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Little Mermen
2. Forbidden Garden 3. Candy House 4. Seven Dwarfs 5. Growing Nose 6. Jack-O'-Beanstalk 7. Queen Gerda 8. Happily Ever After 0. A Long Time Ago |
|
어? 화갱은 자기 눈을 비비고 다시 구릉 아래를 내려다봤다.
어어? 정원이? 어? 여기에 분명……? 새 정원이 있었는데? 새로운 젊은 금오를 위해서 조성한, 낮은 울타리를 치고 사립문을 단 정원이…… 여기에 분명 있었는데? 화갱이 제7 정원에 갈 일 없기를 간절히 바랐긴 했지만, 그렇다고 정원이 아예 통째로 사라지길 바란 건 아니었다. 내가 꿈을 꾸나? 화갱은 몇 번이고 자기 눈을 비비고 다시 크게 뜨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마침내 울타리와 사립문의 흔적을 찾아냈다. 그것들은 무성한 잡초와 수풀에 파묻혀버린 채, 끄트머리만 간신히 밖으로 삐져나와 애처롭게 화갱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화갱은 허겁지겁 구릉을 달려 내려갔다. 그리고 덩굴과 나뭇가지에 엉켜서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는 사립문을 억지로 밀고 들어섰다. 세에상에. 이것을 정원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말이 정원이지, 여기는 조업장이다. 양자지형을 유지 보수하는 관리 시설이다. 그리고 그 관리 업무는 금오의 의무였다. 대놓고 작정한 근무 태만과 직무 유기에 화갱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저어기 덤불에 처박혀서, 끄트머리만 빼쭉 솟아 있는 까만 게 나뭇가지가 아니라 곰팡이가 슬어 삭아지다 못해 아예 끊어져 버린 삽자루라는 걸 알아보았을 때, 화갱의 분노는 절정에 이르렀다. 그의 눈앞이 새하얗게 탈색했다. “이 자식이 돌았어! 제정신이야! 어디 갔어?” 그는 분기탱천해서 그 시건방지고, 눈엣가시고, 도무지 그의 말이라곤 똥구멍으로라도 들어먹지 않는 짜증 나는 애송이의 이름을 포효했다. “기유진!! 이 자식, 어디 있어?! 기유진!!!!” --- p.17 난망은 산명의 아무렇게나 늘어뜨린 앞머리를 오랫동안 눈여겨보고 있었다. 그리고 곧 확신했다. 저건 스타일링한 거다. 연출한 거다. 희석한 헤어 왁스로 티 안 나게 매만졌다. 봐 봐. 지금 저 움직임에서 머리카락이 저렇게 흔들릴 수가 없어요. 산명이 화장이나 스타일링엔 무구한 다른 자매들을 속일 수 있을진 몰라도, 난망의 눈은 못 속인다. ……그런데, 산명이 화갱의 눈을 왜 속여? 라산명은 소파에 기대어 앉아, 조금 불만스러워 보일 수 있는 표정으로 화갱을 마주 보고 있었다. 산명의 입은 고집스러운 일자로 다물려있다. 아마 말하는 것은 화갱이고, 산명은 듣고만 있는 것 같다. 화갱이 얼마나 열정적으로 혹은 진지하게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난망은 알 수 없었지만 산명의 귀에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아 보였다. 그는 안 듣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산명은 거만하게 다리를 꼬았고 두 손은 팔걸이에 편안하게 걸쳐놓았다. 그의 여유는 절대적으로 보였다. 그는 화갱을 필요로 하지 않아 보였다. 결국 화갱이 먼저 일어섰다. 화갱은 산명을 지나쳐 카페를 나가려고 했다. 산명이 화갱의 팔을 붙잡아 멈춰 세웠다. 화갱을 올려다보진 않았지만, 뭐라고 한두 마디는 던졌다. 화갱이 산명의 팔을 뿌리쳤다. 그리고 거길 떠났다. 난망은 뒤늦게 살짝 어깨를 웅크리고 애인의 몸집으로 자길 가리려고 시도했다. 확신은 없었지만 어쨌든 시도는 했다. 산명은 거기에 좀 더 앉아 있었다. 다리를 꼬고 팔을 걸친 그대로. 그렇게 있다가 곧 한 손으로 자기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리며 어깨를 웅크렸다. 난망은 다시 확신했다. 저 봐, 저 봐. 맞네. 왁스 바른 게 맞다니까. --- p.78 임소건은 파동으로 존재할 때 가장 편안하고 안전함을 느끼는 종류의 인간이다. 그래서 아주 이른 시기부터 양자지형을 추구했고, 그걸 손에 넣은 즉시 거기에 틀어박혔다. 사실 봉산은 그러기 위해서 만들었다. 봉산은 소건을 파동으로 존재하게 한다. 봉산 운항 30여 년 동안 달들 외에는, 아니 달들조차 소건을 몇 번 못 봤다. 임소건은 흐린 소문으로만 남았다. 그 소문 중에서 몇 가지는 소건이 일부러 흘려서 꾸민 것도 있다. 본명이 아니라거나, 사실은 외국인이라거나 등등. 한두 마디만 어딘가에 의혹으로 흘려놓으면, 그게 한 바퀴 돌아 소건에게 되돌아왔을 때는 실제 임소건과 완전히 다른 임소건이 되어 있었다. 그런 식으로 소건은 자기 존재를 사회에서 지워버리고 면적으로 흩어버렸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은 거의 산에 얽힌 전설이, 신화가 다 되었다. 기실 현세대는 태어날 때부터 봉산은 이미 존재했고, 오봉공이 아닌 임소건은 존재하지 않았던 세대다. 임소건은 철저하게 파동으로만 존재했다. 어디에나 존재하고,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데 기유진이 나타났다. --- p.108 진작 멀리 튀어버렸다면. 거주지와 영역까지 나눠버리고 오봉재와 봉산을 소거해버렸다면, 임소건은 한결 편하게 이런 사실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리고 혹여 화갱이 결국 정원을 잃어버렸다고 해도, 오봉재를 잃어버렸다고 해도, 그래서 새 정원이 필요하다고 요청한다고 해도. 그러면야 임소건은 새 지형을 만들면 된다. 만들어 주면 된다. 그게 뭐 어렵다고. 가능하다. 임소건에게는 쉬운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눈앞에서 일어난다면. 튀기 전에, 눈앞에서 봐버린다면. 아. 임소건은 아직 소인수를 얻지 못했는데……. --- p.148 |
|
《퀸튜플가든》의 정원은 예쁘기만 한 장식이 아니다. 양자지형을 유지하는 조업장이며, 봉산의 양자생명에게 맡겨진 책임이고, 다른 이가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자기만의 영역이다. 그래서 봉산의 소유권을 둘러싼 소송은 단순한 개발 갈등을 넘어 ‘누가 누구의 삶을 관리할 권리를 갖는가’라는 질문이 된다. 공공성이라는 말도, 보호라는 말도, 사랑이라는 말도 상대의 선택을 빼앗는 순간 소유의 언어로 변할 수 있다.
작가는 이 묵직한 물음을 오봉재의 분다운 생활 속에 섞어놓는다. 안리는 눈치가 없지만 누구보다 맛있는 밥을 할 줄 알고, 화갱은 모든 것을 반듯하게 정리하면서도 자기 마음 하나조차 정리하지 못해 신경질을 낸다. 기유진은 맡은 자기 정원을 엉망으로 내버려두고 남의 비밀 일기부터 읽어버리지만, 바로 그 무례하고 씩씩한 호기심으로 임소건이 평생 잠궈둔 문을 열어젖힌다. 사람마다 보지 못하는 색이 하나씩 있다는 사실을, 소설은 결핍의 목록이 아니라 함께 살아야 할 이유로 바꾸어놓는다. 동화에서 가져온 장 제목과 작업지시서·일기 발췌, 정치극과 로맨스, 김치찌개와 소금 빠진 소금빵이 한데 놓이는데도 세계는 흐트러지지 않는다. 오히려 정원처럼 서로 다른 층위가 나란히 자란다. 산의 소유권을 둘러싼 거대한 싸움 곁에서 누군가는 버섯을 두 배로 넣은 크림소스를 만들고, 누군가는 새 손전등을 슬쩍 놓아두고, 누군가는 미래를 꿈꾸며 인터넷 쇼핑을 한다. 그 사소한 생활이야말로 이 거대한 세계를 실제로 지탱하고 있다. 《퀸튜플가든》이 끝내 보여주는 '집'은 영원히 같은 모습으로 남는 장소가 아니다. 떠날 수 있고, 실패할 수 있고,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는 자유를 준 뒤에도 문을 잠그지 않는 곳이다. 그래서 이 책의 해피엔드는 ‘아무 일도 없었다’가 아니다. 상실 뒤에도 다시 빵을 굽고, 묘목을 심고, 보고 싶은 사람을 기다리는 것이 삶이라 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