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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17 1부. 내일을 만드는 교육 1장 | 첫 선생님, 부모와 가족 엄마는 아이보다 일을 선택한 거죠? 23 무언가 새로 배운다는 의미 25 부모 역할도 공부가 필요하다 27 모든 첫 만남은 낯설다 30 부모는 처음이지? 처음 하는 일은 누구나 힘들어 33 증상과 원인은 다르다 36 문제는 발달이야 39 드디어 우리 아이가 거짓말을 했어요! 42 소풍 도시락은 김밥이 좋아, 샌드위치가 좋아? 45 빼앗긴 실패, 도둑맞은 성장 47 천천히 이야기해도 돼, 끝까지 들어 줄 거야 51 교사와의 관계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 54 자녀와 대화하기 ABC 56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 자를 것은 탯줄만이 아니다 60 어떤 부모로 기억에 남고 싶은가 64 2장 | 선택한 가족들 이건 뇌물이야, 내 남편 좀 잘 봐주라! 67 주어진 가족과 선택한 가족 69 어머니, 왜 이혼 안 하세요? 74 엄마의 장례식과 새로 만난 가족 77 내가 한 첫 결혼식 축사 80 존중과 소통을 원했던 강아지 84 고양이로부터 배우는 양육과 교육 91 뭣이 중헌디 100 3장 | ‘교육’이 뭔데? 교육이 뭔데? 103 교육자에게 가장 중요한 건 106 불평등한 사회와 교육 불평등 108 무엇을 교육할 것인가 111 협력을 배우는 미술 수업 113 협력 창작 활동: 세상에 하나뿐인 나무 곤충 집게 만들기 115 공감과 용기를 배우는 수업 125 공감 체험 활동: 공감과 용기의 별그리기 129 4장 | 교육노동자로서의 교사 어쩌다 교사 142 교육노동자인 교사가 하는 일 145 노자를 통해 살펴보는 교사의 성장 과정 148 내 교실의 목표는 무엇인가: 학급살이 큰 약속 153 평화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160 몸과 마음, 정신은 성장 속도가 달라요 172 놀면서 배우는 평화 175 인권과 협력의 삶을 파괴하는 교실 시스템 180 공교육이란 무엇인가 186 교실에서 만드는 평등교육 190 학부모 상담의 기본 레시피 194 악성 민원에 연대로 맞서기 199 2부. 세상을 바꾸는 노동자 1장 | 교육으로 세상을 바꾸다 노동자의 학교, 노동조합 205 모든 노동자는 한때 교실의 학생이었다 207 어쩌다 노동자, 어쩌다 노동조합 209 경쟁교육을 반대한다: 연대로 만든 일제고사 반대 투쟁 214 우리는 한 명도 버리지 않는다: 법외노조 투쟁의 시작 227 전국교사결의대회 투쟁사 243 세월호, 그날 이후 246 2장 | 세상을 바꾸는 노동조합 교사가 왜 민주노총에 갔어요? 254 다시 민중이 모이다: 민중총궐기 257 노동자가 사회 변혁의 중심이 되다: 박근혜 퇴진 촛불 269 모든 노동자의 6.30 사회적 총파업 276 퇴근하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수배의 시간 281 단식 농성 3일째를 맞아 드리는 글 286 슬기로운 감방 생활 보고: 이육사(264)로 살기 289 사법 대응: 국민참여재판 신청 297 3장 | 이웃집 해고노동자 드디어 집에 돌아오다 304 언니를 떠나 보내다 308 국가 폭력 피해자가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 311 해고자의 권리는 잘 버티는 일 318 청소년 · 청년 노동자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320 다시, 교실에서 수업하는 꿈을 꾸다 327 복직 투쟁을 시작하다 329 복직 투쟁에 연대하는 목소리 333 4장 | 선량한 노동자의 꿈 민주노조는 어떻게 사회적 투쟁을 하게 되었나 339 노동조합이 만난 꿈과 현실의 차이 341 노조 없는 노동자들과 노동조합 343 노동 개악을 저지했던 노동자들의 경험 346 노동자가 꿈꾸는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 349 민주노조가 꿈꾸는 평등 세상 354 불온한 노동자의 기도 356 닫는 글 3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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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농성할 때였다. 지지 방문을 하려 했는데, 입구에서 제지당했다. 다른 사람들은 들어가는데 왜 우리만 막느냐고 물었다.
“저 사람들은 ‘선량한 소비자’예요. 당신들은 노동조합이고. 눈빛만 봐도 압니다.” 동료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려 노력하는 사람이 선량하지 않다면, 누가 선량한 사람인가! 우리는 선량한 소비자는 아닐지 몰라도, ‘선량한’ 노동자다. --- p.18 어느 날,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산책하고 있는데, 갑자기 너무 행복한 거다. 완벽하게 행복해서, ‘이렇게나 행복해도 되나? 이 행복이 깨지면 어쩌지?’ 겁이 날 정도로 가슴이 벅찼다. 이에 대해서도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해 봤는데, 많은 엄마가 육아 과정에서 이런 감정을 느꼈다고 한다. 아이가 고등학생 때, 이 순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줬다. 아이는 듣자마자 시크하게 대답했다. “포유류 암컷에게 일어나는 호르몬 작용이에요.” 푸하하~! 우리는 함께 오래오래 웃었다. 모성애 강요는 거부하면서도, 은근슬쩍 나를 모성애로 포장하려 한 판타지에의 욕망. 그 이중성은 그날로 박살이 났다. --- p.31 “왜 샌드위치를 먹지 않았어?” 아이가 대답했다. “다른 아이들은 다~ 김밥을 가져왔어.” 인생 첫 도시락. 대부분의 학생들이 김밥을 가져온다는 것을 몰랐던 아이는 김밥을 선택할 수 없었다. 나는 아이의 선택을 존중했다고 생각했지만, 아이는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없었다. 정보가 주어지지 않은 선택은, 민주주의의 절차를 거쳤을 뿐, 진정한 선택은 아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정보를 주지 않고, 선택과 결정을 강요하곤 한다. 그러고는 말한다. ‘네가 선택했으니, 네 책임’이라고. 정보 없는 선택은 어른들의 강요이자, 때론 폭력이기도 하다. --- p.46 많은 사람의 기대와 달리, 완벽한 교사는 드물다. 완벽한 사람이 드문 것처럼 말이다. 마찬가지로 완벽한 부모도 드물다. 모든 사람은 살면서 계속 배우고 성장한다. 교사와 갈등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할 일은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는 것이다. 교사가 적군이라고 확신할 때와 학생의 발달을 위해 교사가 보완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할 때는 문제 해결 과정이 전혀 다르다. 학생을 교육할 때, 교사와 학부모는 한 팀이다. 이는 학부모도 유의해야 할 부분이지만, 교사 역시 잊지 말아야 한다. 교육은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 그리고 신뢰는 시간과 노력으로 만들어진다. 법으로만 해결하려 하는 순간, 교육공동체는 무너진다. 무너진 교육공동체의 가장 큰 피해자는 학생이 될 수밖에 없다. --- p.55 판사나 교사처럼 말하지 않기 판사나 교사라는 직책의 언어는 대화가 아니다. 판단이고, 결정이고, 통보이며 지시이다. 많은 양육자들은 본인들이 아이보다 지혜로운 말을 하여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그러다 보니 판사나 교사처럼 말하는 데, 이런 말은 잘못에 대한 평가와 처벌일 뿐, 문제 해결을 돕지 못한다. 더욱이 관계 개선에는 도움이 안 될 뿐 아니라, 오히려 관계를 최악으로 만들기도 한다. 부모는 그냥 부모이면 된다. 대화는 그냥 대화이기만 하면 된다. 판사 노릇은 진짜 판사에게 맡기고, 교사 노릇은 진짜 교사에게 맡길 일이다. --- p.57 선생님이 학생들한테 모든 걸 잘하라고 요구하면, 그건 아동학대다. 미적분 못 푼다고, 영어 좀 틀린다고 능력으로 사람 평가하면 차별이다. 한 사람이 모든 걸 완벽하게 다 잘할 수 없고, 능력도 스타일도 사람마다 다르다. 어떻게 모든 걸 100점 받고 사냐, 그리고 100점이 뭐 중요하냐. 선생님이 원하는 대로 학생이 다 맞춰 줄 수는 없다. 이런 유의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밑밥이다. “그런데 부모도 사람이다. 엄마든 아빠든 완벽할 수 없거든. 부모한테도 완벽함을 요구하거나 모든 걸 잘하라고 하면, 이것도 학대고 차별이야. 노력은 하겠지만, 100점을 요구하지는 마. 암튼, 내 남편 좀 잘 봐주라.” 요리 덕분인지, 정성이 가상해서인지, 그다음부터 아이는 많이 참아 줬다. 충돌을 피했다. --- p.68 교육에서 ‘무엇을 가르칠지’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나는 어떤 사회를 지향하는가’에 먼저 답해야 한다. 이는 학교뿐 아니라, 모든 교육에서의 화두이기도 하다. 우리의 공동체가 지향하는 사회는 어떤 인간형을 원하는가? 어떤 가치와 능력, 어떠한 성품과 역할을 요구하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담은 교육 내용과 교육 활동을 ‘교육과정’이라고 한다. 오늘의 교육은 사회의 미래가 결정되는 공간이다. 보수와 진보의 정치적 입장이 가장 첨예하게 부딪치는 전선이며, 양보할 수 없는 마지노선이기도 하다. --- p.105 한국에서 교사를 선발할 때, 착한 사람, 도덕적인 사람 등의 조건을 요구하는가? 전혀 아니다. 내 사례에서도 말했지만, 한국에서 교사가 되려면 공부를 좀 잘해야 한다. 다른 조건은 없다. 한국 전체 인구 중 좋은 사람의 비율과 교사 중 좋은 사람의 비율은 거의 비슷하지 않을까? 아마도 치킨집 사장님 중 좋은 사람의 비율, 또는 의사 중 좋은 사람의 비율과 비슷할 것이다. 만약 교사들이 다른 업종보다 좋은 사람이 많다고 한다면 다른 업종보다 좋은 사람이 적은 업종은 과연 무엇일까? 말로는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하면서, 특정 직업에 대한 우리의 기대는 얼마나 근거 없는 착각인가! --- p.143 성적이 좋거나 낮다는 것으로, 또는 키가 크거나 작다는 것만으로 사람을 차별하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러한 차이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단지 서로 다를 뿐이라는 인권 의식이 사회적으로 자리 잡았다. 차이로 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이제는 모두가 인정하는 인권 감수성이다. 그런데 키가 크는 속도가 사람마다 다른 것처럼, 마음이 성장하는 속도도 사람마다 다르다. 마음이 성장하는 속도가 느린 경우에도 기다림과 지원이 필요하다. 이는 발달이 더디거나 늦어진 상태이지, 도덕적으로 비난할 일은 아니다. 이 또한 차이를 인정하고 지원해야지, 차별해서는 안 된다. --- p.173 공교육 제도는 평등한 교육권을 실현하는 도구이다. ‘교육 공공성’은 ‘평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의미한다. 교육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노력과 세상을 바꿔 교육을 바꾸려는 노력은 결국 하나이다. 그래서 학생을 교육하는 모든 선생들은 항상 스스로를 성찰하며 답해야 한다. “나는 평등한 교육권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 여기에 답할 수 있어야, 공교육의 교사이다. --- pp.188-189 사무금융노조 조합원을 만났다. 보험 관련 상담을 하는 노동자다. 그가 힘들게 입을 열었다. “이런 말을 해도 될까, 많이 망설였습니다.” 요즘 악성 민원으로 고통받는 공무원·교사의 고통에 대해 누구보다 공감하지만, 언론과 시민들이 함께 분노하는 것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많은 자괴감이 들었다고 한다. ‘교사와 공무원은 그런 일을 당하면 안 되는 사람들이고, 우리는 그런 일을 당해도 되는 사람인 건가?’ 하는 좌절과 무력감이다. “죄송합니다. 미처 살피지 못했습니다.” --- p.199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교육과 성장은 언제 어디에서 일어났는지 생각해 보면, 솔직히 학교는 아닌 것 같다. 나는 노동자로서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노동조합에서 배웠다. 보통 선생은 말로 가르치고, 좋은 선생은 행동으로 가르치며, 훌륭한 스승은 삶으로 가르친다고 한다. 노동조합에는 훌륭한 스승이 너무나 많았고, 그들로부터 나는 자연스럽게 배우고 익히며 깨달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누군가는 노동조합 활동을 헌신이라거나 희생이라고 표현하지만, 나에게 노동조합은 새로운 도전이고 배움이고 성찰이자 성장의 공간이었다. 오늘의 나를 만들어 준 것은 노동조합이다. --- p.206 나는 생태·인권·평화·노동에 관해 교육했고, 민주주의와 정의를 가르쳤다. 교사로서 행복했으나, 내 교육은 내 교실에서만 먹히는 것이었다. 유효 기간 1년짜리였다. 교실 밖 현실에서는 학생들의 삶을 지켜 내지 못했다. ‘좋은 선생님’이 되려고 노력했는데, 결과적으로 ‘나’만 좋았던 것은 아닐까. 그러나 열심히 공부시킨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우는 학생이 다른 학생으로 바뀔 뿐이다. ‘의자놀이’다. 좋은 일자리는 한정되어 있고, 불안정 노동이 판을 치며, 학벌이 인생을 결정해 버리는 경쟁 사회에서는 결국 누군가가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아동·청소년이 주체적이고 협력적이며 평등과 정의를 중시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원한다면, 그런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일에도 함께해야 한다. 세상을 바꾸는 일은, 부모와 교사가 해야 할 AS이자 책임이다. 교실의 학생이 모두 노동자가 되는 건 아니지만, 모든 노동자는 한때 교실의 학생이었다. --- p.208 당시 전교조에는 전교조 규약을 지키며 활동하다 해직된 조합원이 9명 있었다. 당연히 전교조는 해직된 조합원을 지킬 의무가 있었다. 만약 정부가 원하는 대로 해직되는 순간 조합원 자격을 잃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정부는 노조를 탄압하며 새 집행부를 계속 해직함으로써 아주 쉽게 노조를 길들일 수 있게 된다. 전교조 투쟁을 지지하던 한 청소년은 “동아리 회원은 동아리에서 정한다. 전교조 조합원을 전교조에서 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규약 개정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물에 빠진 친구의 손을 놓으면 너는 살려 주겠지만, 놓지 않으면 너도 물속으로 밀어 넣겠다’는 협박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친구의 손을 놓으면 정말 나는 살 수 있는지, 아니면 그 뒤에는 나마저 죽일지 알 수 없다는 데 있었다. 어느새 장르는 누아르가 되어 버렸다. 인간은 위기를 만나면 솔직해진다. 손을 놓고 살아남자는 의견과 손을 놓아도 살아남을 방법은 없다는 의견으로 나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어느새 선택의 프레임에 갇혀 버렸다. 이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프레임을 깨는 것이었다. “내가 물에 빠진 친구의 손을 잡을지 놓을지를 왜 네가 관여하는데! 내가 왜 네 말을 들어야 하는데!” --- p.230 그 교수는 보고서를 만들면서 촛불 광장 참가자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는데, 그 결과를 ‘선물로 드리겠다’고 말했다. “촛불 광장 참여자 가운데 이전에 민주노총의 집회와 행사 또는 민중총궐기에 참여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몇 퍼센트일까요?” 답하기가 애매했다. 민중총궐기의 최대 참가자는 13만 명이었고, 촛불집회의 누적 연인원은 1700만 명이었다. “저도 놀랐는데, 40%였습니다. 꼭 전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민주노총,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날 콩나물시루가 떠올랐다. 바닥에 구멍이 뚫려 있어 물을 부으면 그대로 다 쏟아져 내리는 콩나물시루. 부은 물이 곧바로 다 쏟아지니 물을 주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나 싶어 허무하지만, 가만히 기다리다 보면 콩나물이 쑥쑥 자란다. 우리의 운동도 콩나물시루에 물을 붓는 일이다. 들인 노력에 비해 세상의 변화는 더디고, 눈에 보이지 않아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변화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계속해서 반복하는 꾸준함이다. --- p.270 가끔 큰아이가 일요일에 찾아왔다. 아무 말 없이 백팩에서 포장된 소고기를 꺼냈다. 빈 사무실에서 둘이 일회용 가스레인지를 켜고 고기를 구워 먹었다. 그냥 엄마에게 소고기를 먹여야겠다고 생각했단다. 둘째 아이는 가끔 들러 나를 꼭 안아 주고 갔다. 분명 속상한 일이 있었을 텐데 차마 수배 중인 엄마에게는 말하지 못했다. 돌아보면 수배라는 조건 때문에 2017년의 ‘6.30 사회적 총파업’ 성사에 최선을 다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당시에는 이 사업을 완수할 때까지만 잘 버티면, 그다음에는 구속되고 구속 기간을 채운 뒤 집에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거쳐야만 하는 절차였다. --- p.284 “출소하고 집밥 좀 먹었어요?” 하고들 물었다. 그런데 이건 남성들의 시각이다. 나에게 집밥은 내가 만든 밥이다. 수배·구속 기간에 정말 먹고 싶었던 것은 내가 만든 김치찌개였다. 집마다 뭔가 조금씩 다른 묘한 차이가 있지 않은가! 딱 내 입에 맞는, 내가 만든 김치찌개를 먹고 싶었다. 드디어 만들어 먹을 수 있었다. 출소하고 일주일쯤 지났을 때 큰아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엄마, 비지찌개 만들어 줄 수 있어요?” 일주일을 참은 것이다. 아니, 3년을 참은 것일 테다. 딱 그 맛이 먹고 싶었겠구나. 마음이 울컥했다. “또 없어?” 엄마가 만든 비빔국수, 닭볶음탕, 볶음밥, 잡채 등등. 매일매일 아이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 p.305 수배·구속되었던 동지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정말 다양한 후유증을 겪고 있었다. 나처럼 공간 감각이 무너지는 경우도 있었고, 차를 타지 못하는 분도 있었으며, 염증이 심해지거나 우울증을 겪기도 했다. 물론 아무런 이상 증세가 없는 분들도 있었는데, 정말 없는 것인지 본인이 자각하지 못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후유증이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안심이 되었다. 나도 자연스럽게 회복 중이구나 싶었다. 세상에는 다양한 피해자가 있고, 정의로운 사람들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피해자를 도우려 한다. 그런데 국가 폭력 피해자들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국가 폭력 피해자들은 힘들다고 티 내면 안 되고, 모든 것을 감수하도록 요구받는다. 투쟁은 함께했지만 피해의 극복은 개인이 한다. 활동가들은 강한 자가 아니라 버티는 자들이다. 그래서 힘껏 버티다가 부서지기도 한다. 부서지기 전에 서로의 나약함을 드러내야 서로를 치료할 수 있다. 그래야 오래 이 일을 할 수 있다. --- p.314 복직 투쟁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복직이 가능한 조건을 만드는 투쟁이다. 더 이상 복직 못하는 해고자가 없도록 하는 투쟁이다. 바로, ‘박근혜 시행령’ 폐기 투쟁이다. 박근혜 정권에서는 전교조 해직 교사의 복직을 막기 위해 시행령을 개정하였다. 해고된 지 3년이 지나면 채용할 수 없게 바꾸는 등의 내용이었다. 아직까지도 전교조 해고자들은 그 시행령에 막혀 복직을 못 하고 있다. 박근혜는 탄핵되었으나, 박근혜 퇴진 투쟁을 한 사람은 해고되어 있는 상황이다. 박근혜 시행령 개정은 법외노조 투쟁의 마무리이자, 박근혜 정권과의 싸움에 종지부를 찍는 과정이다. ‘교사’로서 하는 내 마지막 투쟁이다. --- pp.327-328 현재의 분절된 노동 조건에서의 노동조합 투쟁은 노조 밖 노동자들의 삶에 바로 영향을 주지 않는다. 원청의 임금 인상은 하청의 임금 인상과 무관하다. 이는 원청 노동자들의 임금이 상대적으로 고임금이라는 의미일 뿐 아니라, 노동조합의 투쟁이 노조 밖 노동자들과 연결되지 못하고 섬처럼 고립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정당한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노동조합의 투쟁에 노조 밖 노동자들이 지지를 보내지 않는 현실은, 우리의 삶이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정책적인 노동 개악의 위험성보다 현재 나의 근로 조건이 더 열악하기 때문이다. 노동조합 노동자도 노조 없는 노동자도 서로에게 서운하다. 하지만 이러다간 다 죽는다. --- p.345 내가 살면서 만난 선량한 사람들은, 역설적이게도 한국 사회에서 ‘불온하다’고 불리는 사람들이었다. 한국 사회는 선량한 사람들을 불온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선량한 사람들이 참고 견디기에는 고통스러운 공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현실의 차별과 혐오, 서열과 경쟁을 견디지 못하는 선량한 사람들은, 불온하게도 늘 평등을 이야기하게 된다. 그렇게 평등 세상을 꿈꾸는 불온한 사람들 덕분에 세상은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노동조합 조합원을 만났을 때, 자주 듣는 말이 있다. “나는 돈만 내는 조합원이에요.” “일제 강점기에 일본 순사 앞에서, ‘나는 독립운동 자금에 돈만 냈어요’하면 그냥 봐줄까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조합비를 낸 건, 이미 가장 중요한 걸 한 거예요.” --- p.3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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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하다가 수배·구속·해직된 노동운동가의 이야기’라고 하면, 사람들은 지레짐작할지도 모른다. 결기에 차 있거나 무겁고 딱딱한 이야기일 것이라고. 하지만 이 책은 아이와 나눈 대화와 부모(엄마) 역할에 대한 이야기들로 시작한다. 가족들과의 이야기, 학교에서 만난 학생들, 학부모들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래서 이 책은 노동운동가가 누군가의 가족이자 엄마이고, 교실의 교사이고, 동네에서 살아가는 주민이며,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한 사람임을 느끼게 해 준다.
부모로서 자식과 어떻게 관계 맺어야 할지, 성장발달을 위한 양육과 교육에서 유념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협력과 공감을 배우는 수업과 평화로운 학급살이의 요령을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저자의 교육노동자로서의 연륜이 읽힌다. 일제고사 반대 투쟁과 민중총궐기를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는 사회를 변혁시키고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를 만들어 온 운동가로서의 힘과 지혜가 느껴진다. 그리고 이 두 이야기를 엮는 것은 ‘노동의 문제는 곧 학교를 졸업한 제자들의 문제’이기에, ‘학생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세상을 바꾸는 일은 부모와 교사가 해야 할 AS이자 책임’이고, ‘세상을 바꿔야 교육도 지킬 수 있다’는 말이다. 서로 다른 분야의 이야기들을 붙여 놓은 듯한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바로 ‘교육노동자 이영주’의 삶과 생각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가족과 존중·신뢰의 관계를 맺는 일과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 불의에 저항하고 세상을 바꾸는 일이, 제각각 떨어져 있지 않음을 알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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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이야기 하나하나는 거대 담론에 갇혀 일상을 잃어버린 이들에겐 삶의 세밀한 결을 되살려 주고, 일상의 무게에 짓눌려 사회적 연대를 잊고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다시 가슴속에 뜨거운 불씨를 지펴 준다. 문득 잊고 있던 사실을 깨닫는다. 이영주는 교육노동자다. ‘민주노총 사무총장’이라는 직책에 가려, 그가 교사임을 잊곤 했다. 그러나 교육노동자는 언제 어디서든 교육노동자다. 투쟁의 전선에서 외쳤던 ‘평등’과 ‘해방’은 구호만이 아니라 일상의 삶에서도 그대로 일치된다.
이 책의 깊고 단단한 옹이는 저자의 혹독했던 수배와 구속의 시간에 기인한다. 가혹한 단절의 공간에서 오롯이 자신을 마주해야 하는 시간이다. 거칠고 차가운 세상 속에서 ‘세상의 소금’ 같은 단단한 영혼으로 자신을 빚어낸 시간이었다. 이 책은 언제나 현재형으로 배우는 저자의 삶이 고스란히 배어 있어, 오랜 시간 발효된 씨간장으로 버무린 시골 밥상을 마주하는 느낌이다. 동시에 무엇을 실천해야 하는지 각인시켜 주는 매서운 죽비이기도 하고, 뚜벅뚜벅 따라갈 지도책이기도 하다. 선량해서 불온한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체념을 떨쳐 내고 지친 마음에 다시 따뜻한 온기를 품을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겨난다. -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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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주는 부지런히 상상하는 사람이다. 두 아들이 훗날 자신을 어떻게 기억할지 상상하며 그 장면을 만들어 가는 양육자, “서로의 그림을 베껴 가며 그려 보자” 하고 제안하며 협력을 일깨우는 교육자, 일제고사를 한 장의 사진으로 보여 준다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며 일제고사 거부 체험학습을 기획한 교사 노동자, 2015년 11월 14일 10만 노동자로 가득 찬 광화문을 먼저 그려보고 투쟁을 조직한 사무총장, 그리고 모든 노동자의 민주노총을 상상하며 최저임금 1만 원 사회적 총파업을 만든 전략가.
나는 이영주에게 상상력을 배웠다. 노동조합 간부는 고생하는 자리가 아니라 조합원에게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상상력, 총파업이 당장 세상을 뒤집지 못하더라도 참여한 사람들을 바꾼다는 상상력, 우리를 괴롭히는 정권조차 우리를 성장시키는 조직부장이라는 상상력. 이 책은 그 상상력이 어디에서 시작되어, 어떻게 현실이 되었는지, 부지런한 실천으로 얼마나 멀리 뻗어나갔는지를 기록한다. 책을 덮으면 세상을 바꾸는 일이란 ‘먼저 상상하는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나 역시 낙관적인 의지를 품은 운동가이고 싶어진다. - 정나위 (부산지하철노조 사상역무지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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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해고자 중에 아직 교실로 돌아가지 못한 이영주 동지가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아팠다. 잘못된 역사를 바로 세우겠다는 이재명 대통령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데, 그 잘못된 역사로 인해 해고된 노동자는 왜 제외되어야 하나. 나는 이런 문제로 책을 내는 줄 알았는데, 내가 너무 좁게 생각했다.
이 책을 보면서 나는 눈물이 많이 났다. 특히 ‘자녀와 대화하기 ABC’에서 자녀와 좋은 관계를 맺고 싶다면 대화할 때 조심해야 할 것들을 소개한 대목에서 부모였던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아이들을 키울 때 대부분 책 내용과 반대로 했다. 아이들에게 교훈적인 말을 교사처럼 말했다. 바쁘다는 이유로 아이들과 수다를 떨어 본 적도 별로 없었다. 교육과 노동운동이 따로가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잘 몰랐던 것 같다. - 현정희 (전 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위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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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우리 아파트에도 노동조합 조합원이 살고 있지 않을까? 궁금할 때가 있다. 우리 동네에도 지난 주말 광장에 갔던 사람이 몇 명은 있지 않을까? 궁금할 때가 있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와 같은 일에 분노하는 사람이, 나와 같은 꿈을 꾸는 사람이 우리 동네에도 있지 않을까? 그들이 주변에 함께 살고 있다는 생각만으로, 그냥 힘이 될 때가 있다. 다른 집 우편함에도 내가 구독하는 시사 잡지가 꽂혀 있을 때. 병원에 또는 노래방에 놓여 있는 신문을 볼 때, 가게에 틀어져 있는 방송, 버스나 택시에서 듣는 음악. 단지 그 하나에 반갑다. “당신도 나와 같군요!”
지난 주말 나와 함께 광장에서 외쳤을지도 모르는 당신. 한 번쯤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났을 당신. 아침이면 나와 함께 지하철을 탔을 당신. 슬리퍼를 끌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나왔을 당신. 강아지와 함께 산책하며 스쳐 지났을 당신. 목 늘어난 티셔츠 차림으로 집 앞 마트에서 마주쳤을 당신. 외로워하지 마요. 당신 같은 내가, 나 같은 당신이 아주 가까이에 살고 있어요. - 최혜영 (전교조 조합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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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3학년 때 일제고사(전국 학업 성취도 평가)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지 회의하는 날이었다. 지각한 탓이었나, 누가 누군지도 모르고 회의하는데, 앉아서 이야기를 열심히 듣는 처음 보는 사람이 있길래, ‘저 사람은 누구지?’ 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 사람이 뉴스만 틀면 교육감, 국회의원이 실체를 알리겠다고 떠들던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서울지부 수석부지부장 이영주였다. 당시 내 인생에서 가장 직책 높은 ‘빨갱이’와 회의를 한 거였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를 여전히 ‘수부’라고 부른다. 어느 날은 통제를 거부하며 탈가정하여 일제고사 거부를 선전 선동하고, 체제를 부정하는 청소년인권운동의 ‘수괴’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알고 보니 수괴의 이름은 따이루, 바로 나였다. 세상에 이렇게나 빨갛고, 불법적이고, 불량하고, 불온하고 기타 등등한 수부, 수괴들이 나도 모르게, 주변에 널려 있다니! 맥이 빠져 버렸다. 노조나 사회운동단체에 가입하고서 내가 너무 불온한 사람들과 가까워진 것 같아 긴장한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옆 동네에 살고 있는 어느 이 씨의 이야기에 긴장이 풀릴 것이다. 거의 청심환이다. - 따이루 (선량한 구로동 주민 겸 투명가방끈 활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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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일의 세계에서 날고 기는 노동자들은 멋있습니다. 착 들어맞도록 일을 해내는 이들 덕에 세상이 돌아가는구나, 직관적으로 느끼니까요. 이 책에는 이영주가 일을 좋아해서 벌어지게 된 이야기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일은 가족과, 강아지, 고양이들과, 그리고 투쟁과도 연결됩니다. 그러니까 책을 읽노라면 그녀가 끝내 사랑하는 일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게 된달까요.
책의 후반부는 노동조합에서 배우고 겪은 일에 대한 기록으로 이어집니다. 그녀의 언급처럼 노동조합은 특별한 사람들이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평범한 사람들이 때로는 위험을 무릅쓰는 결심을 하기도 합니다. “수용이나 거부보다 중요한 것은 함께 가는 것, 노동조합의 힘은 조합원”이라는 어찌 보면 상투적인 이야기가, 박근혜 정권의 부당한 탄압을 거부한 전교조 법외노조 투쟁의 과정과 만나면 살아 움직이는 이야기가 됩니다. 이 책은 자녀 교육 개발서도 아니고, 교사용 연구 교재도 아니고, 노동운동사도 아니면서, 그 모든 내용을 버무린 것 같기도 합니다. 심지어 반려동물 이야기마저 자세합니다. 하나로 정의하기 어려운데 묘하게 관통하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게 무엇인지 직접 읽어 보고 자기만의 결로 찾아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저의 경우는, “정성껏 살아야겠다”였습니다. - 곽이경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