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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운 말
뭣이 먼전데 해솔과 은솔 샴페은 슈퍼노바 속 읽음 매체와 메시지 도서관에서 성인 이후의 삶 개괄 패션피플 시시포스 틱, 틱… 붐! 단가 아포리즘 컵은 내 전부가 아니다 푸른 기억 칸과 칸 사이 감에 대하여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내공의 다른 말 작은 이 새벽기도 뭉크의 태양 꿈 얘기 홍대국밥 거북이로 태어나서 다행이야 바나나 튀김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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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테의 개수가 세어질 만큼 섬세한 회화를 그리는 만화를 알고리즘으로 접할 때면, 어떻게 그렇게 그리는지보다 어떻게 빨리 그려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를 수 있는지가 더 궁금해진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나는 손이 더 빨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 만화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은 나의 완성주의 사고에도 불구하고 좋아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런 작가이기 때문에 좋아하는 거라고…”
--- 「고마운 말」중에서 "사람들도. 내가 쓴 문장들도. 진짜 너무 뻔해. 뻔해서 죽을 거 같아." "세상 모든 게 설명돼야 할 필요가 있냐는 거예요." "오늘은 뭔가 좋았다. 뭔가는… 뭔가다." --- 「샴페인 슈퍼노바」중에서 “자기 것으로 만드는 속도가 느린 사람은 가장 잘 듣는 사람이다.” “말하는 사람은 자기가 한 말을 듣기도 하는 사람이니, 어떤 점에서는 누구보다 가장 잘 듣는 사람이다.” --- 「속 읽음」중에서 “지금 내가 전하려는 의도가 콘텐츠에 100% 반영될 수는 없다는 걸 명심하세요. 왜냐면 우리는 매체에 맞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 뿐이니까요.” --- 「매체와 메시지」중에서 ‘손 아파. 짜증나.’ ‘하루 종일 그려도 내 시간의 가격은 여전한데…’ “계속하게 하는 동력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궁금해서 이야기를 만들었다. 돈 얘기 하고 나니깐 속이 다 시원하다.” --- 「단가」중에서 우리는 각자 컵을 갖고 있으며, 그 안에 무엇을 어떻게 얼만큼 담아 보여줄지는 스스로 택하기 나름이다. --- 「컵은 내 전부가 아니다」중에서 만화가들은 “칸 안에서 자유롭다” “칸과 칸 사이의 조절” 같은 표현을 즐겨쓰는 것 같다. 내게는 칸과 칸 사이에 현실이 있을 뿐이다. 칸을 벗어나면 거기에 맞딱뜨려야 할, 당장 해치워야 할 인생 과제가 놓여 있다. --- 「칸과 칸 사이」중에서 ‘좋다’는 내게 그리 드라마틱한 감정이 아니다. 내 삶에는 취향과 기호가 반영된 선택도 물론 있었지만, 그건 ‘좋다’보다는 ‘싫지 않다’에 가까웠으리라. 하지만 이렇게 유하가 빛나는 눈으로 날 올려다볼 때만큼은 ‘좋다’. ---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중에서 ‘작은 이를 깨트린 기둥이 그때는 그렇게도 높아 보였다.’ --- 「작은 이」중에서 새벽에 요란스럽긴 하지만, 진심을 다해서 기도한다. 두 번 다시 스스로를 의심하지 말기를. 선명한 답을 손에 쥐고도 모르는 척 하지 않기를. 하나의 거짓말을 되풀이하다 보면 나중엔 뭔가 진실인지도 잊어버린다. 내가 하는 말에 스스로 속는 일이 없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새벽기도」중에서 고정수입을 사무실에서 벌고 싶다는 입장이 그리도 비겁한가 하는 태도로 받아친다. 뭉크의 태양을 그리겠단 생각보단 이 모든 과정을 공유하고 싶을 뿐이다. 나 같은 생각을 해봤을, 하고 있을 이들에게 이 만화는 편지가 되어 언제고 닿으리라 믿는다. 마치 기니피그의 편지처럼. --- 「뭉크의 태양」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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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연의 오랜 활동명은 재연일기. 이때부터 함께한 동료들은 그녀를 ‘일기’라고 부른다고 한다. 출신을 밝히는 성과 개별적 자아가 획득해야 할 이상을 담은 이름이 각각 재연과 일기인 셈이다. 그러니까 재연에 뿌리내리고 가지뻗은 일기는 그의 창작적 자아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런 데다 그녀의 작품은 그날이 그날인 나의 일기 따위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그 시점의 구체성과 현장성이 있다. 이날의 만화와 저날의 만화가 서로 다른 것은 물론이다. 단편만화라는 유구한 장르는 그녀가 맞춘 적도 없이 안성맞춤인 기성복같다. 그녀의 왕성한 창작열과 아웃풋에 반해 러브콜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5년간의 드라이브를 건네받았다. (예상되듯) 5년 전 만들었다는 그녀의 작품과 3년 전 만들었다는 그녀의 작품과 몇 달 전 완성했다고 소개하는 작품은 전부 송두리ㄷ째 달랐다. 그 드라이브에 있던 것 말고, 바로 지금, 정확히는 5분 전 업로드된 그녀의 만화는 그것들과 또 달라졌다. 그 변화를 변덕이라고 시행착오라고 진단하거나 성장이라고 진화라고 상찬하는 양자택일의 상황에 놓일 필요는 없다. 단 하나의 일관성, 타인과 구별되는 아등바등 애써 획득한 저 수많은 소셜 자아 속에서 빛나는, 지금 이 순간도 다른 빛을 발하는 재연에 대해 몇 자 적는 것으로, 오늘 나의 일기는 충분히 제몫을 한다. — 김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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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연은 이제 ‘디지털 만화세상’(만화를 업로드하는 모든 온라인 공간을 통칭하는 재연의 조어)뿐 아니라 ‘아날로그 만화세상’까지 접수하려는 모양인지, 출간을 앞둔 만화책에 들어갈 응원의 말을 써줄 것을 부탁했다.
과거의 어느 하루, 나는 재연의 빠른 작업 속도에 놀라면서, 재연의 독자들이 신작을 금방 볼 수 있어 좋겠다는 말을 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이 책 초반 「고마운 말」에 등장한다. 그 글에서 재연은 자신을 ‘완벽주의’와 다른 ‘완성주의’ 태도라고 소개한다. 글을 읽다보니 재연과 이야기를 나눈 그 하루가 선명해진다. “나는 그런 섬세한 그림을 절대 그릴 수 없을 것만 같아.” 당시 재연은 창작과 관련된 고민을 이야기했다. 누구보다도 이 일에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또 한번 실감됐었다. 그런데 독자로서의 내 경험을 생각해보면 완성이냐 완벽이냐를 따지기 전에 재연 그 자신의 것이라 느껴져서 나는 그의 만화를 좋아한다. 어떤 부분은 미완으로 남기는 용기처럼, 그 상태 자체를 하나의 진실로 적어두는 일기와도 같은 만화를 재연은 그려왔다. 아직은 설명할 수 없는, 설명의 바깥에 있는 감정들까지 포착하여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정서로, 하나의 만화로 말들 수 있던 것도, 괴로운 와중에도 그가 그 자신의 감정과 삶에서 눈을 떼지 않았기 때문일 거다. 그리하여 재연의 만화는 재연의 어느 하루로, 나아가 나의 하루들로 확장된다. 우리들의 생활 가까이에 머무는 그의 만화를 오래도록 읽고싶다. - 김성한 (동료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