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경부터 신촌, 홍대에 위치한 클럽을 중심으로 수많은 언더그라운드 록 밴드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여러 클럽들이 생겨났고, 저자본 독립레이블에서 많은 앨범이 발매되었다. 하지만 그동안 음악의 질보다는 겉모습에 취한 양적인 거품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현재 국내 언더그라운드 록 씬은 5년 전에 비해 훨씬 다양한 색깔과 역량을 갖춘 밴드들의 등장으로 뮤지션 층이 두터워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국내에는 실력 있는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이 오버에 진출하여 성공한 예가 극히 드문 편이다. 언더와 오버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는 뮤지션들이 부족한 것이다. 물론 전통적으로 댄스뮤직과 발라드가 강세인데다, 비즈니스 관계자들의 편협한 시각이 문제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잠재력을 발굴하여 이끌어줄 프로듀서, 제작자로서의 능력을 갖춘 인물도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 소개할 넬(Nell)은 이미 자신들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많은 고정 팬을 확보한 밴드로, 그동안 여러 클럽 공연, 1999년 쌈지 락 페스티벌, 인터넷 영화 의 O.S.T 등에 참여했다.
전 멤버가 중학교 때부터 악기를 다루기 시작한 이들은 1999년 1월, 고등학교 동창들이 모여 '아이랏(Ilot)'이라는 밴드를 결성했고, 1999년 8월부터 조디 포스터가 주연한 영화제목이기도 한 '넬'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하면서 본격적으로 활동에 들어갔다. 하지만 '피드백', '마스터플랜', 'SH' 클럽 등지에서 공연활동과 스쿨밴드 경력까지 포함하면 멤버 각자가 짧게는 2년, 길게는 5년까지의 경력을 가지고 있는 베테랑들이다. 오래 전부터 친구들이었기 때문에 마음이 잘 맞아서 함께 밴드를 하게 되었고, 고등학교 때 잠깐 현재의 라인업으로 펑크밴드를 했던 경험도 있다.
넬의 음악은 넓게는 모던 락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현 젊은 세대들의 공통된 우울함을 담고 있는 팝이란 말이 더 어울릴 듯하다. 사운드가 그런 느낌을 준다면, 가사는 그 사운드에 적절한 연민의 정서 같은 것이 담겨 있다. 이러한 개인적이고 철학적인 사상을 표현하는 넬의 가사도 이들의 음악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곡을 만드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인물은 리드 보컬과 기타를 맡은 김종완이다. 그는 전곡을 혼자서 작사, 작곡 등, 곡 쓰는 능력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분위기를 리드하는, 힘없이 내뱉는 독특한 창법으로 듣는 이를 더욱 깊은 심연의 세계로 안내한다.
기타리스트 이재경은 맑고 투명한 기타 톤을 자랑한다. 그의 연주는 다른 클럽 밴드의 연주와 달리 자신만의 독립된 영역을 소유하고 있고, 어설픈 기교보다는 기본에 충실한 연주를 들려준다. 특히 간간이 등장하는 그만의 감각적인 싱코페이션은 곡 전반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
리듬 파트를 맡은 베이시스트 이정훈은 곡 전체를 아우르는 포용력과 안정감 있는 연주를 들려준다. 특히 릴렉스하고 그루브감 넘치는 연주를 들려주는 드러머 정재원과의 서로 주고받는 뛰어난 호흡은 라이브 무대에서 그 진가를 발휘한다.
이들은 심플하고 절제된 음(音)과 몽환적인 우울함으로 내면에 쌓여있는 많은 굴곡과 분노를 표현해 낸다. 이러한 성향을 한 차원 높은 곳으로 승화시키고 있는 데는 대중적이면서 결코 평이하지 않는 멜로디와 탁월한 곡 구성 그리고 곳곳에 예측할 수 없는 훅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