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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_ 7
제1부_ 15 제2부_ 75 제3부_ 143 제4부_ 237 에필로그_ 349 해설 | 상처받은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_ 353 조르조 바사니 연보_ 365 |
Giorgio Bass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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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미콜은 애티를 갓 벗은 소녀였다. 금발머리에 사람을 끌어당기는 크고 맑은 눈에다, 호리호리하게 마른 체형을 가진 열세 살 소녀였다. 나는 반바지를 입은 소년으로, 상당히 부르주아적이고 허영심이 많아서 학교 공부에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몹시 유치한 절망에 빠지곤 했다. 우리는 서로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미콜 머리 위쪽의 새파란 하늘은 어느새 구름 한 점 없이 뜨거운 여름 하늘이었다. 그 하늘은 어떤 일이 있어도 변할 것 같지 않았고, 적어도 내 기억 속에서만큼은 실로 그 무엇에도 변함이 없었다.
--- p.61 무솔리니가 호흡을 가다듬을 시간을 준 사람들은, 바로 우리들의 이상인 그 자유주의자들이었다. 여섯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두체는 출판의 자유를 억압하고 정당을 해산시키는 것으로 그들의 기여에 보답했다. 조반니 졸리티는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피에몬테 시골로 몸을 숨겼다. 베네데토 크로체는 다시 좋아하는 철학과 문학 연구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들보다 훨씬 죄가 덜한 사람, 아니 완전히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이 한층 더 가혹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 이탈리아 도시노동자와 농민들은 그들의 타고난 지도자와 함께 사회적인 자유를 얻고 인간의 존엄성을 되찾을 수 있다는 실질적인 희망을 모두 잃어버렸다. 그리고 이미 거의 이십여 년 전부터 식물인간이 되어 소리 없이 죽어가고 있다고 했다. --- pp.190-191 “대신 저기 저 보트를 좀 봐. 얼마나 정직하고 위엄 있는지, 얼마나 정신적인 용기가 있는지, 제발 자세히 좀 봐줘. 보트는 제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지만 그뒤에 이어질 결과들을 받아들일 줄 알아. 사물들도 죽어, 친구. 그러니까 사물들도 죽어야 한다면, 그게 사실이라면, 죽게 놔두는 게 더 나아. 무엇보다 그게 훨씬 멋있으니까, 안 그래?” --- p.142 가장 증오할 만한 반유대주의는 이런 것이다. 유대인들은 다른 사람들과 전혀 다르다고 불평하다가, 또 반대로 그들이 주변 환경에 거의 완벽하게 동화되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유대인들이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라고, 그러니까 평균적인 사람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고 불평하는 것이다. --- p.202 나 역시 벌써 머리가 약간 셌고, 나 역시 동일한 톱니바퀴 속에 들어가 있었지만, 마지못해 거기에 끼어 있으면서도 아직은 포기하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 속으로 말했다. 나는 아직 분명히 살아 있어! 그러나 그때, 아직 살아 있었다면, 뭐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그곳에 계속 앉아 있었던 걸까? 그 절망적이고 기괴한 유령들의 모임을 왜 당장 박차고 나가지 않은 걸까? 아니면 적어도 ‘차별’이니 ‘애국공로상’이니, ‘가계증명서’ ‘유대 혈통 비율’ 같은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게다가 의미 없는 한탄, 단조롭고 우울하고 불필요한 애가를 듣지 않기 위해, 귀를 틀어막지 않았단 말인가? --- pp.221-222 마침내 ‘신성한’ 담장, 미콜이 보들레르 시구를 빌려 “철없는 사랑의 푸르른 낙원”이라고 불렀던 바로 그곳을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지점에 이르자, 돌연 어떤 생각에 사로잡혔다. 담을 타고 올라가 정원에 몰래 들어가볼 수 있지 않을까? 어린 시절 까마득한 옛날, 6월의 그날 오후, 난 감히 그렇게 해볼 엄두도 못 냈었다. 겁이 났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 p.344 그녀는 미래를 증오했고 미래보다는 “순결하고 강인하고 아름다운 오늘”을, 그리고 과거를, ‘친근하고 달콤하고 성스러운 과거’를 훨씬 더 사랑했으니. 그리고 바로 이 몇 마디 말, 내가 알다시피, 오직 진정한 입맞춤만이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흔하디흔한 속임수와 절망이 담겨 있는 이 몇 마디를 막을 수 있었기에, 다른 단어들이 아니라 바로 이 단어들로 여기서 가슴이 간직한 얼마 안 되는 기억을 봉인하려 한다. --- p.3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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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문학이 이룩한 정점
역사의 폐허 속에서 피어났던 찬란의 기록 『핀치콘티니가의 정원』의 프롤로그는 전쟁이 끝나고 수십 년이 흐른 뒤, 주인공이 로마 근교에서 지인들과 우연히 고대 에트루리아인들의 무덤을 방문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일행의 어린 딸이 무덤 앞에서 “왜 오래된 무덤보다 새로 생긴 무덤을 보면 더 슬픈 거예요”라고 천진히 묻자 ‘나’는 돌연 자신의 찬란했던 청춘 시절과 핀치콘티니 가문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보들레르의 표현 그대로 “철없는 사랑의 푸르른 낙원”과 같았던 그 시절 핀치콘티니가의 대저택과 정원에서 보낸 한때를 떠올리자 마음속 깊이 슬픔이 피어오른다. 프롤로그에서 곧 밝혀지듯, 과거를 회상하는 이 이야기 속에서 최후의 생존자는 ‘나’뿐이기 때문이다. 부유한 유대인 귀족이던 핀치콘티니가의 사람들은 홀로코스트의 희생자가 되어 무덤의 존재 여부조차 알 수 없이 사라졌다. 가문 대대로 전해진 막대한 재산과 삼만 평에 이르는 정원의 소유자였던 핀치콘티니가의 사람들은 원래 타인과의 교류 없이 성벽 안에서 단절된 생활을 했다. 주인공과 또래인 가문의 아이들 역시 학교에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평범한 중산층인 ‘나’는 그들이 유대인 사원인 시너고그를 찾을 때나 시험을 치러 공립학교에 잠시 들를 때만 그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십대인 ‘나’는 수학 과목에서 낙제한 충격과 자괴감으로 자살을 생각하며 동네를 떠돌다가 이 저택의 담벼락 너머로 가문의 딸 미콜과 만나게 된다. 미콜은 담에 기대 ‘나’에게 말을 걸며 성벽 안으로 들어오라 권유하지만, ‘나’는 위압감을 느끼며 끝내 들어가지 못한다. 이로부터 약 십 년이 지난 1938년, 인종법이 선포되고 유대인들은 평범한 일상의 공간에서조차 배척되기 시작한다. 어느덧 이십대가 된 핀치콘티니가의 알베르토와 미콜은 테니스클럽에서 쫓겨난 유대인 친구들을 위해 저택의 정원을 개방하고 테니스장을 내주기로 한다. 그렇게 ‘나’를 비롯한 페라라의 사람들은 그토록 견고해 보였던 핀치콘티니가의 대문 안으로 초대받게 되고, 탄압과 차별이 거세지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여름의 찬란한 절정을 즐긴다. 그리고 십 년 전부터 이어진 ‘나’와 미콜의 관계는 점차 미묘해진다. 소설은 ‘나’의 시각을 통해 유대인 공동체의 기억을 생생히 길어올린다. 평범한 만찬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이들의 모습을 떠올리는 동시에 그들의 얼굴에서 수용소의 유령을 발견하고 마는 부분은 결코 지나치기 어려운 깊은 감정을 자아낸다. 그러나 이러한 훌륭함에 더불어 페라라에 바치는 순수 기념비로서 『핀치콘티니가의 정원』이 진정 독창적인 이유는 이것이 무엇보다도 탁월한 성장 서사라는 점에 있을지도 모른다. 생동감 넘치는 청소년기의 마법과 그 마법이 깨지며 찾아오는 파멸적 감정들, 복잡한 욕망과 사랑의 신비로운 작동 방식, 비극의 예감과 현재를 예찬하는 태도, 때로는 삶에 대한 부정까지. 『핀치콘티니가의 정원』은 부단히 인간적이면서도 보편적인 개인의 성찰과 존재에 대해 여전히 거대하고 유효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리하여 혼란한 역사의 한가운데 고요한 낙원처럼, 폐허의 성채처럼, 전설적인 무덤처럼 버티고 선 이 담벼락을 겁내지 말고 넘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 담벼락 너머에는 어떤 진실이 있고, 기억이 있으며, 사랑이 있으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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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사니는 이탈리아 부르주아 의식의 혼란상을 파헤치는, 전후 최고의 작가 중 하나다. - 이탈로 칼비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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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문학적 기대에 마땅히 부응하는 생동감 넘치는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소설. - W. G. 제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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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사니 작품 가운데 가장 매력적이고 가장 논쟁적인, 독특한 문체를 뽐내는 소설. - 안젤로 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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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치콘티니가의 정원』은 진정한 사랑 이야기이며, 바사니가 쓴 가장 놀라운 작품이다. 주제나 관심사, 정치적 상황은 달라질지언정 바사니가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 팀 파크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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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하나 없던 유대 민족을 위해 글말로써 무덤을 지어 바친 작가, 바사니의 작품은 죽은 자들에게 바치는 경건한 오마주다. - 로베르토 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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