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1부
새해 첫 결심 7년 반이란 삶의 여정 고3 명빈초당 명빈초당의 입춘 바둑 수석 취미 생활 인간과 우주 터닝 포인트 흡연 2부 계곡의 물소리 나와 원불교 아내 낙동강 흐르는 물 삶이란 변화이자 흐름이다 전하지 못한 인사말 죽음을 기억하라 초등학교의 추억 칠순 잔치 3부 4월 초순의 명빈초당 구름 호떡 봄이 오는 소리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 세타원 배은종 종사 어머니 친어머니 프레시맨의 추억 설날 4부 5월 말경의 명빈초당 기본을 지키는 삶 나이 듦 십 년 뒤의 내 모습 아들의 결혼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은방울꽃 일근천하무난사 잊을 수 없는 장면들 현충일 5부 9월 하순의 어느 우울한 날 간송과 청자상감운학문매병 공부방 불의 의미 늦가을의 명빈초당 다산 정약용 병오년의 다짐 숨결이 바람 될 때 시골 학교 탈무드와 여자 6부 그랜드 투어 옥스퍼드대학에서의 한 달 기자의 피라미드 하와이 훈련 스토아 철학과 원불교 일원상의 진리 프랑스 여행을 준비하면서 불과 얼음의 땅 아이슬란드 연구년 원불교 영산성지를 다녀와서 |
|
나는 바둑을 잘 두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바둑을 매우 즐기는 편이다. 혹자는 내가 바둑을 둘 때는 항상 명국을 둔다고 한다. 이는 내가 바둑을 잘 두어서가 아니라 내 이름이 명국이기에 농담으로 하는 말이다. 사실 ‘바둑에 명국이 있느냐’, 있다면 ‘어떤 내용의 대국을 명국으로 부를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통상적으로 한 대국자의 처지에서는 치열한 전투를 통해 이긴 바둑을 명국으로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방 처지에서는 그 바둑을 졸전으로 분류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세돌은 명국과 관련하여 “나 자신도 만족스럽고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만한 명국은 없다”9)라고 했다. 그러나 나와 같이 바둑을 놀이 삼아 즐기는 애기가愛棋家의 처지에서는 한 판의 대국을 통하여 많은 수나 전략을 배울 수 있다면, 그 대국을 명국으로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기회가 생긴다면 나는 내 체력과 정신이 온전하게 유지되는 한 바둑을 즐기면서 둘 것이다. 역시 바둑은 인생의 축소판이며 작은 우주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바둑」중에서 앞에서 인용한 『도덕경』의 한 구절은 특히 노년의 삶을 생각할 때 더 깊은 의미로 다가온다. 젊은 시절에는 경쟁하고, 앞서가려 하고, 보다 많이 가지려 하고, 높은 자리를 목표로 하였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이제 조금씩 깨닫게 된다.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점은 이기거나 앞서가는 데 있지 않다. 많이 가지고 높이 올라가는 데에도 있지 않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살아왔는가’라는 점이다. 노자의 물은 조용히 흐르고 남을 이롭게 하며 다투지 않는다. 또한 낮은 곳을 선택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점을 보여 주고 있다. 물은 삶의 길을 가르쳐 주고 있다. 가장 좋은 삶은 흐르는 물처럼 살아가는 것이라고. ----「흐르는 물」중에서 여름철 하늘 저 멀리 솜사탕 같은 하얀 뭉게구름, 적운이 피어오른 아름다운 모습을 보면 내 마음도 환하게 밝아진다. 그러면 환희에 젖기도 하고, 막연한 그리움으로 눈가에 이슬이 맺히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가던 길을 멈춘다. 그리고 몇십 년 만에 우연히 만난 짝사랑의 여인을 바라보듯, 흰 구름의 파노라마를 한없이 바라보곤 한다. 하늘에 펼쳐진 구름은 때로 기억의 스크린처럼 아득한 시절을 비추어 준다. 여름철이면 어릴 적 소꼴을 베러 종종 낙동강변의 들판으로 갔다. 그러다 갑자기 서쪽 금오산 부근에서 거대하고 사나운 악마 같은 소나기 구름이 만들어지곤 했다. 사위가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하면, 곧이어 폭우와 번개를 동반한 소나기구름은 낙동강을 건너 우리 동네 쪽 들판으로 맹렬하게 돌진해 왔다. 공포에 사로잡힌 나는 꼴망태와 낫을 집어던지고 맨몸으로 가까운 피난처를 향해 도망가 보지만, 소나기구름은 이내 나를 추월해 버린다. 그러면 밭고랑에 납작 엎드려 소나기가 지나가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구름」중에서 |
|
이 책은 정년퇴임 이후의 한가한 소일거리로 쓰인 글이 아니다. 오랜 세월을 지나온 한 사람이 자기 삶 앞에 다시 앉아,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놓쳤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묻는 진지한 마음의 산물이다. 《명빈초당》에는 어린 시절의 추억, 낙동강과 고향 마을, 학문을 향한 치열한 여정, 아내와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 원불교 신앙을 통한 마음공부, 그리고 자연 속에서 깨닫는 삶의 이치가 정갈하게 담겨 있다. 저자의 문장은 화려한 수사를 앞세우지 않는다. 대신 솔직함과 담백함으로 독자의 마음을 천천히 적신다. 가난과 실패, 후회와 부끄러움까지 숨기지 않기에 이 산문집의 울림은 더욱 깊다. 특히 명빈초당을 둘러싼 화단과 텃밭, 계곡의 물소리와 계절의 변화는 단순한 배경을 넘어 삶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저자는 그 작은 공간에서 자연을 대하는 겸손, 단순하고 간소한 생활, 늙어감을 받아들이는 지혜, 죽음 앞에서도 흐트러지지 않으려는 마음을 배운다. 그러므로 《명빈초당》은 한 개인의 회고록이면서 동시에 노년의 삶을 어떻게 맑고 향기롭게 가꾸어 갈 것인가에 대한 따뜻한 안내서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우리는 삶의 큰 의미가 멀리 있지 않음을 알게 된다. 그것은 가족의 사랑, 하루의 성실, 자연 앞의 겸손, 그리고 자신을 조용히 돌아보는 마음 안에 있다. - 신재기 (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