이 형성되어 통일과정의 전제조건인 사회통합에도 건설적 기여를 하는 데 이 책의 목적이 있다. 보수-진보, 여당-야당의 간극과 사회적 분열이 날로 심화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건설적 태도와 충분한 지식, 관용을 바탕으로 이데올로기적 차이에 대처함으로써 민주주의를 더욱 발전시키자는 이 책의 취지는 그 자체로 주목할 가치가 있다.

반공주의 논의의 핵심 주제

이 책은 분단국가라는 한국 사회의 독특한 성격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문제들을 한국과 독일 부분으로 나누어 고찰한다. 이는 과거 분단국가였던 독일의 역사와 한국을 비교해봄으로써 다양한 문제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고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 한국 부분의 주제
- 냉전의 국제정치와 한국의 내부화된 반공주의(노명환)
- 이데올로기와 제도를 통해 살펴본 한국 ‘반공주의’의 정치(강명세)
- 한국 정치에서 ‘우익 세력’은 누구인가?(김동춘)
- 로스토와 1960년대 반공주의 이데올로기의 성장(박태균)
- 교과서 속의 반공주의(김정인)
- 한국 반공주의의 궤적(신광영)
- 한국의 반공주의와 노동운동(유범상)
- 한국의 반공주의와 친미주의(이완범)
- 한국의 반공주의와 인권(조효제)
- 2000년대 한국 개신교 보수주의자들의 정치활동과 반공주의(류대영)
- 한국 대중문화에서의 반공주의(이하나)
- 고문조작간첩 피해자를 중심으로 살펴본 한국의 국가폭력과 반공주의(한성훈)

* 독일 부분의 주제
- 냉전의 국제정치와 서독의 내부화된 반공주의 그리고 미국의 역할(기외르기 스첼)
- 독일 반공주의의 역사(슈테판 크로이츠베르거)
- 서독의 반공주의 그리고 반공주의가 사회민주당과 노동조합의 정치에 미친 영향(위르겐 트로일리프)
- 동독의 서독 내 활동과 서독의 일상적 반공주의(디르크 호프만)

반공주의의 탄생과 다양한 양상

반공주의는 근대 공산주의와 함께 1848년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이 출간된 이후 태동했다. 특히 러시아혁명처럼 자본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운동이나 사상이 등장한 이후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다양한 형태로 존재했다. 반공주의는 냉전기에 소련의 위협을 과장하는 미국의 외교 노선과 국내 정치의 원칙을 집약해주는 용어였지만, 유럽에서 냉전이 종식됨으로써 일단 유럽에서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은 과거의 반공주의가 오늘날에는 신자유주의라는 새로운 옷을 입게 되었고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가져온 모순이나 위기에 대한 반발 또는 저항도 종교적 극단주의, 테러, 인종차별, 사회적 보수주의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을 따름이다.
반공주의는 나라마다 매우 다양한 양상을 지닌다. 한국의 반공주의는 조선이 일본의 제국주의적 지배에서 해방된 직후 냉전체제와 더불어 형성되었다. 미국의 압도적인 영향력 아래 민간독재나 군사독재의 형태로 반공주의 정권이 형성되고 유지되었다. 독재정권은 시민권 제약을 정당화하기 위해 공산주의자들의 위협을 활용했다. 한반도의 북쪽이 소련과 공산정권에 점령되었기 때문에 국가안보는 곧 반공주의와 동일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역사상 가장 강력한 형태의 반공주의가 바로 파시즘이다. 20세기 각국의 파시즘은 대체로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부르주아 세력의 두려움을 집약하고 있다. 특히 반공주의는 공산주의자들이 무엇을 하든 그것에 무조건 반대하겠다는 부정적 결단이며, 그것에 대한 두려움의 표현이다. 1945년 이전의 일본 제국주의 파시즘 또한 강한 적색공포에 기초했다. 일본 제국주의의 정치적 기반인 천황제는 공산주의를 용납할 수 없는 반역사상으로 간주했으며, 그것이 치안유지법에 집약되어 있다.

한국의 반공주의

한국에서 반공주의가 법적으로 공식화된 것은 1961년 이후다. 권위주의 시대 내내 반공주의는 비민주적 통치를 정당화하는 기제 역할을 했다. 4?19혁명 이후 장면 정부가 반공법을 시도했으나 저항에 부딪혀 포기한 사실에서 알 수 있듯 한국 정치의 주류는 여야를 떠나 반공주의에 의존해왔다. 5?16군사쿠데타 직후 ‘군사혁명위원회’는 6개항의 성명에서 “반공을 국시의 제일의”로 삼는다고 발표했다. 박정희 군사정부는 1961년 7월 13일 반공법을 제정해 공산 계열의 정치활동을 엄금했으며 유신독재체제 내내 반정부활동을 규제하는 데 이용되었다. 인혁당?남민전?민청학련 사건 등은 바로 국가보안법 위반을 이유로 반독재운동을 억압한 대표적인 사례이며, 이후 대법원은 무죄를 선고하는 동시에 희생자에 대한 국가배상을 명령했다.
한국 사회의 보수적 접착제는 반공주의이며, 그 구체적 실현은 국가보안법 제도다. 한국 사회에 지배적 이념으로 뿌리내린 반공주의는 정치적 유산인 동시에 정치적 도구다. 반공주의가 몇 차례의 도전에도 불구하고 현상유지되는 까닭은 현상유지를 선호하는 보수 세력이 집권하기 때문이다. 보수 세력은 북한의 도전에 맞서 반공주의를 제시하면서 국내적으로는 대통령제와 소선거구제를 통해 권력을 재생산하는 데 성공해왔다.
반공주의 제도가 지속되는 것은 공산주의가 사유재산이나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며 개인의 창의적 잠재력을 부정하는 것으로 믿어지기 때문이며, 이에 따라 저소득층 역시 반공주의를 지배 이념으로 받아들인다. 저소득층 부모는 현재 경제적으로 취약하지만 자식 세대는 시장의 자유활동을 통해 신분이동이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에 반공주의를 용인하는 것이다. 나아가 1987년의 민주화 역시 지배 이념에 대한 신뢰를 흔들지 못했으며 민주화 과정이 권위주의 세력과의 합의에 따른 것인 만큼 민주화 세력은 반공주의 개혁을 성사시키지 못했다. 그로써 암묵적으로 정치적 중간 세력 또한 반공주의를 지지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렇듯 한국에서 반공주의는 한국 지배집단의 이데올로기 정책을 집약한 것이며, 따라서 반공주의는 분단된 한국의 국가정체성과 외교?국내 정치의 기본 원칙, 지배집단의 논리와 심리 그리고 정치적 갈등과 저항운동의 기원을 설명해주는 시금석이다.
반공주의는 냉전기에 미국을 비롯한 자유주의 서방 진영에 속했던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한국에서만 나타난 현상이라고 볼 수는 없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자유주의자, 파시스트, 사회민주주의자 등 다양한 집단에서 다양한 형태의 반공주의가 나타났지만 한국에서는 주로 국가 이데올로기, 우익의 체제 이데올로기로만 존재했다. 특히 2014년 말에 일어난 통합진보당 해산사건에서 볼 수 있듯 분단전쟁을 거친 한국에서의 반공주의는 다른 어떤 서방 국가나 제3세계 진영의 국가보다도 내부의 적을 절멸시키는 데 주력하는 ‘전체주의’totalitarianism 성격을 갖고 있다.
일당지배, 권위주의적 리더십(총통), 강력한 이데올로기, 모든 자유에 대한 억압, 강제수용소, 정의의 부재, 집단주의 등 그 형태와 내용에서 파시즘?공산주의와 동일한 의미를 담고 있는 전체주의야말로 지난 수십 년간 가장 성공적인 반공주의 전략이었다.

한국의 반공주의는 북한과 동전의 양면을 구성한다. 반공주의는 분단이라는 현실적 조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북한의 존재가 사라지지 않는 한 그 역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북한은 동독과 많은 면에서 다르다. 북한은 동독과 달리 권력 세습이 이루어지는 독재체제로 폐쇄되어 있고, 국제사회로부터 인권과 사회, 경제 상황이 매우 열악하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게다가 어느 시점부터는 핵무기도 개발해왔다.
한반도는 여전히 냉전체제에 갇혀 있다. 국가보안법은 반공 강화라는 명분 아래 정치적 반대 세력의 정치활동에 필요한 자유를 억압하는 데 이용되어왔다. OECD 회원국 가운데 사회주의 계열의 정당이 정치적으로 무기력한 나라는 한국뿐이라는 사실은 좌익정당을 비롯한 정치적 반대 세력의 억압에서 비롯된 것임을 시사한다. 보안법으로 말미암아 사회주의 계열의 정당이 존립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반공주의에 대해 좀더 깊이 성찰해봐야 한다. 우리 사회는 반공주의가 무엇을 의미하고, 왜 추구하고,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지를 좀더 정확하게 검토하고 설정할 필요가 있다. 반공주의가 단순히 공산주의를 적대하는 것 자체에 머물러서는 원래 의도와 달리 사회적 역기능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반공주의가 사회 내적 비민주성과 부조리를 정당화하고 은폐하며 자유와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작용한다면 그것은 그 본질과 거리가 먼 불행한 상황의 원인이 될 것이다.
서독이 독일 통일을 이룰 수 있었던 원동력은 서독인들이 동독의 공산주의를 미워하는 강력함에 기초했던 것이 아니라 서독 사회가 다원성의 가치 속에서 자유와 정치적?사회적 민주주의, 인권을 진지하게 추구한 데 있었다. 독일 통일이 한국의 모델이 될 수 없다는 일각의 지적은 일면 타당성이 있으나, 분단극복에서 서로 다른 토양으로 작용하는 사회적?문화적 조건에 대한 비교연구의 가치를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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