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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 무덤
고시홍
도서출판도화 2026.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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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할마님의 땅 / 7
무등이왓의 똥돼지 / 37
문전제門前祭 / 65
왕돌거리의 늙은 폭낭 / 89
청춘다방 / 117
족보 / 147
동백꽃 무덤 / 173

*해설
죽음세계의 안에서, 죽음세계 너머로_김동현(문학평론가) / 301
*작가의 넋두리 / 319

저자 소개 1

제주도 출생. 1983년 [월간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소설집 [대통령의 손수건], [계명의 도시], [물음표의 사슬], [그래도 그게 아니다], 그 외 공동편저 [고려사 탐라록]이 있음. 제주4·3희생자 추가진상조사자문위원, 제주4·3 70년사 [어둠에서 빛으로] 편집위원장 등을 지냄. 탐라문화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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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6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320쪽 | 152*225*30mm
ISBN13
9791124052266

책 속으로

작년 봄, 법복을 벗고 Y그룹 법무팀에 합류했다. 김훈종 선배는 대놓고 비아냥거리며 핀잔했다. 나무야, 회사 대변인 역할을 하는 변호사 생활이 어떠냐. 변호사는 양심을 팔아 먹고사는 직업이라고 하던데…. 할머니가 알면 낙담하겠다는 말도 고명처럼 얹었다.

할머니가 큰심방처럼 애잔한 가락에 덕담과 넋두리를 버무린 사설을 늘어놓은 것은 최종 사법고시 합격통지를 받았을 무렵이었다. 아이구, 장허다, 장해. 김나무가 볶은 콩에서 돋아난 금나무가 됐구나. 할머니는 가족들이 지켜보든 말든 아랑곳없이 내 손을 붙든 채 촛농처럼 눈물을 흘리며 감격스러워했다. 느네 하르바님도 총명허고 인물이 훤해나신디…. 기영헌디 나무야. 벌써 예순 해가 넘어섰구나마는… 이제 법관이 되시난 하나 부탁헐 일이 있저. 묻지 마라 갑자생 허는 식으로 죄 없는 사름덜 꿩사냥허듯, 돗추렴허듯 헌 피젱이들을 이제라도 몬딱 심어당 감옥에 가둬시민 한이 읏이켜. 옛날엔 대역죄를 지은 사름은 젓을 담강 산에 뿌리거나 죽은 사름 무덤을 파헤쳥 유골을 가루로 멘들어 강이나 산에 날려버리기도 했댄 이야길 들어신디… 기영까진 못 해도 법이 밝은 세상 아니가…. 할머니는 눈물, 콧물을 손으로 훔치며 치맛자락으로 옮겼다.
---「할마님의 땅」중에서

순환버스가 석교동정류소 앞을 지나갔다. 내가 사는 동네 입구였다. 무등이왓 들머리와 엎드리면 코 닿을 곳이었다.
“저 밀감밭 사이로 보이는 빨간 함석지붕이 내가 칩거하는 곳이야.”
퇴임하자마자 귀향해 무등이왓을 선산 묘역으로 삼아 마련한 보금자리였다.
“왜 무등이왓이라 했죠.”
“무등을 탄 어린애가 춤을 추는 형국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래.”
지적도를 축소한 도면으로는 가뭄으로 거북등이 된 논바닥이었다. 북녘 둔덕에서 남으로 비탈과 평지를 이루고 있다. 무등이왓 들머리의 ‘뒷동산’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2001년에 세워진 ‘무등이왓’ 표석 앞이었다.
“여기는 4·3사건의 와중인 1948년 11월 21일 토벌대 방화로 사라진 동네…. 약 1700년경 관의 침탈을 피해 숨어든 사람들이 화전을 일궈 살면서 마을이 형성…. 주민들은 주로 조, 메밀, 콩 등을 재배했고, 교육열이 높아 일제 때에는 광신사숙과 2년제 동광간이학교가 세워졌다. 그런데 4·3사건으로 폐촌 후 주민들은 도너리오름 앞쪽의 큰넓궤에 숨어드는 것을 시작으로 눈 덮인 벌판을 헤매다 유명을 달리했다. 어느 할머니는 그 후 평생 ‘난 돗통시에 숨언 살앗수다…. 나만 혼자 살아낫수다.’ 하는 맷돌노래를 불렀다 한다….”
나는 손도장 찍듯 검은 대리석판에 음각된 글자를 짚었다.
“여기 이 ‘어느 할머니’란 분은 그 당시 바로 이웃에 살았어.”
‘개똥이 할망’이었다. 나보다 서너 살 아래였던 개똥이. 녀석은 청상과부였던 할망과 단둘이 살다가 어른들 틈에 끼어 비명에 갔다.
---「무등이왓의 똥돼지」중에서

아내가 쏘아 올린 공포탄은 ‘문전제’였다. 그림자 같은 친구 장례를 치르고 나서부터였다. 끼니때가 다가오면 ‘문전제 준비해야겠구나’, ‘밥 먹읍서, 식사헙서’가 ‘오랑 음복헙서’를 입에 달기 일쑤였다. ‘문전제, 문전제’ 하며 잠꼬대를 하거나 한밤중에 일어나 앉아 문전제 타령을 했다. 처음엔 우스갯소리인 줄 알았다. 입이 걸쭉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아내였다.

뒤늦게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단했다. 경찰순찰차가 지나가거나 앰뷸런스, 소방차의 숨가쁜 경고음이 들리면 고양이처럼 몸을 숨겼다. 집에서는 방으로, 식당이나 찻집에서는 화장실로, 거리를 걸어갈 때는 아무 곳이나 문을 열고 들어갔다. 파출소로 뛰어든 적도 있었다. 그리고 미용실, 약국, 은행, 우체국, 꽃집, 양품점, 이발소, 공인중개사 사무실, 공설시장으로…. 그러고 나서도 아내는 태연했다. 무표정, 침묵으로 일관했다. 절경으로 이름난 ‘큰엉’으로 데리고 가서 동반 낙하할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아주 잠깐….
---「문전제門前祭」중에서

군인이 들어와 빈 의자에 앉으며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창경원동물원 원숭이가 왜 여기 와 있어.
원숭이 똥고망은 빨강, 빨간 건 사과, 사과는 맛있다, 맛있는 건…. 아이들의 끝말잇기 노랫말을 생각하며 원숭이 똥구멍처럼 벌건 군인의 얼굴을 응시했다. 벌겋게 충혈된 눈. 미친개 눈망뎅이였다. 그가 갑자기 내 옆으로 다가와 무릎쏴 자세로 내 가슴을 덮고 있는 털을 새치 뽑듯 했다. 침이 살갗에 꽂히는 전율이 일었다. 가슴 털 때문에 늘 위의 내의는 거꾸로 입고 있었다.
완전히 원숭이상이로구먼. 참, 희한한 놈도 다 있네…. 네 별명이 원숭이지?
예. 어멍 뱃속에서 나올 때부터 원숭이 새끼가 태어났단 얘기는 들었습니다.
이 간나이새끼. 지금 나하고 농짓거리하잔 기가…. 그의 군홧발이 가슴팍으로 돌진했다. 나는 가슴을 끌어안고 마룻바닥에서 몸을 비틀어댔다. 군인이 군홧발로 지긋이 내 가슴을 짓눌렀다.

엄살떨지 말고 똑바로 말햇! 일본 유학을 했다면 사상가네? 그렇지? 남로당 제주도당 청년회 선전부에도 명단이 올라와 있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그건 누군가가 멋대로 이름을 올린 것이고 나는 오직 서당에서 새 나라, 새 일꾼….
이 간나새끼. 그게 빨갱이 슬로건 아니고 뭐갔어. 그가 의자에서 발딱 몸을 일으켜 내 상체를 걷어찼다. 나는 혼겁해 줄행랑치는 뱀처럼 온몸을 비틀어대며 이를 악물었다. 신음, 비명의 토악질을 억제했다. 오직 사람의 새끼로 태어난 것을 저주했다.
---「왕돌거리의 늙은 폭낭」중에서

여순사건의 원형은 제주4·3이다. 제주섬이 참극의 마그마였다. 그해 10월 11일에 설치된 제주도경비사령부는 제5연대, 제6연대, 제9연대의 각 1개 대대와 해군부대, 제주경찰경비대를 총괄 지휘했다. 그리고 제5여단 예하부대인 여수 주둔 제14연대 1개 대대를 제주도에 증파하도록 명령했다. 출정일은 10월 19일 밤 열 시였다.

제주 출동이 결정되자마자 봉기 주도자 지창수 등은 은밀히 병사위원회를 열었다. 한참 격론이 벌어졌다. 당장 봉기를 결행해야 한다, 상부 지시가 없는데 자칫 지하조직이 노출될 우려가 있다는 주장이 맞섰다. 국방경비대 창설 당시 군에는 세 좌파 조직이 있었다. 남조선노동당 중앙당에서 직접 관할하는 장교 조직 ‘콤 서클’, 남로당 지방 도당에서 관할하는 병사 조직인 ‘병사 소비에트’, 북로당이 경상남도 일대에 조직한 ‘인민혁명군’. 여순사건의 주역인 지창수 상사 등 하사관들은 전남도당, 김지회 중위 등 장교 당원은 중앙당 직속의 프락치였다.

그날 비밀회의에서는 지창수 등의 출병 반대 주장을 따르기로 결정됐다. 위병사령부 장악, 통신망 차단, 무기고 점령, 장교처단조도 꾸렸다. 은밀히 선전반을 편성해 대대별로 파병 반대 선동에 들어갔다. 제주도출동거부병사위원회 이름으로 호소문도 준비했다. ‘우리는 조선의 인민, 노동자, 농민의 아들들이다. 우리의 사명은 외국 제국주의의 침략으로부터 조국을 지키고 인민의 이익과 권리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다…. 조선 인민의 아들인 우리는 우리 형제를 죽이는 것을 거부하고 제주도 출병을 거부한다. 우리는 조선 인민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싸우는 인민의 진정한 군대가 되려고 봉기했다. 친애하는 동포여! 우리는 조선 인민의 복리와 진정한 독립을 위해 싸울 것을 약속한다. 애국자들이여! 진실과 정의를 얻기 위한 애국적 봉기에 동참하라. 그리고 우리 인민과 독립을 위해 끝까지 싸우자….’

---「동백꽃 무덤」중에서

출판사 리뷰

중편 『동백꽃 무덤』은 제주의 노천역사관 같은 모슬포, 여순사건의 발원지 여수를 중심축으로 씨줄, 날줄로 엮은 역사기행이우다. 그리고 단편 여섯 작품은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4·3 담론을 각기 다른 풍광, 시선으로 바라본 이야기들이우다. 모두 왜 소멸 위기의 집단기억을 소환하는가, 민중의 삶에서 국가는 왜 존재하며 역사는 무엇인가로 귀결되는 심문이라마씀. ‘비념’하는 심방에 빙의된 마음으로 죽은 자와 산 자의 신원(伸冤), ‘넋풀이’에 나선 연유이기도 허우다. 염불하고 기도하듯 ‘넋들임’, ‘잡귀풀이’를 벌이는….
-작가의 넋두리 중에서

추천평

고시홍의 󰡔동백꽃 무덤󰡕은 4·3 소설 1세대가 마련해 놓은 토대 위에서 비로소 가능해진 작업이다. 현기영의 신원과 항쟁성, 오성찬의 기록, 현길언의 침묵의 공모. 이 세 갈래의 작업이 한국 죽음정치를 향한 4·3 문학의 첫 번째 응답을 이루었다면, 고시홍은 그 응답 위에 새로운 한 겹을 더한다. 그것은 죽음정치가 우리 안에 새겨놓은 윤리적 매듭을 응시하는 작업이며, 동시에 그 응시로부터 우리 시대의 현재적 책임을 묻는 작업이다. 4·3을 ‘항쟁의 정당성’이라는 거시 서사 안에 안주시키지 않고, 그 거시 서사 안에서 끝내 호명되지 못한 미시적 진실들을 다시 응시함으로써, 4·3을 한국 죽음정치의 끝나지 않은 시험대로 자리매김하는 작업. - 김동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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