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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 시대의 귀환 (큰글자도서)
팍스 아메리카나의 몰락과 무한 각축의 시작
박노자
한겨레출판 2026.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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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도서라이브러리

책소개

목차

들어가는 말: 미국 패권의 몰락, 위기와 기회

1장 퇴행하는 세계

중고의 시대, 퇴보의 시대 | 역사적 ‘초퇴행’의 시대 | 전쟁, 죽음의 불평등 | 1930년대, 우리 시대의 거울 | 1970년대, 세계적 보수화의 분수령 | 비교 심리, 몰락과 수렴 | ‘핏줄’로 퇴행하는 세계 | 우크라이나 전쟁: 무승부의 이유 | 호소와 연대의 실종 | 몸, 계급의 산물

2장 미국은 왜 그럴까

팍스 아메리카나의 황금기, 1945~1955 | 반공주의 이데올로기의 산파 | 제국의 자충수들 | 특별한 시대의 종말 | 위기 대처법: 닉슨 모델 | 인권 부재의 외교 | 적대적 공생의 역사 | 홀로코스트의 기억 | 필연의 실패 | ‘빈민’들의 애국주의 | 상징 자본 축적의 논리

3장 트럼프는 왜 이럴까

옐친의 그림자 | 오랜 역사의 산물 | 미국 노동자의 선택 | 보편 시대의 종말 | 두 극우의 공통점 | 이민자의 나라 | 광의의 파시스트 | ‘배신’의 계보 | 미국의 고르바초프? | 패권의 가격 | 러시아 간첩? | 트럼프주의라는 심적 안식처 | 국가의 자살 | 미래가 될 과거 | ‘딜’ 외교의 실패 | 오바마와 바이든의 계승자

4장 이스라엘 너는 누구냐

유대인 지배론 | ‘유대인 사회주의 운동’ 흥망사 | 소련과 시온주의 | 시온주의: 종족적 민족주의의 폐쇄회로 | 소수자 혐오에 대하여 | 반유대주의 없는 사회? | 소수자의 동화 | 적대적 타자의 이미지 | 하마스에 대하여 | 미래는 있는가? | 교류의 힘 | 작은 희망

5장 과거가 다시 돌아오지 않도록

제국의 주요 상품, 무기 | 글로벌 민족주의 시대 | 미국의 고립주의 전통 | 중국의 ‘미국 시대’의 종언 |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 | 중국은 미국의 미래? | 장기적인 적대적 공존 | 가장 본질적인 차이 | 21세기 혁명의 모습 | ‘포스트 서구 세계’가 온다 | 학술에서 ‘그레이트 아메리카’ | “모든 건 미국 탓이야” | 쇠약해지는 야수의 발악 | 좀 더 큰 목표를 향하여

나가는 말: 관리자 국가 시대, 민주주의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

저자 소개1

Vladimir Tikhonov, Park No-ja,블라디미르 티호노프, 朴露子, Владимир Тихонов

2001년 한국인으로 귀화하기 전까지 본명 '블라디미르 티호노프'.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St. Petersburg)에서 태어났다. 한국과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영화 [춘향전]을 보고 받은 충격 때문이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 동방학부 한국사학과를 졸업한 그는 이후 모스크바 국립대학교에서 고대 한국의 가야사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러시아 국립 인문대학교 강사를 거쳐 학생과 강사의 신분으로 한국에서 대학 생활을 보냈던 그는 '박노자'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귀화한다. 박노자를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잘 아는 외국인', 이라고들 한
2001년 한국인으로 귀화하기 전까지 본명 '블라디미르 티호노프'.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St. Petersburg)에서 태어났다. 한국과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영화 [춘향전]을 보고 받은 충격 때문이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 동방학부 한국사학과를 졸업한 그는 이후 모스크바 국립대학교에서 고대 한국의 가야사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러시아 국립 인문대학교 강사를 거쳐 학생과 강사의 신분으로 한국에서 대학 생활을 보냈던 그는 '박노자'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귀화한다.

박노자를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잘 아는 외국인', 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난 한국인'이라고 주장한다. 그가 귀화한 것은 스스로 한국사회에서 국적, 또 외국인과 내국인이라는 장벽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주는 리트머스지가 될 것을 결심했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대학 한국학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박노자는 한국 사회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과 날카로운 논리로 지식인들은 물론 일반 독자들 사이에서 화제를 불러 일으킨 바 있다. 세계사를 보는 거시적인 혜안 속에서 치열하게 인문학적 성찰의 삶을 살아온 그는 『당신들의 대한민국』,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등의 저서를 통해 '토종' 한국인보다 진한 한국에 대한 애정으로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해주었다.

『당신들의 대한민국』에서 그는 한국을 잘 아는 외국인보다는 러시아를, 또 세계를 잘 아는 한국인에 가까운 그는 한국 사회를 그 주춧돌부터 다시 살펴본다. 누구나 당연하다고 믿고 살던 권위주의의 서까래며 집단이기주의의 기둥이 그 앞에서는 대번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폐품이 되고 만다. 이제까지 나왔던 많은 한국인 비평, 비판보다 서너 길은 더 깊은 통찰이 있고 무엇보다 저자가 한국에 대해 가지는 애정이 든든하다.

두 번째 책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 박노자의 북유럽 탐험』는 북유럽식 사회주의를 실현하고 있는 노르웨이 사회의 이모 저모를 소개하고 있다. 상하의 질서와 복종을 강조하는 우리의 일반적인 문화와 달리, 다양성의 존중과 소박한 삶을 생활의 주요 철칙으로 여기고 있는 노르웨이 사람들의 평등한 인간 관계를 보여준다. 그러나 박노자는 북유럽 사회에 비추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되돌아보는데 그치지 않는다. 외견상 선진적으로 보이는 그들의 이면에 존재하는 제3세계에 대한 차별, 인종주의와 극우 민족주의의 발호 등을 예리하게 포착해 내면서 평화로운 일상에 젖은 그들보다 모순과 부조리를 뛰어넘고자 하는 우리에게 오히려 더 큰 희망이 있음을 역설한다.

『하얀 가면의 제국 : 오리엔탈리즘, 서구 중심의 역사를 넘어』에서 보여주는 한국 사회는 '동양을 타자화하여 비화하는 서구중심주의적 인식'과 서양을 정형화·범주화하는 '서양/비서양'식의 이분법적 인식 속에 좀 더 원어에 가까운 영어 발음을 위해 아이의 혀에 가위를 들이대는 부모들이나 '영어공용화'가 식자층 사이에서 설득력 있게 논의되는 사회는 오리엔탈리즘이 지배하는 곳이다. 또한, 후세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과 미국과 유럽을 아무런 비판 없이 모범으로 삼을만한 미래로 여기는 자세에 대해서도 '맹목적'이라 일갈한다. 그는 우리에게 묻는다. 그 시선은 어디로부터 왔는지. 그리고 그 시선을 만들어낸 곳이 어디인지, 우리 안에 있는 서구제국주의의 시각을 돌아볼 것을 권한다. 근작으로 『길들이기와 편가르기를 넘어』,『왼쪽으로, 더 왼쪽으로』, 『후퇴하는 민주주의』, 『씩씩한 남자 만들기』『리얼 진보』(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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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4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352쪽 | 191*282*18mm
ISBN13
9791172133955

책 속으로

우리는 꼭 우리가 살고 있는 시기를 ‘역사상 가장 역동적’이라고 보고 싶고, 이 시대에 접어들어서 인류가 전례 없이 미래로 진보를 이루었다고 믿고 싶어 합니다… 지금 우리 삶의 기초를 이루는 기술은 대체로 1914년 이전, 즉 그야말로 자본주의의 가장 역동적 시대인 1871~1914년 사이에 발명된 것입니다.
--- p.21

오직 ‘큰 전쟁’만이 누적된 경제 문제들을 ‘해소’할 수 있었던 1930년대 말기의 상황은, 전쟁들이 지속되고 새로운 전쟁의 위험성이 심화하는 이 시대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참고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1930년대 말기의 인류는 제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를 예방하지 못했습니다.
--- p.38

미국의 제조업 장악 시대는 이미 지나가서 다시 돌아올 것 같지 않습니다. 한데 1945~1955년은 바로 미국 제조업의 둘도 없는 최고의 호황기이며 세계 장악의 시기였습니다... 미국의 제조업을 이와 같은 글로벌 위치에 올려놓는 데 제2차 세계대전이 결정적이었습니다.
--- p.74

1970년대 초반 미국의 위기는 국내 경제적, 지경학적, 지정학적인 3중의 위기였습니다… 일단 제국의 일정한 후퇴 및 긴축 정책(retrenchment policy)이 요구되는 국면이었습니다. 사실 오늘날 미 제국의 상황 거의 그대로입니다… 후퇴·긴축 정책의 골간은 세계 각처 전략 자산들의 처분이었습니다.
--- p.93

트럼프를 보면 왠지 35년 전 옐친의 그림자가 보이는 것 같습니다. 포퓰리스트 옐친이 “러시아 제일주의”를 외쳤듯이, 포퓰리스트 트럼프는 “미국 제일주의”를 외칩니다. 각각 소련과 미국이 위기를 맞이하는 국면에서 둘 다 위기의 해법으로 제국 유지에 들어가는 ‘비용’의 축소를 제안합니다.
--- p.133

2025년부터 보는 미국 정치의 장면들은, 제 머릿속에서 1985~1991년 소련에서 이미 본 장면들과 그대로 겹칩니다. 물론 역사는 그대로 반복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구조적으로 소련을 결국 안락사시킨 미하일 고르바초프(Mikhail Gorbachev, 1931~2022)의 ‘소련 사회주의를 다시 위대하게!’와 트럼프의 MAGA(Make America Great Again의 약칭)는 어떤 유사한 점들을 분명히 내포하는 것 같습니다.
--- p.171

세계 패권은 절대 공짜가 아닙니다. 패권에는 가격표가 붙어 있습니다. 패권을 가지자면 일단 어마어마한 군사력을 세계 요충지 곳곳에 전개해야 합니다. 그 군사력을 뒷받침하는 것은 역시 천문학적인 군비 지출입니다… 큰돈을 지불하면서 패권을 쥐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어느 선까지는 패권 유지를 위해 필요한 지출보다 패권을 통해서 얻는 이득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 p.177

트럼프주의가 만약 10~15년 지속되면 2040년대의 미국은 지금보다 훨씬 더 고립적인 사회이고, 더 이상 해외 인재의 메카가 아닐 것입니다. 플랫폼 서비스부터 전자제품까지 가면 갈수록 더 많은 경쟁을 받을 것이고, 외채는 고위험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 p.196

결국 사상사의 차원에서 본다면 1917년 이후의 세계사는 자유주의, 사회주의, 그리고 민족주의의 상호 경쟁과 상호 중첩, 혼합화, 그리고 이념적 패권 교체의 역사입니다… 2010년대 이전까지 적어도 구미권은 민족주의보다는 주로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의 경합과 상호 침투, 혼종화의 무대였습니다.
--- p.285

모택동이 소련 시대를 끝낼 수 있었던 것은 1950년대 소련식으로 재편된 계획 경제가 이룩한 성과 덕이었듯이, 지금 시진핑이 미국 시대를 끝낼 수 있는 것은 미국의 돈과 기술, 지식 수입으로 발전된 중국의 시장 경제가 이미 이룩한 성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 p.296

어차피 궁극적으로 한국은 자주국방을 전제로 미국의 개입에 의존하지 않는 지역적 안보 구도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한국의 수출에서 구미권과 일본의 비중보다 중국과 아세안의 비중이 더 크고, 한국의 문화 상품들은 구미권 이상으로 비서구권에서 잘 팔립니다.
--- p.324

미 제국이 쇠락하는 틈을 타서 서로 경쟁하고 주변의 판도를 바꾸고 있는 현 상황의 특색, 즉 제국 간의 모순들(inter-imperialist contradictions)의 심화와 경쟁의 첨예화, 미국 이외 제국들의 상대적 영향력 강화 등을 무시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의 대외 정책에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한반도의 경우에는 모든 게 다 미국 탓 식의 접근은 객관적인 상황 파악과 대응에 상당한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 p.335

출판사 리뷰

관세 폭탄, 다자주의 파괴, 베네수엘라 침공, 그린란드 야욕…
미국은 왜 이럴까?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1945년)과 함께 시작된 팍스 아메리카나는 압도적인 군사력과 제조 생산력, 소비력만의 결과물이 아니다. 미국은 브레턴우즈 체제(Bretton Woods System)를 통해 달러를 세계 기축 통화로 세우고, 마셜 플랜(Marshall Plan)을 통해 자본주의 진영의 경제 부흥을 주도하며, 자유 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 동맹을 구축했다. 이를 통해 미국은 전 지구적 자본 축적 과정을 총체적으로 조절하고 중재하는 전무후무한 지위를 누렸다. 전 세계가 미국의 금융 시스템에 의존하고, 미국의 소비 시장에 상품을 팔며, 미국의 군사적 보호 아래 안보를 의탁하는 거대한 순환 구조가 완성된 것이다.

그러나 이 견고해 보이던 패권은 1970년대부터 서서히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신자유주의적 전환은 금융 자본의 비대화를 불러왔지만 동시에 미국의 실물경제를 지탱하던 제조업의 쇠락과 트럼프의 콘크리트 지지층인 ‘러스트 벨트’의 형성이라는 치명적인 대가를 치러야 했다. 산업의 퇴조는 극심한 빈부 격차와 중산층의 붕괴를 초래했고, 제국을 유지하기 위한 천문학적인 비용 부담은 내부의 불만을 증폭시켰다. 여기에 2008년의 세계 공황, 2010년대 초반 실물경제 초강대국으로 중국의 부상, 이라크·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의 패배, 트럼프형 신보호주의의 등장,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이 맞물리며 미국의 일극 체제는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91쪽)

게다가 상당수 미국인들의 입장에서 ‘돈 먹는 하마’인 ‘패권 비지니스 모델’은 소득에 비해 낭비성이 지나쳐 경제성이 떨어진다. 하위 동반 국가들까지 챙겨야 하는 패권 국가보다 그냥 자국의 이해만 챙기는 보통 열강 미국을 원하는 것이다.(177쪽)

바로 이때 출현한 것이 트럼프다. 트럼프주의는 세계화 과정에서 철저히 소외된 미국 하층 노동 계급의 분노와 인종주의적 편견이 결합된 우익 포퓰리즘의 결정체다. 무엇보다 트럼프주의의 본질은 국제 사회의 ‘규범’과 ‘동맹’이라는 거추장스러운 외피를 벗어던지고, 오직 단기적인 자국 이익만을 추구하는 극단적인 ‘미국 제일주의’에 있다. 이는 그동안 미국이 표방해 온 보편적 가치와 외교적 신뢰를 스스로 파괴하는 행위다. 고율 관세 부과와 무리한 투자 강요, 인권 및 기후 관련 66개 국제기구와 협약 탈퇴, 방위비 분담금 압박, 대외 원조 중단, 강경한 이민 정책, 언론 탄압 등 트럼프 행정부의 기행에 가까운 정책들이 대표적인 예다.

저자는 트럼프에게서 고르바초프와 옐친의 그림자를 보았다. 옐친 역시 러시아 제일주의를 외쳤고 고르바초프는 “사회주의를 다시 위대하게”를 외쳤다. 그 추진 주요 동력은 제국 유지 비용의 축소였는데 이는 결국 제국의 몰락을 재촉했다.(171쪽)

만약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내세우는 트럼프주의가 고착된다면 미국은 내부적으로는 극한의 양극화와 정치적 내란 상태에 직면할 것이고, 대외적으로는 국제 질서를 교란하는 ‘예측 불가능한 깡패 국가’로 전락할 것이다. 무엇보다 비극적인 점은, 미국 패권의 몰락이 평화로운 다극 체제로의 전환이 아니라, 힘의 논리만이 지배하며 무제한 각축을 벌이는 ‘야만의 시대’를 여는 서막이라는 사실이다.

자국의 이익과 생존만이 우선되는 포스트 아메리카나 앞에서

영토와 자원을 둘러싼 열강들의 부단한 경쟁은 본래 자본주의 세계 체제에서 일반적인 상황이다. 여기에는 국제 사회를 지탱하던 최소한의 법적 합의나 인권이라는 보편적 규범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과거 냉전 시기나 유일 패권 시기에는 최소한 강대국들 사이의 명문화된 규칙이나 패권국의 강력한 중재가 분쟁을 억제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 중재자가 사라지고 패권 공백이 넓어지는 현재, 각국은 오직 자국의 생존과 이익만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글의 법칙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러한 정세를 보여 주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다. 주권 국가의 영토를 무력으로 침범하고 병합하려는 행위는 19세기 제국주의 시대의 유산이었으나 오늘날 다시금 현실의 위협이 되었다.(56쪽)

또한 가자 지구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인명 살상과 이를 저지하지 못하는 국제 사회의 무능은 인권과 인도주의라는 가치가 얼마나 쉽게 폐기될 수 있는지를 증명한다.

더 큰 문제는 전 세계적 경기 하락 국면에 패권 이동, 즉 열강 사이의 싸움까지 겹치면 최악의 반동 정치가 판을 치게 된다는 점이다. 이탈리아와 네덜란드, 핀란드 그리고 미국 등에서 초강경 우파가 집권한 것도 위기의 한 징후다.(28쪽) 또 다른 우려는 세계적 경기 하락 국면에서 누적된 모순은 결국 큰 전쟁을 불러왔다는 데 있다. 전간기(戰間期, 1918~1939)에 누적된 모순이 제2차 세계대전을 초래한 것처럼, 앞으로 펼쳐질 글로벌 무한 각축은 신자유주의 파산, 기후 붕괴와 맞물려 또 다른 대규모 전쟁을 불러올 수 있다.

이미 세계는 반도체, 에너지, 희토류 등 전략 자원을 둘러싼 ‘경제 전쟁’을 넘어 실제적인 군사적 대치 국면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우리는 규범에 의한 통제가 사라진 빈자리에 ‘힘이 곧 정의’가 되는 시대 한가운데에 서 있다. 과거에 세계 경찰을 자임해 왔던 미국은 이제 체면을 차릴 것도 없이 그저 세계를 주무르고 있는 여러 조폭 조직의 하나로 그 위상을 재정리하고 있다.(145쪽) 과연 우리는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 있을까? 미국에게 동맹의 가치가 더 이상 예전 같지 않다면, 한국 역시 한미 동맹에 대한 무조건적 의존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제 우리의 지정학적 위치와 외교적 태도를 근본적으로 재고해야 할 때인 것이다.

동맹은 없고 거래만 남은 세상,
미국 제일주의의 호구가 되지 않으려면?

오랜 시간 대한민국에게 미국은 단순한 우방을 넘어 ‘세계’ 그 자체였다. 해방 이후 우리가 마주한 기술과 과학, 기독교에서 서구적 마르크스주의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지적·물적 토양은 미국이라는 필터를 거쳐 수용되었다. 미국은 곧 문명이었고 그 질서에 순응하는 것이 유일한 생존 전략인 시절이 있었다.(14쪽)

그러나 팍스 아메리카나의 황혼과 함께 이 일방적 의존도 저물고 있다. 세계가 포스트 서구 시대로 선회하는 지금, 우리 역시 ‘포스트 미국 시대’를 향한 점진적이고도 담대한 이행을 준비해야 한다. 미국은 여전히 핵심적인 변수지만, 이제는 우리의 발전을 견인하는 엔진이기보다 때로는 거액의 투자를 강요하거나 자국 우선주의로 우리를 옥죄는 불확실한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거대한 전환기의 길목에서 박노자 교수는 대한민국이 취해야 할 생존과 발전 전략을 구체적으로 제안한다. 우선 안보의 패러다임을 ‘자립’과 ‘지역’으로 재편해야 한다. 역설적이게도 고립주의를 표방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등장은 전시작전권 환수를 완수할 수 있는 적기일 수 있다.(12쪽) 미국의 개입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수동적 자세에서 벗어나 자주국방의 토대를 다지고, 중국·러시아·북한과의 관계를 적대적 단절에서 호의적 공존으로 회복해야 한다. 이를 통해 한반도를 둘러싼 다자적 지역 안보 구도를 설계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통찰이다.(324쪽)

경제적 지평 역시 과감하게 넓혀야 한다. 그간의 외교가 구미권과 일본에 올인하는 편향성을 보였다면, 이제는 중국과 아세안, 그리고 비서구권 시장에 더 큰 무게를 실어야 한다. 한국의 문화 상품과 산업 역량은 이미 서구권을 넘어 비서구 세계에서 강력한 소구력을 증명해 왔다. 발전국가 모델의 경험을 살려 전략적인 산업 정책을 펼치는 동시에, 인도·브라질·남아공 등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의 주요 행위자들과 보조를 맞추는 ‘균형 외교’가 반드시 필요하다.(60쪽)

결국 대미 관계의 본질적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 ‘미국 제일주의’를 외치는 트럼프 시대에 과거와 같은 혈맹의 낭만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그들에게 동맹이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오직 ‘비즈니스 파트너’와 ‘고객’만 남았다면, 우리는 기꺼이 그 거래에 응하되 결코 ‘호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미국이 군사적 보호라는 명분으로 불합리한 요구를 해 온다면, 우리 역시 한미 동맹은 물론이고 방산, 조선, 반도체 및 배터리 등 다양한 전략 자산을 카드로 내걸고 대응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와 동아시아 경제 협업이라는 우리의 핵심 이익을 끝까지 관철하는 ‘요구 수준이 높은 고객’이 되는 것, 이게 바로 야만 시대를 헤쳐 나갈 대한민국의 필수 전략인 것이다.(1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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