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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4
추천의 글 8 에필로그 292 Part Ⅰ 삶의 길목에서 새해 첫 마음 … 19 그래도 봄은 온다 … 23 익어가는 사람 … 27 전원생활을 꿈꾸며 … 31 3평의 땅 … 35 마음의 검진 … 39 오랜 친구의 죽음 앞에서 … 43 죽음을 생각하며 … 48 몽치와의 동거 … 52 무산 스님을 바라보다 … 56 Part Ⅱ 나를 찾아 나서며 술과 커피 … 63 커피 한 잔의 여유 … 67 마른오징어의 기억 … 71 졸복국의 향수 … 74 가족여행 … 78 골프 이야기 … 82 나의 플레이리스트 … 86 《빛의 벙커: 클림트》를 보고 … 91 《르네 마그리트 특별전》을 보고 … 94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고 … 98 Part Ⅲ 살며 사랑하며 집 안 여행기 … 105 어릴 적 거창집 … 110 그리움 … 115 나의 욕심 … 118 주례와 결혼식 … 122 나의 아내 … 126 아버지를 회상하며 … 130 어머니를 그리며 … 134 아들과 며느리에게 … 139 손주 사랑 … 143 Part Ⅳ 다시 길을 묻다 다시 길을 묻다 … 151 보이지 않는 것들 … 155 능숙함의 진실 … 159 의자는 사랑이다 … 163 다시 생각되는 나무 … 167 단풍을 보며 … 170 걷기의 미학 … 173 청소 예찬 … 177 옛 동네이발소 풍경 … 181 독서 예찬론 … 186 김수영과 박인환 … 190 Part Ⅵ 빛과 뺄셈의 예술 사진에 대한 단상 1 … 249 사진에 대한 단상 2 … 253 빛은 생명이다 … 257 미니멀리즘 … 261 뺄셈의 예술 … 265 여백의 미 … 268 허상의 힘 … 272 해는 지고, 달은 뜨고 … 276 선, 사진, 그리고 사회 … 280 땅에서 선과 형태를 보다 … 284 나의 포토샵 … 2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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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을 넘긴 나에게도 앞으로 남은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는 여전히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두 번은 없다」라는 시가 떠오른다.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라는 그의 말처럼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고, 두 번의 똑같은 밤도, 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내게 주어진 순간순간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매일의 하루하루를 더욱 귀하게 다루고 의미 있게 사용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시도 읽으며, 책도 읽으며, 글도 쓰며, 음악도 들으며, 사진도 찍으며, 드럼도 치며, 여행도 하며, 남아 있는 생의 신비를 다양하게 느끼며 살아가고 싶다.
나이가 들면서 특히 경계해야 할 것은 ‘고집’과 ‘아집’이다.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라 하지 않는가. 우리 주변에는 언뜻 보이지는 않으나 숨어 있는 고수들이 널려 있다. 노년이 되어 나이가 많다는 것만 가지고 괜히 유세를 떨었다가는 망신당하기에 십상이다. 그러기에 늘 겸손한 마음으로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야말로 노년을 가장 빛나게 하는 덕목이 될 것이다. 하지만 남아 있는 생의 신비를 느낀다거나, 겸손해지고 남을 존중하고 배려한다는 것이 어디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겠는가. 지금처럼 쫓기듯 생활하는 각박한 세상에서 이들을 제대로 실천하기란 여간 힘들고 어려운 일이 아니리라. 그렇다면 억지로 무언가를 바꾸려 애쓰기보다, 불어오는 봄바람에 몸을 맡기듯 온몸의 힘을 빼고 그냥 자기만의 리듬에 몸을 온전히 내맡겨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이라는 시간 속에 삶을 실어서 자연스럽게 춤을 출 때처럼 말이다. 아! 그런데 이것은 나에게 훨씬 더 힘에 부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힘을 빼는 것만큼 세상에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 어디에 있던가. 그러나 그것이 자연의 순리임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익어가는 사람」 중에서 사과나무와 소나무는 한 그루씩 심어야 하겠다. 사과나무는 우리의 일상생활을 상징하는 나무이다. 누군가가 말하였듯이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하더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는 것처럼, 매일의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하고 내일의 희망과 발전을 포기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는 마음은 우리 모두의 오래된 바람이지 않을까 싶다. 소나무는 예로부터 언제나 변함없는, 한결같은 모습을 상징하는 나무이다. 애국가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처럼 사시사철 자신만의 푸르름을 유지해 내는 그 기개가 너무 좋기 때문이다.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한결같음이 돋보이니 한 그루 정도는 심어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이다. 여건만 조성되면 앞으로 1주일에 2~3일 정도는 이곳 횡성 골짜기에서 지냈으면 한다. 살다가 한 번쯤은 딛고 서 있는 땅을 바꿔 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땀과 노동의 가치를 온전히 느껴봄으로써, 도시에서 찌든 심신을 추스르고 새로운 기를 불어 넣는 재충전의 기회가 되리라고 믿는다. 거기다 분위기와 환경을 바꿈으로써, 새로운 에너지와 영감을 얻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아! 그리고 새벽과 저녁때의 고즈넉함과 한밤중의 고요함 속에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으리라. ---「전원생활을 꿈꾸며」 중에서 생자필멸(生者必滅)이라고 하였던가. 죽음을 극복한 사람은 없다. 무릇 모든 생명은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기관차와 같다. 그렇다면 ‘잘 죽는다.’, ‘잘 죽어야 한다.’라고 하는 말은 무슨 의미를 가질까? 누구나 죽기 전에는 ‘나’라고 말할 몸과 마음이 존재하지만 죽고 난 뒤에는 아무것도 없게 된다. 전적으로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말이다. 또한 우리가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그것은 삶을 피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보면 죽음이란 ‘죽어감’에 가까운 것이라 여겨진다. ‘죽어감’은 ‘살아감’과 마찬가지로 같은 연장선상에서 지속되는 것이고 결국 ‘죽어감’과 ‘죽음’은 우리 삶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 이제 ‘잘 죽는다.’라는 의미는 보다 명확해진다. 바로 ‘잘 산다.’라는 말과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그동안의 고되고 힘든 세상살이 속에서 ‘잘 산다.’라는 것은 오직 ‘잘 산다.’라는 것만 뜻하였을 뿐 거기에 ‘잘 죽는다.’라는 것은, 결코 포함될 수 없었다. 남들보다 돈을 더 많이 벌고 승진을 빨리해야만 잘 사는 것이라고 여기는 세상 속에서 죽음을 생각하기란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죽음에 이르기까지는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일까? 누구든지 죽음을 목전에 두고 삶과 죽음의 경계선상에 서면 만감이 교차할 것 같다. 치열했던 지난날의 삶을 되돌아보며 아쉬움과 회한, 미지의 세계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떠난 후 남겨질 사람들에 대한 애정 등 사람마다 그것은 천차만별일 것이다. 이럴진대 정답은 없겠지만, 사소하고 조그마한 것에도 항상 만족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 그리고 거기서 진정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간다면 그나마 아쉬움이나 회한을 조금은 덜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또 하나는 죽음을 일상생활 속에서 늘 직시하고 염두에 두며 살아가는 것이다. 프랑스의 몽테뉴는 죽음에 반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죽음에 관한 생각을 한시도 놓지 않는 것’이라고 믿었다. 심지어 “지붕에서 타일 한 장이 떨어질 때마다 죽음을 생각하라.”라고까지 하였다. 이렇듯 죽음을 직시하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삶을 더 충만하게 영위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왜냐하면 그때마다 자신에게 주어진 순간순간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두 번은 없다」라는 시가 생각난다.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라는 시인의 말처럼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고, 두 번의 똑같은 밤도, 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죽음을 직시하면 그 단 한 번뿐인 삶을 직시하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죽음을 생각하며」 중에서 걷기를 거듭할수록 묘한 매력에 빠져든다. 이젠 중단하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무엇보다 먼저 머리를 맑고 깨끗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두통이 있거나 머릿속이 복잡할 때 편안한 마음으로 걷다 보면 어느 사이엔가 두통이 사라지고 머릿속이 깨끗하게 정화되는 느낌이 든다. 그 어떤 두통약이나 머리를 맑게 하는 약보다 효과가 큰 것이 바로 걷기인 셈이다. 그다음, 온전히 사색이나 사유의 늪으로 나를 빠져들게 함으로써 어려운 문제의 해결 방안을 자연스럽게 떠올려 준다. 평소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 해결의 새로운 단서, 아이디어나 대안을 불현듯 생각나게 해주는 것이다. 이 덕분에 도저히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았던 문제도 의외로 쉽게 해결한 경험이 제법 있다. 이렇듯 걸으면서 하는 사색은 참으로 마음의 여유를 갖게 할 뿐만 아니라 묘하게도 복잡한 생각을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되도록 도와줄 때가 많다. 또 어떤 경우에는 평소에는 잘 떠오르지 않았던 옛 기억이 불현듯 떠올라 아주 고마워한 적도 많다. 걷다 보면 이런저런 생각이 스치고 지나가지만, 특히 고마운 것은 보고 싶었으나 그동안 잊고 지냈던 얼굴들을 선명하게 떠 올려 줄 때다. 초등학교 때의 은사 선생님들, 고향의 옛 친구들, 옛 직장의 동료나 선후배들, 주례를 서준 신랑, 신부의 얼굴들이 특히 그렇다. 이 모든 것이,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오로지 걷기를 함으로써 마주할 수 있는 커다란 선물이다. 이처럼 걷기라는 것이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이고 그 효과도 대단하다 보니 도대체 일 석 몇조의 효과가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이 정도이고 보면 걸음은 미학의 수준을 넘어 크나큰 축복이라 할 수 있겠다. ---「걷기의 미학」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