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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장 갑작스런 이별 댓글이 200개 - 10 첫잔은 원샷 - 16 무(無)의 의미 - 20 엄지 발가락 - 26 우리 집 족욕기 - 32 황토방의 온기 - 38 안산을 오르며 - 45 라면 끓일까 - 53 2장 함께했던 시간 내 여자라니까 - 61 네모난 칠판 - 66 그리운 빨간색 - 71 비밀번호 1004 - 76 신발 한 켤레 - 82 천만 원과 백만 원 - 88 큰형의 본모습 - 93 다림질하는 남자 - 102 교양 있는 삶 - 107 3장 못다한 말 가을이 저문 자리에 - 114 소고기 한 상자 - 120 아빠의 빵모자 - 128 5월로부터 해방 - 133 그 시절, 대만 - 140 단벌신사 - 144 붉은 실의 염원 - 150 나의 아빠, 광호에게 - 155 가장 긴 에필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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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무덤을 가깝게 마주하였을 때는 가족묘를 구경하러 간 날이었다. 당시의 나는 세상 물정을 잘 알지 못하는 중학생이었다. 왜 묫자리를 미리 사두는 건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열댓 명의 가족이 함께 방문했고, 관리인으로 보이는 남자분이 우리를 맞이했다. 그분을 따라 움직이며 조용히 걷고 있는데, 갑자기 엄마가 훌쩍였다.
“우리 중 누군가가 떠난다고 생각하니 너무 슬프네요.” 엄마의 떨리는 목소리에 순간 정적이 흘렀다. 아빠는 동생의 손을 잡고 멀뚱하게 서 있었다. 분위기를 잘 띄우는 둘째 삼촌이 일부러 크게 웃으며 말했다. “하여튼, 형수는 눈물이 많다니까! 왜 벌써 그런 말을 해요.” 아빠도 맞장구를 치며 엄마를 위로했다. 엄마는 머쓱하게 눈물을 훔쳤다. 그제야 모두가 미소를 지었고, 관리인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때 나는 엄마가 너무 감정적이라고 느꼈다. 아직 양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건강하셨기에, 많이 앞서간 상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곳에 가장 먼저 묻힌 사람은 다름 아닌 아빠였다. 장남으로서 부모님을 위해 앞장서서 준비한 일이었는데, 결국 자기 자리가 되어 버렸다. 몇 년의 암 투병 끝에, 아빠는 흰 국화 내음이 풍기는 곳에서 밋밋한 사진 한 장으로 남았다. --- pp.20-22 빈소가 꾸려지는 동안 근처 편의점에 들렀다. 나는 늘 먹던 컵라면을 집어서 계산대에 놨다. 엄마는 각종 라면이 들어찬 진열대 앞에 서서 꽤 오래 망설였다. 재촉하기엔 어쩐지 미안해서 점원에게 양해를 구하고 가만히 기다렸다. 엄마와 간이 식탁에 마주 앉아 컵라면이 익어가는 모양을 멍하니 쳐다봤다. 적막을 뚫고 엄마가 피식 웃음을 뱉었다. “아빠가 그래도 라면은 먹고 갔네.” 놀란 내 표정을 보고 엄마는 말을 이어 나갔다. 아빠가 의식을 잃기 며칠 전에 엄마에게 라면을 먹고 싶다고 한 적이 있었다고. 절대로 안 된다며 단호하게 말하는 엄마를 붙잡고, 딱 한 입만 먹겠다고 매달리는 모습에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의사 선생님 몰래 컵라면을 구해와서 뜨거운 물을 부었는데, 퀭한 얼굴로 신이 나서 히죽거리는 표정이 잊히질 않는다며 눈물을 보였다. 이렇게 허망하게 갈 줄 알았으면 좋아하던 음식이나 마음껏 먹으라고 할 걸 그랬다고, 그래도 컵라면 하나를 싹싹 비웠으니 다행이라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아빠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또렷한 장면이었다. --- pp.57-58 집으로 돌아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니 발끝에 은행잎이 채었다. 바닥에 나뒹구는 잎을 자세히 살펴보니 하트 모양이 아니던가. 여태껏 수많은 은행 나무 밑을 지나가면서도 깨닫지 못했던 무늬였다. 눈에 노란 하트가 들어오자 지금껏 잊고 지냈던 사실 하나가 떠올랐다. 나는 여전히 아빠의 사랑으로 자라나고 있다는 걸. --- p.119 “누군가를 돕는 건 내가 해야 할 일이야.” 언제나 호빵맨은 말한다. 만화 속 어떤 캐릭터는 그 말이 거짓이라고, 누구나 자신을 위해 살고 싶은 마음이 있지 않냐고 되묻는다. 호빵맨은 타인을 도우면 자기 마음까지 따뜻해진다고 대답한다. 이를 통해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고 하면서. 석양빛이 들어찬 하늘을 바라보고 흐뭇하게 미소 짓는 호빵맨의 얼굴이 마치 아빠처럼 보였다. 가족들에게 베푼 나의 사랑에 즐거워하는 너희를 보며 참 기뻤다고, 그렇게 말해 주는 것 같았다. 아이들을 위해 만든 짧은 영상을 보면서 다 큰 어른인 내가 혼자 울고 웃었다. --- pp.148-1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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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레 떠난 아빠에게 못다한 말
- 흐려지는 아빠를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기록뿐이었다. 작가는 장남이었던 아빠와 장녀였던 엄마 사이에서 장녀로 태어나 친가에서도 외가에서도 정말 많은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특히 웃을 때 두 눈이 반달 모양이 되는 눈웃음이 아빠와 판박이라서 아빠에게 더 사랑받았다. 작가의 아빠 ‘광호 씨’는 책임감 강한 장남으로, 사랑 많은 가장으로, 그리고 건강하고 듬직하고 회사에서도 인정받는 이 시대의 평범한 아빠로 잘 살아왔다. 그런데 작가가 스물한 살이 되던 해 ‘광호 씨’는 갑자기 암 선고를 받고 1년도 채 안 돼 너무도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만다. 사랑이 유독 넘치던 가족이었기에 가족들에게 ‘광호 씨’의 부재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장녀의 본능이었을까, 작가는 그 순간 자신의 슬픔보다 가족들의 안녕을 먼저 챙겨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절대 겉으로 슬픔을 드러내지 않았고, 혼자가 되는 밤이면 엄마와 여동생을 끝까지 지키겠노라 남몰래 다짐했으며, 눈물 대신 아빠와 꼭 닮은 눈웃음을 지어 주변을 밝혔다. 스무 살이 넘어 작가를 만난 사람들은 몇 년이 지나서야 작가에게 아빠가 없는 줄 몰랐다는 말을 하기도 할 정도였다. 그렇게 슬픔을 감추는 데 익숙해진 날들이 하루하루 모여 이제 다 괜찮아진 줄로만 알았는데, 사실 그건 아니었다. 어느새 돌덩이처럼 굳어진 슬픔의 속내를 더 이상 감출 수 없었는지 자꾸만 글이 쓰고 싶어졌다. 작가가 처음으로 쓴 글은, 아빠를 여전히 그리워하는 엄마를 위한 아빠의 추억 기록이었다. 딸이 처음으로 건넨 A4 세 장짜리 아빠가 주인공인 소설을 읽고 작가의 엄마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누구보다 기뻐했다. 엄마를 위해서라도, 또 글을 쓰며 감정이 해속되는 과정이 좋아 계속 쓰다 보니 세 장이 열 장이 되고, 열 장이 스무 꼭지가 되고, 꼭지들이 늘고 늘어 책 한 권이 되었다. 슬픔을 감추기만 할 때는 흐려지기만 하던 아빠가 글을 쓰며 선명해졌고, 인간의 몸에서 눈물이 이렇게 많이 만들어질 수 있나 놀랄 만큼 울고 또 울었다. 책 한 권이 완성될 즈음에서야 눈물이 멈췄다. 그러는 동안 누가 소문을 냈는지, 작가가 ‘광호 씨’에 대한 책을 쓴다는 소문이 그새 온집안에 퍼지고 엄마 친구들, 아빠 친구들, 작가의 친구들, 심지어 ‘광호 씨’를 모르는 작가 남편의 친구들에게까지 소문이 일파만파 퍼져나가, 이제는 이 세상에 작가를 아는 모두가 이 책이 나오길 손꼽아 기다리는 일이 일어났다. 이 책은 아빠를 먼저 떠나보낸 모든 딸들에게 보내는 작가의 위로이자 슬픔의 공감이며, 사랑하는 가족을 잘 떠나보내는 일은 슬픔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것임을 알려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