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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들은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구해주는 거 아니었어? 그런데 왜 내가 떨어질 때 안 왔어?”
“난 아무것도 몰랐는데?” 말하는 당근은 꼈던 팔짱을 풀고 두 손을 살며시 모아 잡았다. 나는 정말 궁금해서 물어봤을 뿐이고, 그더러 눈치를 보게 할 의도는 없었지만 당근 씨는 처음 그랬던 것처럼 나를 조심스럽게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내가 무사한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어투에서도 내가 기분 상하지 않도록 신경 쓰기 시작했다. 당근 씨는 좋은 사람이었다. 아니면 제대로 된 마법소녀이거나. “난 정말 그럴 줄은 몰랐어. 신호가 전혀 없었거든.” “날 여기서 던진 사람이 2시간 동안 기다렸는데 아무도 나를 구하러 오지 않았다고 말했어.” “정말로 그럴 리가 없는데……. 내가 몰랐을 리가 없는데.”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진 그는 열심히, 모든 범죄와 사고의 신호가 어떻게 마법소녀에게 미리 닿는지—즉, 어떻게 모든 마법소녀가 사람의 불의의 사건을 예지하는지를— 설명했다. 기술과 원리와 원칙과 두 손과 두 발을 총동원한 그의 설명을 나는 한 귀로 흘렸다. --- p.18 나는 단순호치를 손에 쥐고 후원으로 돌아갔다. 잔치가 비로소 시작되어 있었다. 노대에서 누군가 가야금을 켰다. 느린 곡조가 흐르는 밤의 연못에다 조그만 배를 띄우고 낙화놀이를 즐겼다. 분분하게 흩어내리는 불꽃이 물 위로 눈처럼 내려앉는다. 속삭이는 술향기가 짙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도록 그늘에 서서 귀부인을 찾는다. 그녀는 여전히 샴페인 분수 옆에 서 있다. 귀부인의 숱 짙은 머리채는 흑옥으로 깎은 학머리 비녀로 솜씨 좋게 틀어 올렸다. 나는 천천히 학머리를 향해 단순호치의 시위를 당긴다. 나는 그녀에게 추호의 억하심정도 없다. --- p.37 “마법소녀도 보면, 차암 쓸모가 별로인 거 같애.” 누군가 저들끼리 말하는 소리가 내 옆에서 났다. 나는 들은 내색하지 않고 줄곧 앞만, 머언 당근 씨만 노려봤다. “어차피 죽은들 자기 정의역 갖고 알아서 다시 태어날 텐데. 굳이 사서 고생할 필요가 있는 거야? 그냥 마음대로 죽게들 냅두지.” “냅둬. 그게 쟤들 일이야. 쟤들도 먹고 살아야지.” 파란불이 켜지자마자 나는 큰 걸음으로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갔다. 당근 씨도 이쪽으로 가까이 오고 있었다. 그가 내 말을 들음직하고, 또 당근 씨가 나와 일행임을 충분히 보여줄 만하도록 가까워지자마자 나는 목소리를 높였다. “신호등도 먹고 살아야 할 거 아냐.” 나는 잘난체하는 난봉꾼처럼 누구에게랄 것 없이 다 들으라고 소리치다시피 했다. “신호등 말 좀 들으라고 해.” --- p.58 “가끔, 아주 가끔은 그냥 건물이고 다른 사람들이고 뭐고 다 타버려도, 그 녀석이 대신 살았다면 어땠을까 싶어.” 내가 그를 비난하지 않자, 그는 좀 더 용기를 냈다. “마법소녀로 만들어진 것에 한 번도 회의를 느꼈던 적은 없어. 그렇지만……, 나한테 뭔가 다른 길이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종종 들더라. 어떤 살인은 막고 싶지 않고, 어떤 폭력은 오히려 거들고 싶어질 때가 있거든. 물론 생각만 한 거야, 정말로 그렇게 하진 않았어. 난 내 일을 좋아하고 있으니까. 그래도, 그렇지만서두. 아무래도 역시, 뭔가, 정해진 것 말고도 뭔가 다른 게 더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멈출 수 없어. 그게 뭔지 설명할 수도 없으면서 말야.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당근 씨는 꼼지락거리던 자기 손가락을 내려다보다가 그를 쳐다보고 있던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혀로 입술을 축이고 조금 멋쩍어하며 웃었다. “나 좀 이상하지?” 나는 당근 씨에게 물컵을 내밀었다. “이름이 뭐였는데?” “누구?” “그 동기 말야. 당근 씨를 고장 낸 사람.” “여축.” “여축? 무슨 이름이 그래? 마법소녀는 이름이 왜 다 그 모양이야?” 당근 씨는 크게 웃으며 내 머리를 마구 쓰다듬어서 헝클어뜨렸다. “넌 어떻고. 단무지 같은 게.” --- p.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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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판도라》는 작가의 거친 데뷔작이다. 세계관이 한꺼번에 밀려오고, 문장은 때때로 숨을 고르지 않은 채 달린다. 신화와 수학, 사랑과 제도 비판이 서로의 어깨를 밀치며, 경주하는 전차처럼 앞다퉈 질주한다. 그러나 이 거침은 감추어야 할 흠이라기보다, 첫 작품에서 이미 자기 우주 전체를 꺼내놓으려는 야심의 온도에 가깝다. 모서리가 남아 있기에 문장은 더 뜨겁고, 질문은 고분고분하지 않게 고개를 쳐든 채 독자의 손에 오래 걸린다.
이 소설이 이루는 가장 대담한 성취는 결정론의 확장이다. 보통의 결정론이 과거의 원인이 미래의 결과를 정하는가를 묻는다면, 《언더판도라》는 한 걸음 더 뒤로 물러난다. 어떤 정의역과 공역이 주어졌는가. 어떤 정의역을 가진 누가, 어떤 치역이 가능한 공역을 설계했는가. 어떤 치역이 선택지로조차 나타나지 못하도록 공역에서 지워졌는가. 이 작품에서 운명은 선형 인과가 정해놓은 하나의 결말이 아니라, 제도와 언어와 역할이 미리 그어놓은 가능성의 테두리 전체다. 마법소녀가 모든 사고와 범죄를 예지하는 세계에서, 정작 마법소녀 자신의 위험은 필터링된다. 누군가의 고통을 ‘예외’로 처리한 뒤에야 누군가의 안전이 완벽해진다. 언제나 사람을 구해야 하는 존재에게는 구해지지 않을 자유도, 모른 척할 자유도, 자기 삶을 먼저 고를 자유도 없다. 소설은 이 희생을 아름다운 사명으로 덮지 않는다. 누군가의 선의와 신체를 공공재처럼 사용하는 사회가 과연 정의로운지 끝까지 추궁한다. 따라서 무진의 반항은 단순히 ‘정해진 운명을 거부한다’는 선언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공역 자체를 갈아치우고, 무조건적인 의탁을 법과 책임의 세계로 끌어내리며, 누군가 대신 다쳐주는 안전이 아니라 모두가 비용을 나누는 질서를 만들려 한다. 자유를 얻는 일은 더 많은 가능성을 여는 동시에, 그 가능성에서 비롯된 결과를 떠맡는 일이라는 사실까지 작품은 피하지 않는다. 판도라의 항아리 밑바닥에 남은 희망은, 이 책에서는 순진한 위안이 아니다. ‘나’가 다른 ‘나’일 수도 있다는 자기모순이자, 정해진 세계를 계속 흔드는 가장 끈질긴 재난의 씨앗이다. 《언더판도라》, 정확한 중심을 겨눈, 거칠고 더 생생한 첫 화살. iiiillilllll[임쾌]작가 우주의 원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