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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 사자탈 · 10
Ⅰ. 불의 전조 1장. 공녀의 칙서-2년 전, 1424년 · 16 진헌색·금혼령|마마의 밥상 2장. 2월 15일 정오-첫째 날 · 34 강무, 빈 궁궐|정오 첫 불|재앙의 불씨 ∥왕후의 지옥 ∥역적 내 아버지|딸아, 살아라|화병|청송 가야금 대결|왕가의 피 연회 국모의 어명|한성 사찰|불씨 백성의 글씨|화마의 편을 드는 백성들| 까막눈 무지|중궁전의 칼|한양 땅|재로 빚은 왕관 3장. 악몽-불은 알고 있다 · 141 명나라 밀사|말 이만 필, 천 명의 공녀 Ⅱ. 불꽃 왕후 1장. 2월 16일 대재앙 · 162 34시간째-흉터 36시간째-그물이 조여든다 36시간 30분째-불을 굴리다 36시간 35분째-각성 36시간 50분째-칼을 쥔 국모 38시간째-조선의 심장을 겨냥한 손 39시간째-화마 앞의 저울 39시간 30분째-물길을 돌리다 41시간째-허망타 41시간째-푸른 기름 41시간 15분째-버려진 목숨들 41시간 30분째-지옥을 열다 42시간째-목구멍 심지 불 사람 43시간째-덮어라 43시간 40분째-궁궐 지붕 44시간째-하늘비 2장. 재를 거두다 · 259 45시간째-입불 46시간째-재 47시간째-남은 몫 48시간째-왕후의 잔반 3장. 씨 · 287 재회|조선 밀감|새 숨|천하의 어미들|쉰셋|보소서, 백성만|달과 샛별 Ⅲ. 불사조 1장. 빛 · 330 빛 2장. 하늘 공 · 342 하늘 공 3장. 복 · 346 복 4장. 나랏말싸미 · 358 나랏말싸미 외전: 숯 치마 · 366 맺음이야기: 심온 복권, 심씨 귀환 · 372 기록의 여백 · 376 지은이 후기 · 3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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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후의 앞에는 바쳐질 살아 있는 꽃들이 엎드려 웅크렸다. 두려움에 질린 그들을 쏘아보며, 왕후는 치마를 여몄다. 그리고 서늘한 고함을 내뱉는다.
“내게 헛된 위로를 바라지 말라.” (중략) “너희는 버려지는 것이 아니다.” 소녀들이 떨구었던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왕후는 그들의 눈동자를 바로 마주 보았다. (중략) “너희는 조선의 딸. 내 백성들이다.” (중략) “주인들아, 겁내지 마라. 너희가 왕궁이니라.” (중략) 왕후는 그들을 굽어보며 서약을 건넸다. “나라를 굳게 세워, 너희를 다시 맞이하리라.” --- pp.28~30, 「마마의 밥상」 중에서 왕의 서안 위에는 옥새와 규, 청자연적과 상소문들이 켜켜이 놓였다. 그 옆에 이두와 구결로 적힌 종이들이 구겨진 채 흩어져 있다. 뜻을 적으려 하면 소리가 무너졌고, 소리를 붙들면 뜻이 흘러내리는 이두. 그리고 한자. 서로 다른 길로 비틀려 있었기에 어렵고 답답했다. “백성들이 참말로 고되겠구나….” 외운 자만이 읽고, 배운 자만이 판단했던 문자들. (중략) “마마의 얼굴에 흉터가 남으면, 그것은 조선의 흉이옵니다.” (중략) 왕후는 손을 거두며 냉연히 몸을 일으킨다. “옷을 가져오라.” 왕후가 일어섰다. “백성을 만나러 간다.” --- pp.164~165, 「흉터」 중에서 중궁전 행각으로 백성들이 흘러들었다. 누가 양반인지. 상민인지. 노비인지. 불 앞에서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모두가 같은 잿빛이다. 같은 그을음을 뒤집어썼다. 어디서 왔는지 무엇을 하던 사람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한양의 불이, 한성의 신분도 태워버렸다. (중략) 궁궐이 궁궐이기를 멈추었다. 그제야, 비로소 어머니의 궁이 되었다. 임금의 집이 아니라, 백성의 집. 왕가의 거처가 아니라, 나라의 품이었다. 그 첫 문을 연 사람이 왕후 심씨였다. --- p.252, 「궁궐 지붕」 중에서 무강이 달려들었다. “마마, 신들이 하겠사옵니다!” 왕후가 고개를 저었다. “물러서라. 이 물은, 내가 길어야 한다.” 그것은 명령이 아니었다. 하늘에 드리는 기도였다. (중략) 하늘에서, 비가 내려온다. 뚝. 뚝. 어깨 위, 이마 위, 피 묻은 두 손 위로, 빗방울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중략) “기어이 비로 와 주셨네요. 아버지….” (중략) 하늘이 터졌다. 가랑비가 한성을 두들겼다. 기와를 두들기고, 재를 두들기고, 살아 허덕이던 마지막 불길에 내리 스며들었다. --- pp.254~256, 「하늘비」 중에서 “미음, 입모양. 이응, 목구멍. 시옷은 이빨.” 웃음 사이로 눈물들이 번진다. (중략) 이것이었구나. 마마가 바라셨던 것이. 글이 웃음이 되고, 문자가 힘이 되는 것. 한성에 새 불이 붙었다. 아래에서 위로 솟아오르는 불길이었다. (중략) “이제 제 이름들을 쓸 수 있겠구나.” (중략) 그들이 글자를 쓰고 있었다. 거침이 없었다. 욕을 쓰고, 이름을 쓰고, 사랑을 쓰고. 그리움을 썼다. (중략) 불이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듯, 가장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글이 아니라 길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 pp.362~363, 「나랏말싸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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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시간, 조선을 구하다!
『한성대화재 소헌왕후』 출간 1426년 한양 도성을 덮친 최악의 국가 재난을 되살린 역사소설 세종이 떠난 도성, 불길 속으로 내려간 국모 소헌왕후 한성대화재 600주년·소헌왕후 승하 580주년·훈민정음 반포 580돌 기념작 세종의 왕비가 아닌, 백성과 나라의 최전선에 선 국모 우리에게 소헌왕후는 주로 세종대왕의 왕비이자 문종과 세조의 어머니로 기억된다. 그러나 이 작품은 세종의 곁에 머무른 왕비가 아니라, 위기의 순간 직접 판단하고 움직이며 백성과 나라를 지킨 국모의 얼굴을 전면에 내세운다. 소헌왕후는 세종 즉위 직후 아버지 심온이 역적으로 몰려 처형되고 친정 가문이 몰락하는 비극을 겪었다. 그럼에도 왕비의 자리를 지키며 내명부를 이끌고 왕실과 나라를 떠받쳤다. 작품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 위에 공녀 문제와 명나라의 압박, 왕실 내부의 갈등, 한성대화재와 방화 음모를 겹쳐 놓는다. 불길 속에서 왕후가 마주하는 것은 화재만이 아니다. 아버지를 잃은 상처, 역적의 딸이라는 낙인, 백성의 원망, 왕후를 끌어내리려는 정치적 음모가 동시에 그를 덮친다. 하지만 왕후는 무너지는 대신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간다. 신분을 묻지 않고 다친 백성을 궁궐로 들이고, 자신의 처소를 내어주며, 나라의 문을 백성에게 연다. 궁궐이 임금의 집을 넘어 백성의 집이 되는 순간, 소헌왕후는 왕의 부재를 대신하는 인물이 아니라 스스로 한 나라의 중심에 선 통치자로 되살아난다. 기록이 침묵한 자리에 소설이 선다 『한성대화재 소헌왕후』는 『세종실록』을 비롯한 역사 자료를 바탕으로 집필됐다. 작품 뒤에는 「기록의 여백」을 두어 실록에 남은 사실과 소설적으로 재구성한 부분을 독자가 구분해 볼 수 있도록 했다. 소헌왕후의 어린 시절 이름과 환관 ‘멍’, 명나라 밀사로 나서는 왕후, 일부 인물의 행적은 서사를 위해 재구성했다. 공녀 선발과 금혼령, 명나라 사신단의 횡포, 한성대화재와 약탈·유언비어 등은 실록의 기록을 바탕으로 했으며, 작품은 이 기록들 사이의 여백을 방화 사건과 정치적 음모의 서사로 연결했다. 특히 작품은 내명부를 흔들림 없이 다스린 소헌왕후가 사람과 권력의 흐름을 읽는 정치적 감각 역시 지녔을 것이라는 상상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이를 ‘그림자외교’라 이름 붙이며, 기록 속에서 충분히 조명받지 못한 왕후의 지혜와 결단력을 복원한다. 불이 태운 것을 백성의 글이 다시 세웠다 이 작품이 한성대화재와 함께 주목하는 또 하나의 역사는 훈민정음의 탄생이다. 한자가 권력이던 시대, 글을 읽지 못하는 백성은 자신이 어떤 문서에 손도장을 찍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소설 속 ‘무지’는 아내를 공녀 명부에서 빼주는 문서라고 믿고 손도장을 찍지만, 실제로는 아내를 명나라에 바치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글을 모른다는 이유로 한 사람의 삶과 가족이 무너지는 장면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작가는 한성대화재가 훈민정음 창제의 절실함을 키운 계기였을 것이라고 상상한다. 글을 몰라 문서에 속고, 불길 속에서도 위험을 알리는 글을 읽지 못했던 백성들의 현실이 누구나 쉽게 읽고 쓸 수 있는 문자의 필요성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냈으리라는 것이다. 이는 역사적 사실을 단정한 것이 아니라 기록의 빈자리를 문학적으로 풀어낸 작가의 가설이다. 이 소설에서 훈민정음은 자신의 이름과 뜻을 남기지 못했던 백성에게 말하고 기록할 권리를 돌려주는 글자다. “불이 태운 것을, 백성의 글이 다시 세웠다.” 재난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마침내 백성들이 자신의 이름과 삶을 직접 쓰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한성대화재 600년, 잊힌 왕후를 다시 불러내다 2026년은 1426년 한성대화재가 일어난 지 600년, 1446년 소헌왕후가 세상을 떠나고 훈민정음이 반포된 지 580년이 되는 해다. 『한성대화재 소헌왕후』는 세 개의 역사적 시간을 기념하며, 위대한 왕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던 소헌왕후의 삶을 오늘의 독자에게 다시 소개한다. 작가는 소헌왕후와 한성대화재의 이야기를 10년 동안 품고, 4년에 걸쳐 작품을 집필했다. 그 긴 시간 동안 역사 자료를 살피며, 기록 속 사실과 기록이 침묵한 자리를 문학적 상상력으로 이어 한 편의 소설로 완성했다. 불길 속에서 백성을 살린 국모, 아버지와 가문을 잃고도 나라의 중심을 지킨 왕후, 백성의 고통을 세종에게 전해 새로운 글자의 절실함을 일깨운 동반자. 『한성대화재 소헌왕후』는 소헌왕후를 박제된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 피와 숨이 흐르는 한 인간이자 지도자로 되살려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