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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즐 바디
작품해설 이지은 - 조각난 우리의 신체는 무엇으로 꿰맬 것인가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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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만 보던 얼굴을 살짝 치켜들자 온화한 보름달이 눈에 들어왔고 찬 공기가 코끝을 스쳤다. 가슴이 크게 부풀어 오를 정도로 숨을 들이마시자 불을 켠 듯 정신이 맑아졌다.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아빠가 살아 있었으면 데리러 와달라고 했을 텐데. 나는 밤하늘이 울릴 만큼 엉엉 소리 내 울다가 아빠가 보름달처럼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에 손으로 눈물을 닦고, 양팔을 흔들며 씩씩하게 집으로 걸어갔었다.
--- p.34 사람 하나 죽어도 기사 한 줄 없이 조용히 묻히고, 사람 목숨값은 적당한 돈으로 치르고, 공장은 아무렇지 않게 돌아간다. 위로금과 피해 보상금을 줘서 고맙다고 해야 하나? 그러나 돈을 주면 뭐 할까, 아빠가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데. --- p.55 한의 표정이 매서워졌다. 얼마나 울었는지 얼굴이 불어터진 만두 같았지만, 눈빛만은 형형했다. 그건 자신이 누구인지 확고하게 알고 있으며, 자신을 지우려는 이와 싸우겠다는 의지로 가득한 사람의 눈빛이기도 했다. 불안해하며 흔들리더라도 그런 마음까지 끌어안고 서 있는 사람. --- p.68 나는 오히려 한이 누군가를 의지하고 싶어 해서 기뻤다. 혼자 참고 버티는 게 아니라 도움을 요청할 줄 알아서 안심했다. 그리고 내가 그때 도움을 받은 만큼,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었다. --- p.88 “그냥, 그냥 말하고 싶었어요. 좋아하는 마음이 점점 커져서 흘러넘치니까 어쩔 수 없어요.” --- p.127 내가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자 약속을 하듯이 한은 자신의 새끼손가락에 내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나는 얽힌 손가락을 풀려고 오른손으로 손가락을 덮으면서 재빨리 손가락을 바꿨다. 손가락이 바뀐 걸 깨달은 한의 얼굴이 빛이 들어온 듯 환해졌다. 그게 너무 싱그러워 보여 나도 덩달아 웃고 말았다. --- p.128 나는 내가 할 수 있을 만큼 근사한 어른이 된 한의 모습을 상상해봤다. 그러나 이내 내게 제일 강렬했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잔뜩 긴장한 채 무릎을 꿇었으면서도 반짝반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한에게, 용기와 진심을 담아 나를 좋아한다 마음을 전했던 한에게 인사를 건넸다. --- p.1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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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나이에 어머니를 잃고 열여덟에는 무리한 할당량을 맞추려다 산재로 아버지를 잃은 ‘나(이하나)’. 열여덟일 때 사람들은 ‘나’에게 무엇이든 해도 된다고 이야기했지만, 스물여덟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전전하는 지금은 돌아가신 부모 보기 부끄럽지 않느냐며 평가하고 깎아내린다. 그런 ‘나’는 역시나 아르바이트를 가던 길, 맞은 초록색 빛 속에서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는데 그 이후 신체가 퍼즐처럼 분리되기 시작하고 그로 인해 연구소에 납치까지 당하게 된다. 연구소에는 중년 여성 ‘김미영’, 중년 남성 ‘조기훈’, 동갑 남자애 ‘서현우’, 그리고 성별을 알 수 없는 열여덟 청소년 ‘이한’이 이미 머물고 있었다. ‘나’는 처음에 이들을 경계하나 결국 의지하게 된다. 이 중 ‘나’는 부모의 보살핌이 필요한 열여덟이라는 나이에 부모를 잃어본 적이 있는 경험 탓에 그때와 같은 나이인 ‘이한’에게 못내 관심이 간다. 그러던 중 컨디션이 안 좋은 ‘이한’의 식사를 챙기러 그의 방에 갔던 날, 둘은 처음으로 진솔한 대화를 나눈다. 생물학적 성별은 여성이지만 스스로를 남성으로 여기는 ‘이한’의 가슴이 분리된 것을 엄마에게 들켰을 때 병원을 다녔던 일, 이런 자신이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는지. ‘나’는 ‘이한’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며 자신도 다를 바 없이 “이상하다고” 보듬어준다.
연구소의 실험이 진행될수록 하나씩 곁에 있던 이들은 희생당하며 사라지고, ‘나’와 ‘이한’만 남게 된 어느 날, ‘이한’은 ‘나’에게 고백해 온다. “좋아하는 마음이 점점 커져서 어쩔 수가 없어요. 사귈 수는 없겠죠?” ‘나’는 나이 차를 이유로 거절하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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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된 몸 조각이 자본에 의해
탈취된 세상에서 찾은 연대의 가능성과 빼앗긴 소중한 이를 위한 복수의 극 하늘에서 무작위로 쏘아진 ‘초록색 빛’을 맞은 몇몇 이의 ‘몸(바디)’이 ‘퍼즐’처럼 분리되기 시작한 현재, 『퍼즐 바디』는 심장 이식이 필요한 거대 기업의 후계자인 ‘김리사’를 보여주면서 막을 올린다. 알 수 없는 연구소로 ‘나’(이하나)가 납치되면서 본격적인 전개가 시작된다. 도입에서부터 이 연구소를 세운 것은 다름 아닌 거대 자본이며, “거대 자본이 당신의 심장을 노리고 있음”을 경고한다. 이 연구소에서 ‘나’는 네 명의 피실험자를 만난다. 맨 처음엔 이들을 경계하지만, 연구소의 실험에 협조하면 “2주만 있어도 천만 원”이 넘는 돈을 “몸 편하고 마음 편”하게 벌 수 있다고 소탈하게 말하는 걸 듣고는 연구소와 한패가 아닌, 그저 가난하고 소외된 보통의 사람들일 뿐임을 알고 마음을 터놓는다. 그중 가장 마음에 쓰이는 존재는 열여덟 청소년 ‘이한’. ‘이한’과 같은 나이에 산재로 아버지를 잃었던 경험이 있는 ‘나’는, 생물학적 성별로는 여성이지만 스스로 받아들이는 성별은 남성인 ‘이한’이 자신에게 달려 있는 “가슴이 싫”다 “못해 혐오스”럽다고 울면서 털어놓자 그 상처를 보듬어주고 그를 있는 그대로의 존재로 받아들여준다. 한편, 연구소의 음모로 인해 다른 피실험자들은 모두 희생당하고, 세상에 이한과 둘만 남은 듯한 어느 날 ‘나’에게 살며시 좋아한다는 마음을 고백해 온 ‘이한’ 역시 사라진다. 이 과정에서 혼자 남은 ‘나’는 자신이 다른 피실험자들과 다른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깨닫고, ‘이한’이 건넨 고백에 제대로 마주하기 위해서라도 거대 자본에 대한 복수를 다짐한다. 『퍼즐 바디』는 시작과 끝에 같은 장면을 배치하며 독자에게 묻는다. “거대 자본이 당신의 심장을 노리고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생명도, 신체 일부도 돈으로 계측”되고 사람을 바꿔 끼울 수 있는 쉬운 부품으로 여기는 세상, 소설이 던지는 질문은 우리가 직면한 현실에서 그다지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소설은 이 위협에 도리어 “자본(가)의 심장을 터트”리는 상상력으로 응수한다. 이러한 상상력의 기반은 우리의 삶이 “늘 누군가에게”, 혹은 “무언가에 기”댈 수 있는,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믿음이다. 그것은 ‘퍼즐 조각’에 불과했던 이들이 ‘나’의 몸을 통해 연대함으로써 결말부의 복수로 이어지는 가능성의 세계를 펼칠 수 있게 한다. “사랑하는 이를 향한 두근거림보다 세상을 더 크게 뒤흔드는 힘이 있던가” 하는 파문을 독자들에게 남기면서 말이다. 잔혹한 그럼에도 아름다운, 김청귤 소설이 지닌 “해방적 상상력의 핵심”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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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즐 바디』는 사람들의 신체를 상품화하는 자본에 대항하여 조각난 신체들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네트워크를 보여준다. 자본(가)은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사람들의 신체를 부위별로 뜯어 제 몸에 연결하지만, 소설은 이를 뒤집어 탈취당한 신체 조각이 타인의 감각을 훔치는 상상력으로 응수한다. 이하나가 타인과 결합한 자신의 신체 조각을 통해 감각을 확장할 때, 이하나의 조각난 신체는 더 이상 도난당한 것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그러나 이하나의 감각이 확장되었다고 해서 타인을 지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바로 여기에 김청귤 소설이 보여주는 해방적 상상력의 핵심이 나타난다. (……) 사랑을 통해서 자본(가)의 심장을 터트리는 소설의 결말은 누군가에게는 다소 낭만적으로 다가갈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를 향한 두근거림보다 세상을 더 크게 뒤흔드는 힘이 있던가. 사랑은 우리의 조각난 신체를 연결하고, 사랑하는 이를 향한 두근거림은 하늘을 울리고 땅을 뒤흔드는 힘이 되어 기성의 질서를 위협한다. - 이지은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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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되고 누군가에게 임시로 혹은 영구적으로 소유될 수 있는 ‘퍼즐 바디’는 다른 누군가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연대의 몸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몸을 통제의 대상으로, 소유의 대상으로만 보는 이는 공감할 수도, 예상할 수도 없는 연대이다. (……) 그들이 퍼즐 조각을 맞추며 자기만의 그림을 그려나갈 적에, 퍼즐 조각이 그들에게 반기를 들며 그림을 망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해본 적이 있었을까? 아마 퍼즐 조각들이 반기를 들 수는 있어도, 그림을 망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퍼즐 조각일 뿐이니까. 그러나 이들은 그저 조각이 아니다. 자기만의 몸을 가진 이들이다. 그 몸이 언제든 분리될 수 있는 퍼즐 바디라 할지라도 말이다. 오히려 이들은 분리될 수 있기에 언제든 다른 이와 함께 합쳐질 수 있고, 이어질 수 있으며 연대할 수 있다. - 김이삭 (소설가,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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