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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3 4 5 6 7 8 9 10 11 12 옮긴이의 말 제55회 신초신인상 수상자 | 이라 세쓰나 인터뷰 |
伊良刹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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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하고 고요하며, 어떤 구속도 허락하지 않는 독립된 아름다움. 자기주장도 타인의 주장도 아랑곳하지 않는 무관심의 미덕.
--- p.8 그는 마치 바다 같은 남자였다. 아무리 온몸을 바쳐도 그 깊이에 도달하는 것은 끝내 허락되지 않고, 신비롭고 무한한 바닷물이 흐름과 정적 속에 늘 뒤섞이는 것처럼 일관성이 없다는 사실만이 유일한 일관성이었다. 그리고 그 깊고 푸른 바다에 단 한 방울의 피조차 떨어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 p.9 그 순간 하야미에게 악마적인 발상이 떠올랐다. 이 호조 쓰카사란 남자의 아름다움의 근원, 사람을 꿰뚫어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애초에 사람이라는 형상 자체를 마음속에 그리지 않는 것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는 그 괴이한 눈빛은, 과연 어디까지 나에게 잠식되고 말 것인가, 하는. --- p.15 “사람이 사람을 죽이겠다고 결심하는 순간은, 살인이나 방화 뉴스처럼 살벌함과 잔혹함을 접했을 때도, 참을 수 없는 굴욕이나 치욕에 분개할 때도 아니야. 오히려 한낮의 커피 타임이나 화창한 날 공원 벤치에 앉아 미지근한 바람을 맞다가, 문득 시선을 돌린 그곳에서, 하품하는 길고양이를 바라보는 바로 그 순간이야.” --- pp.24-25 “사랑도 결국 없는 것을 탐하는 욕망에 지나지 않아. 아무리 서로 다가서고 곁에 머무르려 해도, 아무리 서로를 어루만지고 상처를 핥아주려 해도 사람은 타인의 고통과 상처의 진정한 고뇌를 알 수 없거든. 자신이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고통을 저절로 느낄 수는 없어. 그래서 자해를 추구하는 거야. 남을 물어뜯은 바로 그 자리와 똑같은 곳에, 자신의 피부에도 이빨 자국을 남기고 싶어 하는 거지. 그게 공감과 감동의 정체야.” --- p.26 내가 유일하게 인정하는, 예술가의 손을 벗어나 이미 존재하는 궁극의 아름다움. 호조의 존재 자체가 내 예술에 대한 모독이었다. 그렇다면 왜 나는 그 모독을 혐오하면서도 모독 그 자체인 그에게 매혹당한 것일까? 왜 나는 그의 초상을 그리겠다고 마음먹은 것일까? --- p.41 삶에도 죽음에도 똑같이 환상을 품지 않고 살아가는 호조는, 원만한 교우 관계를 만들어내면서도 그런 관계들보다 고독이 더 달콤하다고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는 내면도 함께 지니고 있었다. --- p.68 이토록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을지라도 호조는 죽음 그 자체는 아니었다. 그는 온갖 아름다움과 추함의 틈새에 있었다. 바다와 육지가 끊임없이 침범하며 맞닿는 물가였고, 선과 악이 녹아들어 포화된 용액이었으며, 삶과 죽음이 부도덕하게 결합해 태어난 아이였다. 그 틈새, 손을 대기만 해도 부서질 것 같은 연약함과 결코 손댈 수 없는 신성함의 공존, 그것이 호조 그 자체였다. --- p.81 오늘은 집에 가면 먼저 손을 씻고, 입을 헹구고, 조금 공부를 하고 나서 저녁을 먹고, 샤워를 하고, 시시한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을 보고 나서 이를 닦고, 또 공부를 하고, 자정이 되기 전에 잠들자. 하지만 거울은 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거기에는 틀림없이, 연정에 빠진 인간의 바보 같은 얼굴이 비칠 테니까. --- p.111 예술가에게 요구되는 것은 작품이기에 자세나 정신 같은 걸 평가하려는 풍조를 야타니는 싫어했다. 작품과 작가를 투명한 벽으로 구분하는 야타니는 작품에 작가의 정신이 깃든다는 생각도 당연히 싫어했다. 작품이란 작가의 정신이 결정화되어 생겨나는 게 아니다. 정신이라고 부르기에는 덜 정제된 생각 하나가 문득 머릿속에 떠오르고, 그것을 기호화해 나타내는 것, 그것이 야타니가 생각하는 ‘작품’이었다. --- p.146 하야미는 호조와 자신 사이에 작은 유리 조각이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지금까지 밟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그것을 집어 들어 햇빛에 비춰 풍경을 들여다보았 다. 유리 너머의 바다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지만, 깨진 유리가 햇빛을 가득 머금은 모습은 아름다웠다. 유리 안에 채워진 잔광으로 투명함은 한층 더 또렷해졌다. 파편에 햇빛이 쏟아진다. 그것만으로도 유리의 투명한 구조가 다시금 산산이 부서지는 것처럼 보였다. 무언가를 부순다는 것은 무언가를 비추는 것과 꽤 닮아 있었다. --- pp.212-2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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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초신인상 역대 최연소, 열일곱 살의 데뷔작!
일본 문단을 놀라게 한 천재 소설가의 탄생 이 소설의 저자 이라 세쓰나는 2005년 생으로, 2023년 열일곱이라는 역대 최연소의 나이로 제55회 신초신인상을 수상한 신예 작가다. 처음 쓴 소설로 일본을 대표하는 순문학 신인상을 거머쥐며, 그야말로 일본 문단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일본의 저명한 문학평론가 오사와 노부아키(大澤信亮)는 이 소설에 대해 “곳곳에서 크게 웃음을 터트리면서도 끝까지 읽게 만드는 언어의 힘에서 작가의 확실한 재능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평했다. 그는 이 소설을 읽고 난 뒤 다른 후보작들이 모두 희미해졌다고 말할 정도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아쿠타가와상 수상 작가 이시이 유카(石井遊佳)는 다음과 같이 평했다. “미시마 유키오를 읽기 시작한 지 겨우 2년도 되지 않은 열일곱의 소년이 이 소설을 썼다는 사실은 어떤 이론적 설명을 붙이기 이전에 그 자체로 충격적이다.” “대단하다. 미시마 유키오를 다시 만난 것 같다!”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는 일본 문학사에서 손꼽히는 천재 작가로, 오늘날에도 영향력이 막강하다. 그는 유미주의 문학에서 독보적인 재능을 발휘하며 “일본어가 이렇게까지 아름다울 수 있구나” 하는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화려한 문장으로 독자적인 미의 세계를 구축한 인물이다. 이라 세쓰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을 읽기 시작한 후 “그저 미시마 유키오가 너무 좋아서 저렇게 아름다운 문장을 써보고 싶었다”고 수상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리고 불과 2년이 채 지나지 않아 첫 소설 『바다를 엿보다』를 발표하며 일본 문단에서 “대단하다. 미시마 유키오의 재래(再來)다”라는 찬사를 받는다. 문체도, 이야기 구성도, 미(美)에 대한 집요한 성찰도 이 소설은 곳곳에서 미시마 유키오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파도처럼 밀려오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문장들, 십 대 특유의 청순한 관념성과 혼란스러운 정신성, 인물들의 내면에서 울려 나오는 절절한 감정은 이 소설의 강렬한 힘을 보여준다. 특히 한국 문학에서는 언어의 아름다움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유미주의 문학의 전통이 비교적 약한 편이기에, 이 작품의 탐미적인 문체와 감각적인 묘사는 한국 독자에게 더욱 신선하고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Z세대의 감수성으로 사랑과 탐미를 그려내다 이 소설의 주인공 하야미는 고등학교 2학년으로 미술부 학생이다. 그는 같은 반 남학생 호조의 조각상 같은 아름다움과 냉정한 무관심에 압도돼, 그를 모델로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한다. 이젤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은 점점 가까워진다. 그러나 호조가 같은 미술부의 여학생 야마나카와 사귀기 시작하고, 여름 축제의 불꽃놀이 현장에서 목격한 한 사건이 하야미의 마음을 산산이 무너뜨린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미와 추, 삶과 죽음에 대한 십 대 소년의 치열한 사유가 자리 잡고 있다. 호조를 향한 그의 관념적인 사랑은 때로는 거칠게, 때로는 애절하게 그려진다. 특히 하야미가 유일하게 미학적 대화를 나누는 미술부 선배 야타니와의 대화는 과도한 농담처럼 보이면서도 묘한 긴장감과 흡인력을 자아낸다. 하야미와 호조, 야타니와 그의 ‘추한’ 여자친구 타나하시. 여러 인물들이 서로 뒤얽히며 이야기는 점점 긴박해지고, 결국 바다의 어둠 속에서 아름답고 충격적인 결말에 이른다. 이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는 ‘미(美)’다. 아름다움과 추함, 삶과 죽음, 찰나와 영원에 대한 놀랍도록 깊은 사유와 성찰이 독자에게 짜릿한 전율을 선사한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인물들은 더욱 생동감을 띠고, 대화는 경쾌해지며, Z세대 특유의 언어 구사는 야구 배트로 공을 정통으로 때렸을 때의 쾌감을 불러일으킨다. 등단작임에도 이미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갈 작가의 재능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쓰고 싶은 문장과 이야기가 있었기에 썼다.” 이라 세쓰나는 이 소설을 고등학교 2학년 가을에 쓰기 시작해 약 5개월 만에 완성했다. 그는 수상 인터뷰에서 스마트폰으로 문자 메시지 쓰듯 소설을 썼고, 자료 조사도 전부 스마트폰으로 했다고 밝혔다. 그야말로 Z세대다운 글쓰기 방식이다. “옆에서 보면 그저 소파에 앉아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소설은 십 대 소년이 삶과 정면으로 맞부딪치며 느끼는, 지금 이 세계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의 고단함을 가슴 아플 만큼 절절하게 전한다. 인간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인지, 사랑과 연정은 무엇인지, 타인에 대한 욕망과 상실의 비애는 무엇인지, 그리고 죽음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사색과 실존적 불안이 두 인물의 미묘한 관계 속에서 흔들림 없는 호흡으로 펼쳐진다. 이라 세쓰나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기보다 ‘쓰고 싶은 문장과 이야기가 있었기에’ 썼다”고 말했다. 이 소설에는 신선하고 독특한 비유, 파격적인 어휘, 언어의 한계를 시험하는 아슬아슬한 표현,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흐트러지지 않는 뛰어난 문장력 등 Z세대의 패기와 자유로움이 넘쳐난다. 이에 대해 소설가 이시이 유카는 “AI를 이용해 ‘미시마 유키오풍 문장’을 만들어낼 수는 있겠지만 이런 문장들은 결코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평했다. 일본 문단은 벌써부터 이 젊은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고 있다. 이시이 유카는 “한 작품, 한 작품이 이전 작품을 단숨에 없애버릴 듯한 젊은 기세로 앞으로도 독자들을 산산조각 내주길 바란다”고 이 작가에 대한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