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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판 서문 │ 해제 │ 옮긴이 서문 │ 머리말
I. 부채를 사회의 기반으로 파악하다 왜 금융 경제가 아닌 부채 경제에 대해 말하는가 부채의 생산 특수 권력관계로서의 부채 II. 부채와 채무자의 계보학 1. 부채와 주체성 : 니체의 공헌 1) 사회적 관계의 기초로서 채권자-채무자 관계 2) 가능성ㆍ선택ㆍ결정으로서의 부채 시간 3) 주체화 과정으로서의 경제 2. 두 명의 마르크스 1) 매우 니체적인 마르크스 2) 《자본》에 등장하는 객관적 부채 3. 부채 논리에 있어서의 행동 및 신용 4. 들뢰즈와 가타리: 부채의 짧은 역사 1) 무한 부채 2) 야만적 흐름 3) 자본주의적 흐름 III. 신자유주의에서 부채의 영향력 1. 푸코와 신자유주의의 탄생 2. 부채에 의한 주권ㆍ규율ㆍ생명관리 권력의 재배치 1) 주권권력 2) 규율권력 3) 생명관리권력 3. 부채의 시험에 직면한 신자유주의적 통치성: 헤게모니인가, 통치성인가 1) 자본주의란 무엇인가 2) 서브프라임 위기 3) 국가 부채의 위기 4. 부채와 사회적 세계 1) 세 가지 부채: 사적 부채, 국가 부채, 사회 부채 2) 부채 주체성의 테크닉 안에 존재하는 위선, 냉소주의 및 불신 3) 가치평가와 부채 4) 사회적 예속화 및 기계적 노예화로서의 부채 5. 반생산과 반민주주의 결론 │ 주석 |
Maurizio Lazzar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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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르 제국처럼 절대 권력이 존재하던 당시에는 이렇게 축적된 부채로 인해 온 사회가 정체 상태로 빠져들게 되면 부채를 기록한 점토판을 모두 모아 파괴해버리고 새롭게 시작하는 해법도 있었다고 한다. 화폐로 계산되고 청산되는 채권·채무의 관계가 본질적으로 은행과 조세 체계를 기초로 하여 전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관계망으로 여타의 정치적·사회적 관계와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 없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그 책임을 어떻게 분산할 것인가, 채무자와 채권자 각자가 어떠한 책임을 져야 하며 또 어떠한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가를 동등하게 논의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할 때만 비로소 사회적 안정과 금융 체제의 안정을 함께 도모할 수 있는 현실적인 해법이 나올 것이다. --- pp. 15-16
채권자-채무자 관계 자체가 현대 자본주의의 가장 중요하고도 보편적인 권력관계다. 대출 혹은 부채와 그에 따른 채권자-채무자 관계는 주체를 특수한 방식으로 생산·통제하는 특수한 힘 관계를 구성한다. 채권자-채무자 관계는 자본-노동의 관계, 복지 시스템-수혜자의 관계, 기업-소비자의 관계와 겹쳐지면서, 수혜자·노동자·소비자를 ‘채무자’로 만들어버린다. --- p. 57 채권자-채무자 관계는 현재의 국민뿐 아니라 미래의 국민들까지 관련된다. 경제학자들은 프랑스 신생아가 이미 22,000유로씩의 빚을 지고 태어난다고 말한다. 이전 세대의 부채를 떠맡기 때문이다. 이렇게 ‘빚을 진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평생 채권자-채무자의 힘 관계에 예속된다. 예전에는 공동체 사회, 신, 조상들에게 빚을 졌다면 이제는 ‘자본’이라는 ‘신’에게 빚을 진다. --- p. 60 대출은 일반적 사회관계만이 아니라 실존의 특이성까지도 활용한다. 대출은 실존의 개별화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주체화 과정을 활용한다. 결국 ‘도덕적’ 판단이 ‘삶’에 간섭하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삶’은 ‘실존적’ 삶이다. 여기서 실존이란 자기긍정의 역능, 자기 지위설정의 힘, 삶의 스타일과 양식 기초를 만들고 유지하는 선택을 의미한다. 여기서 돈의 개념은 노동이 아니라 실존, 개별성 및 인간적 도덕을 말한다. 마찬가지로, 돈의 재료는 노동 시간이 아니라 실존의 시간이다. --- p.93 푸코는 화폐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발전시킨다. 푸코가 발전시킨 새로운 화폐의 개념은 상업 경제를 탄생시킨 전통적 해석과는 대립되는 것이다. 화폐는 상품 교환이 아니라 부채와 사유재산에 대한 권력 행사로부터 직접적으로 파생되는 것이다. “화폐의 출현은 새로운 유형의 권력, 곧 소유권의 체제(Regime de la propiriete), 부채와 채무이행의 놀이(Jeu des dettes et des acquittements)에 대한 개입을 목적으로 삼는 새로운 권력의 구성에 연결되어 있다.” 화폐의 기원을 상품에서 찾는 해석은 화폐의 기능을 교환에 있어서의 효용성 및 가치에 관한 것으로 한정하고, “기호를 사물 자체로 착각함으로써,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하나의 철학적 오류를 만들어낸다.” 화폐로 표현되곤 하는 측정 제도는 ‘경제적’ 기원을 갖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1971년 푸코의 이 강의에서 (푸코 권력 이론에 강력한 영감을 준) 니체가 정립한 부채-측정 관계를 다시 발견한다. --- p. 119 1970년대의 전환기에 있었던 통화 및 자본주의의 변화는 들뢰즈의 관점을 벗어나지 않았다. 들뢰즈는 이 변화를 규율적 거버넌스(Gouvernance disciplinaire)로부터 현대의 신자유주의로의 이행으로 요약했다. “인간은 더 이상 규율 사회에 갇힌 인간이 아닌 통제 사회의 부채인간이다.” --- p. 134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위기는 단순한 금융 위기에 그치지 않으며, 사회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통치성 자체의 실패이다. 기업 및 사유재산제를 바탕으로 하는 통치 양식은 실패했다. 위기는 권력관계의 본성을 극명히 드러내주며, 이제 권력은 이 위기를 구실로 삼아 훨씬 더 ‘억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통제 양식에 이르게 된다. --- p.157 부채의 활동 범위는 단순히 금융과 화폐 정책을 세심히 조작하고 막대한 양의 돈을 굴리는 일에 국한되지 않으며, 사용자의 실존을 생산하고 통제하는 기술을 형성·배치하는 것에 이른다. 이러한 과정이 없다면 경제는 결코 주체를 장악할 수 없을 것이다. --- pp. 191-192 금융·경제·정치적 약자들은 약자라는 이유로 ‘무능력한’ 인간이 되어버린다. 행정 기관은 자율성과 독립성에 대한 요구를 포기하고 자신의 지시대로 수행하라고 말하면서도 모든 위험 상황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책임을 져야한다고 말한다. --- p. 1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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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는 어떻게 당신의 삶을 통제하는가?
니체에 따르면 도덕의 근본 개념 중 하나인 죄(Schuld)는 부채(Schulden)라는 지극히 물질적인 개념에서 나왔다. 이 이치는 우리가 주택을 사기 위해(주택대출), 대학을 가기 위해(학자금대출), 매일매일 삶을 위해(신용카드) 크고 작은 빚을 지는 순간 죄인이 된다는 사실에서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빚을 지는 순간 ‘부채’는 개인의 삶을 유린하기 시작한다. 채권자는 채무자의 내적?외적인 모든 것을 좌우할 수 있으며, ‘의무’, ‘죄책감’, ‘양심’ 등 개인적이며 도덕적인 부분까지 건드린다. 신자유주의는 부채를 통해 개인의 도덕과 양심, 일상 통제하며 그것이 개인의 자발인 선택인 양 착각하게 만든다. 금융 권력들은 사람들을 ‘빚을 진 죄인’으로 세뇌시키는 데 여념이 없으며,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주체성을 잃고 ‘부채인간’으로 조립·?제조?생산된다. 신자유주의 시대, 부채인간들은 빚이라는 죄를 지고 ‘자기 자신에 대한 노동’에 복무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마우리치오 라자라토는 이 책에서 들뢰즈와 가타리의 《앙띠 오이디푸스》를 중심으로 마르크스의 〈대출과 은행〉·《자본》, 니체의 《도덕의 계보》, 푸코의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등을 통해 ‘부채인간’의 생산 과정을 보여준다. ‘부채인간’은 현대 신자유주의의 착취와 억압 메커니즘을 드러내주는 핵심 키워드다. ‘부채인간’의 탄생 전통적인 경제학적 관념만으로는 부채와 신자유주의 메커니즘을 분석할 수 없다. 신자유주의는 경제적이지 않은 모든 것들, 즉 사회적인 것, 개인적인 것, 도덕적인 것, 정치적인 것을 모조리 경제적 효용가치로 환원시켜 버린다. 이를 가능하게 만든 핵심 원리가 바로 채무자-채권자 관계다. 그리고 ‘빚’이라는 ‘원죄’를 진 인간, 즉 ‘부채인간’의 형상이 여기서 생겨난다. 프랑스에서는 신생아 1명당 2만 2,000유로의 빚을 지고 태어나며, 한국에서는 2011년 가계 빚이 912조 원을 넘어섰다. 수치상 1인당 1,830만 원에 달하는 액수다. 이 액수는 줄어드는 인구와 맞물려 더욱 빠른 속도로 불어날 것이다. 태어나기 전부터 ‘빚을 진 인간’은 채무자-채권자라는 관계에서 평생 자유로울 수 없다. “빚을 갚으라”는 지상명령은 무엇보다도 강력하게 인간의 삶을 짓누른다. 공공의 영역으로 확대된 부채 개인이 노동자이든, 실업자이든, 소비자이든, 생산자이든, 은퇴자이든 상관없이 자본 앞에서는 똑같은 죄인이며 책임을 진 인간, 즉 ‘채무자’다. 개인 대출을 받은 적도, 그럴 자격조차 없는 사람조차 공공부채를 갚는 데 동원된다. 계속해서 커져가는 공공부채는 사회 전체를 채무자로 만든다. 엄청난 돈이 채무자로부터 채권자로 흘러들어 가는데, 채무자는 대부분 민중이며 부유층과 기업이 채권자의 자리는 차지하고 있다. 채무가 증세로 흡수되지 않는 한, 미래 세대까지 이 관계는 계속될 것이다. 채권자-채무자 관계로 인해 불평등은 심화되며, 신분의 차이는 점점 커진다. 국가 간에도 부채 메커니즘을 통한 주체성의 박탈, 죄책감, 불평등이 존재한다. 독일 언론은 그리스를 기생충, 게으른 죄인이라고 비난한다. 아일랜드는 EU와 IMF에 손을 벌림으로써 ‘공식적으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권리를 포기했다’. 부채에 관한 시각을 바꿔야 답을 찾을 수 있다 부채의 굴레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부채에 관한 시각을 바꿔야 한다. 부채는 단순한 개인과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와 권력의 문제이며, 인식과 투쟁의 문제다. 부채는 단순히 돈을 여기서 저기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의 실존을 생산·통제하고 있다. ‘부채인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사회 전체를 횡단하는 새로운 연대, 새로운 협력이 필요하다. 단순히 빚을 갚거나 파산 신청을 하는 것은 더 이상 답이 되지 못한다. 우리를 가두고 있는 부채의 담론, 부채의 도덕에서 빠져나올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