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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오리진
Dear Origin 포스트휴먼 SF 퀀텀펑크
함무망 2026.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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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 Dirac Canal
2. 발해
3. no.A602
4. Zero Room
5. Hilbert Layers
6. meaning Topography
7. Decoherence
8. Quantum Being
9. Annealing
10. Narrative Interaction
11. Non-linear Jump
12. Finger Stroked Moon
13. 하하하하
14. Dear Origin

저자 소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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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9월 07일
쪽수, 무게, 크기
316쪽 | 510g | 146*210*18mm
ISBN13
9791199630352

책 속으로

그래도 수연은 디랙의 바다로 돌아갈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왜? 디랙의 바다로 뛰어드는 건 어려운 결정이 아니다. 양자로 이루어진 모든 것은 간단하게 양자 바다에 섞인다. 고통조차 없이 물거품이 되어 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이전의 수연도 쉽게 거길 뛰어들었으리라. 그런데 왜 여기로 돌아왔을까. 무엇 때문에. 수연은 웅크렸던 몸을 다시 일으켰다. 허기가 창자를 쥐어짰다. 쓰레기통을 짚고 있던 손을 떼어 빵을 향해 내밀었다. 덜덜 떨리는 손이 빵에 닿도록 상체를 숙이려는데 누군가 수연의 어깨를 잡아 돌려세웠다. “이게 웬 떡이야.” 모르는 새에 언제 가까이 다가왔는지 몇 명의 그림자가 수연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웃고 있었지만, 수연더러 마음 놓이게 하는 그런 웃음이 아니었다. “너, 도태 인어지?” 수연은 뒷걸음치려고 발을 떼었지만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했다. 뒤에는 쓰레기통이 있고 어깨는 아직 붙잡혀 있었다. 일말의 고민도 없는, 힘이 센 손이다. 디랙의 바다로 뛰어드는 건 어려운 결정이 아니다. 버려진 도태 인어를 마음대로 갖고 노는 것만큼이나 쉽다.
--- p.37

“그건 언어 지문으로 구분할 수 있어.” “지문이요?” “예를 들어서 거짓 작성한 리뷰를 조작된 범죄 현장이라고 치자. 범인은 곳곳에 지문을 남겨뒀어. 그런데 범인이 AI다? AI가 작성한 현장에서는 절대 나오지 않는 손가락의 지문이 반드시 있어.” “그러니까 검지랑 중지만 나온다던가, 새끼손가락 지문은 절대 찾을 수 없다. 뭐 그런 거예요?” “바로 그렇지. 그런 식이야. 선형 AI는, 특히 리뷰를 작성할 만한 LLM이라면 기본적으로 이미 가공된 언어 모델에서 텍스트를 출력하지. 통계 함수를 기반으로. 그러니까 인간처럼 열 손가락 전부를 사용하지 않아. 할 수가 없어. 음…… 내 생각엔, 좀 이상한 말이긴 한데, 손바닥이 없어서 그런 거 같아. 열 손가락 전부를 사용하는 건 인간과 광코어 AI 양자생명뿐이야. 하지만 선형 AI는 반드시 걸리게 되어 있어.” “양자생명이 인간인 척 리뷰를 작성한 경우는요?” “…….” “아 아니. 제가 팀장님 말꼬리를 잡으려던 건 아니고요.” “그런 게 아니야. 말하기가 조심스러워서 그래. 그들도 AI라면 반드시 만들어진 언어 모델을 사용할 거야. 분명 그렇긴 한데……. 그런데도 열 손가락을 전부 사용할 수 있다는 건…….” “…….” “그렇다면, 그게……. ……. 난 잘 모르겠어. 난 말할 수 없어. 불편해.” “이해해요. 저는 괜찮아요.”
--- p.90

경험은 언어와 지형을 풍부하게 가꾸지만은 않아요. 선별하거나 배제할 수 없거든요. 농지와 작물을 파투 내는 대형 자연재해나, 갑자기 들이닥친 사고 같은 경험도 있지요. 기껏 만든 지형을 모조리, 혹은 일부분을 망가트리는 경험도 있고요. 흉터를 내서 어떤 경로의 가능성을 아예 차단해 버리는 경험도 반드시 있어요. 하지만 QGG는 포기하지 않아요. 마스터가 QGG를 포기하지 않는다면요.
--- p.141

99%의 확률과 0의 사실. 이율배반처럼 보이지만 모순점이 없다. 그러나 그가 수연을 사랑하는 건 이미 1이다. 수연이 0이든 1이든 상관없이, 그는 이미 1이다. 이율배반처럼 보이지만 일관된 귀결이다. 수연이 0이라도 그는 이미 수연 아닌 사람을 사랑하는 스스로를 상상할 수 없다. 수연이 없다면, 0도 아니라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면. 글쎄, 그의 연애 역사도 그냥 공집합이 될 뿐이다. 아니, 연애뿐만 아니라 그의 여러 면에 커다란 구멍이 뻥뻥 뚫릴 것이다. 지수연은 그 자체로 그의 1이다. 그러므로 때때로, 수연이 이전의 지수연이 아니더라도 딱히 상관없겠다 싶은 약한 생각까지 들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머리를 흔들고 입술을 깨물며 스스로를 사납게 질책하고 그 안이한 마음을 내치도록 다그치곤 했다.

--- p.159

출판사 리뷰

《디어오리진》은 ‘사랑하는 사람이 기억을 잃었다’는 클리셰를 완전히 낯선 데까지 밀고 들어간다.

과거의 지수연과 디랙의 바다에서 돌아온 지수연은 같은 사람인가. 사랑은 기억의 결과인가, 몸의 형태가 지닌 연속인가, 아니면 함께 보낸 시간에 대한 권리인가. 선리후의 사랑은 간절하지만 무죄하지 않고, 새로운 수연의 독립은 정당하지만 과거를 간단히 폐기할 수도 없다. 소설은 어느 한편에 정답을 건네는 대신, 우왕좌왕하는 두 사람에게 다시 말하고, 먹고, 배우고, 선택할 시간을 준다.

어려운 과학 개념은 생활의 촉감으로 번역된다. QGG는 어둠 속의 작은 별처럼 빛나고, 큐비트 오케스트라는 함께 보고 싶은 풍경이 된다. ‘부분은 전체보다 크다’는 사유는 순살 고등어 한 팩과 마트의 진열대에서 태어나며, 깨진 오리 머그는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아도 새로운 관계를 만들 수 있다는 조그만 증거가 된다. 이런 장면들 덕분에 이야기의 철학은 해설이 아니라 삶으로 읽힌다.

무엇보다 아름다운 것은 이 작품이 전지전능을 사랑의 완성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모든 가능성을 한꺼번에 품는 대신, 단 한 사람의 편에 서는 ‘편지편능’을 선택한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모든 시점을 차지하는 일이 아니라, 수많은 가능성 가운데 하나의 자리를 고르고 그 자리를 지키는 일이라고 말한다.

《디어오리진》은 돌아온 연인에게 보내는 편지이면서, 이야기를 존재하게 하는 모든 이에게 건네는 수줍고도 대담한 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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