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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펴내며 / 김상윤
추천의 글 / 지병문 뚜뚜 선생과 나의 인연 / 나간채 1부 나의 소박한 운동사 서언 1장 저항의 시대(1974~1982) 1970~80년대의 민족ㆍ민주운동의 시기 광주교도소, 홍성교도소, 홍남순변호사 그리고 무등산 타잔 박흥숙 : 책임있는 자리에 나서지 말자는 마음의 다짐 장두석 선생님과 녹두서점, 양서조합 그리고 김동원ㆍ이홍길 교수님에 대한 감사 2장 세상을 배우는 시절(1982~2000) 의료기 사업 운영 하심(下心)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배우자’ 3장 시민운동의 시절(2000~2020) 광주비엔날레재단 참여 광주비엔날레 사무차장으로 일하다 제3회 광주비엔날레의 추진 제3회 광주비엔날레 그 이후 ‘물동이를 머리에 인 채로는 하늘을 볼 수 없다’(사기) : 공부 세미나의 시작 ‘광주문화수도’ 조성과 ‘호남학진흥원’ 설립 추진 지역문화교류재단의 추진 광주문화도시협의회, 한국CT연구원 한국CT연구원 설립의 어려움과 GIST의 CT연구소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 호남학진흥원 지역문화교류재단의 예비사회적기업 ‘무돌아트컴퍼니’ 운영 하성흡 작가의 윤상원 열사 일대기 그림 ‘천동 민주커뮤니티센터’(윤상원기념관) 민청학련 배상금으로 ‘광주마당’을 설립하다 ‘한국민주주의전당’ 유치 활동 ‘유네스코 창의도시네트워크’와 ‘미디어아트창의도시’ 사업 마무리 : 시민사회운동은 투명함을 생명으로 삼아야 2부 역사운동을 위한 고언 1장 〈전라도 천년사〉 톺아보기 무엇이 문제인가 왜 식민사학에 물들었다고 비판할까요? 친일식민사관의 흐름과 실체 ‘단군 부인론과 단군조선 부정론’의 진실 『삼국사기』 불신론의 실체 고조선 축소=일제 조선사편수회 지침 “주류강단사학계, 일본 식민사학자들의 주장 고수” 한사군-평양 낙랑군의 진실 기자조선, 위만조선, 한사군은 우리 역사가 아니다 일제의 한사군ㆍ낙랑군 날조와 술수 “조선총독부의 내부 지침 그대로 수용” 『삼국사기』 불신하는 주류강단사학계 식민사학자의 전라도 위치 비정 답습 주류강단사학계, 김현구의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 맹목적 추종 야마토왜의 실체 전방후원무덤의 유래 야마토왜의 지배세력은 백제계 사람들 “주류 강단사학계 『일본서기』 애지중지” 후기 : 주류 강단사학자의 식민사관 실태 참고문헌 2장 〈전라도 천년사〉에 드러난 강단사학자들의 민낯 조·· 교수의 인터뷰 1 조·· 교수의 인터뷰 2 조·· 교수의 인터뷰 3 조·· 교수의 인터뷰 4 조·· 교수의 인터뷰 5 조·· 교수의 인터뷰 6 조·· 교수의 인터뷰 7 조·· 교수의 인터뷰 8 조·· 교수의 인터뷰 9 조·· 교수의 인터뷰 10 조·· 교수의 인터뷰 11 조·· 교수의 인터뷰 12ㆍ마무리 참고문헌 3장 대전환 시대의 역사주권운동 4장 ‘바른역사시민연대’와 함께하는 중국 유적지 답사 바른역사시민연대와 함께 홍산문화 답사 바른역사시민연대ㆍ윤명철 교수와 홍산문화ㆍ고구려 유적지 답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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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가를 흉내 내고 있었던 나로서는 룸펜 프롤레타리아가 민중봉기의 주체로 등장한다는 사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사회 밑바닥에서 홀대받고 천대받던 사람들이 자신들을 대접해준 적도 없는 공동체를 위해 이처럼 목숨을 바쳐가면서 저항할 수 있었을까? 책 몇 권 읽고 혁명가를 흉내 내던 나는 한없이 부끄러웠다.
‘그래, 내가 석방되면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배우자.’ --- 「1부 1장 광주교도소, 홍성교도소, 홍남순 변호사 그리고 무등산 타잔 박흥숙」 중에서 나는 광주에 ‘광주민주재단’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1994년에 5·18기념재단이 설립된 이후, 광주의 모든 운동은 5·18운동으로 수렴되고 있었다. 그런데 1980년 5·18항쟁 이전에도 광주는 굳센 민주화운동이 있었고, 5·18항쟁 이후에도 민주주의를 위한 피나는 싸움을 계속해 왔었다. 나는 5·18기념재단의 활동을 보완하기 위해서라도 광주의 민주인사들을 중심에 세우는 ‘광주민주재단’이 설립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 「1부 3장 ‘한국민주주의전당’ 유치 활동」 중에서 해방된 지 80년이 다 되어 가는데, 역사학자들이 국민에게 통일된 ‘나라 역사책’ 하나 제대로 내놓지 못하고, 끊임없이 ‘식민사학의 굴레에 빠져 있다’는 비판을 받아서야 되겠습니까? 지금 〈전라도 천년사〉의 문제는 더 이상 우리 역사를 이른바 ‘전문가들’의 수중에 놓아둘 수 없다는 거대한 외침일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의 외침을 거스른다고 거슬러지겠습니까? --- 「2부 1장 〈전라도 천년사〉 톺아보기 - 무엇이 문제인가」 중에서 지금 많은 사람들이 식민사관의 청산을 주장하는 것은, 주류강단사학계가 일제시대 조선사편수회가 주장했던 바로 그 내용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류강단사학계는 조선의 역사를 매우 늦게 시작된 것으로 기술하고, 조선의 역사는 두만강과 압록강 아래에서 이루어졌으며, 한사군은 평양 근처에 있었고, 임나일본부는 부인하나 임나일본부를 주장한 일제 식민사학자들의 위치 비정은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라도 천년사〉의 문제는 ‘일본서기를 인용했으니 식민사학자’라고 매도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주장한 내용을 대부분 수용하고 있기 때문에 식민사학자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 「2부 1장 〈전라도 천년사〉 톺아보기 - 친일식민사관의 흐름과 실체」 중에서 중국학자들이 동북공정을 시작하기도 전에 한국 주류 역사학계의 태두라는 분이 만리장성의 기점이라는 낙랑군 수성현이 황해도 수안군이라고 했으니, 중국학자들이 얼마나 좋아했을까요? ‘이병도가 애써 그렇게 주장’했으니, ‘중국학자들은 한국의 고대사가 중국사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 「2부 1장 〈전라도 천년사〉 톺아보기 - 일제의 한사군 · 낙랑군 날조와 술수」 중에서 해방된 지 80년이 다 되어가는데, 일제강점기 식민사학의 결정판인 『조선사』 35권을 아직도 번역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은 주류강단사학계의 직무 유기에 해당할 것입니다. --- 「2부 2장 〈전라도 천년사〉에 드러난 강단사학자들의 민낯 - 조◯◯ 교수의 인터뷰 6」 중에서 주류강단사학계는 ‘국사편찬위원회’와 ‘한국학중앙연구원’ 그리고 ‘동북아역사재단’을 모조리 장악하여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으며, ‘문화재청’이나 ‘문체부’까지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 아닙니까? 우리나라에서는 모든 역사 교육과정이 주류강단사학자들이 펴낸 책으로 공부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주류강단사학계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는 구조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시민역사학계는 ‘교과서를 바꾸지 않고는 바른 역사를 세울 수 없다’고 보고 있고, 자라나는 세대가 제대로 된 역사를 배울 수 있도록 ‘교과서를 바꿔야 한다’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식민사관청산’을 위한 시민역사운동은 최종적으로 ‘교과서를 바꾸는 운동’으로 확산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 「2부 2장 〈전라도 천년사〉에 드러난 강단사학자들의 민낯 - 조◯◯ 교수의 인터뷰 7」 중에서 이덕일은 탄식합니다. 조선사편수회=중국 동북공정=한국 식민사학의 삼각편대가 한국사를 유린하고 있는 작금의 상황이다. 시민역사운동이 전국적으로 거세게 일어날 수밖에 없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 「2부 2장 〈전라도 천년사〉에 드러난 강단사학자들의 민낯 - 조◯◯ 교수의 인터뷰 12 · 마무리」 중에서 지금 우리는 해방 직전처럼 세계가 변화하는 내용을 모르는 까막눈 상태로 있습니다. 이 모든 상황은 역사학이 그동안 깔아놓은 밑자락을 활용하여 진행되어 왔습니다. 역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빨리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80년 가까이 매국사학자들의 역사서로 세뇌되어온 우리 사회가 다시 깨어나야 합니다. 이제 80년 만에 새로운 『대한민국 역사교과서』가 나왔으니, 이 책을 거점으로 삼아 역사주권운동을 활발히 전개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역사주권운동을 전개하는 일은 우리 스스로 깨어나는 일이고, 나라가 주체적으로 제 길을 찾는 길이며, 우리나라가 새로운 국제관계에 자주적으로 동참하는 길이며, 새로운 문명의 대전환에 스스로 대응하는 길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 「2부 3장 대전환 시대의 역사주권운동」 중에서 이도정자박물관은 우하량 유적지처럼 발굴 현장을 거대한 돔으로 포장하여 박물관으로 만들어 놓았다. 특이한 것은 박물관 지하로 고속도로가 뚫려 있어, 그 고속도로 위에 박물관이 세워져 있는 것이었다. 만약에 박물관을 철골로 세우면 그 무게 때문에 지하로 뚫린 고속도로로 무너질 수 있기 때문에 비닐 돔으로 포장을 한 것이라 한다. 유적지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 고속도로를 지하로 뚫은 중국의 배려가 고맙다. 그런데 우리 일부 역사학자들의 주장처럼 하가점하층문화 지역을 중심으로 고조선이 세워졌다고 한다면, 지금 내가 서 있는 내몽고의 이도정자 이곳도 고조선 영역이 될 것이다. --- 「2부 4장 바른역사시민연대 · 윤명철 교수와 홍산문화 · 고구려 유적지 답사」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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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윤상원기념사업회 김상윤 고문의 자서전적인 『흔들리며 배운 세상-나의 소박한 운동사』와 〈전라도 천년사〉 편찬을 둘러싼 논쟁, 그 문제를 주도적으로 제기한 ‘바른역사시민연대’ 및 ‘한가람역사연구소’와의 중국 유적지 답사, 그리고 문명사적 전환기에 대한 소회 등을 함께 엮은 것이다.
『나의 소박한 운동사』는 한국 현대사의 가장 치열했던 순간들을 온몸으로 겪어낸 김 고문의 숭고하고 묵직한 기록이다. 시대의 아픔 속에서 스스로를 낮추고 지역 사회와 문화 발전을 위해 열성을 다해 헌신한 발자취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는 1974년 민청학련 사건과 1980년 5·18광주민중항쟁에 연루되어 두 차례 옥고를 치렀고, 독재정권 시절 국가 폭력의 민낯을 온몸으로 경험하였다. 특히 5·18 직후 인혁당사건 희생자들처럼 사형을 당할 수도 있다는 극도의 공포를 느꼈지만 그 속에서도 항쟁의 최전선을 지킨 이들이 지식인이 아닌 이름 없는 밑바닥 민중이었음을 깨닫고 자신의 관념성을 뼈저리게 반성하고 부끄러워했다고 고백한다. 이 땅의 지식인들이 곱씹어 볼 만한 대목이다. 이때부터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배우겠다는 ‘하심(下心)’의 자세를 다지며, 평생 권력을 탐하지 않았다. 거대 담론에 가려진 사법 폭력의 서늘함과 인간적인 번뇌를 생생히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사료로서 독자들에게 감동을 줄 것이다. 김 고문은 단순히 거리에 나서는 것을 넘어, 호남의 낙후를 극복하고 국가균형발전을 이루기 위해 ‘문화중심도시 조성’과 ‘한국문화기술(CT)연구원’ 유치라는 구체적인 문화 · 경제적 대안을 모색하는 일에도 힘을 썼다. 광주의 청사진을 어떻게 고안하고 추진했는지 그 고군분투의 과정은 도시 개발과 국가균형발전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훌륭한 지침서가 될 것이다. 이어지는 〈전라도 천년사〉 논쟁, 조·· 교수의 주장에 대한 비판, ‘바른역사시민연대’와 ‘한가람역사연구소’가 공동으로 추진한 중국 역사 유적지 답사에 드러난 김 고문의 우리 고대사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열정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특히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서 우리 민족의 시원을 찾고 역사적 자긍심을 고취하려는 문제의식은 깊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전라도 천년사〉 편찬과 관련한 김 고문의 지적은 단순히 역사책의 오류 문제를 넘어, ‘누가 한국의 역사를 정의해 왔는가’에 대한 거대한 사회적 헤게모니 문제를 제기한다. 〈전라도 천년사〉는 식민사관 논란을 불러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광주 · 전남 지역의 의병 항쟁과 미주 등 해외 독립운동에 대한 기록마저 누락함으로써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 과정에서 김 고문은 집필진을 대표하는 조·· 교수의 주장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주류 강단사학계가 일제 식민사관을 고수하고 있다는 지역 사회와 시민단체, 재야역사학계의 불신과 분노를 대변하였다. 이는 편찬 사업을 좌초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전라도 천년사〉 편찬 사업의 식민사관 및 역사 왜곡 논란은 현재까지도 해결되지 않았지만 ‘바른역사시민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와 재야역사학자들이 역사 주권 회복을 외치며 식민사관 청산을 강력히 촉구함으로써 이 사업을 중단시켰다는 점에서 우리 역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환기하고 학계에 자극을 주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마지막으로 ‘문명사적 대전환을 위해’는 단순히 고대사 논쟁을 넘어, 기후 위기와 국제 정세의 변화 등 거시적인 문명사적 맥락 속에서 ‘역사 주권 회복’의 당위성을 역설하는 김 고문의 강연 내용이다. 고대사부터 현대 정치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의 모든 모순의 근원을 외세 의존(친일 · 친미)에서 찾고 이를 극복하려는 강력한 정치적 · 민족주의적 선언으로 평가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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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거센 바람이 이 세상에 휘몰아치고, 거대자본의 횡포에 세계 도처의 수많은 민중이 휩쓸려 쓰러지는 혼탁한 현실 속에서, 그리고 진실과 거짓의 구별이 소멸되고, 가짜가 진짜 행세를 해도 막아낼 수 없는 포스트모던의 이 세상에서, 그래도 이 거친 파도에 맞서 인간사회가 지켜내고 지향해야 할 기본 원칙과 민주주의를 향한 치열한 열정이 그에게는 살아 있다. ‘무엇이 이를 가능하게 했겠는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이를 그의 선비정신, 즉 그의 뿌리가 호남명문의 후예로서, 선대 이후 그의 정신에 새겨진 불멸의 혼이 아닌가 한다. - 나간채 (전남대 명예교수ㆍ바른역사시민연대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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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문제를 단순히 과거의 사실 규명에 머물지 않고, 기후 위기, 자본주의의 한계, 미국 패권의 쇠퇴라는 굵직한 현대 문명사적 흐름과 연결한 점은 매우 독창적이고 거시적인 통찰이다. 특히 맹목적인 친미ㆍ친서방 외교에서 벗어나,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 속에서 지정학적 이익을 확보하는 주체적이고 자주적인 시각을 가져야 한다는 외침은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 지병문 (전 전남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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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단지 한 인물의 자서전적 기록이 아닙니다. 광주라는 도시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시민사회가 어떤 시행착오를 겪으며 성장해 왔는지, 그리고 문화와 민주주의가 어떻게 서로를 살려왔는지 보여주는 살아 있는 자료입니다. 동시에, 우리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무엇을 이어가야 할지 묵묵히 묻는 책입니다. - 조원탁 (동신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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