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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월)
마귀의 시험을 이기는 강력한 무기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기록되었으되... 기록되었으되... 말씀하셨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하였느니라.” 하시니 마귀가 모든 시험을 마친 후... 떠나가더라』(눅 4:4,8,12,13). 인자이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령의 칼”로 “모든 시험”에서 승리하셨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께 『간구하여... 열두 군단이 넘는 천사들』(마 26:53)을 오게 하실 수 있었다. 또는 “하나님으로서의 능력”을 사용하여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영』(살후 2:8), 곧 『입에서 나오는 칼』(계 19:21)이나, “그분의 권위 있는 말씀 한 마디”로 “시험하는 자”인 마귀를 물리치셔서 당장에 끝없이 깊은 구렁으로 던져 버리실 수 있었다. 하지만 주님은 그분을 섬기는 영들인 “천사들”이나 “하나님으로서의 능력”을 사용하시지 않았고, 오직 말씀, 곧 “신명기”에 “기록된 말씀”만을 사용하셨다. 예수님은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려고 성령의 인도로 광야』(마 4:1)로 가셨을 때, “구약 성경 39권의 말씀들”을 그분의 “머릿속과 마음속”에 모두 챙겨 가셨다. 특히 “말씀의 자루”에 손을 넣어 “마귀의 세 가지 시험”에 부합하는 세 개의 돌, 곧 “신명기 8:3,” “신명기 6:13,” “신명기 6:16”을 차례로 꺼내어 “시험하는 자”인 마귀를 향해 빠르고 정확하게 던지셨고, 그 “강력한 말씀들”로 “마귀”에게 “치명상”을 입히셨다. “사탄”과의 “무서운 전투”가 벌어질 때 “가장 훌륭한 칼과 방패”는 “기록된 말씀”이다. “찰스 스펄전”은 이렇게 설교했다. “언제나 여러분의 옆구리에 ‘기록되었으되’라는 무기를 차고 있어야 합니다. ‘기록되었으되’라는 무기가 혼과 영을 찌르고 ‘옛 뱀, 리비야단’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탄의 관절과 골수”를 찔러 가르는 강력한 무기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성령의 칼을 쓰지 않고 이기려고 하는 사람은 맨손으로 싸우는 군사와 같다.” 일년일독 ● 창 19-21장 ● 마 7장 10.24(토) 내가 들은 것은 절반도 되지 아니하니 『내가 와서 내 눈으로 그것을 보기까지는 그 말을 믿지 아니하였으나, 보소서, 내가 들은 것은 절반도 되지 아니하니 당신의 지혜와 번영이 내가 들은 명성을 능가하나이다』(왕상 10:7). 시바 여왕은 주의 이름에 관한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먼 길을 떠나 예루살렘에 이르렀다. 여왕은 궁에 앉아서 보고만 받으려 하지 않았다. 자기 마음속에 있는 모든 것을 직접 묻고, 직접 보고, 직접 듣고자 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예루살렘에서 본 솔로몬의 지혜와 영광은 그녀가 자국에서 들은 보고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금으로 가득한 성전의 찬란함과 궁전의 질서, 왕의 식탁과 신하들의 섬김 앞에서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자기가 가져온 최고급 선물인 금과 향료와 보석도 초라해 보였을 것이다. 참된 신앙도 이와 같다. 창조주 하나님과 그분의 은혜는 간접적인 경험으로는 다 알 수 없다. 다른 성도에게서 듣는 것만으로도 주님의 역사와 인도하심이 놀랍지만, 성경을 통해 직접 배우고 믿음으로 살아가며 그 선하심을 맛볼 때 그 영광은 우리의 기대를 훨씬 넘어선다. 성경은 오래된 책이 아니라 오늘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증거이며, 복음은 과장된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죄인을 살리는 능력이다. 다른 성도의 간증으로만 들은 하나님을 나도 안다고 착각하면 안 된다. 말씀으로 가까이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거룩하시며 은혜가 풍성하신지에 새삼 압도될 것이다. 성경을 펼치는 성도는 단순히 정보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 앞에 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부풀려 전한 이야기보다 더 크시며,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선하시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면 “내가 들은 것은 절반도 되지 아니하니.”라고 경탄하게 된다. 당신은 그렇게 고백하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귀로만 듣는 신앙을 넘어,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위대한 영광을 맛보라.” 일년일독 ● 신 4-6장 ● 눅 10장 11.23(월) 선택적인 순종은 순종이 아니다! 『그러나 사울과 백성이 아각을 살려 두었고... 모든 좋은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은 남겨 두고 완전히 멸하기를 원치 아니하였으며, 천하고 쓸모없는 것들은 다 완전히 멸하였더라』(삼상 15:9). 하나님께서는 “사울”이 “아말렉 족속”을 완전히 멸할 수 있도록 전투에서 승리하게 하셨다. 이로써 “아말렉”을 진멸할 기회가 “사울”에게 주어졌으나, 그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이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특히 그는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가장 좋은 것은 남겨 둔 채 완전히 멸하기를 원치 않았다.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에 온전히 순종하기보다, 자기 눈과 생각에 더 옳게 보이는 대로 행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때, 그 명령을 받는 사람의 기준과 생각은 결코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에 자신의 기준과 잣대를 들이밀며 “선택적인 순종”을 하고 말았다. “선택적인 순종”이 무엇인가? 어떤 영역에서는 하나님의 명령에 기꺼이 따르면서도, 다른 영역에서는 자기 눈에 좋다고 판단되는 생각과 기준에 따라 명령을 거역하는 것이다. 즉, 자신에게 편하고 유리한 명령에는 순종하는 반면, 힘들고 불리한 명령은 회피해 버리는 행위다. “선택적 정의”가 정의가 아니라 오히려 “중대 범죄”이듯, “선택적인 순종” 역시 순종이 아니라 “불순종의 죄”일 뿐이다.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명령을 취사선택할 권한이 없다. 하나님도 사랑하고 세상도 사랑한다는 성도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이며, 세상을 사랑하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는 사람”일 뿐이다. 또한 자신의 몸을 하나님과 세상을 위해 다 드리는 사람은 주님께 온전히 헌신한 자가 아니다. 그래서 선택적인 순종은 “순종”이 아니다. 성경은 그것을 “불순종”이라고 명명한다. “그럴듯한 핑계를 대는 타협적인 순종은 가장 지독한 불순종의 죄이다.” 일년일독 ● 삼상 7-9장 ● 요 16장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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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보존학회는 1994년에 [한글킹제임스성경]을 내놓아 이 땅에 바른 성경을 제시했으며, 성경에 근거한 교리, 신학, 경건 서적들을 출판·보급함으로써 바른 신학과 바른 신앙을 선도하는 사역을 신실하게 수행해 오고 있다.
서문 가을호(9,10,11월)를 내면서 『내가 주의 장막에 영원히 거하며 주의 날개로 덮은 곳을 신뢰하리라. 셀라』(시 61:4). “날개”는 일종의 장막이다. “새”가 날개를 펼치면 “둥근 지붕”이 형성된다. 강한 폭풍우 속에서도 “병아리들”은 “어미 닭”의 장막 같은 날개 아래에서 “어미 닭”의 품속에 파묻혀 고요함과 평안함을 누린다. 하늘이 떠나갈 듯한 천둥소리 대신 “어미 닭”의 “차분하고 평온한 심장 소리”를 들으며 최고의 안식 속에 깊은 잠에 빠지는 것이다. 이처럼 창조주요, 구속주요, 위로와 자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성도들이 “그분의 날개” 아래 옹기종기 모여 앉아 그분의 임재를 풍성하게 경험할 수 있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분의 날개 아래 품으시고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의 성경을 통해 우리와 교제를 나누기를 바라신다. 거룩하시고 죄 없으시며 불멸하시고 어떤 사람도 접근할 수 없는 빛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 곧 영원한 존귀와 능력을 지니신 주님과 함께 거하고 교제하며 산다는 것은 대단한 영예요, 위대한 특권이다. 특히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주님의 자애하심을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날개 그늘 아래서 풍성한 만족을 누릴 수 있다. 그곳에는 기름진 것이 넘쳐 나고, 주의 기쁨이 강물처럼 흐르며, 생명의 원천이 보이고, 주의 빛이 환하게 비치며, 주의 자애와 주의 의가 끊임없이 베풀어지고 있다.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 머물면 굶주리는 일이 없다. 하나님의 집의 기름진 것과 기쁨의 강물을 마시는 풍요로움을 누리게 된다. 하나님의 날개 그늘 아래 마련된 푸른 초장과 잔잔한 물가에서 꼴을 먹고 물을 마시면, 배고픔과 목마름으로 기진맥진해 있는 우리 “혼”이 다시금 소생하고 회복된다. 황금빛 들판의 풍요로움으로 가득한 가을날, “하나님의 날개 아래”에서 [그날의 양식]과 더불어 최고의 안식과 풍성한 양식을 마음껏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발행인 |