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은 경보음과 함께 나타나지 않는다
음악을 들으며 조용히 버튼 하나를 누를 뿐이다 《코드 사이의 사람들》이 보여주는 공포는 거대한 인공지능의 반란도, 천재 해커의 사이버 테러도 아니다. 이 소설에서 한 사람의 인생을 무너뜨리는 것은 흔한 사내 프로그램과 회색 버튼, 그리고 그 앞에 앉은 무책임한 인간이다. 이름 없는 화자는 정치인의 연줄로 금융기관에 들어간다. 자유롭게 출퇴근하고 높은 급여를 받으며, 근무시간에는 음악을 듣고 중고 의류를 구경한다. 그러다 알림창이 뜨면 누군가의 계좌를 정지시킨다. 보호해 줄 인맥이 있는 사람은 통과시키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의심거래자로 만든다. 그에게 한 사람의 생존을 끊는 일과 네이비 블레이저의 실측을 묻는 일 사이에는 아무런 윤리적 차이도 없다. 이러한 일상의 구체성이야말로 작품을 섬뜩하게 만든다. 가해자는 검은 망토를 두른 악당이 아니다. 좋은 옷과 시계를 좋아하고, 익숙한 음악을 들으며, 퇴근길 인파 속에 자연스럽게 섞여드는 평범한 시민이다. 그는 “시스템이 그렇게 만들어졌다”는 말로 책임을 밀어내지만, 동시에 그 시스템을 자신의 놀이와 사적 보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조작한다. 소설은 금융 알고리즘과 계좌 정지를 소재로 삼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책임 없는 권력을 이야기한다. 절차는 존재하지만 해결은 불가능하고, 이의신청서는 마련되어 있지만 아무도 제대로 읽지 않는다. 약자에게 규칙은 벽이 되고, 권력자에게 규칙은 빠져나갈 구멍이 된다. 공정성을 약속하는 제도가 오히려 차별을 자동화하는 순간, 인간은 이름을 잃고 하나의 오류 코드로 축소된다. 직설적인 독백과 검은 유머, 역사와 대중문화가 뒤섞인 과격한 비유는 화자의 뒤틀린 세계관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원색적인 삽화와 선언문을 연상시키는 페이지 구성 또한 불안정하고 공격적인 목소리를 시각적으로 확장한다. 독자는 악인을 멀리서 관찰하는 대신 그의 머릿속에 붙잡힌 채, 그가 어떻게 잔혹함을 합리성으로 포장하는지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금융 광고가 빛나는 여의도의 퇴근 인파 속에서 소설은 가장 불편한 질문을 남긴다. 얼굴 없는 악인은 정말 숨어 있는가. 아니면 너무 평범해서 우리가 알아보지 못하는 것인가. 《코드 사이의 사람들》은 알고리즘이 인간을 지배하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알고리즘을 핑계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지배하는 이미 시작된 현재에 대한 소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