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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이동 가능
김중일
창비 2026.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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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시’로 갔다

가을의 러너

간빙기의 우리는

계약 창문

공기의 기억



그러데이션

그림자를 스친 사이

깊은 모서리

나란히 걷는 일

나무는

나뭇잎을 감긴 눈꺼풀처럼 무겁게 무수히 매달고 있는 화분을 기어이 끌어안고 가는 바람

날아가네

너와 눈사람과 나

눈물 따라가보기

눈사람의 그림자

눈사람의 행방

대부분의 너

마음 이사

매일 내 마음을 낳아주는 새가

매일 네가 야위어가는 지구과학적 이유

미래 그림

미래의 아이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밤에 걸린 달력

별의 수

살아 있는 느낌이라는 오해

새벽 폭우

새에서 울음까지

생일

소년이라는 파편

시간 밖의 아이

시한부를 사는 여섯살 먹은 아이가 그 귀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온종일 푹 빠져 있는 잃어버린 장난감 생각

쌓이는 마음

아이는 우리가 아닌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아이들의 원심분리기

아이의 물음

아이의 집

아픈 아이가 오늘은 네가 되어

어리고 어른대는

여름 생활 계획표

오늘은 처음 보는 개가

오래된 ‘시’ 속에서의 신작시 마감

욕조와 향로 1

욕조와 향로 2

워킹 버드

인형의 집

잠든 너의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꿈속의 공기

잠을 도난당한 아이들

잠이 된 아이들

진짜 밤

진짜 시간

진짜 아침

차원 여행

차원 이동 가능

커다란 풍선은 생각보다 멀리 있고 커다란 풍선은 생각보다 더 커다랗고

포플러

하얀 저녁

후략


산문│세상에 어리고 어른대는

시인의 말

저자 소개1

金重一

1977년 서울 출생. 200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국경꽃집』 『아무튼 씨 미안해요』 『내가 살아갈 사람』 『가슴에서 사슴까지』 『유령시인』 등이 있다. 신동엽문학상, 김구용시문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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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4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180쪽 | 242g | 125*200*11mm
ISBN13
9788936425340

책 속으로

시나 쓰던 무기력한 시인은 ‘시’로 갔다

이제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말’을 자신을 대신하여 남겨두고

그 ‘말’은 시인 행세를 하며 대신 말을 전한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어린이에 대한 아픈 시편들이

어린이의 표정을 담아

어린이만큼 모이면

어린이가 된다

어린이처럼 우는 실제

어린이가 되어 울다가

못된 어른을 피해

‘시’로 갔다

결국 어린이만 가고 어린 ‘이’에 따라붙던 미소는 영영

따라가지 못했다
---「‘시’로 갔다」 중에서

저세상 누군가는 이 세상의 한나절을 일생으로 살듯

대개 저세상의 그 한나절 정도를 이 세상에서 살고 죽는 것이다.

시간이 지독히 느리게 흐르는 내 입장에서는 충분한 인생이다.

그래 놓고 이 세상을 뜨는 순간 나는 그러겠지.

일생이란 마치 한나절 같구나.

죽는 순간에야 얻게 되는 일생 가장 사실적인 깨달음이다
--- 「너와 눈사람과 나」 중에서

네가 잠든 사이

네 ‘마음’을 제자리에 찾아다 놓고

네 ‘마음’을 아프지 마라, 아프지 마라, 문지르면

네 ‘마음’을 떠날 수도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는 램프의 요정이 나타나 소원을 들어준다.

가장 먼저, 마음이 아파 두고 온 이삿짐을 눈 깜짝할 사이 여기로 옮겨달라 할 것이다.
--- 「마음 이사」 중에서

보통 도무지 모르겠다는 것은

인정하고 싶지 않을 뿐 사실 알고 있다는 것

너는 너의 살갗을 한장 한장 뜯어 시를 썼고

그것으로 무엇이든 접어 하늘 땅 바다 바람에 띄워 보냈다
--- 「매일 네가 야위어가는 지구과학적 이유」 중에서

우리가 괜한 짓을 하는 건 아닐까, 점점 가슴이 막히고 숨 쉬기 어려워지는 여기가 우주의 땅속 매장지가 아닐까?

슬픈 표정으로 너는 늘 내게 물었고,

첫날의 울음 주머니를 다 비우지도 못하고 묻힌 작은 그림자를 거둬 마음 주머니에 담고 시를 쓰거나 음식을 할 때

그림자 기록자인 우리는 ‘살아 있다’는 의심스러운 느낌에 대해 항상 고민한다
--- 「살아 있는 느낌이라는 오해」 중에서

너는 ‘닫힌 문’처럼 서 있다가 불현듯 나를 돌아보고 가슴을 노크하듯 두드리며 말한다

“저쪽 차원으로부터 한 아이의 노크 소리가 들려. 어서 문을 열어줘야 해. 그런데 그 아이가 이제 내 딸인지 아닌지 모르겠어.”

“아무렴, 오늘 저 텔레비전 속 영정의 아이도 네 딸이 맞잖아. 내일도 다음 주도 다음 달도 내년도 네 딸인 건 불가항력이잖아.”

무럭무럭 자라는 ‘목숨’을 아이 대신 업은 몸으로

차원 이동에 번번이 실패하는 우리의 유일무이한 ‘차원 이동’ 방식은 뉴스 보며 온종일 울기다
--- 「차원 이동 가능」 중에서

너를 놓친 성긴 빛의 그물로는 가장 간절한 바람을 붙잡지 못해 다 날려 보내고, 이제 여기 남은 건 이 시들뿐이야. 그래도 괜찮다면 조명탄처럼 하루가 또 터질 때 손차양으로 사용했으면,

좋겠어.

너의 다음 계절에서. 안녕.

--- 「후략」 중에서

출판사 리뷰

사라진 것들은 끝내 사라지지 않는다
슬픔을 통과해 다시 이어지는 ‘우리’


세월호 참사 이후 창작의 중요한 전환점을 맞으면서 줄곧 슬픔의 기억들을 기록해온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특히 ‘어린이’라는 존재에 집중한다. “태어나자마자 화장실 쓰레기통에 버려지”(「아이는 우리가 아닌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백주에 만취한 운전자의 차량”(「새벽 폭우」)이 덮치고, “미사일이 다트 핀처럼 학교에 꽂히는”(「진짜 밤」) 비극적 현실 속에서 아이들은 끊임없이 사라진다. 시인은 전쟁과 재난, 학대, 사고로 희생된 아이들을 ‘시간 밖의 아이’ ‘잠을 도난당한 아이들’ ‘잠이 된 아이들’로 호명하며 그들의 영혼을 지상으로 불러낸다. 슬픔에 잠긴 기억을 더듬어 사라진 존재들을 다시 현실로 불러들이고 “혼자 우는 멍투성이 아이”들의 “눈높이에 딱 맞게”(「가을의 러너」) 위로의 언어를 건넨다. 이때 시는 아이들이 고통 없는 차원으로 건너가도록 돕는 기도가 된다. 이처럼 한 존재의 비극을 끝까지 응시하는 시선은 곧 세계 전체를 향한 질문으로 확장된다.

세계를 바라보는 시인의 현실 인식은 어둡고 절박하다. 세상은 “꿈 없는 잠”(「진짜 밤」)처럼 캄캄하고, “미래 없는 여기”(「미래의 아이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의 현실은 너무도 비참하여 비현실적으로 비치기도 한다. “연년세세 전쟁 중인 세계”(「아이들의 원심분리기」)에서 과연 우리는 온전히 살아 있는 것일까. “‘살아 있다’는 의심스러운 느낌에 대해 항상 고민”해온 시인은 급기야 “점점 가슴이 막히고 숨 쉬기 어려워지는 여기가 우주의 땅속 매장지가 아닐까?”(「살아 있는 느낌이라는 오해」)라는 극단의 생각에 이른다. “집단 최면처럼 우리가 살아 있는 느낌을 가지게 하는 이 조롱 같은 지구 공간”(「살아 있는 느낌이라는 오해」)에 깊은 회의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이곳만 아니라면 어느 곳에든 영원히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마음 이사」)라는 희미한 희망을 잃지 않고, 새로운 가능성을 품은 ‘이 세계 바깥’을 사유하기 시작한다.

이처럼 이번 시집에서 ‘시’는 단순히 현실을 재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하나의 ‘장소’ 또는 ‘차원’으로 확장된다. “시는 말이나 문자가 아니라 하나의 장소다 (…) 특히 이별의 장소”(「‘시’로 갔다」)라는 선언은 시가 존재들이 스쳐 지나가는 공간임을 분명히 한다. 나아가 “우리들의 유일무이한 ‘차원 이동’ 방식은 뉴스 보며 온종일 울기다”(「차원 이동 가능」)라는 구절은 타인의 죽음을 감각하는 것이 곧 차원을 넘나드는 행위임을 드러낸다. 이러한 차원 이동은 현실의 고통을 잊기 위한 도피가 아니라, “죽게 되면 비로소 다른 차원으로 돌아갈 수 있게”(「차원 이동 가능」) 된다는 인식을 통해 존재의 영원성을 확보하려는 분투이다. “이 세상에서 죽는 순간 저세상에 태어나고, 저세상에서 죽는 순간 이 세상에 태어난다”(「너와 눈사람과 나」)라는 문장은 삶과 죽음을 순환하는 ‘차원 이동’으로 이해하려는 시인의 철학적 사유를 응축한다.

“사랑의 끝에서 시작한
사랑의 끝까지의 이야기들”


지금 이 순간에도, 먼 과거에도, 다가올 미래에도 지구 어딘가의 초등학교에는 미사일이 떨어지고 아이들의 순수가 스러져간다. 바로 그곳, 포연이 자욱하고 폭음이 빗발치는 곳을 맴도는 시인의 모습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아슬아슬하고 참담하다. 그럼에도 시인은 ‘어린’이가 있는 모든 곳에 차원 이동해 ‘어리’기를 반복한다. 수없이 많은 비참, 덧없이 사라지고 힘없이 좌절하는 세계의 슬픔 앞에서 끝없이 흘린 시인의 눈물 위에서 사라진 존재는 다시 세상에 ‘어리’게 된다. 슬픔을 수집해 삶의 숨결을 불어넣는 이 시집은 가장 느리고도 확실한 차원 이동의 기록인 동시에 우리를 다시 서로에게 도달하게 하는 사랑의 기록이라 할 것이다.

참혹이 세계에 만연하다. 죽음이 삶을 뒤덮는다. 미사일이 학교를 폭격하고, 죽어간 아이들의 수많은 눈동자를 신문 지면에서 목격해야 하는 세계. 지구가 캄캄하다. “꿈 없는 잠”처럼. 크리스마스의 공습 속에 아이가 죽어가고 있다. “화장실 쓰레기통”에 버려진 아이가 죽어가고 있다. 부모에게 맞은 아이가 죽어가고 있다. 음주 운전자의 차가 덮친 아이가 죽어가고 있다. 빌딩의 투명한 유리창에 부딪친 어린 새가 날개를 꺾고 죽어가듯이. 아이가 만든 작고 차가운 눈사람이 아침의 햇볕에녹아 “빨간 카디건”만 남겨두고 사라지듯이.

이 참혹을 어떻게 멈추어야 할까. 이 죽음을 어떻게 건너갈 수있을까. 김중일의 시는 답하기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이 질문들에 진심으로 지극하게 응답하고자 한다. 이 세상과 저세상을 뒤바꾸고, 사라진 삶과 남아 있는 삶을 연결하고, 어린이의 영원과 어른의 영혼을 잇대면서. 어른들의 “전쟁 세상”에서 사라져간, 어리고 여리고 아리고 그리운 어린이들의 몇해밖에 되지 않는 삶의 시간을 온몸으로 기억해낸다. 『차원 이동가능』은 “투명 망토 같은 유령 시인”의 시를 그들에게 입혀 누구도 찾아내지 못하도록, 시간의 바깥으로 날개를 펴고 훨훨 날아가도록 기도하는 말이다. 차원을 이동시키고, 지구를 넘어서는 시간을 상상하며, 사라진 어린이들의 미래를 되살리려 하는 불가능한 마법과 같은 언어다. 어떤 슬픔이 이다지 깊고 간곡할 수 있을까. 지금도 함께 눈물을 흘리고 있을 당신에

게 이 고통스럽고 슬픈 언어들을 건넨다. 애도를 넘어 우리가 함께 꿈꾸어야 할 어린 사랑의 손을 잡고 나아가기 위하여.

하재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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