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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 장르와 젠더의 교차점에서
1장 | 장르와 젠더, 가사와 여성 2장 | 장르와 젠더의 이론 1 신고전주의 장르 이론과 아도르노의 서정시 이해 2 바흐친·신수사학파의 장르 이론과 젠더 3 메를로-퐁티와 주디스 버틀러의 시사점 3장 | 젠더 수행과 장르 변동: 〈사미인곡〉·〈속미인곡〉 1 여성 화자의 발화와 서정적 텍스트 주체의 출현 2 젠더의 변화와 장르의 유동: 〈사미인곡〉 3 젠더·장르의 규범으로부터의 탈주: 〈속미인곡〉 4장 | 젠더의 전복적 수행과 장르의 얽힘: 〈규원가〉 1 여성 화자의 전유와 경계 없는 텍스트 주체의 출현 2 젠더 규범의 반복적 수행과 전복 3 몸과 사물의 얽힘을 통한 젠더·장르의 혼융 5장 | 장르와 젠더의 역동적 얽힘과 문학교육 1 타자와의 얽힘으로 구성되는 주체 2 ‘공통된 살’을 통한 문학교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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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한 맥락에서 여성주의 연구자들은 젠더를 고정된 정체성으로 다루지 않는다. (…) “실제로 누구도 ‘남성’, ‘여성’의 정의에 들어맞는 사람은 없으며, 양자 사이의 구분은 그렇게 자명한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하였다.
--- p.6, 「머리말」 중에서 젠더는 문학 교실에서 중요한 이슈가 된 지 오래다. 학습자들이 정철의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는 이유가 작가의 성별 때문이라는 점이 교육 현장과 논문에서 자주 지적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허난설헌의 〈규원가〉를 다룰 때는 ‘여성’이라는 작가의 성별에 구애되어 그 목소리의 소수성만 강조하고 텍스트에 담긴 중층적이고 때로는 상호모순적이기도 한 목소리들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 p.7, 「머리말」 중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등장함으로 말미암아 공적 장르와 사적 장르의 경계, 교술과 서정의 경계가 무너진다는 사실은 젠더가 장르의 형성과 운용의 기본적인 토대가 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불어에서 ‘genre’라는 말이 문학의 장르와 문법적 성의 구분에 모두 쓰이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담론과 존재를 어떻게 구분하는가를 보여주는 장르와 젠더는 서로 밀접한 연관을 지닐 수밖에 없다. 그런데 모든 구분의 토대로 보이는 젠더가 자연스럽고 본질적인 실체가 아니라 실은 담론적 관습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장르에 대한 인식을 바꿀 것을 요구한다. --- p.29, 「1장, 장르와 젠더, 가사와 여성」 중에서 주디스 버틀러를 비롯한 페미니스트들이 지적하듯이 여성의 몸은 몰역사적이고 생물학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며, 비문화적인 대상도 아니다. 여성의 체험된 몸은 사회적인 강압, 법적인 각인, 성적이고 경제적인 교환 체계의 대상이 되는 몸이다. --- p.59, 「2장, 장르와 젠더의 이론」 중에서 메를로-퐁티와 주디스 버틀러에 따르면 주체 자체가 비동일적이며, 타자와의 관계에서 주체는 계속해서 변화된다. 또한 주체는 담론의 효과이며, 규제에 따른 반복된 수행의 결과이다. 이러한 관점을 바탕으로 이 글은 정철과 허난설헌의 가사에서 여성 화자의 발화에 의해 형성되는 텍스트 주체는 스스로에게 동일성을 지닌 주체가 아닐 것이라고 가정한다. --- p.71, 「2장, 장르와 젠더의 이론」 중에서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몸으로도 천리만리로 느껴지는 길인데,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못 나가는 여성 화자의 몸의 감각으로는 더 멀게 느껴짐이 당연하다. 화자는 자기가 아니라 누구라도 찾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이번이 작가 정철의 네 번째 낙향이었다. 과거 창평과 한양 사이를 오고 갔던 남성 작가의 몸과, 담양과 한양의 거리감을 여성의 몸으로 측정하는 화자의 감각이 합쳐지면서, 이 두 존재를 매개하는 텍스트 주체의 절망감이 더해진다. --- p.95, 「3장, 젠더 수행과 장르 변동: 〈사미인곡〉·〈속미인곡〉」 중에서 버려진 여성의 안쓰러운 몸짓을 표현하는 데 사용된 ‘바장이다’라는 순우리말 표현을 통해 구성되는 〈속미인곡〉의 텍스트 주체는 버림받은 고통에 발버둥치는 몸으로 실존하는 주체이다. (…) 이렇게 우리말 시가 짓기를 통해 근엄한 규제로부터 인간의 몸의 감각을 해방시킨 정철이라는 작가 덕분에 우리는 〈속미인곡〉에서 당대의 젠더 규범으로부터 벗어난 여성의 몸을 만날 수 있다. 작가가 아무리 여성 화자에게 자기를 내준다고 해도 님이 오지 않는 규방에 갇힌 여성의 어쩔 줄 모르는 심정을 남김없이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남성 작가와 여성 화자가 동일시될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 심정은 처음부터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심정이기 때문이다. --- p.137, 「3장, 젠더 수행과 장르 변동: 〈사미인곡〉·〈속미인곡〉」 중에서 〈규원가〉에 나오는 여성 화자의 발화는 여성 젠더의 직접적인 발화가 아니라 남성 문학의 전통 속에서 남성 언어의 형식을 매개한 발화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규원가〉는 여성적 글쓰기의 딜레마 속에서 남성의 언어를 전유하고 남성이 사용한 언어에 다른 함의를 부여하면서, 한 번도 말해지지 않은 어떤 것을 말하려고 애쓰는 작품이다. --- p.157, 「4장, 젠더의 전복적 수행과 장르의 얽힘: 〈규원가〉」 중에서 〈규원가〉의 화자는 자신이 늙은 이유를 봄바람과 가을 달이 ‘베에 걸린 실오리에 북이 지나가듯’ 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녀에게 흐르는 세월은 고된 노동으로 빈틈없이 채워진 시간의 연속이다. 베틀로 베를 짜려면 세로로 드리운 날실 실오리에 가로로 씨실을 넣은 북이 지나가야 한다. 밤새도록 북이 쉴 틈 없이 실오리 사이를 지나가면 날이 새고 베가 짜진다. 이렇게 베를 짜는 여성의 몸에는 시간의 흐름도 같이 새겨진다. --- p.185, 「4장, 젠더의 전복적 수행과 장르의 얽힘: 〈규원가〉」 중에서 텍스트 주체의 몸은 기생을 연민하는 남성의 몸이 되기도 하고, 창기로 오인받는 여성의 몸이 되기도 하며, 남성 문인들이 ‘박명한 홍안’을 연민하는 시선을 자신에게 적용함으로써 결국 ‘불우한 남성 문인의 연민의 시선’과 ‘재주를 빛내고 싶은 규방 여인으로서의 열망’이 한데 얽힌 몸이 되기도 한다. 〈규원가〉는 젠더의 얽힘을 육화한 몸을 지닌 주체가 최초로 등장하는 가사이다. --- p.227, 「4장, 젠더의 전복적 수행과 장르의 얽힘: 〈규원가〉」 중에서 시인의 자기 인격이 있다 하더라도 그 인격이 하나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으로서 흔들리지 않는 실체로서 변함없이 현존하는 것은 아니다. 앞서 보았듯이 시 텍스트 안에서 그때그때의 발화에 따라 텍스트 주체가 다르게 구성되며 현존하기에, 시는 지금 발화하는 주체에 앞서 지각한 익명의 사람들의 지각을 담고 있다. 이러한 텍스트 주체는 여성 젠더적으로 구성되기도 하고, 남성 젠더적으로 구성되기도 하며, 때로는 젠더의 경계가 없는 주체가 구성되기도 한다. 이에 따라 텍스트의 장르적 성격도 교술에서 서정으로, 다시 교술로, 서정으로 계속 바뀐다. --- p.247, 「5장, 장르와 젠더의 역동적 얽힘과 문학교육」 중에서 학습자는 자신이 읽는 텍스트 세계에 연루되어 “세상과 가장 멀어진, 가장 좁고 폐쇄된 공간”인 ‘규방’에 갇혀 있는 몸이 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언어를 발화할 수 있었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닫힘’과 ‘열림’이라는 언어는 학습자 자신에게서 기원하지 않고 텍스트의 언어로부터 기원했다고 볼 수 있다. 학습자가 텍스트 주체에게 빌려준 언어의 기원이 텍스트 자체에 있는 것이다. 즉, 현대 학습자의 언어와 텍스트 주체의 언어는 서로 구분되지 않고 서로가 서로의 기원이 되는데 이는 학습자와 텍스트 주체가 ‘갇힌 여성’의 존재 양식을 공유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 p.267, 「5장, 장르와 젠더의 역동적 얽힘과 문학교육」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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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알고 있는 작가의 이름을 지나, 살아 있는 목소리 앞으로
우리는 오랫동안 문학작품을 작가의 삶과 창작 의도를 찾아가는 방식으로 읽어 왔다. 누가 썼는지, 화자(또는 서술자)는 작가를 얼마나 반영하는지, 한 작품이 서정·서사·극·교술 가운데 어디에 속하는지를 밝히면 작품의 의미도 선명해진다고 믿었다. 특히 ‘시인이 자신의 인격으로 말하는’(34쪽) 서정 이론은 하나의 작가, 하나의 의식, 하나의 진정성이라는 안정된 틀을 오랫동안 지켜 왔다. 그러나 이러한 독법으로는 텍스트 안에서 목소리가 바뀌고 서로 어긋나며, 장면마다 매번 새로운 주체가 태어나는 순간을 충분히 포착할 수 없다. 그 한계는 고전문학교육에서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남성 작가 정철이 여성 화자의 목소리를 빌려 충정을 노래했다는 사실은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을 아첨의 작품으로 단순화하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규원가〉도 여성 작가인 허난설헌의 비극적 생애와 원망의 목소리로만 읽히기 쉽다. 작가의 성별로만 작품에 접근하면 그 안에서 충돌하는 여성적·남성적 언어와 공적·사적 목소리, 교술과 서정의 긴장을 놓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책은 그렇게 놓친 것들을 다시 들여다보고자 하는 시도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단일한 저자성에 균열을 낸 아도르노, 몸과 타자의 얽힘 속에서 주체를 바라본 메를로-퐁티, 젠더를 반복되는 수행으로 설명한 주디스 버틀러의 사유를 지나며 새로운 질문을 던지게 된다. ‘작가가 무엇을 말했는가’가 아니라 ‘그 말들이 어떤 몸과 목소리를 만들어 내는가.’이다. 기존의 문학 비평과 문학교육이 놓쳐 온 이 질문에서 장르와 젠더를 함께 읽어야 할 필요성을 찾을 수 있다. ·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는 순간, 새로운 몸을 얻는 텍스트 저자가 제안하는 핵심 개념은 ‘텍스트 주체’다. 이는 현실의 작가도, 작품 속에서 직접 말하는 화자도 아니지만, 텍스트의 발화가 이어지는 동안 구성되고 그 발화에 다시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다. 작가의 제2의 자아라는 역할을 하는 ‘내포작가’와도 다르다. 텍스트 주체는 언어와 사물, 타인의 목소리에 감응하는 신체성을 지니며 작품의 부분마다 새롭게 구성된다. 말이 몸을 만들고, 그렇게 생겨난 몸이 다시 다음 말을 불러오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작가가 누구이며 그의 의도가 무엇이냐가 아니다. 그보다는 여성 화자의 발화에 의해 구성되는 텍스트 주체가 가사 작품의 부분부분에서 어떤 장르의 담론 양식을 빌려서 어떻게 실존하는지가 중요하다. - 본문 247쪽 책은 먼저 장르와 젠더가 같은 어원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흥미로운 사실과 남성의 전유물이던 가사에 여성이 들어온 역사를 짚고, 아도르노·바흐친·신수사학파·메를로-퐁티·주디스 버틀러 등의 이론을 살피며 분석의 토대를 마련한다. 이어 〈사미인곡〉에서는 공적인 남성 장르 안으로 여성의 사적 목소리가 들어오며 서정적 주체가 형성되는 순간을, 〈속미인곡〉에서는 몸의 감각을 밀어 올리는 고유어와 격렬한 몸짓이 젠더와 장르의 규범 밖으로 탈주하는 과정을 포착한다. 〈규원가〉에서는 남성 작가가 빌린 여성의 목소리를 여성 작가가 다시 빌려 오고, 남성 한문학의 언어까지 자기의 것으로 바꾸면서 남성과 여성, 교술과 서정의 경계를 오가는 모습을 살펴본다. 이 과정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세 편의 가사는 목소리를 건네받고 되돌려 주며 새로운 주체를 만들어 가는 여정으로 읽힌다. · 갇혀 있던 목소리에서 벗어나, 서로의 날개가 되는 문학교육 ‘텍스트 주체’는 기존의 문학 이론에서 우리가 간과했던 지점을 짚어 낼 수 있게 한다. 이는 작품을 작가의 전기나 의도로 환원하지 않으면서도 텍스트의 진정성과 주체성을 말할 수 있게 하는 비평적 장치다. 장르를 고정된 그릇이 아니라 목소리가 움직일 때마다 함께 변하는 담론 양식으로, 젠더를 타고난 본질이 아니라 몸과 언어가 반복하고 어긋나며 새롭게 만들어지는 존재 양식으로 보게 한다. 이러한 관점을 통해서라면 우리가 공부해 온 교과서 속 문학작품들은 이미 완결된 감상의 반복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재가 된다. 이 책에서 여성의 억압은 상처받고 억눌리는 장면으로만 제시되지 않는다. 말할 자리를 빼앗기고 사적 공간에 갇혀야 했던 몸의 압력은 가사의 구절 사이에서 농밀해지고, 때로는 고유어의 거친 숨과 격렬한 몸짓으로 분출되며, 때로는 남성 문학의 권위 있는 언어를 전유해 그 내부를 흔들기도 한다. ‘날개를 지녔지만 새장에 갇힌 새’였던 수많은 몸은 시대와 성별을 넘어 서로의 감각을 빌려 온다. 그 얽힘 속에서 여성의 목소리는 남성의 언어를 흉내 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장르의 경계를 움직이며 세계를 재정의하는 힘으로 읽힌다. 앞으로의 문학교육은 누군가 발굴해 둔 작가의 의도를 찾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학습자는 텍스트의 제자가 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의 감각과 언어를 작품에 빌려주고, 작품 역시 오래전의 몸과 목소리를 오늘의 독자에게 건네는 능동적 주체가 되어야 한다. 그러한 점에서 이 책은 문학 비평과 문학교육의 시각을 단순히 ‘누가, 왜 썼는가’에서 ‘어떤 목소리가 어떤 맥락에서 살아나는가’로 넓어지게 한다. 텍스트와 독자, 장르와 젠더가 서로 얽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한국 문학교육의 다음 가능성이 열릴 것이라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