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머리말
1부 바라문의 아들 사문들과 함께 고타마 깨달음 2부 카말라 어린아이 같은 사람들 옆에서 윤회 강가에서 뱃사공 아들 옴 고빈다 부록 작품 해설 헤르만 헤세 연보 |
Hermann Hesse
헤르만 헤세의 다른 상품
|
싯다르타의 아버지는 아들이 지식에 대한 갈망으로 불타오르며 빠르게 배워 나가는 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가슴은 기쁨으로 두근거렸다. 그는 아들이 언젠가 위대한 현자나 사제, 바라문 가운데 우두머리로 자라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어머니 또한 강하고 아름다운 아들 싯다르타가 걷고 앉고 서며, 호리호리한 다리로 조용히 거니는 모습을 볼 때마다 더없는 행복으로 물들었다.
그가 완벽한 예로 경의를 표하며 인사를 올릴 때면, 어머니의 마음은 말할 수 없이 따뜻해졌다. 가느다란 입술과 왕처럼 당당한 눈빛,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듯한 이마를 지닌 싯다르타가 마을 골목을 따라 걸어가면, 바라문의 젊은 딸들의 가슴은 사랑으로 잔잔히 물결쳤다. --- pp.16-17 「바라문의 아들」 중에서 “사랑하는 고빈다, 나와 함께 보리수 밑에 가서 명상하세.” 그들은 보리수 아래로 갔다. 싯다르타가 한쪽에 앉고 고빈다는 스무 걸음 떨어진 곳에 앉았다. 싯다르타는 ‘옴’을 부르기 위해 자리에 앉으며 이런 시를 입속으로 읊었다. 옴은 활이요, 마음은 화살이라. 바라문은 화살의 과녁이니 바로 쏘아라, 그 과녁을. 묵상이 끝나자 고빈다는 일어났다. 저녁이 되어 목욕할 시간이 돌아오자 그는 싯다르타를 불렀으나, 아무 대답이 없었다. 싯다르타는 앉은 채로 깊은 명상에 잠겨 있었다. 그의 눈은 먼 곳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고, 이 사이로 혀끝이 조금 불거져 있었으며, 숨을 쉬지 않는 듯 보이기까지 했다. 그는 그렇게 ‘옴’을 생각하며 영혼을 바라문의 과녁으로 쏘아 올린 채 앉아 있었다. --- pp.22-23 「바라문의 아들」 중에서 싯다르타는 무아의 경지에 머물기도 하고, 짐승 속에 머물기도 했으며, 돌 속에 머물기도 했지만, 자아로 되돌아오는 일을 피하거나 시간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햇빛과 달빛, 그늘과 빗속에서 다시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마다 그는 다시 한 번 ‘그 자신’인 싯다르타가 되었고, 윤회의 고통스러운 사슬에 얽매이고 말았다. 그의 곁에는 고빈다가 언제나 그림자처럼 따르고 있었다. 고빈다 또한 같은 길을 걸으며 수도에 힘썼다. 그들은 봉사와 수련에 필요한 말만 나누었고, 그 밖에는 서로의 침묵을 지켰다. 이따금 스승들과 동료들의 양식을 얻기 위해, 두 사람은 함께 마을에서 마을로 탁발을 하며 돌아다니기도 했다. --- pp.32-33 「사문들과 함께」 중에서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말했다. “오, 세존이시여. 만일 제가 당신의 제자 가운데 하나가 된다면, 당신을 따르고 사랑하는 일과 교단을 앞세우는 일이 제 자아를 대신해 버릴까 두렵습니다. 겉보기로만 평온해지고 구원받은 듯 보이되, 실제로는 저 자신이 그대로 살아남아 오히려 더 커지는 일이 일어날까 두렵습니다.” 고타마는 얼굴에 반쯤 미소를 띠고, 변함없이 관대하고 친절한 눈으로 이 낯선 젊은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거의 알아보기 어려운 몸짓으로 작별을 고했다. “오, 사문이여. 그대는 지혜로운 사람이오.” 세존은 말을 이었다. “지혜로운 말을 할 줄 아는군요. 다만 지나친 지혜는 경계하는 게 좋소.” 부처는 그 자리를 떠났다. 그의 눈과 미소는, 그 고요한 걸음과 숨결은, 영원히 싯다르타의 기억에 새겨졌다. --- p.56 「고타마」 중에서 “시를 지어 드리면… 당신의 입술을 허락하겠소?” “당신의 시가 마음에 들면요.” 카말라가 미소 지었다. “어떤 시인데요?” 싯다르타는 잠시 생각한 뒤 읊었다. 녹음 짙은 정원으로 들어가는 어여쁜 카말라여, 정원 입구에 선 초라한 사문이 그 연꽃 보고 고개를 굽혔더니 카말라는 웃으며 고마워했네. 청년은 문득 생각했네. 신을 섬기느니, 어여쁜 카말라를 섬기는 편이 더욱 바람직한 일일 것이라고. 카말라는 기뻐하며 손뼉을 쳤다. 손목의 팔찌가 잘그락거리며 울렸다. “참 아름다운 시예요, 초라한 사문이여. 내 입술을 준다 해도, 나는 아무것도 잃었다고 생각하지 않겠어요.” 그녀는 눈짓으로 그를 가까이 불렀다. --- p.82 「카말라」 중에서 싯다르타는 시키는 대로 글을 써서 돌려주었다. 카마스와미는 받아 들고 소리 내지 않고 읽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글 쓰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그러나 생각하는 것은 더욱 훌륭한 일이다. 지혜로운 것은 훌륭한 일이다. 그러나 참는 것은 더욱 훌륭한 일이다. “정말 달필이군.” 상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함께 의논할 일이 많겠소. 오늘은 이쯤 하고… 우리 집에 손님으로 머물러 주시오.” 싯다르타는 감사의 인사를 하고 그 집에 머물렀다. 주인은 그에게 옷과 신을 마련해 주었고, 하인 하나가 날마다 목욕물을 준비해 주었다. 하루 두 끼의 푸짐한 식사가 차려졌지만, 싯다르타는 여전히 하루 한 끼만 먹었으며 고기와 술은 입에도 대지 않았다. --- pp.92-93 「어린아이 같은 사람들 옆에서」 중에서 그는 그 불안을 사랑했다. 크게 걸고 노름을 할 때의 가슴 벅찬 불안, 그 불안에서만 그는 이 속된 생활 속에서 어떤 긴장과 도취를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늘 그 불안을 새롭게, 더 진하게, 더 풍부하게 북돋우는 데 게으르지 않았다. 큰돈을 잃으면 이를 메우기 위해 장사를 더 독하게 했다. 채무자를 심하게 독촉했고, 다시 노름을 하고 낭비를 했다. 돈을 경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그는 예전처럼 손해 앞에서 태연하지 못했다. 빚을 늦게 갚는 자를 가만두지 않았고, 점점 더 인색해졌다. 애원하는 사람에게 돈을 꾸어 주거나 그냥 주는 기쁨도 잃어버렸다. 한때는 천만금을 한순간에 잃고도 껄껄 웃어넘기던 사람이, 이제는 장사에 노랭이가 되고 돈에 구두쇠가 되어 갔다. 꿈속에서도 돈 꿈을 꾸었다. --- p.108 「윤회」 중에서 그는 이 강을 얼마나 사랑했던가. 이 강이 얼마나 그를 기쁘게 했던가. 그리고 또, 이 강에게 얼마나 감사했던가. 그때 마음속에서 조용히 솟아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강을 사랑해라. 이 강가에 남아 그 가르침을 배워라. 그래, 그렇다. 그는 강의 가르침을 배우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흐르는 강을 이해하는 사람은, 다른 모든 것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인생의 비밀까지도 끝내는 알아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는 물이 지닌 수많은 비밀 가운데, 오늘 유독 자신의 영혼을 붙잡는 한 가지를 엿보았다. 물은 끊임없이 흐르면서도, 언제나 그곳에 머무르고 있었다. 늘 그곳에 있어 같은 물처럼 보이면서도, 순간마다 새로운 물이었다. 그러나 누가 이 사실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으랴. 싯다르타 자신도 아직 분명히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아주 먼 기억을 더듬는 듯, 가슴 어딘가에서 예감이 자라나는 것만 느낄 뿐이었다. --- p.134 「뱃사공」 중에서 아이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어머니의 장례를 지켜보았다. 장례가 끝나갈 무렵까지도 그 눈물은 멈출 줄을 몰랐다. 싯다르타는 아이에게 “너는 내 아들이니 이 집에서 같이 살자”고 했으나, 어린 아들은 멍하니 듣고만 있었다. 아이는 풀이 죽어 종일 무덤 옆에 앉아 아무것도 입에 대려 하지 않았다. 눈과 마음을 굳게 닫은 채, 마치 운명 그 자체에 반항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싯다르타는 어린 아들이 가여웠다. 그는 아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 두었다. 슬퍼하는 아이의 마음이 다칠까 봐 전전긍긍했다. 그는 아들이 자기를 모르고 있으니, 자기가 아들을 사랑하듯이 아들이 자기를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 p.153 「아들」 중에서 바스데바가 일어섰다. 싯다르타의 눈에서 번득이는 지혜의 즐거움을 확인하자, 그는 온유하게 손을 올려 싯다르타의 어깨를 가만히 짚었다. “나는 이 시간을 오랫동안 기다렸소. 드디어 왔소. 나는 이제 떠나려오. 나는 오랫동안 뱃사공 바스데바로 일해 왔소. 그러나 이제 그 일도 끝났소. 오두막이여, 잘 있어라. 강이여! 잘 있어라. 강이여! 잘 있거라. 싯다르타, 잘 있으시오.” 싯다르타는 고개 숙여 작별 인사를 했다. “나도 짐작은 하고 있었소.” 그가 나지막이 말했다. “깊은 산중으로 돌아가시려는 거지요?” 바스데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나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려오. 나는 범(梵)의 품으로 가려오.” 그는 마치 후광에 싸인 사람처럼 말했고, 그렇게 떠났다. --- p.182 「옴」 중에서 신의 화살에 가슴을 맞고도 아프지 않고 달콤한 사람처럼, 고빈다는 황홀하게 해탈된 채 잠시 그대로 서서, 고요히 앉아 있는 싯다르타의 얼굴을 굽어보고 있었다. 방금 입을 맞춘, 모든 형체와 모든 생성과 모든 존재의 무대였던 그 얼굴을. 천태만상의 막이 거기서 사라지자, 싯다르타의 얼굴은 다시 전과 같았다. 싯다르타는 조용히 웃었다. 은밀히 웃었다. 자비롭고 조롱이 섞인 듯한 얼굴로 마치 부처처럼 웃었다. 고빈다는 허리를 굽혀 절했다. 두 눈에서는 영문 모를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늙은 얼굴에는 가장 깊은 사랑과 충성에서 우러난 겸허한 존경이 불타올랐다. 그는 다시 한 번, 이마가 땅에 닿도록 깊이 절했다. 그리고 싯다르타의 웃음은, 고빈다의 긴 생애 동안 사랑해 오던 모든 것, 또한 가치 있고 거룩하다고 믿어 온 모든 것들을 한꺼번에 떠올리게 했다. --- p.197 「고빈다」 중에서 |
|
『싯다르타』는 오늘의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
나는 정말 내가 선택한 삶을 살고 있는가? 실패를 너무 두려워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가? 남들이 정해준 기준 때문에 나 자신을 잃고 있지는 않은가?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는 단순한 성장 소설도, 종교적 교훈서도 아니다. 이 작품은 인간이 자신의 삶을 통해 스스로 진리에 다가가는 과정을 집요하면서도 아름답게 그려 낸 영혼의 서사시다. 출간 이후 한 세기가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여전히 전 세계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그 질문이 결코 낡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싯다르타는 완벽한 조건을 갖춘 청년이다. 그는 지혜로운 바라문의 아들로 태어나, 학문과 명상, 수행에 있어 누구보다 뛰어난 재능을 지녔다. 친구 고빈다와 함께 성스러운 가르침을 익히고, 고행자들의 길을 따르며, 마침내 위대한 깨달음을 얻은 고타마(부처)의 가르침 앞에까지 이른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싯다르타는 그 모든 길 앞에서 멈춰 선다. 그는 깨닫는다. 가르침은 진리를 설명할 수는 있지만, 대신 살아 줄 수는 없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1. 가르침을 넘어 삶으로 나아가는 한 인간의 선택 『싯다르타』는 깨달음을 향한 이야기이지만, 그 출발점은 의외로 ‘거부’에 있다. 주인공 싯다르타는 성스러운 가르침과 완성된 교리 앞에서도 멈춰 선다. 그는 위대한 스승 고타마의 깨달음을 존경하면서도, 그 길을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 진리는 배워서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살아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임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선택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이자, 현대 독자에게도 깊은 질문을 던진다. 2. 고행과 수행, 그러나 채워지지 않는 갈증 싯다르타는 고행자들의 길을 따르며 욕망을 버리고 자아를 비우는 훈련에 몰두한다. 그는 극한의 절제와 명상을 통해 자신을 지워 가지만, 그 안에서도 여전히 ‘나’는 사라지지 않는다. 헤세는 이 과정을 통해, 금욕과 수행만으로는 인간 존재의 본질에 도달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영적 완성을 향한 노력조차 또 다른 집착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싯다르타의 고행을 통해 드러난다. 3. 세속의 삶에서 배우는 인간의 진실 수행자의 길을 떠난 싯다르타는 세속으로 들어간다. 사랑을 알고, 돈을 벌며, 욕망과 성공의 세계 속에서 살아간다. 카말라와의 사랑, 상인으로서의 성공은 그를 한때 충만하게 보이게 하지만, 결국 깊은 공허로 이끈다. 그러나 이 시기는 타락의 기록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삶의 얼굴이다. 헤세는 영적 성숙이란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끝까지 통과하는 일임을 분명히 한다. 4. 강이 들려주는 말 없는 가르침 모든 것을 잃은 싯다르타가 다시 서는 곳 또한 강이다. 강은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상징으로, 시작과 끝, 삶과 죽음, 기쁨과 고통이 하나로 흐르는 존재다. 늙은 뱃사공 바주데바와 함께 강의 소리를 들으며, 싯다르타는 더 이상 질문하지 않는다. 그는 판단을 멈추고, 세계를 분열시키지 않는 눈을 얻게 된다. 깨달음은 갑작스러운 계시가 아니라,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의 상태로 다가온다. 5.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싯다르타』가 필요한 이유 『싯다르타』는 빠른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독자에게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무엇을 성취했는가보다,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묻는다. 경쟁과 효율, 성공의 기준이 삶을 압도하는 오늘날, 이 작품은 조용하지만 단단한 메시지를 전한다. 길을 잃는 것도 삶의 일부이며, 돌아가는 길 또한 하나의 길이다. 따라서 『싯다르타』는 시대를 초월해, 자기 삶을 온전히 살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여전히 유효한 고전이다. 『싯다르타』는 우리에게 위로를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묻는다. “당신은 지금,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가?” 이 질문은 빠르게 소비되고 즉각적인 답을 요구하는 현대 사회에서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이 책은 성공과 성취, 효율과 경쟁 속에서 길을 잃은 독자에게 조용하지만 단단한 목소리로, 서두르지 않아도, 길을 돌아가도 괜찮다고 말한다. 헤세의 문장은 단순하고 명료하지만, 그 안에 담긴 사유는 깊고 농밀하다. 자연의 이미지와 반복되는 리듬은 독서 행위 자체를 하나의 명상처럼 느끼게 한다. 특히 강을 바라보는 장면들은 독자에게도 잠시 멈추어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을 지닌다. 이 책은 인생의 방향을 잃었을 때, 혹은 너무 확신에 차 있을 때 모두에게 유효하다. 젊은 독자에게는 방황의 정당성을, 성숙한 독자에게는 수용과 화해의 가능성을 일깨운다. 그래서 『싯다르타』는 한 번의 독서로 끝나는 작품이 아니라, 삶의 단계마다 새롭게 읽히는 책이다. 헤르만 헤세는 이 작품을 통해 말한다. 진정한 깨달음이란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끝내 사랑하게 되는 일이라고 말한다. 『싯다르타』는 그 사랑에 이르기까지의 고독하고도 찬란한 여정을, 오늘의 독자에게 다시 한 번 조용히 건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