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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봄볕으로 하얗게 물들 해풍
山寺의 가을 12월 겨울비 겨울의 로뎀나무 가로수 자장가 院洞 鹽藏 立春 커튼콜: 3월 봄비처럼 오, 猫한 것 소녀와 화분 아라연꽃 회광(回光) 2부 쉬이 밟을 수 없는 해저 호수 세수 버스 지푸라기 날개 가을 모기 모기향 실타래 손톱 카나트(Qanat) 영원과 삶 봉안실 여행자 責任 달력 퇴근 잊어버리고 싶은 것들 눈사람의 밤 식탁 연금술 달과 6펜스 이카로스 깃발 3부 무지개 물고기의 비늘은 모두 물고기 jenga puzzle 태양계 괜찮으시다면, 같이 봄의 한가운데 역광 겨울 햇살 다음 날, 아침 배웅 투썸플레이스 프루스트 슬픈 歡送 버스 안에서 갈림길 문진 쪽 수족관 Tea-ba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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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 속의 파도를 꺼내어 닦는 시간의 연금술
김예준 시인의 첫 시집 『서랍에선 파도 소리가 난다』는 시인의 말에서 고백하듯 “어디가 됐든/문장은 흘러가야 한다”라는 단호한 의지에서 출발한다. 이 시집은 내면의 ‘서랍’ 깊숙이 간직해 온 기억과 감정들을 꺼내어, 그간 묻어 있던 ‘소금기’와 ‘이끼’를 정성껏 닦아내고 새로운 무늬를 입히는 정교한 기록이다. 시집은 봄볕에 물들 해풍에서 시작해(1부), 깊은 해저로의 침잠을 거쳐(2부), 관계의 회복인 무지개 물고기(3부)로 나아가는 유기적인 흐름을 보여준다. 특히 「지푸라기」에서 보여주는 “바닥에 발이 닿아야 한다/가라앉아야/떠오를 것 아니냐”는 선언은 삶의 하강 국면에서 길어 올린 내면적 에너지를 상징한다. 그러나 이 시집은 개인의 부상(浮上)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각자의 서랍 속에 간직해 온 파도 소리를 투명하게 공유하며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공명(Resonance)의 장’으로 기꺼이 나아간다. 전체적으로 시인의 비유는 일상의 사물을 생소하고도 생생한 존재로 탈바꿈한다. ‘모기향’을 “불붙은 달팽이”로 형상화하거나, ‘봉안실’의 유골함을 “80여 년의 시간이 담겨 있는 모래시계”로 바라보는 시선은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구체적인 묘사의 힘을 드러낸다. 또한 「자장가」에서 보여주는 “바구니 한가득 땀방울 소리/달그락달그락”과 같은 표현은 시인의 언어가 얼마나 세밀하게 삶의 현장을 포착하고 있는지를 증명한다. 시인은 자신과 세상을 향해 성찰적이면서도 따뜻한 말을 건넨다. 「소녀와 화분」에서 보여주는 “나는 마음에 듭니다”, “나는 따뜻해집니다”와 같은 고백은 독자로 하여금 시인의 내면세계에 안심하고 발을 들이게 한다. 이러한 태도는 3부에 이르러 타인과의 관계로 확장되는데, 일면식 없는 옆자리 승객에게 어깨를 내어주고, 방향이 같은 그에게 ‘괜찮으시다면, 같이’란 말로 동행을 제안한다. 그리고 ‘버스 안에서’ 아이에게 버스 벨을 양보하는 장면은 “방향이 같아/아이의 손끝을 따라/나도 일어섰다”라고 말하는 주체와, ‘아이’가 삶의 궤적을 공유하며 연대하는 순간을 포착해 낸다. 시인은 또한 감정의 과잉을 경계하며 언어를 절제한다. 대표적으로 「슬픈 歡送」에서 슬픔을 직접적으로 토로하기보다 “안개구름 속에/가려진 해를 기다릴/당신을 앞에 두고/어떻게 눈물을 보이겠어요”라며 슬픔의 범람을 막고 정서의 파고를 낮춘다. 그리고 「責任」에서는 책임의 그 무게를 “페가수스의 입에 물린/고삐이고 채찍”이라 치환하며 시어의 밀도를 높인다. 마지막으로 시인은 ‘수족관’의 투명한 벽을 통해 “서로의 표정과 손짓을 보고 어느 정도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음을 강조한다. 소리는 직접 닿지 않아도 “벽을 사이에 두고 손을 ‘맞댈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시인의 시선은, 이 시집이 지향하는 소통이 결코 화려한 수사가 아닌 내밀한 진심의 확인임을 보여준다. 『서랍에선 파도 소리가 난다』는 개인의 서랍 속에 잠겨 있던 파도 소리를 광장으로 불러내어, 우리 모두는 각자만의 바다를 품고 있음을 깨닫게 하는 온기 가득한 편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