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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사람이 될 수 있을까 8
1장 낯선 삶터에 이르다 1. 서울 촌것 22 2. 미국 시골살이 31 3. 삶터가 된 일터 40 4. 잃어버린 천국이라면 47 5. 도시 전설이 살아있다면 55 2장 우왕좌왕 여기는 어디? 1. 제땅말 사용자 64 2. 새것과 옛것 75 3. 손님 말고 주인 84 4. 뭔가 부족하다 91 5. 실패를 찾아서 101 3장 희미하게 보인다 1. 전쟁 말고 평화_ 격납고에서 110 2. 공항 말고 갯벌_ 수라에서 120 3. 하제마을에 들어서니 128 4. 팽팽에 부는 바람 135 4장 두근두근 꿈틀거리다 1. 하고 싶은 일 146 2. 읽는 행동 155 3. 현대의 근대 162 4. 진짜 목소리 169 5장 신명나는 사람들 1. 삐끼, 길에 나서다 180 2. 생태 수업 191 3. 기도하는 사람들 203 4. 복닥복닥 야채 동지들과 함께 216 뿌리를 뻗을 수 있을까 228 추천글 신부님 251 시인 253 영화감독 2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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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은 낯선 곳이었다. 남편이 군산에 일자리가 생겨 옮겨 왔을 뿐이다. 아는 사람 하나 없고, 아는 골목 하나 없는 지역 중소도시에서 몇 년이나 살 수 있을까. 십 년은 살 수 있을까? 근면한 시민답게 일터가 곧 삶터인 현실에 의문을 품지 않기로 했다. 낯선 도시에 이삿짐을 풀고 둥지를 틀었다. 둥지 밖이 낯설어 불평과 불만이 쌓였다. 두 명의 초등학생 돌봄에 전념해야 하는 경력단절인에게 서울의 볼거리 검색은 숨 쉴 구멍이었다. 한 달에 한두 번씩 서울 나들이로 답답증을 해소했다.
--- p.17 「서울에서」 중에서 나는 고향이 없다. 고향이 있어야 실향을 할 수 있고. 고향이 있어야 귀향을 할 수 있다. 엄마와 외가 친척들은 한국전쟁 발발 전에 평양을 떠나 남으로 왔다가 미국으로 이주했다. 고향 집에 큰 괘종시계가 있었다던 엄마의 이야기에는 실향민에게 허용된 애수가 있다. 오랜 서울 생활로 어눌해진 아빠의 경북 사투리에는 언제든 가능하지만 결코 충족할 수 없는 귀향의 그리움이 있었다. 엄마는 고향을 갈 수 없어 체념했고, 아빠는 고향을 충분히 가지 못해 답답했다. 나는 고향을 가진 그들이 부러웠다. --- p.37 나는 ‘살던 곳’에 대한 관심과 지식이 없었다. 애초에 ‘살던 곳’이 없었다. 동대문구의 5층 아파트에서 강남구의 2층 연립주택으로, 강북구의 원룸으로, 관악구의 오피스텔로 옮겨 갔어도 ‘살던 곳’이라고 하기 어려웠다. 땅에서 멀리 떨어져 허공에 ‘놓였던 곳’이 있을 뿐이었다. 왼쪽 서랍의 내용물을 오른쪽 서랍으로 옮겨 넣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것을 대도시의 편리하고 좋은 삶이라고들 말했다. --- p.66 서울 아닌 모든 도시가, 모든 사람이 서울을 욕망하지는 않는다. 모두가 고층 아파트와 높은 빌딩, 비싼 브랜드의 백화점과 프랜차이즈 입점, 대기업 유치와 대형 토목 인프라로 제 땅이 채워지기를 바라고 있을까? 서울조차도 빽빽한 건물에 숨이 막혀서 건물 사이에 공원과 숲을 만들겠다는 (또 다른) 토목사업이 늘어나는 추세인데. 관성이라 어쩔 수 없는지도 모른다. 서울을 표준이라고 고정해 놓은 인식이 오래되어 제 땅을 표준으로 삼을 생각을 감히 꿈꾸지 못한다. 서울의 헛짓거리를 목격하면서도 그 전철을 밟지 않고는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다. --- p.71 정말 시민이 주도하고 시민이 주인되는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고? 문화도시 사업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라고? 진심이 아니더라도, 한계가 있다해도, 이런 취지와 목적이 입바른 소리에 불과해도 반가웠다. 이런 사업을 정부가 제안한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어떤 지자체에서도 도시의 차원으로 사업 규모를 확장해 본 경험도 없고, 관과 민의 협력적 거버넌스를 조직화해 본 경험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거듭하게 될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은 시작해야, 뭐라도 해 봐야 하지 않겠는가. 목표하던 바를 이루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시민이 시민의 문화 사업에 앞장서야 하지 않겠는가. 포럼 후 이어진 뒷풀이 자리에서도 문화에 대하여, 시민에 대하여, 그리고 거버넌스에 대한 대화가 이어졌다. 다음 날, 나는 군산 문화도시 사업 추진 TF팀에 합류했다. --- p.88 유튜브로 실시간 목격할 수 있는 전쟁 상황은 불꽃놀이처럼 화려한 ‘스펙터클(spectacle 볼거리)’로 보였으나 그 볼거리가 휩쓸고 간 자리에 주검과 피가 임리한 것이 현실이었다. 그러한 전쟁이 먼 나라에서나 일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내 땅, 내 동네에서도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것이 현실의 전쟁이었다. 군비확장이 무기 산업을 키우는지, 무기 산업이 군비를 확장하고 전투의 자리를 늘리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전쟁의 위험이 무엇이든간에 내가 내 동네에서 안전하고 평온하게 살고자 하는 바람은 미국에 사는 사람이나 다른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도 똑같이 갖고 있지 않을까? 지금을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의 공통된 염원이 아니겠는가? --- p.1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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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달하다, 활기차다
서울 사람이 군산에 왔다. 새로운 만남이다. 격의 없이 아주 활달한 여성으로 금세 친해졌다. 『왜 서울에 살아』를 읽고, 김규영을 더 알게 됐다. 교수, 배우, 주부, 두 아이의 엄마. 그리고 평범한 시민이면서 뜻을 찾는 삶.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새 길을 찾고, 주저 없이 새 길에 동참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돼 더 친근감이 든다. 책은 ‘서울촌것의 수라정착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좌충우돌, 우왕좌왕할 것 같지만 흑미의 정착기는 낯설거나 서툴지 않다. ‘왜 서울에 살아’하는 물음에 수많은 답이 있겠지만 흑미는 ‘군산에서 이렇게 살아!’라고 답한다. 내가 사는 곳은 어디인가, 어떤 곳에 살고 싶은가, 어떤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갈 건가 생각하고 나선다. 있는 자리에서 자신의 문화를 창출하는 삶을 살고 있다. 책을 읽어보면 전반적으로 그 냄새가 풍긴다. 흑미의 수라정착기이지만 군산의 역사와 문화, 현재를 볼 수 있는 안내서이기도 하다. 새로운 삶터에 대한 다정한 이해를 바탕으로 자신의 삶터로 일궈가는 흑미의 정착기, 참 활기차다. - 문정현 신부와 평화바람 식구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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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서울 촌것’의 수라정착기를 읽고
김규영은 자신의 대학 시절까지의 삶을 ‘서울 촌 것’이라 명명한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한 재원이 군산에 정주하면서 자신을 ‘서울 촌 것’이라 솔직하게 인정하고 이를 지역의 구성원으로 제대로 뿌리를 내려 살기 위한 대전회(大轉回)의 명제로 채택하고 있다, 서울 ‘지역’에서는 도무지 얻을 수 없는 시민으로서의 높은 소속감과 현장감을 군산에서의 구체적 삶을 통해 실감하며 도달해가는 삶의 역정, 아니 그 실패의 과정을 담담하고 당당하게 이 책은 보여준다. ‘내 집’ ‘내 식구’에서 ‘우리 식구’, ‘우리 동네’로 나아가 우리 나라, 우리 행성으로 신나게 닿아가는 생생하고 신나는 질주를! 그리고 마침내 그는 다시 하제마을 팽나무 어르신과 수라 갯벌의 ‘퉁퉁마디’를 비롯한 염생식물, 살아 있기도 하고 죽기도 한 조개를 확인하러 갯벌로 오는 사람들, 그 위를 나는 황새나 저어새와 함께 춤추며 우는 사람들, 그 모든 생명과 생령의 뒷배인 ‘평화바람’ 식구들과 두 분 신부님 옆에서 때로 춤을 추기도 한다. 동시에 때로 책을 나누어 읽으며 신명을 북돋기도 한다. 그의 삶이 신나는 시(詩)가 되어가고 있다. - 강형철 (시인,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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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행성에서 다정하게
이 책을 읽었을 때 깜짝 놀랐다. 서울 촌것 저자가 아무 연고도 없는 군산에 내려와 살면서 수라의 ‘아름다움을 본 죄’로 군산에 정착하게 되는 과정이 나의 여정과 놀랍도록 비슷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우연히 낯선 도시에 살게 된 한 사람의 이야기이지만, 꼭 군산에 관한 책만은 아니다. 이 책을 집어 든 당신이 만약 광활한 우주의 외로운 행성, 작고 푸른 별 어딘가에 실핏줄 같은 뿌리를 내리고 그 뿌리를 통해 그 장소의 사람들, 생명들과 다정하게 연결되고 싶다면, 그럼으로써 홀로 대신 함께 살아가는 힘을 얻고 싶다면, 바로 당신에게 이 책을 강력 추천한다. - 황윤 (다큐멘터리 영화 <수라> 감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