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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그분이 계셨음에
_기록을 시작하며 1부 ‘아카데미 운동’-인간화의 길을 찾아서 _‘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회’ 출범 _동시대 정치·사회적 배경 그리고 박정희 유신통치(1960, 70년대) _아카데미 운동의 단초 2부 대화운동을 시작하다-사회현상의 집중분석 _‘근대화’ 주제는 ‘인간화’ 기준으로 재정립되어야 _‘인간화, 인간문제, 인간화의 길’ 주제 _‘인간화를 위하여-양극화 문제’ 주제-요인은 병든 정치 _‘정치화와 민주화’ 주제-민주화의 요체는 ‘중간집단 형성’ 3부 중간집단 형성 운동 _‘중간집단’-소용돌이 사회의 조정자 _‘중간매개집단의 강화’ 주제 대화모임 4부 중간집단 육성 교육 설계 _중간집단 정의 _중간집단의 철학 _중간집단 교육 이념과 목적 _중간집단 육성 강화의 과제 _기존 사회단체의 중간집단화 _‘교육 프로그램’ 구성 워크숍 _세계 기독교 사회교육 프로젝트로 선정되다 _‘중간집단 5개년 교육 프로젝트’-유신정권 긴급조치에 충격 _교육 지도체계 구성과 커리큘럼 실전 평가 5부 중간집단교육 궤도 출발-여성사회 _‘여성 인간화’ 교육에 맞추다 _‘여성 인간화’ 이념 _‘여성 인간화’의 조건들 _강원용-여성운동의 철학 _1974년 중간집단교육 이전: 여성 일반 사회교육 _여성사회 중간집단 육성 교육 개관 _여성운동 주체 생산(1973~2005) _‘젊은 여성’ 중간집단교육(1973~1978) _‘젊은 여성’ 중간집단교육 대표 사례 _‘여성지도자’ 중간집단교육(1973~1978) _‘여성지도자’ 중간집단교육 대표 사례 6부 교육생들, 여성인간화운동에 결집하다 _여성사회연구회 설립 _진보 성향의 단체 설립 견인 _‘여성신문’ 창간-한국 여성의 목소리 7부 주부교육, 주부운동, 주부담론을 만들다 _주부아카데미 교육-운동 주체로 주부층을 발굴하다 _주부아카데미 제1기 개강-반포 지역 _지역 주부아카데미 교육(5곳) _주부아카데미 교육 결산(1~23기) _철저한 교육평가와 개선 노력 _주부교육생들, ‘사회주부’ 위상 만들어 8부 1979년 아카데미 사건 이후 여성사회교육 9부 크리스챤아카데미 대화모임 _여성 주제 대화모임 개괄 _대화모임 대표 사례: ‘세계 여성의 해’ 10부 인터뷰-강원용과의 만남 그리고 여성운동 김경애 | 김근화 | 서진옥 | 신인령 |이계경 | 이숭리 | 이정자 이한순 |이현숙 | 이혜경 | 장필화 | 정숙자 | 마감하며 11부 여성운동의 변천, 1960년대~1980년대 _1960년대의 여성운동 _1970년대의 여성운동 _1980년대의 여성운동 _1990년대 이후의 여성운동 12부 보수 진영의 큰 우산, 한국여성단체협의회 _한국여성단체협의회 주요 연혁 13부 정부 주요 여성정책의 변천 _1980년대 _1990년대, 여성계 역동화와 정부정책의 강화 부록 젊은 여성 공동 선언 | 지성인의 선언 | 여성 선언 | 여성 인간 선언 크리스챤아카데미 여성사회연구회 회칙 | 여성사회를 위한 기도 | 크리스챤아카데미 간사 구속 사건 _주 _참고 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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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에 ‘여성자원의 개발’을 시작으로 1971년의 ‘모자복지사업 문제’, 1972년의 ‘여성고등교육 문제’, 1973년의 ‘현행 가족법 개정 문제’ 등이 모두 그 운동의 일환으로 추진되었으며, 1973년부터 수원의 사회교육원에서 실시되고 있는 여성사회교육도 모두 ‘머슴’의 위치에 놓여 있는 여성의 인간화를 위한 노력이었다. 이렇듯 아카데미가 그동안 기울여왔던 여성인간화운동은 마침내 유엔에서 1975년을 ‘세계 여성의 해’로 선포하면서 완고한 한국 땅에서 요원의 불길처럼 번지게 할 수 있는 계기를 맞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1974년 8월 사회교육원에서 실시한 한국 여성지도자 모임에서 이루어진 과제추진위원회의 활동은 사실상 한국 땅에 여성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하나의 기념비적 인 사건이 될 것이다.
--- p.67 아카데미 교육생들은 ‘여성 인간화’와 ‘중간집단’이라는 프레임으로 사물을 통찰하는 훈련을 받게 된다. 한국여성운동의 역사 속에서 ‘인간화’의 프레임으로 교육이 이루어진 것은 크리스챤아카데미 ‘여성 중간집단교육’이 처음인 것으로 보인다. 1973년 7월의 영 어덜트 교육(젊은 여성 교육)을 시작하면서 강원용 원장은 ‘여성 인간화 교육의 현실화’를 기뻐했고, ‘크리스챤아카데미는 역사적인 첫발을 내딛었다’고 말했다. 오랜 준비의 결실로 비로소 시작된 이 중간집단교육이 그만큼 시대적 의미가 크고 감격적이었음을 읽을 수 있다. 10여 년 유신정권이 지속되며 자유와 언론이 많이 유보된 엄혹한 시기에 평등사회를 일구어나갈 여성 중간집단교육이 마침내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 p.76 ‘여성인간선언’ 요지 : 1. 우리의 운동은 문화개혁, 인간해방의 운동이다. ……일체의 주종사상, 억압제도를 거부하고 여성의 인간화와…… 해방된 공동체사회를 지향하는 운동의 일환이다. 2. 남성우위문화에 길들여진 의식구조의 개혁에 전력을 기울인다. ……천부적 우열의 거짓 사상을 거부하고…… 노예적 의식에 사로잡혀 남편의 사유물로서…… 가정에 예속된 현 위치를 거부하고 자아실현의 주체자로서 원천적 평등권을 회복해야 한다. 3. 남아 존중, 부계 계승의 관념과 관습에서 해방되기 위해 기존의 성윤리와 가족제도의 전면적 개혁을 시도한다. ……일방적으로 요구해온 정조와 순결성을 거부한다. ……인격적?평등적?개방적 관계에서 성윤리가 새롭게 모색되어야 한다. ……협동가족, 공동 이념이나 생활목 표를 지닌 동지들로 구성되는 대가족을 창조하는 가족구조 개혁운동을 바람직하게 생각한다. ……여성해방의 진정한 목표는 인간해방이므로…… 전체 인간의 과제인 것이다. 남성우위문화에 대항하는 여성계층의식의 개발과…… 남성의 의식화에 총 집중해 노예의 윤리를 거부하고 새로운 인류사를 향한 힘찬 걸음으로 일보 전진할 것이다.(1974. 9. 3) --- p.125 제1회 여성문화제 : 3기는 한국 여성운동의 전략적 변화를 주고자 문화적 방식을 처음 시도한 ‘제1회 여성문화제’를 올렸다. 여성에게 떠안겨진 문제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분석하고 고발해 사회적으로 공감대를 높이고자 하는 목적이었다. 1978년 12월 14~15일, 여성백인회관 강당에서 오후 2시와 6시, 총 4회의 공연을 개최했다. 프로그램 구성과 담당 회원은 여성연극제는 이계경, 여성영화제는 이미경, 여성음악제는 김선화, 여성 사진 전시회는 김경애, 여성도서 전시회는 이경숙·신용자, 바자회는 김근화·김희선, 총책임은 이정자·한명숙이었다. --- p.141 1974년부터 1979년까지 아카데미 중간집단 철학과 여성 인간화 이념으로 무장한 교육생들은 그 수로 볼 때 젊은 여성 교육생이 500여 명, 여성지도자 교육 참가자가 500여 명이었고, 이들이 여성운동의 각 영역에서 활동하던 시기였다. 그들은 새로 만들어지는 단체 설립에 참여하고 기존 단체에서도 여성 인간화 이념을 살려나가는 데 힘을 보태는 역할을 한다. 진보 성향의 신생 여성단체들은 ‘여성 인간화’ 프레임으로 운동을 가져갔고, 여성 인권을 훼손하는 폭력과 차별에 대해 민감하게 대응했다. 학대받는 여성을 위한 전화 상담 단체 ‘여성의전화’(1983. 6.11)는 아카데미 그룹이 창립에 나섰고, 여성대중운동을 표방하는 ‘여성평우회’(1983. 6. 18), 여성주의 대안 담론을 생산하는 ‘또 하나의 문화’(1984), 진보 성향 단체들의 연합 운동체인 ‘한국여성단체연합’(1987. 2), 한국여성노동자회(1987. 3. 21), 한국여성민우회(1987. 9) 등에 아카데미 출신들이 중심 멤버의 일원으로 참여하며 여성운동의 새 방향에 힘을 보탰다. 이 시기에 아카데미 여성들이 창립한(1989. 11) ‘여성신문’은 새여성운동의 광장에 활성 탄력을 불어넣으며 여성인권운동 대중화에 기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화여대 여성학과 배출 인력들과 한국여성연구소는 여성운동 단체들을 지원하며 학문적 관계 형성을 이루고, 한편 여성단체들의 여성운동 현장은 새 학문 연구의 토대가 되는 관계를 이루며 상호간에 순환과 상승적 성과를 도모하는 연대의 흐름이 만들어진다. --- p.163 나는 충격에 빠졌다. 여성문제를 생애 과제로 삼아야겠다는 의지를 갖게 되었다. --- 「김경애, 한국여성정책연구원장」 중에서 우리들은 크리스챤아카데미 출신이라는 것만으로 늘 서로에게 힘이 되고 무슨 일이든 같이할 수 있는 동지라는 것이 중요했다. --- 「김근화(사단법인 여성자원금고 이사장」 중에서 강 원장님의 열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던 여성 인간화 강의는 너무 생생하게 남아 있다. 나는 그 교육을 통해 가정 밖으로 나와서 사회적 역할을 찾기로 했다. 강 원장님의 ‘생명존중의 철학’를 본받아 환경운동가가 되었다. --- 「서진옥(공해추방운동협의회 공동의장」 중에서 1970년대에는 노동자를 만나고 노동문제를 다루는 일에 전심을 다하며 보냈다. 모든 성과의 배훙는 강원용 원장님이라는 조종자가 있었다. --- 「신인령(전 이화여대 통장」 중에서 나는 이 교육에서 내 평생의 일감을 여성운동으로 정했고, 이화여대 대학원 시절 가족법운동, 메이퀸 폐지운동을 전개하고 이후 ‘여성의 전화’ 설립과 ‘여성신문’ 창간의 기틀을 만들어나갔다. --- 「이계경(여성신문 창간인」 중에서 1980년대 당시까지만 해도 여성계와 여성운동가들은 주부들을 사회의식이 없는 이기적인 집단으로 인식했다. 그러나 이 아카데미 주부교육을 받은 주부들은 살림(부엌)에서 세계를 내다보게 되었다. --- 「이숭리(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 공동대표」 중에서 지금까지 어디서도 경험해보지 못한 독특한 교육이었다. 노동조합의 존재 이유와 역할 등을 인식하게 한 백재봉 교수님의 노동 조합 강의, 한완상 교수님의 중간집단 역할 강의, 그리고 지도자로서의 헌신성과 사명감을 강조하는 사례 발표와 여러 차례의 토론, 과제 발굴의 워크숍 등은 여성운동, 노동운동에 헌실할 지도자 양성에 필요한 잘 짜인 의식화 교육이었다. --- 「이한순(조흥은행노동조합 여성부장」 중에서 나는 아카데미 교육을 통해 성서, 여성문제, 사회문제, 역사문제를 젠더 관점으로 재정의하고 입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 「이현숙(전 대한적십자사 부총재」 중에서 강원용 목사님의 실존주의적 강의는 매우 열정적으로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내가 아카데미 교육에 대해 비판적으로 말할 때조차 매우 흥미롭게 들으셔서 ‘열려 있구나’ 하는 신뢰감을 갖게 했다. 나도 비판에 열려 있는 사람, 진짜 대화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 「이혜경(전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이사장」 중에서 여성학은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고대로부터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지식과 학문, 그리고 거기에 기반한 권력을 비판하는 연구를 병행할 수밖에 없는 특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아무리 우수한 개개인이 숨차게 일해도 1,200년 안에 그 목표에 다가가기 어렵다. 단지 그 씨앗이 죽지 않도록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노력해야 한다. --- 「장필화(한국여성재단 이사장」 중에서 강 목사님은 중간집단을 예언자와 제사장의 역할을 하는 교회와 소외된 자 편에 서서 강한 자, 압력자에 대항/ 저항/비판을 하는 그리스동 비추어 말씀하시고, 우리 사회의 양극 사이에서 승자나 패자가 없는 화해와 협력이 강화되도록 조정자 역할을 하는 것이 중간집단이라고 설명하셨다. --- 「정숙자(이주여성교회 원로목사」 중에서 여기서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자기실현의 의지와 우리 사회의 구조 격차 해소를 위한 사회의식, 미래지향적 역사의식을 가진 ‘창조적 소수’로서 내일을 위하여 역사의 벽을 뚫는 소명을 받고 나셔려는 결단을 하게 되었다. 남녀 간의 양극화를 해소하고 자유와 평등을 통한 여성 인간화의 실현을 위하여 분투하는 것은 여성 자신의 해방만이 아니라 남성의 해방, 나아가서 인류의 평화에 기여하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의심하지 않는다. 눌린 자가 있는 곳에서 결코 평화가 있을 수 없다. 역사는 눌린 자의 해방을 위해 분투의 필연적 승리를 약속하고 있는 것이다. --- 「젊은 여성 공동 선언」 중에서 여성해방의 진정한 목표는 인간해방이므로 여성만의 노력으로 이룰 수 없는 전체 인간의 과제인 것이다. 남성우위문화에 대항하는 여성계층의식의 개발과 본의 아닌 압박자로서 남성의 의식화에 총 집중하여 노예의 윤리를 거부하고 새로운 인류사를 향한 힘찬 걸음으로 일보 전진할 것이다. --- 「여성 인간 선언」 중에서 우리는 존엄하고 동등하고 심화된 조화의 산물로 인간을 창조하신 당신의 섭리를 믿습니다. --- 「여성사회를 위한 기도」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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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강 여성’의 산실로 성장
1960~1970년대 여성 의식 교육의 산실이었던 크리스챤아카데미 이곳을 거쳐 간 수많은 젊은 여성들이 한국을 움직이는 주요 인사들로…… 윤후정 여성특별위원회 위원장, 신낙균 문화관광부 장관, 이인호 주러시아 대사, 정의숙 이화여대 이사장, 박영숙 한국환경사회정책연구소 소장, 권영자·정희경 국회의원 등은 당시 크리스챤아카데미의 프로그램 위원이나 이사·강사로 참여, 여성 지도자 육성에 힘을 쏟아왔던 사람들이다. 당시 중간 지도자 집단 합숙 교육에 참여했던 인사로는, 박인덕 여성개발원 원장, 김근화 여성자원금고 이사장, 이정희 중앙대 교수, 이종경 관악청소년회관 관장, 차명희 여성특위 사무처장, 강기원 변호사 등이 있다. 아카데미의 실무를 맡았던 직원 출신 역시 각계에서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 김희선 국민회의 여성특위 위원장, 손덕수 효성여대 교수, 장필화·신인령·이상화 이화여대 교수, 이계경 여성신문사 사장, 이정자 녹색소비자연대 공동대표, 이혜경 여성예술문화기획 대표, 진민자 청년여성문화원 이사장 등이 있다. _중앙일보 1998년 5월 14일(책 표지 4면 참조) “크리스챤아카데미 교육 모델이 사회개혁을 위한 의식화 교육의 좋은 모형으로서 원용되고 발전적으로 보완되어, 차별이 없는 평등한 사회, 인간화의 세상을 실현하는데 주역을 할 운동 주체들이 양산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 이정자 ‘기록을 시작하며’에서 “여성중간집단교육은 인간화 사회를 실현할 여성지도력을 키우는 교육이었다. 목적한 바대로 이 교육생들은 그 후 성차별을 해소하고 여성의 사회·정치 참여를 이끄는 일에 큰 역할을 했고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여성중간집단교육은 한국 여성운동에 한 획을 그었다고 자부할 수 있다.” - 여해(如海) 강원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