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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음악이 되는 순간
고전문학으로 풀어낸 클래식의 비밀
유인재
21세기북스 2026.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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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top100 2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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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서문
추천사
제1장 베토벤의 강
1. 소설의 시작, 음악의 끝
어니스트 헤밍웨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2. 우주를 가로지르는 푸가
칼 세이건 『코스모스』- 바흐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3. 교향곡, 바다를 건너다
찰스 디킨스 『두 도시 이야기』- 하이든 교향곡 제104번 〈런던〉
4. 『희극』으로 완성한 『비극』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모차르트 후기 교향곡 제39·40·41번
제2장 베토벤의 광장
5. 이상이 리듬이 될 때
J.D. 샐린저 『호밀밭의 파수꾼』- 베토벤 교향곡 제3번 〈에로이카〉
6. 부조리와 투쟁하는 자유로운 의지
알베르 카뮈 『시지프 신화』- 베토벤 교향곡 제5번
7. 여기에 장미가 있다, 여기서 춤추어라!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베토벤 교향곡 제7번
8. 절망의 끝에서 피어난 환희
토마스 만 『파우스트 박사』- 베토벤 교향곡 제9번 〈합창〉
9. 그래야만 하는가? 그래야만 한다!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베토벤 현악4중주 제16번
제3장 베토벤의 밀실
10. 위대한 도취 뒤, 위대한 각성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슈베르트 교향곡 제8번 〈미완성〉
11. 진실의 또 다른 이름, 가벼움과 불완전함
무라카미 하루키 『해변의 카프카』-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제17번
12. 나의 롤리타, 너의 슈베르트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롤리타』-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제21번
13. 낭만의 바다, 광기의 강
허먼 멜빌 『모비 딕』- 슈만 교향곡 제4번
14. 별빛이 태양처럼 빛나는 순간
게오르크 루카치 『소설의 이론』-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15. 깊이라는 유령이 출몰하는 세계
파트리크 쥐스킨트 『깊이에의 강요』- 브람스 교향곡 제1번
16. 세속적인 세상에 보내는 마지막 입맞춤
도스토옙스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차이콥스키 교향곡 제6번 〈비창〉
17.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사이에서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드보르자크 교향곡 제9번 〈신세계로부터〉
제4장 베토벤의 바다
18. 천년의 굴욕, 백년의 절망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백년의 고독』- 바그너 〈니벨룽의 반지〉
19. 밀실에서 나와, 광장을 벗어나다
최인훈 『광장』- 브루크너 교향곡 제7번
20. 무대 위로 올라간 이방인
프란츠 카프카 『성』- 말러 교향곡 제5번
21. 방황으로 얻은 구원의 음악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파우스트』- 말러 교향곡 제8번
22. 음악으로 봉인된 비밀일기
조지 오웰 『1984』-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제5번
23. 상식의 극장으로 불려 온 야만의 시대
T.S. 엘리어트 『황무지』-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
24. 진보의 숲을 배회하는 고독한 영혼
보후밀 흐라발 『너무 시끄러운 고독』- 시벨리우스 교향곡 제7번
후기

저자 소개 1

기술고시 제29회(현 행정고시 제37회)로 공직에 입문하여 감사원 국방감사단장, 지방행정감사국장, 국토해양감사국장을 지냈다. 서울특별시, 국민안전처, 국가철도공단(상임감사)에서도 근무했다. 어느 날 우연히 마주한 고전음악이 규칙과 질서, 사실과 증거만을 다루던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그 후 20여 년, 그는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었고, 책을 읽으며 음악을 들었다. 영국 런던대학교에서 국비 유학하며 유럽 고전음악의 본고장을 직접 경험했다. 공직을 떠난 뒤 〈미래도시성장연구소〉를 설립해 예술과 문화가 도시의 성장과 재생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기술고시 제29회(현 행정고시 제37회)로 공직에 입문하여 감사원 국방감사단장, 지방행정감사국장, 국토해양감사국장을 지냈다. 서울특별시, 국민안전처, 국가철도공단(상임감사)에서도 근무했다. 어느 날 우연히 마주한 고전음악이 규칙과 질서, 사실과 증거만을 다루던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그 후 20여 년, 그는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었고, 책을 읽으며 음악을 들었다. 영국 런던대학교에서 국비 유학하며 유럽 고전음악의 본고장을 직접 경험했다. 공직을 떠난 뒤 〈미래도시성장연구소〉를 설립해 예술과 문화가 도시의 성장과 재생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전음악 감상 동호회 〈클래식 바움(Classic Baum)〉 회장을 맡았으며, 전문 저널과 일간지에 음악 칼럼을 기고하고 여러 기관과 단체에서 고전음악을 강의하는 음악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8월 24일
쪽수, 무게, 크기
400쪽 | 148*210*30mm
ISBN13
9791176612876

책 속으로

소설의 첫 문장과 음악의 첫 소절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자, 그 세계를 열어젖히는 순간이다. 독자(讀者)와 청자(聽者)는 그 문턱에 발을 딛는 순간, 다른 시간과 다른 감각 속으로 들어간다. 첫 문장과 첫 소절에서 작품의 운명이 결정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작가와 음악가가 가장 많은 에너지를 쏟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문을 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문을 닫는 마지막 문장과 마지막 소절은, 그 세계 전체를 다시 한 번 되돌려 놓는 또 하나의 순간이다. 처음과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도, 그 모든 것을 통과한 뒤에야 비로소 도달할 수 있는 의미를 완성해야 한다. 그래서 마지막 문장은 단순한 끝이 아니다. 처음의 문장을 다시 비추고, 그 의미를 전혀 다른 빛 아래 놓아두는 또 하나의 시작이다. 처음이 세계를 열어 보였다면, 마지막은 그 세계 너머의 감각과 각성을 예감하게 한다.
- p.29~p.30 〈1. 소설의 시작, 음악의 끝〉 중에서

이 세계는 어마어마하게 늙었고, 인류는 너무 어리다. 과학 저술가 칼 세이건이 쓴 인류의 기원과 미래에 관한 책, 『에덴의 용』 서문이다. 인류는 138억 년 우주 역사에서 단 하루도 안 되는 시간 동안에 등장하였다. 그럼에도 인류가 현재와 같은 과학적 성취를 이룬 핵심 원인 중 하나는 '우주와 인류의 존재 이유'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 때문일 것이다. 영국 소설가 더글러스 애덤스의 공상과학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1979년)』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외계인들은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the meaning of life, the universe, and everything)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깊은 생각(Deep Thought)'이라는 거대한 컴퓨터를 설계한다. '깊은 생각'이 750만 년 동안 계산한 끝에 내놓은 답은 '42'라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숫자였다. 우주나 인류의 존재 이유는 과학으로도 찾기 어려운 끊임없는 질문의 시작일 뿐이라는 풍자다.
- p.51~p.52 〈2. 우주를 가로지르는 푸가〉 중에서

미국의 현대음악 작곡가 필립 글래스는 음악이란 언제나 혈통과 계통이 전부이며, 진정한 독창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예술의 역사에는 드물지만, 마치 과정을 건너뛴 듯 홀연히 나타나는 창조적 도약의 순간들이 있다. 예술의 진화 시간을 단숨에 압축하고, 명작의 계보를 새로운 방향으로 틀어버리는 순간들이다. 밀란 쿤데라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가 기존의 기사 소설과는 전혀 다른 도약을 이루었다고 평가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평범한 예술은 세상에 드리워진 두꺼운 '선해석(先解析)'의 커튼을 살짝 들출 뿐이지만, 위대한 예술은 그 커튼을 단숨에 찢어버린다고. 찢어진 틈 사이로 우리는 세상을 보는 전혀 새로운 눈을 얻게 된다. 예술이 진리처럼 빛나는 순간이다. 그 순간에 가장 가까운 작품 중 하나가 베토벤 교향곡 제3번(1804년) 〈에로이카(영웅)〉이다.
- p.93~p.94 〈5. 이상이 리듬이 될 때〉 중에서

역사상 가장 유명한 고전음악은 무엇일까. 베토벤 제5번 교향곡(1804년 착수, 1808년 완성)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소위 '운명의 동기(Motif)'로 불리는 네 잇단음표(바바바밤~)로 시작하는 이 교향곡은, 베토벤이 자신의 비서 안톤 쉰들러에게 '운명은 이렇게 문을 두드린다'고 말했다 하여 '운명 교향곡'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격렬한 리듬과 긴박한 화성은 베토벤 교향곡은 모든 것을 전쟁화한다는 독일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음악이다. 그러나 제목이 붙지 않은 절대음악인 까닭에, 운명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그럼에도 1악장에서 반항적이고 투쟁적인 무게로 등장한 '운명의 동기'가 4악장에 이르러 찬란한 '승리의 동기'로 변주되는 흐름 속에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극복과 초월의 서사를 어렵지 않게 감지할 수 있다.
- p.107~p.108 〈6. 부조리와 투쟁하는 자유로운 의지〉 중에서

소설은 신학자와 철학자와 학자들이 전날 짜 놓은 양탄자를 밤새 풀어헤치는 것이다. 체코의 소설가 밀란 쿤데라가 『소설의 기술』에서 한 말이다. 소설을 읽고 작가가 전하려는 주제와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소설을 이해하는 만능열쇠가 있을 수도 없다. 소위 고전이라고 알려진 소설일수록 부적처럼 따라다니는 난해함과 지루함 앞에서 완독 의지는 너무 쉽게 무너진다. 하지만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면 몇 겹의 봉인으로 감춰진 비밀의 문으로 쉽게 들어갈 수 있다. 그 실마리 중 하나는 고전음악이다. 독일의 소설가 토마스 만은 소설은 나에게 언제나 하나의 교향곡이고 대위법 작품이며, 이념들이 음악적 동기의 역할을 하는 주제의 조직이다.라고 말했다.
- p.147~p.148 〈9. 그래야만 하는가? 그래야만 한다!〉 중에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밀란 쿤데라처럼 고전음악을 소설 속으로 깊이 끌어들이는 작가가 있다. 『노르웨이의 숲』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무라카미 하루키다. 하루키가 조지 오웰의 반전체주의 소설 『1984』를 재해석한 『1Q84(2009년)』에는 난해한 상징들이 촘촘히 깔려있다. 하루키는 이에 대해 포스트 냉전 세계의 존재 방식을 그리고 싶었지만, 사실적 묘사만으로는 다 표현할 수 없어 메타포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언어가 닿지 못하는 곳에, 음악이라는 다리를 놓아둔 것이다. 쿤데라가 고전음악을 소설의 형식과 동기(Motif)로 삼는다면, 하루키는 그것을 장식이자 메타포(은유)로 사용한다. 방식은 다르지만, 두 작가 모두 언어만으로는 세상을 온전히 담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p.175~p.176 〈11. 진실의 또 다른 이름, 가벼움과 불완전함〉 중에서

예술 작품은 익숙한 일상 넘어, 낯선 미지의 세계를 보여준다. 그 세계는 우리를 이전과 다른 삶과 길로 인도한다. 그 입구가 바로 소설의 첫 문장이고 음악의 첫 소절이다.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나침반이자 북극성이 된다. 작품을 끝까지 읽고 마지막까지 듣게 만드는 힘도 그곳에서 나온다. 그래서 비행기가 이륙할 때 가장 많은 연료를 쏟아붓듯, 소설가와 작곡가도 첫 문장과 첫 소절에 집착에 가까운 노력과 상식을 뛰어넘는 시간을 바친다. 이후의 모든 것은 그곳으로부터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 p.217 〈14. 별빛이 태양처럼 빛나는 순간〉 중에서

베토벤의 음악이 '피안(彼岸)'의 진리라면, 브람스의 음악은 '차안(此岸)'의 진실이다. 피안이란 강 저편, 즉 우리가 닿을 수 없는 이상의 세계를 말하고, 차안이란 강 이편, 즉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현실의 세계를 말한다. 브람스의 음악은 차안의 현실에서 베토벤이 바라보던 별을 올려다보다 실족하는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음악이다. 고귀한 이상을 품고 위대한 꿈을 이루는 것만큼이나, 평범한 일상을 묵묵히 버티는 것 역시 충분히 가치 있는 일임을 브람스는 음악으로 말한다. 봄에 꾸었던 꿈과 계획을 가을에 이루지 못했더라도 브람스는 우리를 탓하지 않는다. 그것이 인생이고, 그래도 괜찮다고 조용히 위로한다. 그래서 우리는 가을에 브람스를 듣는 것이리라.
- p.242 〈15. 깊이라는 유령이 출몰하는 세계〉 중에서

역사상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년)만큼 논쟁적인 작곡가는 없었다. 바그너는 작곡가이자 문학가요 연출가였다. 철학가이자 비평가였으며, 무엇보다도 천부적인 이야기꾼이었다. 나아가 프랑스 음악 미학자 마르셀 보피스가 말한 음악으로 교양을 쌓은 예언자를 뜻하는 '독일의 사상가'라는 정의에 가장 부합되는 인물이었다. 세상은 바그너를 극단적으로 추앙하는 사람과 혐오하는 사람으로 나뉜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이만큼 바그너를 정확하게 드러내는 말도 없다. 독일 소설가 토마스 만에게 바그너의 음악은 정신을 고양시키고 마음을 위로해 주는 '영혼의 마술사'였다. 반면, '망치의 철학자'로 불리는 니체에게는 도취와 환각으로 독일 민족을 몰락과 죽음으로 이끄는 '늙은 마술사'에 불과했다.
- p.279~p.280 〈18. 천년의 굴욕, 백년의 절망〉 중에서

이방인이란 원주민과 주류가 점유한 공간과 집단 안으로 들어온 타자를 지칭한다. 본질적으로 동화될 수 없는 '영원한 낯섦'의 존재다. 중심을 지향하지만 언제나 가장자리로 밀려나는 경계인이다. 가까이 있으면서도 끝내 멀리 떨어져 있는 존재다. 그러나 오스트리아 빈 출신의 철학자 알프레드 슈츠(1899~1959년)가 이방인이란 연극의 객석에서 무대 위로 뛰어 올라간 사람이다.라고 말했듯이, 이방인은 그 사회가 당연시하는 것들의 모순을 누구보다 먼저, 예리하게 분석하는 철학자이자 예민하게 감지하는 예술가에 가깝다. 객석에서 무대를 바라보는 관객과 달리, 무대 위로 직접 뛰어오른 사람만이 무대 위의 현실과 뒤의 비밀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p.313~p.314 〈20. 무대 위로 올라간 이방인〉 중에서

20세기 초, 자본주의로 인한 불평등은 위험수위를 훌쩍 뛰어넘고 있었다. 제국주의는 세계를 뒤덮고 있었으며, 전제군주제의 위세는 여전하였다. 인간의 존엄성과 품위는 쉽게 무시되고 거부되고 있었다.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한 유토피아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당위와 소명이, 만들어 낼 수 있다는 확신과 믿음이 진리처럼 받아들여지는 시기였다. 1917년 러시아 공산 혁명으로 사회주의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자유.평등.풍요가 일상이 되는 지상천국. 그 낭만적 이상향을 약속하는 사회주의적 유토피아의 등장에 지식인은 매혹되었고, 대중들은 열광하였으며, 예술가들은 영감을 받았다. 장밋빛 미래는 곧 현실이 될 것만 같았다.
- p.349~p.350 〈22. 음악으로 봉인된 비밀일기〉 중에서

『어제의 세계』는 20세기 전반 유럽을 대표하는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1881~1942년)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 직전 망명지 브라질에서 완성한 유럽 정신에 대한 회고록이다. 19세기 말 빈(Wien)의 풍요로웠던 고전과 아름다웠던 낭만의 시대가 20세기 들어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나치의 광기 속에 어떻게 무너져 내렸는지를 되돌아본다. 그 변화의 속도와 결과가 어떠했는지는 서문 속 한 문장에 모두 함축되어 있다. 나는 내 의지와 무관하게 역사상 가장 끔찍한 이성의 패배와 가장 야만적인 폭력의 승리를 목격하였다. 우리 세대만큼 그토록 높은 정신적 고도에서 그토록 깊은 도덕적 나락으로 추락한 세대는 일찍이 없었다. 반세기 동안 보통 같으면 열 세대에나 걸쳐서 일어나는 것보다 더 급진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나의 오늘은 어제의 어느 것과도 너무나 다르다.
- p.381~p.382 〈24. 진보의 숲을 배회하는 고독한 영혼〉 중에서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읽으니 들리고, 들으니 보이는 전혀 새로운 클래식 독서
오늘날 고전음악을 듣다 보면 어느 순간 소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때가 온다. 이 선율은 왜 마음을 흔드는지, 작곡가는 무엇을 생각했는지, 악보 뒤에는 어떤 시대와 삶이 숨어 있는지 알고 싶어진다. 유인재의 『문학이 음악이 되는 순간』은 바로 그 질문에서 출발한다. 음악을 설명하기 위해 음악 용어를 늘어놓는 대신, 문학의 문장과 인물, 시대와 사상을 통해 클래식 작품의 비밀을 읽어낸다.
이 책은 바흐에서 시벨리우스까지 24개의 음악 작품을 헤밍웨이, 칼 세이건, 디킨스, 움베르토 에코, 샐린저, 카뮈, 카잔차키스, 토마스 만, 쿤데라, 하루키, 도스토옙스키, 괴테, 카프카, 오웰 등 24편의 문학.인문 고전과 짝짓는다. 작곡가와 작가가 직접 영향을 주고받은 경우뿐 아니라, 서로 다른 시대와 장르의 작품 속에서 같은 질문과 정서를 발견해 연결한다.
각 장은 한 가지씩 질문을 던진다.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왜 같은 아리아로 시작하고 끝나는가. 베토벤 교향곡 제5번의 '운명'은 무엇인가. 차이콥스키의 〈비창〉은 왜 승리와 환희가 아닌 비통한 침묵으로 끝나는가. 말러는 왜 천여 명이 필요한 교향곡을 썼는가. 독자는 질문을 따라가며 작품이 태어난 역사와 작곡가의 삶, 음악에 깃든 철학을 함께 만나게 된다.

소리를 설명하지 않고, 소리 뒤의 이야기를 찾는다
이 책은 곡의 형식이나 연주 기법을 앞세우는 입문서가 아니다. 저자는 고전음악을 '역사의 후손이자 시대의 산물', '삶의 은유이자 영혼의 고백'으로 바라본다. 음악을 이해하려면 작곡가의 생애뿐 아니라 그가 살았던 시대의 정치와 사회, 철학과 문학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는 관점이다.
그래서 책의 무대는 음악회장에 머물지 않는다. 스페인 내전과 프랑스 혁명, 러시아 혁명과 스탈린 체제, 두 차례 세계대전과 나치의 광기, 세기말 빈의 유대인 사회까지 이어진다. 음악은 시대의 소음과 억압 속에서 탄생한 개인의 고백이 되고, 문학은 악보에 적히지 않은 의미를 발견하는 통로가 된다.

바흐에서 베토벤까지, '강'과 '광장'으로 나아가는 음악
제1장 「베토벤의 강」은 바흐, 하이든,모차르트를 거쳐 베토벤으로 흐르는 고전음악의 계보를 살핀다.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통해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처음과 끝을 읽고,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바흐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에서 우주의 질서와 조화를 발견한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는 하이든의 마지막 교향곡 〈런던〉과 만나고,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은 모차르트 후기 교향곡의 비극과 희극을 비춘다.
제2장 「베토벤의 광장」은 음악이 개인의 밀실을 벗어나 시대와 인간을 향하는 순간을 다룬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에로이카〉의 이상과 연결되고, 카뮈의 『시지프 신화』는 교향곡 제5번의 투쟁 의지를 해석하는 열쇠가 된다. 『그리스인 조르바』와 교향곡 제7번은 춤과 도취를, 토마스 만의 『파우스트 박사』와 교향곡 제9번은 절망 끝의 환희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마지막 현악 4중주는 무거움과 가벼움의 역설을 묻는다.

슈베르트.브람스.차이콥스키, 불완전한 존재를 위한 위로
제3장 「베토벤의 밀실」은 베토벤 이후의 낭만주의 음악이 개인의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은 『위대한 개츠비』의 좌절된 꿈과 만나고,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는 『해변의 카프카』와 『롤리타』를 통해 가벼움.불완전함.연주의 진실을 묻는다. 슈만의 광기와 낭만은 『모비 딕』의 바다에, 멘델스존의 선율은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에 이어진다.
브람스 교향곡 제1번을 다룬 대목에서 책은 위대한 이상에 도달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린다. 베토벤의 음악이 닿기 어려운 피안의 진리라면, 브람스의 음악은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차안의 진실이라는 것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차이콥스키의 〈비창〉,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드보르자크 교향곡 제9번은 러시아의 심연과 신세계의 이상.불안을 함께 들려준다.

바그너에서 시벨리우스까지, 시대의 소음 위로 들려오는 음악
제4장 「베토벤의 바다」는 근현대의 격랑 속에서 음악이 어떻게 권력.전체주의.소외.진보와 맞섰는지를 따라간다.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은 바그너 〈니벨룽의 반지〉와 독일 역사의 굴욕과 욕망을 비춘다. 최인훈의 『광장』과 브루크너 교향곡 제7번은 절대음악과 표제음악의 경계를 묻고, 카프카의 『성』과 말러 교향곡 제5번은 이방인의 고독을 무대 위로 불러낸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말러 교향곡 제8번의 구원과 연결되고, 오웰의 『1984』는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제5번에 봉인된 목소리를 읽는 열쇠가 된다. 엘리어트의 『황무지』와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은 문명 아래 숨은 야만과 원시성을 드러낸다. 마지막으로 흐라발의 『너무 시끄러운 고독』과 시벨리우스 교향곡 제7번은 진보의 이름 아래 밀려난 고독한 영혼을 응시한다.

24개의 질문과 추천 음반이 만드는 입체적인 감상 지도
각 글은 문학 작품과 음악 작품의 기본 정보, 시대적 배경, 작가와 작곡가의 생애, 작품을 둘러싼 논쟁을 한 흐름으로 엮는다. 장 말미에는 저자가 선정한 추천 음반과 연주 해설을 붙였다. 같은 곡이 지휘자와 연주자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 비교하며 들을 수 있도록 돕는다.
책의 네 장은 '강광장밀실바다'라는 공간의 은유로 이어진다. 음악의 계보가 강처럼 흐르고, 베토벤의 음악이 광장으로 나아가며, 낭만주의 음악은 개인의 밀실로 들어간다. 근현대 음악은 역사의 거대한 바다와 마주한다. 이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클래식은 작곡가와 작품명을 외우는 지식이 아니라, 인간과 시대를 이해하는 하나의 이야기로 다가온다.

음악을 듣던 귀로 문학을 읽고, 문학을 읽던 눈으로 음악을 듣다
『문학이 음악이 되는 순간』이 제안하는 감상법은 간단하다. 먼저 질문을 읽고, 문학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음악을 듣는 것이다. 가사가 없는 고전음악은 정답을 주기보다 의미를 찾게 한다. 독자는 저자의 해석을 유일한 결론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자신의 경험과 기억으로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다.
책을 덮고 나면 음악이 조금은 다르게 들릴 것이다. 오래 들어온 곡에서 처음 보는 풍경을 발견하고, 책장에 묵혀둔 소설을 다시 꺼내게 될지도 모른다. 읽으니 들리고, 들으니 보이는 순간. 이 책은 클래식과 문학 사이에 놓인 문을 열어주는 고품격 인문 음악 안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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