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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CHAPTER 1 - 풍경 1. 그날의 노을이 내게 말하려던 것 코타키나발루, 침묵하는 하늘 아래 2. 첫사랑처럼 간직한 마을 할슈타트, 시간이 멈춘 호숫가에서 3. 바다를 내려다본 날 그레이트 오션 로드, 끝없는 수평선과 마주하다 4. 깎이고 다듬어진 풍경처럼 내 삶도 그렇게 반들거렸다 게이랑에르와 송네피오르, 피오르의 시간 5. 리틀 펭귄이 가르쳐준 돌아가는 길 퍼핑빌리에서 필립 섬까지, 작은 생명이 건네는 위로 6. 가을의 나무들처럼 늦게야 비로소 내가 보인다 도쿄의 공원들, 단풍 아래 서다 7. 살아지는 삶을 보다 동유럽 마을, 자연스럽게 흐르는 시간 CHAPTER 2 - 사람 8. 문명의 흔적과 아이의 눈빛 사이에서 캄보디아, 찬란함과 가난이 공존하는 땅 9. 젊은 그녀와 늙은 나, 그 사이의 시간 삿포로의 청명한 하늘 아래 10. 김치 냄새와 손자 사진 사이 튀르키예 패키지, 시끄러운 사랑과 고요한 여행 11. 동화는 해피엔딩이 아니다 코펜하겐, 안데르센이 남긴 슬픔 12. 황금빛 감옥에서 이름을 잃은 여자들 쇤브룬 궁전, 가장 아름다운 새장 13. 윤동주를 찾아간 길 용정에서 교토까지, 이국의 흙에 누운 이름 14. 고독한 천재들의 삶이야말로 진정한 예술품이다 가우디와 미켈란젤로, 신을 향한 응시 CHAPTER 3 - 사물 15. 프라하의 시계, 고통이 깎아낸 아름다움 오를로이, 눈 먼 장인의 마지막 손길 16. 성당의 빛이 내게 말을 걸던 날 스테인드글라스, 빛은 어둠 속에서 빛난다 17.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루브르 박물관, 모나리자 앞에 서다 18. 천지 위에 피어오른 무지개 백두산, 언젠가 다시 만나자 19. 이름이 남지 않아도 화폐는 역사를 쓴다 한 장의 지폐가 말하는 시대의 얼굴 20. 비빔밥, 덮밥, 볶음밥 같은 곡식에서 다른 문화가 자라다 CHAPTER 4 - 공간 21. 에페스 공중화장실 터 유적보다 사람이 먼저 보이는 곳 22. 부엌에서 멀어질수록 나는 나에게 가까워진다 아궁이, 화로, 그리고 여자들의 자리 23. 살아가는 것은 죽어가는 것이다 성 슈테판 대성당의 카타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 24. 공간은 영광을 기억하고 상처도 놓치지 않는다 만리장성에서 자금성까지, 돌과 흙 위를 살다간 이들 25. 온천, 여자들의 숨구멍 같은 공간 운젠과 사쿠라사쿠라, 따뜻한 물 속의 고요 26. 어둠 속에서 오래된 이야기들이 걸어나왔다 프라하의 밤, 조용한데 깊었던 도시 27. 40여 년 만에 현실이 된 상상 알람브라 궁전, 기억의 공간이 공간의 기억으로 에필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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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의 여행이 풍경을 수집하는 일이었다면 지금의 여행은 나를 비워내는 일이다. 시간이 나를 흘려보내는 줄 알았는데 실은 내가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는 깨달음 같다.
--- p.23 이제 나는 안다. 여행은 세상을 보는 일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나를 다시 만나는 일이라는 것을. 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풍경의 안과 밖을 서성인다. 그 경계 위에서 비로소 ‘살아 있음’을 배운다. 그리고 아주 가끔, 이유 없이 눈가가 젖는다. 잊지 않고 살아온 시간들이 나를 안아주는 순간들이 있어서 그렇다. --- p.28 같은 풍경을 보아도 마음이 다르면 세상이 달라진다. 그의 눈에는 절규가 보였고 내 눈에는 평화가 스며있었다. 젊을 때는 상처를 먼저 보고, 나이 들면 빛을 먼저 본다. 마음이 자란 것이다. --- p.37 여행이란 타인의 일상 속에서 예술 을 보고 내 삶의 결을 다시 고르게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나는 그곳에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살아지는 삶을 보았다. 삶이란 잘 사는 것보다 편안히 살아지는 순간을 찾는 일이다. --- p.61 시인이 묘사한 새벽은 차고 맑았지만 내 새벽은 춥고 고독했다. 그 외로움 속에서 나는 조금씩 단단해졌다. 눈물이 나를 약하게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울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살렸다. --- p.82 나이 든다는 건 세상을 바꾸는 힘이 아니라 세상을 밝히는 빛을 닮아가는 일일지도 모른다. 힘이 아니라 결로 남는 삶. 세상은 소리보다도, 흔적보다도, 빛으로 남는 사람을 오래 기억한다. --- p.141 칠십 문턱에 다다른 지금, 나는 여행지에서 화려한 성당이나 박물관보다 사람의 자취가 묻은 자리를 눈여겨보게 된다. 오래 산만큼 알게 된 것이 있다면 문명과 문화는 결국 일상 의 방식에서 드러난다는 사실이다. 사람이 밥을 짓고, 씻고 또 비우는 자리. 그 소소한 공간 이 한 나라의 마음을 말해준다. --- p.179 나에게 튀르키예는 풍경이 아니라 마음의 날씨였다. --- p.184 내가 여행을 시작한 이유 중 하나도 바로 그 부엌에서의 해방이었다. 가스레인지 대신 지도를 펼치고 냉장고 문 대신 도시의 문을 여는 시간. 저녁 메뉴 대신 하룻밤의 쉼을 고민하는 순간이 얼마나 달콤한지. 오랜 세월 당연하다고 여겼던 가사 노동에서 잠시라도 벗어나는 자유. 그게 여행의 맛이었다. --- p.190 나의 자리도, 여인의 자리도, 한평생의 자리도. 부엌에서 멀어질수록 나는 나에게 가까워진다. 그리고 다짐한다. 다음 세대의 딸들은 부엌이 말뚝이 아닌 선택이 되기를. 집 밥이 의무가 아닌 기쁨이기를. 삶의 중심은 더 이상 불이 아니라 사람이어야 한다. --- p.192 아픔과 예술, 저항과 사랑, 고요함과 열망 그 모든 것이 오래된 시곗바늘처럼 천천히, 그러나 정확하게 움직인다. 나는 그 속에 잠시 서 있었다. 그 흐름을 바라볼 수 있었던 행운을 누렸다.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보이는 풍경이 있다. --- p.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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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 마지막으로 ‘나’였던가.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었나. 나는 어떤 풍경 앞에서 가슴이 뛰었나. 막막해진다. 대답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질문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 질문 앞에 선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여행은 새로운 것을 보러 떠나는 일이다. 젊은 날의 여행은 그랬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많은 곳에 도장을 찍고 더 많은 사진을 남기는 일. 얼마나 멀리 갔는지, 얼마나 많이 봤는지가 여행의 성과였다. 그러나 나이 듦의 여행은 낯선 풍경 앞에서 잊고 있던 나를 다시 만나는 일이다. 멀리 갈수록 오히려 가까워지는 것이 있다. 바로 나. 호수 앞에 서면 까맣게 잊고 있던 스무 살이 떠오른다. 노을 앞에 서면 함께 늙어온 사람의 젊은 얼굴이 겹쳐진다. 오래된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올려다보며 문득 돌아가신 아버지의 기도하는 뒷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풍경은 창문이다. 바깥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실은 안을 비추는 창문. 그래서 같은 곳을 가도 사람마다 다른 것을 본다. 풍경은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젊은 날의 여행이 채우는 일이었다면 칠십의 여행은 비워내는 일이다. 더 많이 보려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보려는 것. 더 많이 갖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남았는지 돌아보는 것. 젊을 때는 상처를 먼저 보지만 나이 들면 빛을 먼저 보게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것은 체념이 아니다. 마음이 자란 것이다. 세상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 것이다. 나이 듦이란 잃어가는 것이 아니라 비로소 본질을 만나는 일이라는 것을 이 책은 조용히 보여준다. 우리 사회는 나이 듦을 두려워하라고 가르친다. 젊음을 잃는 것, 건강을 잃는 것, 자리를 잃는 것, 쓸모를 잃는 것. 나이 듦은 늘 상실의 언어로 이야기된다. 그러나 나이 듦은 역할에서 벗어나 비로소 존재로 돌아가는 일이다.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라 무엇이 남았느냐를 묻는 시간이다. 그 시간은 두렵기도 하지만 동시에 처음으로 ‘나’를 만나는 시간이다. 아직 칠십에 도착하지 않은 사람에게 이 책은 미리 건네는 풍경이다.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 시간에 빛이 있다고, 오히려 그때 비로소 진짜 여행이 시작된다고 말해주는 책. 이미 그 시간을 지나온 사람에게는 자신의 여정을 비추는 거울이다. 나만 그랬던 것이 아니구나, 누군가도 같은 풍경 앞에서 같은 마음이었구나, 하는 위로를 건네는 책. 그리고 지금 어딘가에서 역할의 무게에 지쳐 있는 사람에게는 약속이다. 언젠가 ‘나’의 시간이 온다는 약속, 그 시간이 반드시 온다는 약속이다. 시바타 도요 할머니는 아흔여덟에 글을 세상에 내보였고, 모지스 할머니는 일흔여섯에 붓을 들어 백 살에 사랑받는 화가가 되었다. 뒤늦은 시작이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이 가장 이른 때다. 단순한 여행서였다면 이 책은 출간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이 전하고 싶은 것은 어디에서든 결국 나를 만나게 된다는 것. 풍경 앞에 서면 결국 내 인생이 비친다는 것. 여행의 끝에서 마주하는 것은 새로운 세상이 아니라 오래된 나 자신이라는 것. 이 책은 그것을 말하고 싶었다. 『칠십 여행』은 한 사람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모두의 이야기다. 저자만의 특별한 경험이 아니라 누구나 겪게 될 보편적인 시간에 대한 기록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일은 남의 여행을 구경하는 일이 아니라 내 여행을 미리 걸어보는 일이다. 혹은 이미 걸어온 길을 다시 돌아보는 일이다. 책장을 덮고 나면 한 가지 질문이 남을 것이다. 나는 언제 ‘나’로 떠날 것인가. 그 질문이 남는다면 이 책은 할 일을 다 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