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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적 생존자들
북한을 통해 인간 생존의 보편적 조건을 묻다 양장
감희
한울아카데미 2026.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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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여는 글: 질문을 견디는 자리에서
감사의 글: 함께 사유한 시간에 대하여
1장 심리적 생존자 시선으로 북한을 다시 읽다
2장 충성이라는 이름의 감옥
3장 세뇌의 신화와 허상
4장 복종을 계산하다: 인간의 생존 전략
5장 사회적 뇌와 집단 감정의 신경생물학
6장 집단 트라우마 정치학
7장 복종과 저항 사이에서 살아남는 몸
8장 시민 없는 나라, 시민사회 징후
9장 복원력의 미래: 권력의 틈에 남아 있는 주체
닫는 글: 심리적 생존자-말을 멈추는 자리에
에필로그

저자 소개 1

북한에서 태어나 자라나고 공부했다. 그러나 소위 적대 계급 출신이었기에 많은 제약과 고통을 받아오다가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들어왔다. 2017년 탈북 여성의 트라우마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학에서 비전임 교수로 있으면서 북한 체제와 인간 트라우마 이해, 한반도 트라우마 치유와 회복을 위한 평화와 인권, 용서와 화해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북한 사람 이해하기: 북한에서는 왜 민주화운동이 일어날 수 없는가』(2021), 『용서와 화해에 대한 성찰』(2018, 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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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7월 27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376쪽 | 153*224*25mm
ISBN13
9788946076556

책 속으로

아메드에 따르면 감정은 개인의 내면에 고정된 사적 경험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 속에서 특정 대상에 ‘붙으며(stick)’ 구성된다. 두려움, 혐오, 사랑과 같은 감정은 담론과 이미지, 제도와 일상 언어를 통해 반복적으로 연결되면서, 어떤 사람과 집단은 위협적인 존재로, 또 어떤 대상은 보호하고 헌신해야 할 대상으로 형성된다. 이렇게 감정은 소속과 배제의 경계를 만들고, 집단을 결속시키는 정치적 힘으로 작동한다.
--- p.45

한국전쟁(1950~1953)의 포화 속에서 미국 사회는 믿기 어려운 장면과 맞닥뜨렸다. 포로 교환 과정에서 일부 미군 병사들이 본국 송환을 거부하고, 오히려 중국과 북한에 남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중간 생략) 언론은 즉각 이 사건을 ‘포로의 변절(defection)’이라 명명하며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들이 자발적으로 공산주의를 선택했을 리 없다”라는 확신이 사회 전반을 지배했고, 그 충격과 혼란은 곧 집단적 불안으로 번져 갔다. (중간 생략) “중국 수용소에서 우리는 인간다운 대우를 받았다.” “미국의 선전과 현실은 전혀 달랐다.” 이 증언들은 단순한 개인적 체험담을 넘어, ‘압제적 공산주의’라는 적국 이미지와 실제로 목격된 경험 사이에 존재했던 깊은 인식적 균열을 수면 위로 드러냈다. 현장은 전율과 불안이 뒤섞인 긴장감으로 가득 찼고, 이 장면은 전쟁 그 자체보다 더 근본적인 공포를 촉발했다. 그것은 인간의 ‘의지’와 ‘충성’이 외부의 개입에 의해 변형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었다.
--- pp.71-72

손실 회피의 심리만으로는 사람들이 체제의 요구를 단순히 회피적 순응의 대상으로 받아들이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것을 자발적으로 내면화하며 나아가 체제의 목표를 자신의 욕망과 동일시하게 되는 과정까지를 충분히 설명할 수는 없다. 손실 회피는 위험을 피하려는 계산된 선택의 논리를 밝히는 데 유효하지만, 그 계산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왜 강요가 더 이상 강요로 인식되지 않게 되는지, 그리고 외부의 명령이 어떻게 개인의 도덕감각과 정서적 지향 속으로 스며드는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 p.141

결국 북한 사회에서 감정 수행은 생존의 수학이며, 감정의 연출은 합리적 투자다. 이 글이 탐색하는 것은 바로 그 감정의 경제학이다. 두려움이 어떻게 거래되고, 감정이 어떻게 통치의 수단으로 전화되며, 그 과정에서 인간이 어떻게 자신만의 심리적 잔고를 유지하며 살아남는가 하는 문제다.
--- p.148

인간에게 사회적 거절은 추상적 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신경생리학적으로 체감되는 사건에 가깝다. 우리는 거부의 기미를 감지하는 순간 얼굴이 달아오르고, 가슴이 조여들며,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과 위축을 경험한다. 사회적 배제는 생각의 차원이 아니라, 뇌와 신체가 동시에 겪는 감각적 현실로 나타난다. 누군가의 냉담한 시선이나 무심한 침묵 한 줄만으로도 뇌는 ‘사회적 통증(social pain)’이라고 불리는 생리적 경보를 울릴 수 있다. (중간 생략) 이러한 신경생리학적 메커니즘은 사회적 행동이 단순한 의식적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쾌·불쾌의 감각과 긴밀히 결합된 조절 과정임을 시사한다.
--- p.177

신경계는 위험 단서를 감지하는 즉시 방어 및 생존과 관련된 조절 상태로 전환되지만, 반대로 안전이 지각될 때에는 정서 조절과 사회적 관여를 가능하게 하는 조절 체계가 우세해진다. 회복과 성장은 바로 이 조절 환경 속에서 가능해진다. 이러한 의미에서 안전은 인간의 잠재성을 여는 핵심 조건이라 할 수 있다. 사회적 신뢰와 예측 가능한 안정성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는 한, 창조적 사고, 친밀한 관계, 지속적인 생산 활동은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어렵다.
--- p.195

탈북민들의 증언을 따라가 보면, 중년 세대의 언어에는 체제를 정면으로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위계를 낮추는 풍자가 스며 있다. “아버지가 아들을 칭찬하고, 아들이 아버지를 칭찬하는 이상한 나라”라는 말은 세습적 찬양 구조를 일상의 농담 속으로 끌어내린다. 웃음은 공포를 정면으로 깨뜨리기보다, 권위를 낮은 자리로 이동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반면 청년 세대의 정동은 풍자라기보다 냉소에 가깝다. “김정은이 여섯 살 때 탱크를 몰았다더라.” 그들은 이러한 영웅담을 더 이상 신화로 소비하지 않는다. “원수님, 너무 철이 없어요.” “거짓말도 적당히 하세요.” 이 말에는 신화의 진지함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감정적 거리 두기가 담겨 있다.
--- p.256

후기 소비에트 사회에서 관찰되는 공적·사적·비공식 영역의 상호작용은 단순한 편법의 축적이 아니라, 국가가 설계한 세계와 시민들이 살아 낸 세계가 교차하며 만들어 낸 복잡한 사회동학의 지도였다. 사람들은 겉으로는 당과 국가가 요구하는 규범을 충실히 수행하면서도, 그 틈새에서 사적 네트워크를 복원하고 자발적 결사체를 조직하며, 비공식적 규범과 가치 체계를 통해 자신들만의 삶을 지켜 냈다. 이러한 공적·비공식·사적 영역의 촘촘한 결합은 체제에 순응하는 듯 보이면서도, 내부에서 자율적 역량을 서서히 키워 내는 보이지 않는 사회적 장치였다. 결국 제2사회는 국가의 음영 지대에서 생겨났으나, 체제 균열의 첫 신호이자 이후 사회변동을 견인한 잠재적 동력으로 기능했다. 이 복합적 구조를 읽어 내는 일은 사회주의 사회의 정치·경제·문화적 질서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며, 왜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진 듯 보였던 체제가 실은 오랜 세월 보이지 않는 아래로부터의 힘을 축적해 왔는지를 설명해 주는 핵심적 분석 틀이 된다.
--- pp.278-279

비나 대스(Veena Das)는 일상 속 폭력을 탐구하며, 삶은 파괴적 사건 이후에 비로소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 손상된 상태가 일상 속으로 스며든 채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지속된다고 설명한다.

--- p.350

출판사 리뷰

체제를 믿지 않으면서도 왜 그들은 충성을 연기하는가
피해자라는 단순한 프레임을 넘어, 극단적 억압 속 ‘나’를 지켜낸 인간의 전략

북한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은 오랫동안 극단적인 이분법에 갇혀 있었다. 체제의 광기 어린 구호에 무비판적으로 동조하는 ‘세뇌된 집단’이거나, 혹독한 억압과 기아에 시달리는 ‘불쌍한 피해자’라는 프레임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단순한 구도로는 3대 세습의 혹독한 통제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작동하는 북한 사회의 복잡한 내면을 결코 설명할 수 없다.

󰡔심리적 생존자들󰡕은 이 오랜 통념의 벼랑 끝에서 서늘하고도 정교한 질문을 던진다. 김정은 집권 이후인 2012년부터 2025년 사이 북한을 탈출한 50여 명의 남녀노소-장마당 세대 청년, 군인, 대학생, 장사꾼, 간부, 해외 파견 노동자-를 심층 인터뷰한 이 책은, 만성적 위기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심리적·생리학적 손상을 감내하며 ‘나’라는 주체를 지켜내는지 학제 간 통합의 틀로 집요하게 추적한다.

이 책의 저자는 독특한 경계에 서 있다. 북한에서 태어나 공부했지만 소위 ‘적대계급’ 출신이라는 이유로 억압과 차별을 온몸으로 견뎌냈고, 결국 사선을 넘어 정착한 연구자다. 당사자로서의 문체적·감정적 기억이 해석의 객관성을 침범하지 않도록, 저자는 끊임없이 자의식과 편견을 ‘괄호 치기’ 하는 엄격한 학술적 결기를 보여 준다. 개인의 상처를 신파로 소비하거나 거대 담론의 차가운 해부대에 올리는 대신, 정밀한 사회학·정치심리학·신경생리학적 도구를 들고 당사자들의 일상 속 감정 패턴과 말하지 못한 침묵을 층층이 정제해 냈다.

인터뷰가 포착한 김정은 체제의 북한은 불신과 적응이 기묘하게 교차하는 공간이다. ‘장마당 세대’라 불리는 10~30대는 국가가 강요하는 혁명 이념에 완전히 무감각하며, 오직 ‘부자가 되는 것’만을 생존의 목표로 삼는다. 기성세대 역시 체제에 대한 기대감은 접은 지 오래며 “차라리 전쟁이라도 나서 세상이 망했으면 좋겠다”는 고통 섞인 피로감을 숨기지 않는다. 이처럼 체제의 정당성은 이미 뿌리째 붕괴했고 김정은 체제에 대한 절대적 불신이 묵묵한 공감대로 확산되어 있음에도, 왜 저항은 일어나지 않으며 체제는 유지되는가?

저자는 이 모순의 열쇠를 ‘공포와 고갈, 그리고 조건화된 생존 전략’에서 찾는다. 3대를 멸족시키는 연좌제의 공포는 정치적 판단 이전에 미래를 꿈꿀 상상력 자체를 마비시키며, 하루하루의 먹고사는 문제에 모든 신경을 소진하게 만든다. 결국 사람들은 체제를 믿지 않으면서도 살기 위해 충성을 연기하고, 서로를 감시하며 체제를 공고히 하는 행위를 지속한다. 체제를 유지하는 진정한 엔진은 사상적 세뇌가 아니라, 극단적 위기 속에서 인간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선택한 ‘심리적 생존 전략’이었던 셈이다.

이 책은 고통을 경험한 인간을 함부로 ‘회복’이나 ‘치유’의 서사로 교화하려 들지 않는다. 저자가 명명한 ‘심리적 생존자(Psychological Survivor)’는 완벽히 상처를 극복한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파손된 상태 그대로 삶을 감당하며, 무너지지 않기 위해 하루하루를 계산하고 조율해 내는 숭고하고도 서글픈 주체들이다. 이때 그들이 보여 주는 레질리언스(회복탄력성)는 정상성의 복원이 아니라, 상처와 함께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지속 가능성이다.

북한이라는 극단적 조건 아래 놓인 인간을 추적하지만, 이 책이 다다르는 종착지는 결국 ‘만성적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 보편의 조건’이다. 압도적인 불확실성 속에서 인간은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끝까지 붙드는가. 저자의 정제된 언어의 기록은, 독자들에게 편안한 정답 대신 깊은 여백과 윤리적 질문을 던진다. 세뇌와 억압이라는 안이한 프레임을 넘어, 위기 속 인간의 실존을 다층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은 피할 수 없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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