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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라, 기억이여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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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머리말 9

말하라, 기억이여

1장 21
2장 37
3장 59
4장 92
5장 111
6장 140
7장 166
8장 181
9장 205
10장 230
11장 254
12장 270
13장 298
14장 324
15장 347
‘16장’ 또는 ‘『결정적 증거』에 대하여’ 367
도판 389

해설
기억의 예술가 나보코프 401

옮긴이의 말 415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연보 419
색인 425

저자 소개2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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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ladimir Nabokov,ладимир Владимирович Набоков

1899년 4월 23일 러시아의 성 페테르부르크에서 부유한 귀족 가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나비 채집에 열중하였고 사랑에 빠져 시를 짓는 순수한 청년으로 자란 그는 많은 유산을 상속받았지만 1919년 볼셰비키 혁명으로 모든 것을 잃고 가족과 함께 독일로 망명했다.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불문학과 러시아 문학을 공부한 후, 베를린과 파리에서 거주하면서 시린Sirin이라는 필명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러나 1940년 나치를 피해 다시 미국으로 이민해야 했다. 미국으로 건너가 시인, 소설가, 비평가, 번역가로서 활동하며 웨슬리, 스탠퍼드, 코넬 그리고 하버드
1899년 4월 23일 러시아의 성 페테르부르크에서 부유한 귀족 가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나비 채집에 열중하였고 사랑에 빠져 시를 짓는 순수한 청년으로 자란 그는 많은 유산을 상속받았지만 1919년 볼셰비키 혁명으로 모든 것을 잃고 가족과 함께 독일로 망명했다.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불문학과 러시아 문학을 공부한 후, 베를린과 파리에서 거주하면서 시린Sirin이라는 필명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러나 1940년 나치를 피해 다시 미국으로 이민해야 했다. 미국으로 건너가 시인, 소설가, 비평가, 번역가로서 활동하며 웨슬리, 스탠퍼드, 코넬 그리고 하버드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다가 1955년 『롤리타』의 기념비적인 성공으로 교수직을 그만두고 글쓰기에만 전념한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나보코프는 자신이 쓴 영어 원작의 대부분을 스스로 러시아어로 옮겼고, 또한 자신의 러시아 원작을 영어로 옮기는 작업을 하기도 했다. 그는 이차 대전 후 미국 작가 중 가장 연구가 활발한 작가 중 한 사람으로 영어로 씌어진 단행본 연구서만 해도 약 50여 권이며 그 외 수없이 많은 학위 논문, 연구 논문, 서평 등이 나와 있다. 그의 주요 작품으로는 『세바스찬 나이트의 진짜 인생』『롤리타』『프닌』『재능』『창박한 불꽃』 등이 있으며, 1961년 스위스로 건너가 1977년 스위스에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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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시나리오 작가, 번역가. 연세대학교 문과대학에서 러시아문학과 영문학을, 동대학원에서 러시아문학을 전공했다. TV 단막극 집필과 연극 무대 경험을 거친 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전문사 영화과에서 시나리오를 전공했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말하라 기억이여』(2007), 미하일 레르몬토프의 『우리 시대의 영웅』(2009)을 번역했고, 단편영화 ‘피팅룸’(2012), ‘미스터 쿠퍼’(2015)를 연출했다. 2013년부터 이창동 감독의 시나리오 작가로 일하면서 여러 프로젝트를 거친 끝에 ‘버닝’(2018)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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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12월 26일
쪽수, 무게, 크기
432쪽 | 140*210*30mm
ISBN13
9791141602840

책 속으로

현재의 『말하라, 기억이여』 최종판에서는 최초의 영어판을 기본적으로 손보고 풍부한 내용을 보탰을 뿐 아니라, 영어판을 러시아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수정한 내용들을 다시 적용하기도 했다. 애초에 러시아어로 새겨져 있던 기억을 영어로 서술하고 그것을 러시아어로 바꿨다가 다시 영어로 바꾼 이 작업은 분명 진저리나는 일이었지만, 나비에게는 익숙한 이런 몇 겹의 변태 과정을 인간이 시도한 적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 조금 위안이 되기도 했다.
--- p.13

나를 빚어낸 도구의 정체, 삶이라는 인쇄지에 예술의 등불을 비춰야 그 독특한 무늬가 보이도록 내 삶에 특별히 복잡한 워터마크를 찍어놓은 그 알 수 없는 롤러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환경적 요인에서도 유전적 요인에서도 찾아낼 수가 없다.
--- p.28

마치 몇 년 안에 자신의 세계에서 실재하는 부분이 사라져버릴 것을 예감하기라도 한 듯, 어머니는 우리 시골 영지 곳곳에 흩어져 있는 다양한 시간의 표식들을 의식하는 특별한 능력을 연마했다. 지금 내가 어머니의 모습과 나의 과거를 열정적으로 회상하듯, 어머니도 자신의 과거를 소중히 간직했다. 그러므로 나는 어떤 의미에서 절묘한 환영?아름답지만 만질 수 없는 재산,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영지?을 물려받은 셈이다. 이는 이후의 상실을 견뎌내기 위한 탁월한 훈련이었음이 판명됐다.
--- p.46

놀랍게도, 평범한 사람은 나비를 거의 알아채지 못한다. 배낭에 카뮈의 책을 넣고 다니는 건장한 스위스인 도보여행자에게 내려오는 길에 나비를 봤느냐고 질문하자 그는 “전혀요”라고 차분하게 답했다. 의심 많은 내 동행인을 위해 일부러 물었는데, 방금 전 그 길에서 우리는 나비 무리에 둘러싸여 즐거워했던 것이다. 세세한 부분까지도 기억이 나지만, 1906년 여름 이전, 즉 내가 표본에 붙인 첫번째 꼬리표의 날짜보다 더 이전에 방문하고 다시 가본 적 없는 특정한 길의 모습을 떠올릴 때도 마찬가지다. 마치 사악한 주문이 아드리아해 연안에 걸려 모든 ‘렙스’(우리끼리 쓰는 속어적인 표현)를 보이지 않게 만들기라도 한 것처럼, 기억 속의 그 길에선 날개 한 장, 날갯짓 한 번, 스쳐지나가는 파란 빛 하나, 나방으로 장식된 꽃 한 송이도 떠오르지 않는다.
--- p.153

회색빛 겨울 아침, 밝은 호텔방 거울 속에서 나는 이제 일흔 살이란 나이를 먹어버린 여행가방, 그때와 같은 바로 그 가방의 빛나는 자물쇠를 보고 있다. 돼지가죽으로 만들어 높이와 무게가 제법 있는 이 여행 필수품에는, 두꺼운 은색 실로 ‘H. N.’이라는 글자가 그와 비슷한 은색 왕관 장식 아래 정교하게 수놓아져 있었으며, 1897년 어머니가 피렌체로 신혼여행을 갈 때 구입한 것이었다. 이 가방은 1917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크림반도를 거쳐 런던까지 한 줌의 보석을 운반했다. 1930년 무렵 크리스털과 은으로 된 값비싼 부속들은 전당포에 잡혔고, 뚜껑 안쪽에 교묘하게 고안된 가죽 홀더들만 덩그러니 남았다. 하지만 이 손실은 그후 30년 동안 나와 함께 여행하면서 충분히 만회됐다. 프라하에서 파리로, 생나제르에서 뉴욕으로, 그리고 46개 주州에 걸쳐 2백 개가 넘는 모텔방과 임대주택의 거울들을 지나면서. 우리의 러시아적 유산 가운데 가장 끈질긴 생존자가 여행가방이라는 사실은 논리적이면서도 상징적이다.
--- pp.168-169

우리집은 모르스카야 거리 47번지였다. 옆으로 오긴스키 공작의 집(45번지), 이어 이탈리아 대사관(43번지), 그리고 독일 대사관(41번지)이 있었고, 다음으로는 광활한 마리아 광장이 나왔으며, 광장을 지나면 다시 집들의 번지수가 줄어들었다. 광장 북쪽엔 작은 공원이 있었다. 그 공원의 보리수나무에서 어느 날 귀 한쪽과 손가락 하나가 발견됐다. 광장 반대편에 있는 자기 방에서 치명적인 소포를 꾸리던 테러리스트가 그만 실수를 저지르고 남긴 잔해였다. 바로 그 나무들(자갯빛 안개 속에서 마치 은세공 무늬처럼 보였고, 안개 너머 배경에는 성 이사크 대성당의 청동 돔이 솟아 있었다)이 첫번째 혁명(1905~1906년)을 진압하던 기마 헌병들에게서 도망치려고 나뭇가지 위로 올라갔다가 무차별적으로 총에 맞고 떨어진 아이들을 목격하기도 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광장과 거리에는 이러한 소소한 이야기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 pp.218-219

마켓 플레이스의 서점 가판대에서는 기대치 않게 러시아어 작품과 마주쳤는데, 달의 네 권짜리 『현대 러시아어 해석 사전』 중고책이었다. 나는 그 책을 사 와서, 하루에 적어도 열 쪽씩 읽으면서 특히 마음에 드는 단어와 표현을 적어두기로 결심했고, 상당히 오랫동안 그렇게 했다. 내가 러시아에서 가지고 올 수 있었던 단 한 가지인 언어를 외국의 영향으로 인해 잃어버리거나 오염시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확실히 병적이었고, 20년 뒤에 내 영어 산문이 결코 러시아어 수준 근처에도 가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경험하게 된 두려움보다 훨씬 더 나를 괴롭혔다.
--- pp.313-314

그 망명의 세월을 돌아보면, 나 자신, 그리고 수천 명의 러시아인이 물질적으로는 빈곤하지만 지적으로는 사치스러운, 기묘하지만 결코 불쾌하지는 않은 삶을 영위하는 것이 보인다. (……) 하지만 가끔, 사실은 매우 빈번하게, 우리가 우리의 묵은 상처와 예술을 태연히 뽐내며 행진하던 그 유령 같은 세계는 무시무시한 경련을 일으켰고, 누가 형체 없는 포로이며 누가 진정한 주인인지를 보여줬다. 우리의 정치적 피신을 차갑게 허용해준 이런저런 나라들에 우리가 육체적으로 완전히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 쓰레기 같은 ‘비자’라든지 악마 같은 ‘신분증’을 발급받거나 연장해야 할 때면 고통스럽게 명백해졌다.
--- p.325

그러나 적어도 그들은 반역자들이었다, 러시아문학이 존재해온 이래로 대부분의 주요한 러시아 작가들이 그러했듯이. 정의와 자유에 대한 그들의 감각은 차르의 압제에 숨죽이던 시절만큼이나 강렬히 모반 상태를 갈망했고, 그들은 그 상태에 충실했다. 그리고 소비에트연방의 응석받이 작가들의 행태를, 정부 법령의 온갖 미묘한 뉘앙스에 빠짐없이 답하는 작가들의 노예근성을 몹시 비非러시아적이고 인간 이하라고 여겼다. 그곳에서는 레닌과 스탈린의 정치경찰이 점점 더 능률을 높여가는 동안, 그에 정확히 비례하여 엎드려 기는 기술이 발달하고 있었으며, 성공적인 소비에트 작가란 정부의 지침이 요란하게 울려퍼지기 전에 작은 속삭임을 알아들을 만큼 청력이 좋은 사람을 의미했다.
--- p.333

또 한 명의 독립적인 작가로는 이반 부닌이 있었다. 나는 그의 유명한 산문보다는 잘 알려지지 않은 운문을 더 좋아했다(그의 작품 세계에서 양자의 관계는 하디의 경우를 연상시킨다). 당시 그는 노화라는 개인적인 문제를 몹시 신경쓰고 있는 듯했다. 그가 내게 처음으로 한 말은, 자신이 나보다 서른 살이나 더 많은데도 자세가 더 좋다며 만족스럽게 말한 것이었다. 그는 얼마 전에 받은 노벨상의 영예를 누리는 중이었고,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자며 파리의 비싸고 세련된 식당으로 나를 초대했다. 불행히도 나는 레스토랑과 카페를, 특히 파리에 있는 것들을 병적으로 싫어한다. (……) 식사가 끝나갈 즈음 우리는 서로에게 완전히 질려버렸다. “자넨 끔찍한 고통과 완전한 고독 속에서 죽을 거야.” 물품보관소로 향하는 길에 부닌은 매섭게 말했다.
--- pp.336-337

여기서 반드시 이해해야 할 것은, 체스 문제에서 경쟁이란, 흰 말과 검은 말 사이가 아니라 출제자와 가상의 응시자 사이에서 벌어진다는 점이다(이것은 마치 일류 소설에서 진정한 갈등이 등장인물들 사이가 아니라 작가와 세계 사이에서 벌어지는 것과 같다).
--- p.342

이처럼 늘어져 빈둥거리는 상태 덕분에 무엇보다 먼저 호모 포에티쿠스가 형성될 수 있었다?그가 없었다면 사피엔스 또한 진화할 수 없었을 것이다. (……) 만국의 노동자여, 해산하라! 옛날 책들은 틀렸다. 세계는 일요일에 만들어졌다.
--- p.351

나보코프와 『뉴요커』의 관계를 이처럼 길게 이야기한 이유는 독자들이 이와 같은 사정을 알고 스스로 판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편집자가 작가에게 그가 아끼는 문장이 문법적으로 엉망이고, 그것을 개선하지 않는 한 글을 실을 수 없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면, 작가의 완전성이라는 문제는 애초에 제기될 여지조차 없다고 본다. 반면, 잡지가 평균 독자의 수준을 과소평가해 암시나 우회적 표현, 숨겨진 의미를 이해할 능력이 없다고 무시하는 경우라면, 나는 금전적 손해가 따르더라도 작가가 양보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 pp.385-386

출판사 리뷰

우리가 몰랐던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삶
러시아에서 보낸 유년 시절부터 서유럽과 미국으로 망명하기까지


자서전 『말하라, 기억이여』는 나보코프가 원숙한 중년기로 접어든 1940년대, 『롤리타』와 비슷한 시기에 집필을 시작해 끊임없이 고쳐 쓰며 각별한 애정을 쏟았던 작품이다. 혁명으로 인해 자신이 속했던 세계와 고통스럽게 단절되었고, 평생 여러 나라를 전전했으며,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글을 써야 했던 나보코프. 언어를 통해 기억을 되살리는 것, 다시 말해 ‘기억이 말하도록’ 하는 것은 그에게 있어 필연적인 과업이었고, 그는 다름 아닌 자서전을 통해 그 과업을 수행하고자 했다.

구성부터 평범하지 않은 이 자서전은 우선 여러 판본의 출간 및 개정 과정을 설명한 머리말로 시작한다. 이어지는 1장부터 15장까지는 매우 느슨한 연대기적 배열을 따르되 시간의 흐름보다는 나비, 체스, 가정교사 등 주제에 따라 모은 기억의 편린들이 담겨 있다. 마지막 16장은 나보코프 자신이 이 자서전에 대해 쓴 서평이며, 18점의 도판과 작가가 직접 만든 색인도 빼놓을 수 없다.

수천만 부가 팔리며 세계적 신드롬을 일으킨 『롤리타』는 나보코프에게 부와 명성을 가져다주며 그의 이름을 문학의 전당에 아로새겼다. 하지만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진짜 인생’은 그 모든 성공과 논란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은 듯하다. 작가 이전의 나보코프는 대단한 명문가의 귀족 도련님이었고, 나비를 먹어본 적도 있을 만큼 열광적인 나비 애호가였으며, 축구에 관한 시를 쓰고 골키퍼 역할에 푹 빠져 있던 청년이었다. 『말하라, 기억이여』에는 이렇듯 우리가 알지 못했던 나보코프의 다채로운 면모가 담겨 있다.

1899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나보코프의 유년 시절은 무척 유복했다. 차르의 전제정치와 볼셰비키 독재에 맞서 싸운 지식인이었던 아버지에 의해 수준 높은 교육을 받았고, 자연과 동물을 사랑하며 예민한 감수성을 지녔던 어머니의 영향 역시 깊게 받았다. 소년 나보코프는 나비 채집과 시 창작을 즐기며 자연과 예술을 마음껏 누렸다. 그러나 1917년 러시아혁명이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먼저 크림반도로 피신했던 나보코프 가족은 1919년 결국 조국을 뒤로하고 망명길에 올랐다. 나보코프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문학을 공부한 뒤, 독일과 프랑스에서 본격적인 작가생활을 시작해 이반 부닌, 블라디슬라프 호다세비치 등 망명 작가들과 교류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세계대전과 나치의 박해가 유럽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고, 그는 1940년 첫 영어 소설을 들고 미국으로 떠난다.

『말하라, 기억이여』는 그가 미국으로 건너가기 직전인 사십대 초반까지의 삶을 다루고 있다. 이후의 삶을 담은 ‘계속 말하라, 기억이여’를 쓰려 했던 계획은 끝내 실현하지 못한 채, 나보코프는 1977년 스위스에서 생을 마감했다.

나보코프만이 쓸 수 있는 가장 예술적이고 탐미적인 자서전
아름다운 순간을 되살려내는 찬란한 기억의 프리즘


1940년대 후반, 나보코프는 『롤리타』 집필을 잠시 미루고 경제적 안정을 위해 자서전의 각 장이 될 글을 하나씩 〈뉴요커〉에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를 묶어 1951년 미국에서 ‘결정적 증거’라는 제목으로 자서전 초판을 출간했다. 영국판 제목은 ‘말하라, 므네모시네’로 지으려 했지만, “제목을 발음할 수도 없는 책을 사고 싶어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반대 의견에 부딪혀 최종 제목은 ‘말하라, 기억이여’가 되었다. 그리스신화 속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는 예술을 관장하는 뮤즈들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나보코프는 기억의 여신이 때로는 건망증 심한 짓궂은 소녀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면서, 자서전 곳곳에 그녀를 등장시킨다.

이후 그는 자서전을 직접 러시아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많은 부분을 수정했다. 또 그사이 여러 망명지에 흩어져 있던 가족과 친지를 만나 사건의 세부 정황이나 가족사에 관한 귀중한 정보를 얻었다. 그렇게 하여 다시 한번 개정된 것이 1967년의 최종판 『말하라, 기억이여 ― 다시 쓴 자서전』이다. 지금까지의 작업에 대해 나보코프는 “분명 진저리나는 일이었지만, 나비에게는 익숙한 이런 몇 겹의 변태 과정을 인간이 시도한 적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 조금 위안이 되기도 했다”고 말한다.

그는 정교한 문장으로 삶에서 가장 빛났던 순간들,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을 되살려낸다. 개성 넘치는 대가족의 구성원과 하인들, 아련한 첫사랑, 베를린과 파리에 모인 망명 예술가들, 평생의 동반자인 아내와 사랑스러운 아들…… 나보코프는 애정어린 시선으로 소중한 존재들을 바라본다. 하지만 평생을 떠돌아다니며 살았던 그는 이 모든 추억에 다가올 상실에 대한 예감이 내포되어 있음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물론 그렇기에 더욱 황홀하고 특별한 순간이 된다는 사실 또한 놓치지 않는다. 나보코프가 회상하는 세계는 투명하고 깨지기 쉬운 유리처럼 독특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지만,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연약해 보였던 기억은 나보코프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언어를 통해 찬란한 빛을 발하는 프리즘이 된다.

허구와 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16장’
지적인 독자를 유혹하는 나보코프의 수수께끼


이번에 출간되는 『말하라, 기억이여』는 자서전 초판에는 실리지 않았던 ‘16장’까지 번역된 국내 첫 완역본이다. 16장에서 나보코프는 익명의 서평가로 가장해 자신의 자서전 『결정적 증거』를 논한다. 그의 실험적인 의도가 담긴 16장 덕분에 『말하라, 기억이여 ― 다시 쓴 자서전』은 단순히 내용을 다시 썼다는 의미를 넘어 자서전이라는 형식마저 새로 쓰는 기념비적인 작품이 된다. 서평가는 『결정적 증거』를 다른 자서전들과 비교하며 “자서전이라고 보기에는 특이하고 기이한 존재”라고 평한다. 이 평가는 나보코프의 자서전이 사실을 나열하는 일반적인 회고록이 아님을 분명히 하며, 독자는 이 자서전이야말로 나보코프 작품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하는, 그가 만들어낸 가장 중요한 수수께끼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이 성숙한 창작의 핵심 요소들을, 축소된 크기로나마 품고 있었음을 입증하려 한다. 마치 무르익은 번데기의 얇은 껍질 너머로 아직 작은 날개집 안에 있는 나비의 색채와 무늬가 어렴풋이 보이고, 머지않아 껍질을 찢고 나와 번데기보다 몇 배는 큰 날개를 펼칠 나비의 축소판이 드러나는 것처럼.
_‘16장’ 또는 ‘『결정적 증거』에 대하여’ 중에서

나보코프 애독자라면 자서전 여기저기에서 그의 소설을 연상시키는 요소, 그의 소설과 비슷한 대목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일부 장은 별도의 제목이 있는 단편소설로 발표되기도 했다. 그러나 나보코프는 자신의 과거를 소설의 재료로 사용하는 데에서 멈추지 않고, 메타적 장치를 이용해 자서전이라는 형식 자체를 되물으며 허구와 진실 사이를 오가는 예술의 본질을 탐색한다.

소설은 허구, 자서전은 진실이라고 명확히 나눌 수 없는 상황에서 독자는 다른 자서전을 읽을 때와는 전혀 다른, 심지어 소설을 읽을 때와도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실존 인물을 비틀어 만든 이름들, 영화의 복선처럼 숨겨진 힌트들, 그리고 색인을 읽어야만 비로소 알 수 있는 비밀 등 『말하라, 기억이여』는 나보코프의 말 그대로 “지적인 독자라면 결코 놓칠 수 없는 독특한 즐거움”으로 우리를 유혹한다.

추천평

눈부시게 아름답다. 독자들은 경이로운 눈빛으로 사라져버린 세계의 삶을 엿보게 될 것이다. - 뉴욕 타임스
우리 시대 최고의 자서전. - 뉴 리퍼블릭
나보코프의 가장 뛰어난 소설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걸작. - 가디언
나보코프는 삶 양쪽에 드리운 어둠에 한 줄기 빛을 던져, 헤아릴 수 없는 우리의 존재를 밝히고자 했다. - W. G. 제발트 (작가)
나보코프가 이보다 뛰어난 영어로, 이보다 감미로운 글을 쓴 적은 없었다. - 존 업다이크 (소설가, 평론가)
절정에 이른 나보코프의 문장을 읽는 것은 산문이 줄 수 있는 가장 순수한 감각적 쾌락을 경험하는 일이다. - 마틴 에이미스 (작가, 교수)
그는 우리의 언어를 선택했고, 그것을 바꿔놓음으로써 우리 모두에게 영광을 안겨주었다. - 앤서니 버지스
나보코프 애독자라면, 은빛으로 흐르는 문장 사이에서 작가의 다른 소설들로 이어지는 단서와 연결고리가 금덩어리처럼 반짝이고 있음을 발견해낼 것이다. - 하퍼스
책을 아무렇게나 펼쳐 어느 페이지, 어느 단락, 어느 문장을 읽더라도 단어가 지닌 힘과 마법, 수수께끼가 일으키는 기적을 목도하게 된다. - 워싱턴 포스트
모든 문학 형식 중에서 가장 성공하기 어려운 형식이 자서전일 것이다. 나보코프는 허세와 자화자찬 없이 진솔함으로 난관을 극복했다. - 월 스트리트 저널
셰익스피어 이후의 그 어떤 작가보다도 뛰어난 재주로 영어를 주무른 작가. - 데일리 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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