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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을 사랑하고 꽃피운 윤동주 김소월 필사북
뮤지컬, 영화, 노래가 된 동주·소월 시 108선 사철제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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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머리말

윤동주

뮤지컬 ‘달을 쏘다’에 나온 시
팔복 │ 간판없는 거리 │ 십자가 │ 아우의 인상화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쉽게 씌어진 시 │ 참회록 │ 이별 │ 별 헤는 밤 │ 달을 쏘다

영화 ‘동주’에 나온 시
자화상 │ 소년 │ 병원 │ 새로운 길 │ 무서운 시간 │ 또 다른 고향 │ 길 │ 흰 그림자 │ 사랑스런 추억 │ 봄 │ 간 │ 바람이 불어 │ 공상 │ 내일은 없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시
눈 오는 지도 │ 돌아와 보는 밤 │ 태초의 아침 │ 새벽이 올 때까지 │ 슬픈 족속 │ 눈감고 간다 │ 흐르는 거리 │ 밤 │ 유언 │ 위로 │ 산골물 │ 창구멍 │ 못 자는 밤 │ 사랑의 전당 │ 비오는 밤 │ 황혼이 바다가 되어 │ 꿈은 깨어지고 │ 거리에서 │ 삶과 죽음 │ 해바라기 얼굴 │ 반디불 │ 편지 │ 모란봉에서 │ 오후의 구장 │ 곡간 │ 어머니 │ 창공 │ 초 한 대 │ 코스모스 │ 고향집

김소월

뮤지컬 ‘어제의 시는 내일의 노래가 될 수 있을까’에 나온 시
진달래꽃 │ 초혼 │ 풀 따기 │ 산유화 │ 먼 후일 │ 합장 │ 사노라면 사람은 죽는 것을 │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 대일 땅이 있었더면

교과서에 실린 시
님의 노래 │ 님에게 │ 봄 밤 │ 못 잊어 │ 길 │ 개여울 │ 가는 길 │ 왕십리 │ 삭주구성 │ 접동새 │ 금잔디 │ 엄마야 누나야

한국인이 좋아하는 시
산 위에 │ 옛이야기 │ 님의 말씀 │ 꿈으로 오는 한 사람 │ 닭소리 │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 해가 산마루에 저물어도 │ 부엉새 │ 부모 │ 봄비 │ 비단안개 │ 기억 │ 애모 │ 몹쓸 꿈 │ 그를 꿈꾼 밤 │ 서울 밤 │ 가을 아침에 │ 님과 벗 │ 바다가 변하야 뽕나무밭 된다고 │ 나의 집 │ 오는 봄 │ 무덤 │ 춘향과 이도령 │ 나는 세상모르고 살았노라 │ 차안서 선생 삼수갑산운 │ 맘에 속의 사람 │ 외로운 무덤 │ 꿈자리 │ 칠석 │ 제이·엠·에쓰 │ 고락 │ 실버들 │ 첫사랑

저자 소개2

尹東柱

일제강점기 저항시인이자 독립운동가. 일제 강점기 암울한 현실 속에서 민족에 대한 사랑과 독립의 절절한 소망을 노래한 민족시인. 우리 것이 탄압받던 시기에 우리말과 우리글로 시를 썼다. 윤동주는 어둡고 가난한 생활 속에서 인간의 삶과 고뇌를 사색하고, 일제의 강압에 고통받는 조국의 현 실을 가슴 아파하는 철인이었다. 그의 사상은 짧은 시 속에 반영되어 있다. 1917년 12월 30일 만주 북간도 명동촌에서 윤영석과 김룡의 맏아들로 출생했다. 윤동주는 청춘 시인이다. 절친한 친구였던 문익환 목사의 시 ‘동주야’에 의하면 아직 새파란 젊은이로 기억되고 있었다. 한글을 구사하면서
일제강점기 저항시인이자 독립운동가. 일제 강점기 암울한 현실 속에서 민족에 대한 사랑과 독립의 절절한 소망을 노래한 민족시인. 우리 것이 탄압받던 시기에 우리말과 우리글로 시를 썼다. 윤동주는 어둡고 가난한 생활 속에서 인간의 삶과 고뇌를 사색하고, 일제의 강압에 고통받는 조국의 현 실을 가슴 아파하는 철인이었다. 그의 사상은 짧은 시 속에 반영되어 있다. 1917년 12월 30일 만주 북간도 명동촌에서 윤영석과 김룡의 맏아들로 출생했다. 윤동주는 청춘 시인이다. 절친한 친구였던 문익환 목사의 시 ‘동주야’에 의하면 아직 새파란 젊은이로 기억되고 있었다.

한글을 구사하면서 작품을 발표한 192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만주 용정과 경성 신촌 일대에서 문학청년들과 몸을 부대끼며 시를 썼기에 청춘의 고뇌가 담겨 있다. 1925년(9세) 4월 4일, 명동 소학교에 입학했다. 1927년 고종사촌인 송몽규 등과 함께 문예지 [새 명동]을 발간했다. 1931년(15세) 명동소학교를 졸업하고 1932년(16세) 은진중학교에 입학했다. 1934년(18세) 12월 24일, 「삶과 죽음」, 「초한대」, 「내일은 없다」 등 3편의 시 작품을 썼고 이는 오늘 날 찾을 수 있는 윤동주 최초의 작품이다. 1935년(19세) 은진중학교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평양 숭실중학교 3학년 2학기로 편입했다. 같은 해 평양 숭실중학교 문예지 [숭실활천]에서 시 ‘공상’이 인쇄화되었다. 1936년 신사참배 강요에 항의하여 숭실학교를 자퇴하고 [카톨릭 소년]에 동시 「병아리」, 「빗자루」를, 1937년 [카톨릭 소년]에 동시 「오줌싸개 지도」, 「무얼 먹고 사나」, 「거짓부리」를 발표했다.

1938년(22세)2월 17일 광명중학교 5학년을 졸업하고 서울 연희전문학교(연세대학교) 문과에 입학했고 1939년 조선일보에 「유언」, 「아우의 인상화」, [소년(少年)]지에 「산울림」을 발표하였다. 처음 윤동주 시들은 노트에 봉인된 채, 인쇄되지도 않았고 신문 지면에 발표되지 않았다. 그가 후쿠오카 감옥에서 숨지고 난 후 동문들이 그의 노트에 있던 시를 모아 정음사에서 출판한다. 유해가 안치된 지 3년 후, 그러니까 1948년, 조선은 대한민국으로 국호가 바뀌어 혼란한 시기에 청춘 시가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15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1941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던 해인 1941년「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발간하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자필로 3부를 남긴 것이 광복 후에 정병욱과 윤일주에 의하여 다른 유고와 함께「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정음사, 1948)라는 제목으로 간행되었다.

만주 북간도에서 4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5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조선일보, 경향신문 등에 「달을 쏘다」, 「자화상」, 「쉽게 씌어진 시」를 발표하였다. 연희전문을 졸업한 후 1942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릿쿄 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였고, 6개월 후에 교토 시 도시샤 대학 문학부로 전학하였다. 1943년 7월 14일, 귀향길에 오르기 전 사상범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교토의 카모가와 경찰서에 구금되었다. 이듬해 교토 지방 재판소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죄목으로 2년형을 언도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그리고 복역 중이던 1945년 2월 16일 광복을 여섯 달 앞두고 스물여덟의 젊은 나이로 타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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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素月, 김정식

1902년 9월 7일 평안북도 구성군에 있는 외가에서 부친 김성도와 모친 장경숙의 장자로 출생한다. 본명은 김정식이다. 태어난 지 백일 후부터 평안북도 정주군 곽산면의 본가에서 자란다. 1904년 부친 김성도가 당시 경의선 철도 부설공사를 하던 일본 목도꾼에게 폭행을 당한 이후 정신 이상 증세에 시달린다. 김소월은 광산을 경영하는 할아버지의 손에서 컸는데, 이 무렵 시인의 길로 가도록 영향을 준 숙모 계희영을 만났다. 1915년 평안북도 곽산의 4년제 남산보통학교를 졸업하고 평안북도 정주에 있는 오산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해 김억과 사제관계를 맺게 되고 한시, 민요시, 서구시 등을
1902년 9월 7일 평안북도 구성군에 있는 외가에서 부친 김성도와 모친 장경숙의 장자로 출생한다. 본명은 김정식이다. 태어난 지 백일 후부터 평안북도 정주군 곽산면의 본가에서 자란다. 1904년 부친 김성도가 당시 경의선 철도 부설공사를 하던 일본 목도꾼에게 폭행을 당한 이후 정신 이상 증세에 시달린다. 김소월은 광산을 경영하는 할아버지의 손에서 컸는데, 이 무렵 시인의 길로 가도록 영향을 준 숙모 계희영을 만났다. 1915년 평안북도 곽산의 4년제 남산보통학교를 졸업하고 평안북도 정주에 있는 오산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해 김억과 사제관계를 맺게 되고 한시, 민요시, 서구시 등을 본격적으로 접하게 된다. 후에 경성 배재고등보통학교에 편입하여 1923년 졸업했다. 이후 일본 도쿄 상과대학교에 입학 후 귀국했을 시점에 시인 나도향과 만나 친구가 되었다. 일제강점기 시절 이별과 그리움을 주제로 우리 민족의 한과 슬픔을 노래하는 시를 썼다. 김소월은 자신의 문학적 스승인 김억의 격려를 받아 그의 지도 아래 시를 쓰기 시작하였으며 1920년 「낭인(浪人)의 봄」, 「야(夜)의 우적(雨滴)」 등 5편을 소월(素月)이라는 필명으로 동인지 『창조』 5호에 처음으로 시 「그리워」를 발표하며 등단하였다. 오산학교를 다니는 동안 김소월은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으며, 1921년 [동아일보]에 「봄밤」, 「풀 따기」 등을 발표했다. 1922년 「금잔디」, 「엄마야 누나야」를 개벽지에 발표하였으며, 1925년에 시론 「시혼(詩魂)」을 발표하고, 같은 해 7월호에 떠나는 님을 진달래로 축복하는 한국 서정시의 기념비적 작품인 『진달래꽃』을 발표하여 크게 각광받았다. 이는 시인이 생전에 낸 유일한 시집으로 기록된다. 그 밖에 1923년 『깊고 깊은 언약』 『접동새』 1924년 『밭고랑 위에서』 『생과 사』 1926년 『봄』 『저녁』 『첫눈』 1934년 『제이, 엠, 에스』 『고향』 등을 발표했다.

1923년 도쿄상업대학교에 입학하였으나, 같은 해 9월 관동대지진이 발생하자 중퇴하고 귀국했다. 김소월은 고향으로 돌아간 후 조부가 경영하는 광산일을 돕다가 처가가 있는 구성군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어 1926년평안북도 구성군 남시에서 [동아일보 지국]을 개설하고서 이도 실패하자 극도의 빈곤에 시달리기도 했다. 예민한 성격이었던 김소월은 이에 큰 충격을 받았으며, 이후 류머티즘을 앓으며 친척들에게도 대접을 받지 못하는 등 고생하다가 1934년 12월 24일 만 32세의 나이로 평안북도 곽산에서 아편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939년 스승 김억이 엮은 『소월시초(素月詩抄)』가 발간된다. 1977년 [문학사상] 11월호에 미발표 소월 자필 유고시 40여 편이 발굴, 게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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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5월 08일
판형
사철제본 ?
쪽수, 무게, 크기
280쪽 | 532g | 153*224*20mm
ISBN13
8809487620204

책 속으로

3. 한글의 아름다움을 시로 빚다 — 순우리말의 시학
윤동주의 시에는 유독 순우리말의 결이 고스란히 살아있다. “별 헤는 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슬픈 족속”, “쉽게 씌어진 시” 등의 제목만 보아도 한자어나 외래어를 의도적으로 걷어내고 우리말의 소리와 리듬을 살리려 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는 어렵고 현란한 언어 대신 일상의 소박한 우리말로 가장 깊은 사유를 담아냈다. 최현배가 평생 주창한 “한글만 쓰기” 운동의 정신이 윤동주의 시어 선택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것이다. 그의 시가 세대를 넘어 여전히 쉽게 읽히고 가슴에 닿는 것은 바로 이 순우리말의 힘 덕분이다.
---「18쪽 ‘한글을 가장 사랑한 시인, 윤동주’」중에서

붉은 이마에 싸늘한 달이 서리어
아우의 얼골은 슬픈 그림이다.

발걸음을 멈추어
살그머니 애띤 손을 잡으며
“너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
“사람이 되지”
아우의 설운 진정코 설운 대답이다.

슬며—시 잡았든 손을 놓고
아우의 얼골을 다시 들여다 본다.

싸늘한 달이 붉은 이마에 젖어
아우의 얼골은 슬픈 그림이다.
---「28쪽 ‘아우의 인상화’」중에서

나는 나를 정원에서 발견하고 창을 넘어 나왔다든가 방문을 열고 나왔다든가 왜 나왔느냐 하는 어리석은 생각에 두뇌를 괴롭게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다만 귀뜨람이 울음에도 수줍어지는 코쓰모쓰 앞에 그윽히 서서 닥터·삐링쓰의 동상 그림자처럼 슬퍼지면 그만이다. 나는 이 마음을 아무에게나 전가시킬 심보는 없다. 옷깃은 민감이어서 달빛에도 싸늘히 추워지고 가을 이슬이란 선득선득하여서 설은 사나이의 눈물인 것이다.
발걸음은 몸뚱이를 옮겨 못가에 세워줄 때 못 속에도 역시 가을이 있고, 삼경(三更)이 있고, 나무가 있고, 달이 있다.
그 찰나 가을이 원망스럽고 달이 미워진다. 더듬어 돌을 찾어 달을 향하야 죽어라고 팔매질을 하였다. 통쾌! 달은 산산히 부서지고 말았다. 그러나 놀랐든 물결이 자자들 때 오래잖아 달은 도로 살아난 것이 아니냐, 문득 하늘을 쳐다보니 얄미운 달은 머리 위에서 빈정대는 것을………
---「46쪽 ‘달을 쏘다’」중에서

살구나무 그늘로 얼골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려내 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어 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어 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54쪽 ‘병원’」중에서

으스럼이 안개가 흐른다. 거리가 흘러간다. 저 전차, 자동차, 모든 바퀴가 어디로 흘리워 가는 것일까? 정박할 아무 항구도 없이, 가련한 많은 사람들을 싣고서, 안개 속에 잠긴 거리는,

거리 모퉁이 붉은 포스트 상자를 붙잡고, 섰을라면 모든것이 흐르는 속에 어렴풋이 빛나는 가로등, 꺼지지 않는 것은 무슨 상징일까? 사랑하는 동무 박(朴)이여! 그리고 김(金)이여! 자네들은 지금 어디 있는가? 끝없이 안개가 흐르는데,
---「92쪽 ‘흐르는 거리’」중에서

3. 한(恨)을 담은 그릇, 순우리말 — 감정의 정밀한 언어
소월의 시에서 가장 빛나는 것은 감정을 표현하는 순우리말의 정밀함이다.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같은 시어들은 복잡한 감정의 결을 단 한 줄의 우리말로 정확하게 포착한다. 서양의 시가 감정을 분석하고 설명하려 한다면, 소월의 시는 감정을 우리말의 소리와 리듬 속에 그대로 녹여낸다. 특히 이별과 그리움, 기다림이라는 한국인 특유의 정서인 한恨은 한자어나 외래어로는 온전히 담길 수 없는 감정이다. 소월은 오직 순우리말의 질감으로만 그 한을 오롯이 표현해냈으며, 그 덕분에 그의 시는 백 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인의 가슴에 직접 닿는다.
---「144쪽 ‘한글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 시인, 김소월’」중에서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어!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어!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어!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어!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어!
사랑하던 그 사람이어!

붉은 해는 서산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150쪽 ‘초혼’」중에서

나들이. 단 두 몸이라. 밤빛은 배여 와라.
아, 이거 봐, 우거진 나무 아래로 달 들어라.
우리는 말하며 걸었어라, 바람은 부는 대로.

등불 빛에 거리는 헤적여라, 희미한 하늘 편에
고이 밝은 그림자 아득이고
퍽도 가까운, 풀밭에서 이슬이 번쩍여라.

밤은 막 깊어, 사방(四方)은 고요한데,
이마적, 말도 안하고, 더 안 가고,
길가에 우두커니. 눈감고 마주 서서.

먼먼 산. 산 절의 절 종소리. 달빛은 지새어라.
---「160쪽 ‘합장’」중에서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다.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못 잊어도 더러는 잊히오리다.

그러나 또 한긋 이렇지요,
‘그리워 살뜰히 못 잊는데,
어쩌면 생각이 떠지나요?’
---「176쪽 ‘못 잊어’」중에서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그림자 같은 벗 하나이 내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많은 세월을
쓸데없는 괴로움으로만 보내었겠습니까!

오늘은 또다시, 당신의 가슴속, 속모를 곳을
울면서 나는 휘저어바리고 떠납니다그려.

허수한 맘, 둘 곳 없는 심사(心事)에 쓰라린 가슴은
그것이 사랑, 사랑이던 줄이 아니도 잊힙니다.

---「212쪽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중에서

출판사 리뷰

한글학자 최현배가 아끼던 제자, 한글로 시대를 밝히다
스승 김억을 만나, 우리말로 한국인의 마음을 노래하다

손끝에서 다시 살아나는 한글, 그 580년의 여정을 함께 쓰다


우리는 매일 한글을 쓴다. 스마트폰 자판 위에서, 키보드 위에서, 너무나 빠르고 당연하게. 그 편리함 속에서 우리는 종종 잊는다. 한글이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580년 전 세종대왕이 백성을 향한 깊은 마음으로 빚어낸 선물이라는 사실을. 말과 글이 하나로 이어지기를, 이 땅 사람들이 제 목소리로 세상을 기록하기를 바라던 간절한 꿈이 담긴 문자라는 사실을.

이 책을 기획하면서 가장 먼저 떠올린 질문은 하나였다. ‘어떻게 하면 한글의 아름다움을 가장 깊이 느낄 수 있을까?’ 읽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눈은 빠르게 지나가고, 의미는 표면에만 머문다. 그러나 손으로 쓸 때는 달라진다. 한 글자, 한 획, 한 음절에 잠시 머물게 된다. 그 머묾 속에서 비로소 글자의 모양이 보이고, 소리가 들리고, 그것이 품고 있는 감정이 느껴진다. 필사란 결국 글자와 나 사이의 느린 대화다.

그 대화의 상대로 윤동주와 김소월만큼 적합한 이들이 있을까. 두 시인은 우리말이 가장 위태로웠던 시대를 살았다. 학교에서 조선어 교육이 금지되고, 조선어학회가 강제 해산되고, 이름까지 빼앗기던 일제강점기에 이들은 끝내 한글로 시를 썼다. 윤동주는 한글로 쓴 시집 한 권을 남기기 위해 직접 세 부를 필사했고, 그 한 부가 땅속에 묻혀 살아남아 오늘의 우리에게 전해졌다. 필사로 지켜진 시집이 다시 필사북으로 독자 앞에 놓이는 것, 이 아름다운 순환이 이 책의 출발점이 되었다.

왜 지금, 필사인가

디지털 시대에 손으로 글씨를 쓰는 행위는 점점 낯선 일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필사는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손으로 쓴다는 것은 속도를 늦추겠다는 의식적인 선택이다. 그 선택이 만들어내는 고요함 속에서 사람은 비로소 자신과 마주한다. 연구들은 손으로 글씨를 쓰는 행위가 집중력을 높이고, 내용을 더 깊이 기억하게 하며, 감정적 안정감을 준다고 말한다.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온몸으로 언어를 체험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시를 필사할 때 이 효과는 더욱 극대화된다. 시의 언어는 압축된 감정과 이미지의 덩어리다. 손으로 그 언어를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시인이 그 단어를 선택한 이유가 손끝에서 느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특히 한글 시의 필사는 그 의미가 남다르다. 한글은 소리의 문자다. 세종대왕이 백성의 말소리를 담기 위해 창제한 문자이기에, 한글은 그 자체로 음악성을 품고 있다. 소월의 시어를 손으로 쓰면서 입으로 읽으면, 3·4조와 7·5조의 가락이 몸 안에서 리듬으로 살아난다. 동주의 시어를 한 자씩 써 내려가면서, 그 단정하고 투명한 순우리말의 결이 손끝에 전해진다. 눈으로 읽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체험이다.

뮤지컬, 영화, 노래 속에서 살아 있는 시들

이 책에 담긴 108편의 시는 단순히 ‘오래된 시’가 아니다. 오늘날에도 무대 위에서, 스크린에서, 노래 속에서 살아 있는 시들이다. 이 점은 이 책의 가장 중요한 기획 의도 중 하나다. 윤동주의 「팔복」, 「십자가」, 「별 헤는 밤」, 「참회록」은 뮤지컬 「달을 쏘다」의 무대에서 배우의 목소리와 어우러져 관객의 가슴을 흔들었다. 영화 「동주」는 「자화상」, 「새로운 길」, 「바람이 불어」를 다시 한국인의 일상 언어로 불러들였다. 한 시대의 어둠 속에서 쓰인 시가 다른 시대의 빛 속에서 다시 읽힌다는 것—그 자체가 문학의 기적이자, 한글이 가진 힘의 증거다.

김소월의 시는 노래가 되는 운명을 타고났다. 「진달래꽃」은 가곡으로, 「엄마야 누나야」는 동요로, 「초혼」은 뮤지컬의 절규로 시대마다 새 옷을 입었다. 소월의 시어가 노래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의 시는 처음부터 우리말의 음악성, 우리말의 리듬과 호흡으로 빚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읽으면 리듬이 느껴지고, 그 리듬은 어느새 흥얼거림이 된다. 이 책으로 그 시들을 필사할 때, 독자는 그 음악성을 손끝과 입술로 동시에 체험하게 된다.

두 시인의 필사, 어떻게 쓰면 가장 좋을까

이 책을 기획하면서 ‘어떻게 써야 가장 깊이 느낄 수 있을까’를 오랫동안 고민했다. 결론은 단순했다. 먼저 소리 내어 읽고, 그다음 손으로 쓰는 것. 한글은 소리의 문자이기 때문에, 입술과 혀 위에서 굴러가는 우리말의 결을 먼저 느끼고 나서 그 결을 손으로 따라가는 것이 가장 풍부한 체험을 만들어낸다. 각 시에는 시인과 작품에 대한 배경 설명이 담겨 있어, 시를 쓰기 전 그 시가 태어난 맥락을 이해할 수 있다. 윤동주가 어떤 상황에서 「서시」를 썼는지, 김소월이 「초혼」에 어떤 감정을 담았는지를 알고 필사하는 것과 그냥 베껴 쓰는 것은 전혀 다른 경험이다. 배경을 알고 쓸 때, 시인의 마음이 독자의 손끝에 더 가깝게 닿는다.

필사 공간은 넉넉하게 설계했다. 서두르지 않고, 글씨 하나하나를 음미하며 쓸 수 있도록 했다. 잘 쓰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예쁜 글씨체를 연습하는 책이 아니다. 시인의 언어를 내 손으로 직접 쓰면서, 그 언어가 내 안으로 들어오는 경험, 그 경험이 이 책의 목적이다.

580년 전의 꿈이 오늘 손끝에서 이어지다

훈민정음 반포 580주년. 세종대왕이 한글을 세상에 내놓은 것은 글을 읽지 못해 억울함을 호소하지 못하는 백성을 위한 깊은 마음에서였다. 말과 글이 하나로 이어지기를, 이 땅 사람들이 제 목소리로 세상을 기록하기를 바라는 꿈이었다. 오늘 우리가 한글로 시를 필사하는 행위는 그 580년 된 꿈을 손으로 직접 이어가는 일이다.

한글은 이제 BTS와 드라마, 영화를 통해 세계인이 배우고 따라 부르는 언어가 되었다. 지구 역사상 유일하게 창제 이유와 창제 과정, 반포일이 모두 기록된 문자.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으면서도 모든 말을 표현할 수 있는 문자. 세종대왕의 애민정신과 자주독립의 상징인 이 문자를 우리는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있는지 이 책은 조용히 묻는다.

윤동주는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기를 바랐고, 김소월은 우리말로 한국인의 마음을 노래하고 싶어 했다. 두 시인이 한글로 새긴 108편의 시가 이 책을 손에 든 독자의 손끝을 통해 다시 한번 살아나기를 바란다. 필사는 그 부활의 의식이다. 시인의 말이 나의 손을 통해 세상으로 다시 나오는, 조용하고 깊은 의식이다. 한글이 있어 시가 있었고, 시가 있어 우리가 여기 있다. 그리고 지금, 독자들의 손끝에서 그 이야기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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