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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세상에 소망을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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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추천의 글

1.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볼 수 있을까?
시편 63편 3절, 1931년 10월 4일, 베를린

2. 깨어서 기다리는 복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누가복음 12장 35-40절, 1931년 11월 29일, 베를린

3. 신실하게 믿음의 길로 갈 수 있을까?
마태복음 24장 6-14절, 1932년 2월 21일, 베를린

4. 형제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발견할 수 있을까?
창세기 32장 25-32절, 33장 10절, 1932년 3월 13일, 베를린

5. 이기심을 버릴 수 있을까?
요한일서 4장 16절, 1932년 5월 12일, 베를린

6. 타인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을까?
골로새서 3장 1-4절, 1932년 6월 12일, 베를린

7. 교회가 세상에 소망을 말할 수 있을까?
골로새서 3장 1-4절, 1932년 6월 19일, 베를린

8.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까?
마태복음 8장 23-27절, 1933년 1월 15일, 베를린

9. 하나님께 굴복할 수 있을까?
사사기 6장 15-16절, 7장 2절, 8장 23절, 1933년 2월 26일, 베를린

10. 심판의 날에 기뻐할 수 있을까?
고린도후서 5장 10절, 1933년 11월 19일, 런던

11. 구원이 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누가복음 21장 28절, 1933년 12월 3일, 런던

12. 우리가 서로를 섬길 수 있을까?
룻기 1장 16-17절, 1934년 5월 3일, 런던

13.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을까?
스가랴 3장 1-5절, 1935년 7월 21일, 핑켄발데

14. 올바른 길로 갈 수 있을까?
마태복음 2장 13-23절, 1940년 새해

15. 구원의 비밀을 누릴 수 있을까?
이사야 9장 6-7절, 1940년 성탄절

원문 출처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05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224쪽 | 322g | 145*210*20mm
ISBN13
9788958742425

책 속으로

우리 인생에는 끊임없이 밤이 찾아옵니다. 우리는 밤을 통해서 낮으로 가야 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죽을 인생에게 영원히 낮만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낮보다 밤이 더 많다는 사실을 직면해야 하며, 그 사실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낮과 해, 아침의 여명을 준비해 놓으시고 그리스도라는 태양으로 인도하신다는 믿음을 빼앗아 가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이끌어 공의와 평화, 사랑으로 다스리는 축복의 나라를 보게 하실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우리가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지만 언젠가는 그곳에서 영원히 거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두려워하지 말고, 그 나라로 들어갑시다! 하나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며, 교회는 우리의 고향입니다.
---「형제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발견할 수 있을까?」중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한 사람 위에 머문다는 말은, 그의 인생이 다른 사람들의 인생과 다르게 진행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함께한다는 것은 이기적인 인생이 이제는 하나님을 위해 살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흔히 오해하는데, 사랑은 인간의 운명이 아니라 운명의 주인입니다. 우리가 이 아이의 인생에 주기 원하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말씀은 소원이 아니라, 교회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선포하는 실재입니다. 오늘 설교에서 우리가 처음부터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말한 것은 참으로 다행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인간의 사랑에 대해 말할 때 지나치게 인간적으로 이해하는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기심을 버릴 수 있을까?」중에서


사도는 아주 놀랍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을 우리에게 말해 주려는 것입니다. 그가 “너희가 죽었고”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거나 근심 속에 빠뜨리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오직 단숨에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절망적이고 타락한 상태에 홀로 버려진 것이 아닙니다. 그곳에 한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창조주와 참된 생명에서 갈라놓은 경계를 넘어 우리가 사는 사망의 땅으로 뚫고 들어오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과 죽음을 가장 깊은 곳까지 속속들이 맛보셨습니다. 그분은 사망을 통해 영원하신 아버지에게로,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그리고 온 세상을 자신과 함께 생명으로, 빛으로 끌어올리십니다. 사망에서 승리하시고, 우리를 가두고 옥살이하게 하는 모든 것을 사로잡아 자유로 이끄십니다. 그 자유는 하나님의 자녀된 영광스러운 자유입니다.
---「교회가 세상에 소망을 말할 수 있을까?」중에서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은 비참한 곤궁이 아니라, 우리가 지은 죄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죄를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하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죄가 우리를 덮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아주 옳은 것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두려움의 위장 전술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우리가 죄를 두려워해야 한다는 말은 옳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두려워하는 자는 이미 그 속에 빠져든 것입니다. 두려움은 악의 그물입니다. 악은 처음에는 우리에게 두려움을 심어 혼란에 빠뜨리고, 그 다음에는 두려움에 복종하게 만듭니다. 두려움이 아니라, 용기, 용기입니다(Nicht Angst, sondern Mut, Mut…). 두려워 떠는 마음으로 어떻게 원수를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나님이 여러분의 죄보다 더 크시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여러분 안에서 강해지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죄는 쓰러져 버릴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주님, 우리의 믿음을 강하게 하소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까?」중에서


그러면, 마지막 날에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물으실 ‘선과 악’(Gut und Bose)은 무엇입니까? 선이란 그 무엇도 아닌,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그 은혜를 붙잡는 것입니다. 악이란 두려움(Angst)과 자기 스스로 하나님 앞에 서려고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의로워지려고 하는 것입니다. 회개한다는 것은 자신의 행위에 의지하여 서 있던 자리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긍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돌아오라, 돌아오라!” 이것이 성경 전체를 통해 우리를 부르며 외치는 말입니다. 그런데 어디로 돌아와야 합니까? 자신이 지은 피조물을 그 무엇보다 사랑하시는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애타는 마음으로 부르고 계신 영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돌아와야 합니다. 긍휼하신 주님이시기에, 우리가 마지막 심판의 날을 기꺼이 맞을 수 있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 우리가 준비되게 하소서. 우리가 그날을 기뻐하며 기다립니다. 아멘.

---「심판의 날에 기뻐할 수 있을까?」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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