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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군주를 대통령으로 대체할 때 발생한 일
1부 프란체스카 리스크 1장 대하기 힘든 사람 “나가요!” “들어오지 마세요!” | 민족 지도자 안재홍에게도 | 일본이 맺어준 인연 | 하와이 교민들의 비토 2장 외명부를 편애하는 영부인 윤치영의 아내 이은혜 | 문제적 여성, 임영신 | 프란체스카를 사로잡은 여성 | ‘서대문 경무대’의 진짜 주인 3장 국정에 직접 개입하다 인사권을 행사하다 4장 자기만의 국정을 운영하다 세금을 거두는 영부인 5장 프란체스카의 몰락 2부 육영수 리스크 1장 가장 왕성한 활동력 2장 정치자금도 왕성하게 받다 1970년에 특제 짜장면이 100원 | ‘돈의 정치’가 낳은 부조리 | 육영수가 돈을 쓰는 방법 3장 독재를 내조하다 1964년 12월이란 시점 | 3선 개헌의 어시스트 | 두 가지를 잃은 남자 | 절대적 헌신 4장 영부인 우상화로 치닫다 김재규의 입에서 나온 “경모님” | 전국체전 개막식의 이벤트 | 영부인배를 쟁탈하는 사회 5장 친인척 문제 육인순 | 장덕진 | 박정희에게 부담을 준 육인수 | 노무현의 은인에게서 강탈하다 6장 왜 육영수를 쏘았나?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 문세광의 소속 3부 이순자 리스크 1장 영부인이 되기 전부터 대단했다 이순자의 적극성 | ‘연희동 빨간 바지’ 2장 육영수를 닮고자 했던 영부인 유신체제의 붕괴 조짐들 | 예비 영부인을 띄우는 국보위 | 롤모델 육영수 | 못다 이룬 의사의 꿈 | 이순자 우상화 3장 장영자 사건과 이순자 리스크 쓰리허 | 장영자의 등장 | 들끓는 민심 | 허화평·허삼수의 도전 4장 무너지는 이순자족 활화산처럼 터지다 | 이순자족의 비리 5장 대중과도 직접 충돌하다 순자야 문 열어라 4부 김건희 리스크 1장 가장 확실한 경국지색 삼성그룹 이건희 |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과 김건희 특검법 2장 이순자족에 비해 일당백 재력가 어머니 | 용인되지 않는 부의 축적 방식 | 검사 사위의 지원 3장 부정적인 노출 ‘솔직’한 통화 | 상습적인 부주의 4장 학문 윤리 윤석열과 국민의힘의 책임 5장 무속과 통일교 그리고 비선 논란 6장 국정 및 정치 개입 에필로그: 영부인 리스크의 종합적 고찰, 김건희 사태의 근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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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시대가 지금과 달랐던 것은 군주의 배우자에 대한 견제의 필요성을 항상 의식하고 적극 대처했다는 점이다. 현대인들도 대통령 부인을 견제할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지만, 왕조시대 사람들만큼 철저하지는 못하다. 그 시대 사람들은 이것을 과도하리만치 의식하고 경계했다. 또 그런 경계심을 정치에 반영했다.
--- pp.11-12 프란체스카는 누군가 입바른 소리를 해서 남편의 비위를 건드리면 그냥 있지 않았다. 앞의 〈신동아〉 기사에 따르면, 그런 일이 생길 경우에는 직언의 당사자를 찾아가 뭣 때문에 그런 말을 했는지를 따져 물었다. 심지어는 그 당사자를 정치적으로 매장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 p.49 박 정권의 비자금 문제를 파헤친 미국 의회의 〈프레이저 보고서〉를 읽어보면, 미국 측은 김 전 비서관이 목격한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거액이 육영수에게 흘러 들어간 사실을 알고 있었다. --- p.75 장영자 사건은 그 개인의 일탈과 범죄로 마무리됐지만, 이것이 그렇게 처리될 사안이 아니라는 결정적 흔적이 남았다. 이를 영부인 리스크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정권 내부에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그런 생각을 한다는 흔적을 남겼다. 허화평·허삼수가 바로 그들이다. --- p.171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기 전에 김건희 모녀는 세상의 원성을 살 만한 일들을 많이 벌였다. 이 모녀의 법적 분쟁에 검찰이 툭 하면 끼어든 데서도 느낄 수 있듯이, 사위 윤석열 역시 이 모녀의 행적과 무관치 않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 p.219 경우에 따라서는 ‘V0’가 될 수도 있는 것이 영부인이다. 그런 영부인의 역할을 공식적으로 획정하고 그것을 감시·견제하는 장치를 입법화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앞으로도 자주 영부인 사태로 인한 혼란에 노출될 수 있다. --- p.2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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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받는 영부인? 조롱받는 영부인?
사회와 나라를 이롭게 하는 영부인 제도는? 최근 몇 년간 우리 국민은 야심 찬 영부인이 최고권력자와 세트로 권력을 휘두르는 모습을 무력하게 지켜봐야만 했다. 영부인이 대통령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는 것을, 대통령조차 영부인의 전횡을 제어하지 못하는 현실을, 모두가 생생하게 목격한 시절이었다. 광복 이후 청와대 안주인이 된 영부인들 중에는 국민의 존경을 받은 이들도 있었지만, 조롱의 대상이 된 이들도 있었다. V1(대통령)보다 ‘세다’는 의미에서 V0로 불린, 영부인 리스크의 최고봉이라 할 김건희, 신군부 독재체제를 등에 업고 친인척 종합 비리 세트를 선보인 이순자가 후자의 대표 격이다. 프란체스카 역시 국정농단급 난행 끝에 4월혁명으로 남편과 함께 몰락했다. 이에 비해 육영수는 남편에게 쓴소리를 마다않은 ‘청와대 안의 야당’ 또는 소외계층을 챙긴 ‘자애로운 국모’로 기억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런 선한 이미지가 무색하게도, 당시 언론보도와 미 의회 보고서 등 각종 기록들은 그의 비자금 의혹, 우상화 논란, 친인척 문제 등을 드러내는 증거가 되고 있다. 약간의 선행을 베풀었을지언정 그가 본질적으로는 독재의 조력자였음을 환기시켜주는 지점이다. 이들은 선출된 권력도 아니면서 때로는 남편과 장단을 맞춰, 때로는 독자적으로, 때로는 비선을 통해 은밀히 권력을 행사했다. 문제적 영부인들이 초래한 정치적 위험성을 되짚어보는 일이 바람직한 영부인 제도에 대한 사회적 논의의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